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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깨어라!—19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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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어라!—1987
깨87 7/15 4-6면

“긴급 대피!”

「깰 때이다」 일본 통신원 기

하룻밤 사이에 만명 피신

“긴급 대피! 지체 없이!” 1986년 11월 21일에 오시마 양로원의 할아버지와 할머니들은, 미하라 산이 폭발하니 국민 학교로 대피하라는 말을 들었다. 며칠 전부터 화산 활동이 있었기 때문에 그 양로원 직원들은 대피할 준비를 해놓았지만, 그날 오후에 갑자기 격심하게 화산이 폭발하자 그들이 대피하는 일은 용이하지가 않았다.

“준비해 놓았던 들것마저 생각나지 않더군요”라고 말하며 양로원 직원인 가즈코는 이렇게 설명한다. “우리는 읍 사무소에서 양로원에 신속히 보내준 두대의 버스에 노인들을 안거나 업고서 태웠읍니다. 두 버스가 금방 다 찼기 때문에, 어떤 분들은 트럭을 타고 대피소로 가야 했읍니다.”

얼마 안 있어 노인들은 항구에 도착하여 해상 안전 기관의 선박을 타고 섬을 빠져 나갔다. 그들은 일차로 섬을 떠난 사람들 가운데 포함되었다. 이어서 만여명의 섬 주민과 관광객이 섬을 떠나 대피하였다.

지진과 분화

통상 오시마라고 부르는 이즈오시마 섬에 있는 미하라 산은 일본에서 엄중 감시를 받는 네개의 활화산 가운데 포함된다. 이 화산은 가볍게 활동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화산 폭발 예측 연락 회의에서 이 산이 안전하다고 선언한 지 2주 만인 1986년 11월 15일에 산이 폭발하였다. 분화구 1번에서 분화(噴火)가 점점 심해졌다. (6면의 지도 참조.) 이 분화구의 내부 둘레에서 용암이 흘러나와, 화산 중심부의 움푹 패인 곳인 칼데라로 흘러 들어갔다. 그후 21일에 뜻하지 않은 분화로 섬 주민들은 놀랐다. 새로운 분화구가 생긴 것이다. 뒤이어 산등성이 갈라진 곳들에서 분화가 있으면서 샘들에서 100여 미터 높이로 불을 뿜었다. 산허리 곳곳이 계속 갈라지면서 불을 뿜는 새로운 샘들이 생겨났다.

분화로 인해 두려움에 질려 있던 사람들에게 지진까지 몰아 닥쳤다. 한 시간 이내에 총 80 차례의 지진이 그 섬을 뒤흔들었다. 그 분화구 바깥 둘레에서 흘러나오는 용암이 산을 따라 굽이치며 나아가면서, 오시마에서 사람이 가장 밀집된 곳인 모토마치로 향했다. 용암이 모토마치를 향해 흘러가자, 읍장인 우에무라 히데마사는 모토마치 주민들에게 대피를 명했다. 이 때만 해도 그 섬의 남부인 하부 지역은 안전한 것으로 여겨졌다.

‘원자탄 폭발 때와 같은 버섯 구름’

여호와의 증인의 이즈오시마 회중의 유일한 장로인 니시무라 지로는 이렇게 떠올린다. “우리가 차를 마시고 있었는데 대기를 진동시키는 대폭발이 있었읍니다. 바깥에 나가보니 원자탄이 폭발할 때와 똑같은 모양의 버섯 구름이 미하라 산 위에 있더군요. 예사 분화가 아님을 깨달았지요. 읍 사무소에서 확성기로 무언가 발표하는 것 같긴 했지만, 무슨 말인지 분명하게 들을 수가 없어서 읍 사무소로 전화를 했지요. 그랬더니 모토마치 지역 주민들은 아직 대피하지 않아도 된다고 하더군요. 나는 먹을 것을 준비해야 겠다고 생각해서 아내에게 밥을 지어 주먹밥을 만들라고 했읍니다. 그런데 내가 그 주먹밥 한개를 채 먹기도 전에, 대피 명령이 내려졌어요.

“90세인 나의 장모를 포함하여 우리 다섯 식구는 모토마치 항구 주차장으로 신속히 갔읍니다. 사람들은 배를 타고 섬을 빠져 나가려고 줄을 서 있었읍니다. 그 줄이 길었지만, 나의 장모가 연로하여 혼자 걸을 수 없었기 때문에 우리는 아타미행 배에 일찍 승선하여 떠나도록 허락되었읍니다.”

그 섬에 강한 애착을 갖고 있던 일부 사람들은 떠나기가 쉽지 않았다. 오시마 양로원의 침술사인 84세의 오카무라 기시이로는 오시마에서 40년간 살았다. 오카무라는 자신의 느낌을 이렇게 술회한다. “지진이 몹시 심했지만 괜찮을 것으로 생각하고, 어찌 되려는지 며칠 동안 지켜보고 싶었읍니다. 분화나 지진에는 익숙해져 있으니까요. 그런 일들이 결국 잠잠해질 것임을 알았기 때문에 그다지 크게 염려하지는 않았읍니다. 그런데 소방관들이 강제로 나를 끌어내어 떠나게 하였지요.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떠났읍니다.” 그는 아내 요시에와 두 딸 그리고 네명의 손자녀와 함께 떠났다.

섬 전 주민 대피령

시초에는 용암이 그 섬의 북부 지역으로 흘러 그 지역만 위협했다. 모토마치 지역의 일부 주민은 하부 지역으로 이동했다. 이 섬의 남부 지역 주민들은 단지 체육관이나 학교로 모이라는 통지만 받았다.

“나는 담요 두 장과 이 가방만 들고 나왔는데, 그저 하룻밤만 지낼 것으로 생각했지요”라고 노마시 체육관으로 오후 5시에 대피한 히라카와 가오코는 말한다. 그의 남편 린조는 새로 터진 분화구 근처에 사는 병약한 양친이 염려스러웠다. 그래서 그들은 부모를 모셔 오려고 차를 타고 나섰다. 린조는 이렇게 말한다. “지진이 대단히 심하더군요. 꼭 배를 탄 것 같았읍니다. 양친을 차에 태우자 마자 그 집에서 불과 몇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 폭발이 있었읍니다.” 그들이 가까스로 노마시 체육관에 당도하긴 했지만, 뒤이어 하부로 떠나라는 말을 들었다.

밤 10시 50분에 읍장은 섬 전 주민에게 대피령을 내렸다. 다마오키 여사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하부에 있는 제3 중학교로 대피했는데, 그러자 항구로 걸어가라고 하더군요. 하지만 하부 항구가 너무 얕아서 큰 배가 들어 올 수 없었기 때문에 결국 우리는 버스를 타고 모토마치로 갔고, 그곳에서 배를 타고 도쿄로 갔읍니다”

읍장과 공무원들이 마지막으로 대피선을 탄 11월 22일 새벽 5시 55분까지 만여명의 섬 주민과 관광객을 대피시키는 일을 끝냈다. 이즈오시마 대피 수송은 대 폭발 후 5시간 이내에 완료되었다. 이 일은 읍 관리들, 대피하라고 오시마로 배를 보내준 선박 회사 그리고 섬 주민의 기꺼운 협조에 힘입어 대체로 순조롭고 질서있게 이루어졌다. 실로 보기 드문 일로서, 사람들은 대피 명령에 즉각 순종했다. 단지 대피하기를 거부한 소수의 사람과 몇백명의 경찰관, 소방관 및 기타 사람들만이 그 섬에 남았다.

그러면 그 대피자들은 어디에 안착하였는가? 누가 그들을 돌볼 것인가? 그 섬에 살던 여호와의 증인은 어떻게 지내고 있는가?

[6면 도해와 지도]

(온전한 형태의 본문을 보기 원한다면, 출판물을 참조하십시오)

오시마 섬

미하라 산

도쿄

시모다

이나토리

사쿠라지마

이토

아타미

에비나

[도해]

오시마 섬

오카타

기타노야마

용암이 흐른 방향

분화구 2번

분화가 있은 곳들

분화구 1번

분화구의 바깥 테두리

사시키지

하부 항구

미하라 산

노마시

모토마치

공항

[4면 삽화]

“소방관들이 강제로 나를 끌어내어 떠나게 하였지요”

[5면 사진 자료 제공]

2면 사진: K. Abe, Earthquake Research Institute, Tokyo. 무단 복사를 금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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