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의 대가
강제 수용소에서 석방되었다 하더라도, 나의 아들들은 여전히 마을 경계 내로 활동이 제한된 죄수에 불과하였다. 베트남에는 우리를 위한 장래가 전혀 없었다. 그리하여, 몇달 후인 1978년 5월, 아들 중 둘과 딸 및 나는 이곳을 탈출하기로 하였다. 우리 집은 바다에서 너무 멀리 떨어져 있었으므로, 우리는 공산주의 순찰대에 붙잡혀 감옥에 보내질 것을 내내 두려워하면서 조그만 배를 타고 강을 내려갔다.
마침내, 밤에 우리는 바다를 향해 출발하였다. 강을 항행하도록 건조된 그 조그만 배에는 대다수가 여자와 아이들인 53명의 초과된 인원이 타고 있었다. 그 배는 엔진이 있었으나 키에 의해서 조종되었다. 우리는 남쪽으로 640킬로미터 이상 떨어진 말레이지아를 향하여 나아갔다. 미풍이 불어와 바다 수면에 잔물결을 일으켜 우리를 상쾌하게 해주었으며, 보름달도 그 환한 빛으로 우리의 진로를 밝혀 주었다. 우리는 성공적인 탈출을 하게 되어 너무 기쁜 나머지 노래를 불렀다.
다음 2일간, 바다는 비교적 잔잔해서 순조로운 진항을 할 수 있었다. 세째 날은 바다가 완벽할 정도로 잔잔해서 3일간 중 가장 아름다왔으며, 마치 거대한 거울 같았다. 우리는 닻을 내리고 바다에서 얼마의 개인적인 위생 처리를 하는 데 시간을 보냈다. 그러나, 그러한 일은 엄청난 수의 상어떼를 불러들였고, 우리의 배는 너무나 작아 상어들조차 손상을 입힐 수 있었기 때문에, 닻을 올리고 서둘러 떠났다.
우리는 국제 항로에서 외국 배를 만나 어쩌면 승선시켜 주거나 최소한 식품과 물을 공급받기를 바라고 있었다. 과연 그 날 아침 10시경, 우리 배의 남자들은 큰 배를 한척 발견하였다. 우리의 심장은 점점 더 빨리 뛰었으며, 우리가 도움받거나 어쩌면 구조되기를 희망하였다. 그러나, 그 배가 가까이 오자, 우리가 가졌던 최악의 두려움이 현실이 되고 말았다—그것은 타이의 해적선이었던 것이다! 우리는 그들이 우리 나라를 탈출한 무기력한 난민들을 얼마나 약탈하였으며 여자들을 무자비하게 능욕하였는지에 관해 들었던 것이다.
해적의 손아귀에서
해적들은 손에 칼을 들고 얼굴에 해괴 망측한 여러 동물들과 유사한 칠을 한 채 갑판 위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공포에 싸인 우리는 젊은 여자들을 배 정면의 간막이 선실에 몰아 넣고 아슬아슬하게 막아 버렸다. 해적들은 우리 배로 뛰어 들어와, 몰아치는 돌풍 마냥 그들이 원하는 모든 것—금 목걸이, 팔찌, 귀걸이 등을 빼앗았다. 그들은 우리의 가방을 몰수하였고 지갑을 뒤져 금과 은을 찾으려 하였다. 그들은 자기들이 원치 않는, 옷가지 및 아이들 용 우유와 분유를 포함한 모든 것을 바다 속에 던져 버렸다. 그리고 나서, 그들은 왔을 때처럼이나 갑자기, 우리를 어안이 벙벙한 채 남겨 두고는 훌쩍 떠나버렸다.
머리에 한 오라기의 머리 카락도 없는 건장한 체구의 키 큰 해적 두목은 그 목에 배까지 내려오는, 해골이 달린 목걸이를 걸고 있었다. 그는 해적질의 성적에 흡족이나 한듯 얼굴을 하늘을 향해 젖히고는 크게 껄껄 웃어댔다. 그리고는, 손을 한번 내젓고는 우리 배를 풀어 주었다.
우리는 항해를 계속하였으나, 겨우 약 1시간 만에 폭풍우가 몰아쳐 배 자체보다도 더 큰 거대한 파도를 일으키기 시작하였다. 우리는 사정없이 이리저리 내던져졌다. 이내 거의 모든 사람이 배 멀미를 하게 되었고, 배의 실내를 끈적 끈적한 구토물로 가득 채웠다. 내가 안고 있던 어린 조카딸이 숨쉬지 않는 것을 알고, 나는 날카로운 소리를 질렀다. 그러나, 입을 맞대고 하는 인공 호흡을 통하여 나는 조카를 소생시킬 수 있었다.
얼마 후, 배는 더욱 매끄럽게 나아가기 시작하였다. 내 아들이 바람과 파도가 불어가는 쪽으로 방향을 바꾸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해적선이 있는 방향으로 향하게 할 것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그 해적선이 결국 시야에 들어 왔다. 해적선은 우리를 보자 마자 닻을 올리고 우리 쪽으로 기수를 돌렸다. 공포에 질린 승객들은 내 아들에게 욕을 퍼부으며 고함을 질렀다. 그러나, 아들은 나중에 이렇게 해명하였다. “그것만이 배와 승객들을 구할 유일한 방도였읍니다.”
고맙게도, 그 해적 두목의 눈에는 이제 일말의 동정하는 빛이 보였다. 그는 우리에게 더 가까이 조정해 오라고 신호를 보내왔고, 우리 배가 그의 배에 부착되도록 밧줄을 던져 주었다. 그러나, 폭풍우가 너무나 심하여 우리 승객들은 더 이상 견딜 수가 없었다. 그 순간, 해적들 중 하나가 우리 작은 배로 건너 오더니 피할 곳을 제안했다. 그리하여, 한명씩 53명 전원이 훨씬 더 큰 해적선으로 구조를 받게 되었다.
그때는 늦은 오후였다. 나와 또 다른 한 여인은 해적들이 준 쌀과 생선으로 저녁 식사를 준비하였다. 그후, 나는 이제 훨씬 나아진 어린 조카 딸을 안고 모퉁이에 앉았다. 폭풍우는 좀 가라앉았으나, 한풍이 몰아쳐 왔고 나는 조카를 감싸준 스웨터 하나만을 입고 있었을 뿐이었다. 나는 추워서 덜덜 떨었다.
존경을 나타내기 위해 내가 “어부”라고 부르며 말을 걸었던 사내들 중 하나가 내게 친절을 베풀었다. 그는 나를 보았을 때 자기 어머니를 생각하였다고 말했다. 그의 어머니와 나는 나이가 거의 같았다. 그는 자기 어머니를 사랑하였고, 항상 어머니와 멀리 떨어져 지내는 것을 슬퍼하였다. 그리고, 그는 내가 밤을 지샐 곳이 있는지 묻고는, 대답도 기다리지 않고 내가 위의 갑판에서 자도 괜찮다고 말했다. 그는 내 조카를 자기 팔로 안아 들었고, 나는 그를 따라갔다. 그러나, 나는 아래의 나머지 동료들과 격리되는 것이 염려되었다. 나는 그 사내가 비록 내게 친절을 보인다해도 진짜 해적임을 잊지 않았던 것이다.
위에서 보니, 아래에 있는 우리 배는 해적선과 비교하여 너무나 작았다.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어떻게 우리가 하나님의 도움없이 저만한 배로 640킬로미터 이상의 대양을 횡단할 수 있단 말인가? 나는 우리가 우주의 장엄함과 영원성에 비할 때 얼마나 미소한 존재인가를 절감하였다. 나는 이렇게 기도하였다. “오, 하나님, 만일 당신께서 우리를 폭풍우에서 구원하기 위해 이 배를 후원해 주고 계시다면, 제발 다시 우리를 해적의 해악으로부터 보호해 주소서.”
그 해적은 나를 커다란 간막이 선실로 안내한 다음 나의 어린 조카를 도로 돌려 주었다. 그러나, 나는 혼자 있는 것이 두려워서, 그가 나가버리자, 아래로 내려가 7명의 다른 사람들을 더 데려와 그 선실에서 같이 잤다. 밤중에, 나는 아래서 들려 오는 우는 소리와 신음 소리를 듣고 잠을 깼다. 두려움에 사로 잡힌 나는 함께 있던 사람들을 깨워, 겨우 새벽 2시밖에 안 되었음에도, 아래에서 벌어진 사태를 알아보기로 하였다.
모든 사람이 깨어 있었다. 여자들 중 얼마가 울고 있었으며, 흐느낌으로 어깨를 들먹이고 있었다. 남자들은 주방 근처인 후미에 모여 있었다. 우리는 해적 한명이 한 남자와 싸운 다음, 그 남자의 아내를 욕보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얼마의 식사를 준비하도록 허락해 줄 것을 요청하였고, 우리 모두는 먹을 것을 좀 먹었다. 아침 동이 터오자, 해적 두목은 우리를 가게 해 주어, 우리는 말레이지아에의 여정에 계속 오르게 되었다.
말레이지아에서
우리 배에 탄 승객들 중 대표자들이 해안으로 가 상륙 허가를 요청하자, 거절되고 말았다. 관리들은 우리가 상륙한다면 우리 모두를 투옥시키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그러는 동안에, 연안의 지방 주민들이 와서 신기한 듯이 우리를 살펴보았다. 그들은 그토록 작은 배가 대양을 횡단해 온 것을 보고 놀라와했다. 베트남에서 온 다른 난민들도 있었으므로, 그들은 우리가 누구인지를 알고 있었다. 점점 늘어나는 구경꾼들 앞에서, 우리는 일주일간의 때를 씻어 내기 위하여 바다로 뛰어 들어 웃어대며 즐거워하였다.
갑자기 키가 큰 금발의 한 외국인이 해변에서 큰소리로 우리를 불러, 식량과 마실 물과 의약품 등을 보내 주겠다고 약속하였다. 그는 이렇게 외쳤다. “만일 말레이지아 사람들이 상륙을 허락하지 않으면, 배를 부숴뜨리고, 해안으로 헤엄쳐 오시오.” 그 외국인은 약속을 지켜서, 오후 늦게 작은 보우트가 식량과 마실 물을 가져다 주었고, 심지어 한 간호원까지 와서 환자들을 병원에 데려갔다가 그날 밤에 돌려 보내 주었다. 얼마나 즐거웠는지! 우리가 굶어 죽지는 않으리라고 확신했던 것이다!
억지로 떠나 보내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 우리는 몰래 배의 엔진을 망그러뜨렸다. 다음 날 당국은 엔진을 조사한 후에, 그것을 고칠 수 있는 곳으로 우리를 보내 주겠다고 하였다. 그들은 우리를 강으로 끌고 가 커다란 호수까지 가더니, 그곳에 우리를 남겨 두었다. 3일이 경과되자 음식이 다 떨어졌으며, 그 외국인도 우리를 찾지 못했다. 그리하여 비록 그 배의 소유자가 배를 팔기 위하여 남기기를 원하였지만, 우리는 배를 가라앉히고 호숫가로 헤엄쳐 가기로 결정하였다.
아, 그곳 주민들은 얼마나 따뜻하게 환영하였던가! 그들은 우리의 배를 지켜보고 있었으며, 우리 모두가 안전하게 호숫가에 도착하자 빵과 비스킷과 쌀을 들고 우리에게로 달려 왔다. 우리는 우리가 도착한 호숫가 지역에서 하루를 지낸 다음, 난민 수용소로 이송되었다. 거기서야 우리는 해변에서 친절을 보여줬던 그 낯선 사람이 다름 아닌 ‘동남 아시아 난민 담당 최고 위원’임을 알게 되었다.
나의 세 자녀와 나는 모든 것이 부족한 가운데 말레이지아의 난민 수용소에서 6개월 이상을 지냈다. 그러나, 그 다음 우리는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미 합중국’으로 이주할 수 있었다. 하지만, 하나님께 한 나의 약속은 어떻게 되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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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적 한명이 한 남자와 싸운 다음 그 남자의 아내를 욕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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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이와 같은 배를 타고 탈출하였다
[자료 제공]
미 해군 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