독자로부터
다른 사람과 사이좋게 지내는 일
“청소년은 묻는다 ··· 친형제 자매간에 사이좋게 지내는 것이 왜 그렇게 어려운가?” (한국어판은 1987년 8월1일호) 기사에 대해 감사드립니다. 나는 16세인데, 여동생들과 다툴 때가 종종 있읍니다. 며칠 전에 한 여동생과 다투었는데, 때려 주고 싶었읍니다. 그래서 확 떼밀기는 했지만 애써 자제하였읍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우리들처럼 싸워서는 안 된다는 것을 나는 압니다. 여러분의 기사는 내가 상황을 제어하여 가정 내에서 평화를 유지하도록 하는 데 도움이 되었읍니다. 이제 제안들을 실천에 옮겨서 가족의 연합에 이바지하기 위하여 최선을 다하고자 합니다.
R. A. G., 브라질
아프리카의 야생 동물
아프리카의 야생 동물에 관한 여러분의 기사를 흥미있게 다 읽었읍니다. (한국어판은 1987년 10월 1일호) 그 기사를 읽으면서 웃기도 했고 때로는 그 특이한 동물들을 영리를 위해서 잔인하게 살육하는 것에 대해서 깊은 슬픔을 느끼기도 했읍니다. 동물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에 관한 그 기사의 계몽적인 지식에 대해서 감사드립니다.
S. R., 버진 아일랜드
두통에는 얼음을
여러분의 1987년 9월 22일호 (한국어판은 1987년 10월 1일호) 잡지를 읽고 있었는데, “세계를 살펴봄”을 읽고 나니까 머리가 아프기 시작했읍니다. 31면으로 눈을 돌렸읍니다. 두통이 더욱 심해졌지만, 잘게 부순 얼음이 두통에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에 관해 알려 주는 “머리가 아플 때”라는 기사가 있었읍니다. 그래서 나는 아래층으로 내려가서 얼음 찜질을 하였읍니다. 「깰 때이다」지는 이런 식으로 뿐만 아니라, 여러 모로 내게 도움이 되었읍니다. 나는 아홉살입니다. 선한 일을 계속하십시오.
M. M., 미국
방언하는 일
나의 말을 몹시 잘못 인용한 기사가 실린 귀지를 받아 보았읍니다. (한국어판은 1987년 4월 15일호 “방언하는 일—하나님으로부터 오는가?”) 여러분은 내가 방언하는 일로 인해 당혹해 하는 것처럼 보이게 나의 말을 곡해하였지만,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사실상 나는 방언이 당혹스러운 일이라고 말했던 C. S. 루이스의 말을 인용하고 있었읍니다. 그리고 나서 교회 역사상 방언이 대단히 중요하다는 것을, 즉 방언이 교회에게 당혹스러운 것일 수 없는 이유를 계속 말하였읍니다. ··· 그처럼 잘못 인용함으로써 사실상 내가 방언을 반대하는 것처럼 보이게 하였지만, 분명코 내 입장은 그렇지 않습니다.
빈슨 사이넌, 미국
우리가 본의 아니게 “방언을 하는 일은 우리에게 당혹스러운 문제입니다”라고 한 C. S. 루이스의 말을 빈슨 사이넌의 말로 언급한 것에 대해 유감을 표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라는 출판물에 나오는 사이넌 박사의 말, 즉 “비록 당혹스러울지는 몰라도 글로소라리아는 교회를 확장시키고 새롭게 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역사상 전략적으로 중요한 시점에서 선택하여 주신 선물입니다”라는 말을 올바로 인용하였읍니다. 우리는 사이넌 박사의 말을, 그가 방언하는 일을 반대하고 있음을 지적하는 말로가 아니라 방언하는 일이 오늘날의 일부 진실한 숭배자들에게 난처한 상황일 수 있음을 그가 시인한다는 것을 나타내는 말로서 인용하였읍니다. 그 기사에서 사이넌 박사는 일부 사람들에게 있을 수 있는 난처한 상황을 이렇게 지적하였읍니다. “‘하나님께서는 부흥을 촉진시키는 수단으로서 주로 방언의 선물을 사용하기로 선택해 오셨는데 ··· 그것이 우리의 이성으로는 납득이 안 될지 모르며 ··· 그러나 그분은 자신이 선택한 곳에 충격을 일으키면서 오신다’ ··· 라고 밝힌 래리 크리선슨의 말에 나는 동의한다.” 우리는 이 기회로 인해 방언하는 일에 관한 사이넌 박사의 입장이 우리의 입장과 다르다는 점이 분명히 밝혀질 것으로 기대합니다.—편집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