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들은 사랑이 있는 부모인가, 아니면 무정한 부모인가?
자녀 치료에 대한 부모의 권리는 여러 나라에서 쟁점으로 대두되어 왔지만, 우리가 특별히 주의를 기울일 만한 한 가지 사례가 있다. 그것은 ‘주셉페 오네다’와 ‘콘실랴 오네다’ 부부의 사례이다. 그 부부는 ‘이탈리아’의 ‘사르디니아’ 섬의 주 도시인 ‘칼리아리’ 근처에 있는 조그마한 마을 ‘사로크’에 살고 있다.
독자도 그들의 슬픈 경험에 관해 알고 있을 것이다. 그 이야기는 전세계에 보도되었기 때문이다. 본지a와 여러 나라의 보도 기관들은 그 이야기를 광범위하게 다루어 왔다.
치사적인 병
‘오네다’ 부부의 어린 딸 ‘이사벨라’는 무서운 병인 중증성 지중해 빈혈증을 앓고 있었다. 그 병은 치료법이 알려지지 않은 일종의 유전성 혈액 결핍증이다. 그 병은 치사적인 병이다. 얼마의 경우에 수혈로 생명을 몇년 연장할 수는 있지만, 의료 당국은 치료법이 없음을 인정한다. ‘해리슨’ 저 「내과학의 원칙들」(Principles of Internal Medicine, 1980년판)에서는 이렇게 진술한다. “중증성 [베타] 지중해 빈혈증 환자는 수명이 짧다. 그 병의 가장 심한 증세를 보이는 환자는 성인이 될 때까지 사는 일이 거의 없다.” ‘이사벨라’의 경우처럼 증세가 심한 경우에는 흔히 생후 2, 3년 만에 죽게 된다. 자신의 자녀가 만일 ‘이사벨라’와 같은 병을 앓는다면, 독자는 어떻게 하겠는가?
‘주셉페’와 ‘콘실랴’는 ‘이사벨라’의 죽음이 불가피하다는 것을 알았지만, 그 아이를 ‘칼리아리’에 있는 병원에 정기적으로 데리고 다녔다. 거기서 그 아이는 주기적으로 수혈을 받았다. 그것이 증세를 일시적으로 다소 경감시켜 줄 수는 있었지만, 문제도 제기하였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왜냐하면 수혈은 철분 과다 현상을 초래하기 때문이다. ‘윈트로우브’ 저 「임상 혈액학」(Clinical Hematology, 1981년판)에 의하면, 정기적으로 수혈을 받는 대부분의 ‘중증성 지중해 빈혈증 환자들은 철분 과다 현상으로 인한 합병증으로 죽는다’고 한다. 이 의학 서적은 이렇게 시인한다. “설명된 치료 방법 다수는 광범위하게 사용하기에 비실용적이다. 요즈음, 한명의 환자에게 [가장 효과적인 치료 방법을 쓰는 데] 일 년에 미화로 약 5,000‘달러’(한화로 약 400만원)의 비용이 든다.”
의사들 중에는 지중해 빈혈증을 앓는 어린 아이들이 정상 수명을 가질 가능성에 대해 낙관적으로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것은 놀랄 만한 일이 아니다. 왜냐하면 절망을 시인하고 싶어하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특히 환자가 희망으로 의지하는 의사는 더 그러하다. 그러나 우리 모두가 알다시피 어떤 병들은 불치의 병이다. 지중해 빈혈증도 틀림없이 그 부류에 속할 것이다. 그러므로, 최선의 치료법에 대해 그리고 여러 가지 치료법의 결과에 대해서까지도 견해가 구구할 것이다. 그러나 참다운 치료법을 가진 사람은 아무도 없다.
또한, 어린 ‘이사벨라’같이 심한 병을 앓는 아이의 경우에는 수혈 치료를 받는다 하더라도 여러 해를 살게 될 것이라고 의학이 보장하지도 못한다. 중증성 지중해 빈혈증의 통계 수치는 엄연한 현실을 밝혀 준다. 사실, 통계를 부인할 수는 없다. 「미네르바 메디카」(72권, 1981년, 662-70면)는 ISTAT(‘이탈리아’ 중앙 통계 연구소)에서 수집한 수치를 밝혔는데, 그 수치에 의하면 1976년에 그 병으로 죽은 147명의 어린 아이들 중에서 23.8‘퍼센트’가 만 네살이 되기 전이었다고 한다.
인자한 부모를 “살인자”라고 부르는 이유는 무엇인가?
앞 기사에서 살펴본 것처럼, ‘이탈리아’의 한 부부는 ‘여호와의 증인’들과 성서를 연구함으로써 더 행복한 가정 생활을 하게 되었다. ‘주셉페 오네다’와 ‘콘실랴 오네다’도 그와 비슷한 경험을 하였는데, 그것을 더욱 의미깊게 만든 것은 그들이 배운, 하나님의 승인을 받는 사람은 “죽어도 살겠”다는 예수의 보증이었다. (요한 11:25) 그렇다. 의사들은 ‘이사벨라’에게 적절한 건강과 생명을 보증할 수 없지만 하나님의 아들은 보증하실 수 있다.
1979년 여름에 ‘오네다’ 부부가 ‘여호와의 증인’이 되기로 결정하였을 때, 그들은 ‘칼리아리’에 있는 제2소아과 병원의 의사들에게 더는 ‘이사벨라’가 수혈을 받도록 허락하지 않을 것임을 통고하였다. 그들은 성경에서 하나님께서 사도들과 모든 충성스러운 그리스도인들에게 ‘피를 멀리하라’고 명령하셨음을 알게 된 것이다. (사도 15:28, 29; 비교 창세 9:3, 4) 그러자, 그 의사들은 소년 법원이 개입해 줄 것을 요청하였다. 그 법원은 부모에게 딸이 수혈받게 해야 한다고 지시하였고, 정기적으로 수혈할 우선적 책임을 담당 의사들에게 부여하였다.
이 기간 중에, ‘오네다’ 부부가 대용 치료법을 찾느라고 다른 의사들과 상의하고 있는 동안, 그들의 딸은 강제로 끌려가 수혈을 받았다. 그래도 여전히 그 병은 점점 더 심해져서 ‘이사벨라’의 주요 기관들의 상태가 점진적으로 악화되었다. 1980년 3월에 의사들은 수혈 요법을 중지하였고 몇달 동안 ‘이사벨라’를 데려다가 수혈시키는 일을 하지 않았다. 그들이 법원에서 지시한 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인가? 이것은 지금까지도 당국이 해명하려고 들지 않는 수수께끼다.
그 다음 몇달 동안 ‘오네다’ 부부는 사랑하는 딸을 위하여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든지 하였다. 그들은 집에서 투약할 수 있는 약을 구하고, 경제 사정이 여의치 않았음에도 구해 줄 수 있는 가장 좋은 음식을 딸 아이에게 먹였다. 그들은 결코 희망을 버리지 않고 독일과 ‘프랑스’ 및 ‘스위스’에 있는 전문가들에게 편지를 쓰기까지 하였다.
6월 말에 ‘이사벨라’의 상태가 갑자기 악화했는데, 아마도 기관지에 감염되었기 때문인 것 같았다. 그것은 중증성 지중해 빈혈증을 앓는 아이들에게 치사적인 것이 될 수 있다. 다 늦은 이 때에야 경찰은 다시 와서 ‘이사벨라’를 병원으로 데려갔다. 거기에서 ‘이사벨라’는 강제로 수혈을 받는 동안 사망하였다.
‘오네다’ 부부가 두살 반된 딸이 치사적인 병을 앓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는 하였지만, 그들이 7월 2일에 얼마나 슬픔과 공허감을 느꼈겠는지 상상할 수 있는가? 그러나 그들은 슬픔에 더해 또 다시 타격을 받게 되었다. 1980년 7월 5일 다섯 시경 ‘오네다’ 부부가 친구 집에 있을 때 두명의 기총병이 그들을 체포하였다. 그들은 세 달밖에 안 된 둘째 아이 ‘에스테르’를 친구들에게 맡기는 시간만 허용받았다.
그들은 ‘칼리아리’에 있는 ‘의의 길’(얼마나 역설적인가!)이라 불리는 지방 교도소로 끌려갔다. 그곳은 ‘이탈리아’에서 가장 야비한 교도소 중 하나이다. 그들은 그 교도소의 각기 다른 부분에 있는 감방에 감금되었다.
그들이 어떻게 살인죄로 유죄 선고를 받을 수 있단 말인가?
20개월간 이 겸손한 부부는 감금되어 있었다. 마침내 재판이 열렸고, 1982년 3월 10일에 ‘칼리아리’의 순회 재판소는 충격적인 판결을 내렸다. 그 재판소는 ‘주셉페 오네다’와 ‘콘실랴 오네다’에게 고의적인 살인죄가 있다고 판결한 것이다. 형량은 얼마였는가? 많은 ‘테러’주의자들이 받는 것보다도 더 중형인 징역 14년을 언도받은 것이다!
그 판결이 전 ‘이탈리아’를 흥분시키고 많은 법률 전문가들의 비난을 받은 이유를 독자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사건에 대해 항소하였지만, 1982년 12월 13일에 ‘칼리아리’ 순회 상소 재판소는 이전 판결을 확정지었다. 그 재판소는 그저, ‘오네다’ 부부가 ‘그렇게 행한 동기는 특정한 도덕관’이기 때문에 상황을 참작할 만하다 하여 형량을 9년으로 줄였을 뿐이다.
인간의 재판정 앞에 설 남아 있는 유일한 기회는 대법원에 상소하는 것 뿐이었다. 1983년 7월 8일에 ‘주셉페 오네다’는 가석방되었다. 삼 년간의 징역으로 인해 건강이 위험할 정도로 나빠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콘실랴’는 여전히 투옥되어 있었다.
대법원
‘로마’에 있는 이 법원은 ‘이탈리아’의 최고 사법 기관이다. 그 법원은 하급 법원들이 내린 선고들이 상소되면, 그것들을 재검토하여 법을 정확하게 적용하고 해석하는 문제를 판정한다. 법이 지켜지지 않았다거나 잘못 적용되었다는 판정이 나면, 대법원은 원심을 파기하고 다른 법원으로 하여금 그 사건을 재심의하도록 지시할 권위를 가지고 있다. 그 법원은 ‘오네다’ 사건을 1983년 12월 13일에 청취하였다.
대법원이 이전에 내려진 판결을 폐기하는 일은 흔하지 않으며, 두 차례에 걸친 이전의 불리한 판결들은 상당한 비중을 차지한다. 그러므로, ‘오네다’ 부부가 공정하게도, 사실 그대로, 인자하고 자녀를 사랑하는 부모로 여겨질 희망이 과연 있었는가?
사건의 극적인 역전!
그 날 법원에서 있었던 일을 독자를 위해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다섯 명의 판사들 중 판결 기록계로 일하는 한 판사가 그 사건의 특출한 점들을 설명하는 소개 설명이 있은 다음 검사측의 논고가 시작되었다.
검사로 일하는 판사를 변호인 측에서 특히 두려워하는데, 그 이유는 그의 요청들을 기각하기가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번 경우에 있어서 그 판사는 여러 가지 유명한 사건에서 검사 역할을 맡았던 법률 전문가였다. 그는 과연 무엇이라고 말할 것인가?
놀랍게도, 그는 이렇게 질문하였다. “심리 중에 밝혀진 사실들에 의하면 그 애의 어머니나 아버지가 아이가 죽기를 바란 때가 한번이라도 있었읍니까? ‘칼리아리’ 법원은 이 질문에 대한 철저한 대답을 제시하였읍니까?” 그는 이렇게 덧붙였다. “소년 법원이 그 아이를 부모에게 맡긴 것은 그들이 인자한 부모이며 그 집 환경이 그 아이를 위해 가장 좋다고 믿었기 때문이었읍니다. 그 다음에 ‘관련된 판사, 전문가 및 사회학자들은 그 부모가 자기 아이를 보호할 만한 사람들이라고 판정할 가장 좋은 입장에 있었다’는 점을 지적하였다.
‘오네다’ 부부가 자기 아이를, 악의적으로 죽게 하였다는 주장은 어떻게 되었는가? 그 판사는 계속해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증거가 되는 행위 중에, 혹은 증거가 되는 기타의 요소들 중에 우리가 고의적인 범의(犯意)라는 말을 태연하게 사용하게 할 정도로 강력한 증거는 전혀없읍니다. ··· 그러므로 이러한 이유에서 우리는 [‘칼리아리’의] 판사들이 이러한 질문들에 대해 만족할 만한 대답을 제시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바입니다.”
그 다음에 검사 역할을 한 판사는 놀랍게도 다음과 같은 요청을 하였다. “그러므로 본인은 고의적 범의라는 문제에 대한 판결을 기각할 것을 법정에 요청하는 바입니다.”
고의적 범의를 증명할 만한 증거가 전혀 없었던 것이다! 그것은 ‘오네다’ 부부가 고의적인 살인자들이 아니었음을 의미하였다! 더우기 검사측 판사는 원심을 파기할 것을 요청하는 것이었다!
그 다음에 법정은 변론을 청취하였는데, 변호인 측은 전국적으로 유명한 변호사들이었다. 변호인 측은 이전 법정 소송 절차들이 일관성이 없고 도달한 판결들이 불합리함을 지적하였다.
그 다음에 법정은 잠시 휴정되었다. 마침내 재판장이 법정의 결정을 낭독하였다. 원심이 파기되었으며 그 사건은 ‘로마’에 있는 순회 상소 법원에 넘겨져 재청취되게 되었다.
그러한 판결을 내린 이유를 설명하는 가운데 대법원은 무엇보다도 소아과 병원과 기타의 공공 봉사 기관들의 심각한 잘못을 폭로하였다. ‘의문의 여지없이 ··· 공공 봉사 기관들이 심각한 실수를 범하였음이 밝혀졌다. 최초의 조치를 취한 후에 ··· 그들은, 피고 측이 관념상의 신앙 문제를 명확하고 지속적으로 해결할 어떤 마련을 해 달라고 명백히 요청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관심을 나타내지 않았다.’ 이것은 대법원의 판결문 30면에 나오는 내용이다.
마침내 다시 결합하다!
현재 ‘콘실랴 오네다’는 석방되어 있다. 예비 구금 기간이 만료되었기 때문이다. 삼년 반 동안 고난을 겪은 후에 ‘오네다’ 가족은 마침내 다시 결합한 것이다. ‘주셉페’와 ‘콘실랴’는 이제 함께 생활하면서 어린 딸 ‘에스테르’에게 사랑을 쏟는 기쁨을 맛보고 있다. 그들의 경험담을 직접 들어 보도록 하자.
주셉페: “우리는 1976년에 결혼하였고 일년 후에 ‘이사벨라’가 태어났읍니다. 고대하던 아이가 태어나기는 하였지만, 곧 무언가가 잘못되었음을 깨닫게 되었읍니다. 그 아이는 매우 창백하고 병약했읍니다. 그 아이가 여섯 달 되었을 때, 의사들은 그 아이가 죽음을 초래할 무시무시한 병을 앓고 있다는 진단을 내렸읍니다. 우리가 그 섬뜩한 진단을 듣고 얼마나 슬퍼했는지 짐작하실 수 있을 겁니다.”
콘실랴: “자연히, 우리는 아기에 대해 더욱 애착을 갖게 되었읍니다. 부모라면 누구나, 치사적인 병으로 인해 고통스러워하는 무기력한 아기에 대해 그런 반응을 보이겠지요. 우리는 즉시 ‘이사벨라’가 소아과 병원에서 치료를 받게 하였읍니다. 거기에서는 수혈을 실시했읍니다. 그러나 그 아이의 상태는 계속 악화되었읍니다. 수혈 치료를 일년간 받은 후에 그 아이의 배가 엄청나게 부어 올랐던 일이 기억납니다. 간과 비장이 확장된 것입니다. 수혈을 받을 때 그 아이는 너무나 고통스러워 하였읍니다! 한번은 의사들이 혈관을 찾는 데 1시간이나 걸렸읍니다. 그 동안 내내 그 어린 것은 아파서 울어대고 있었읍니다.”
주셉페: “슬픔으로 가득찬 그 기간 중에 우리는 성서 연구에서 진정한 위로를 얻었읍니다. 우리에게 특별히 깊은 감명을 준 것은 하나님께서 곧 고통당하는 사람들의 눈에서 고통으로 인한 눈물을 씻어 주실 것이며 죽음이 다시는 없을 것이라는 계시록 21:4의 약속이었읍니다.”
콘실랴: “우리에게 있어서 이것은, ‘이사벨라’가 죽는다 할지라도 부활을 통하여 그 아이의 건강한 모습을 볼 수 있게 될 것을 의미하였읍니다. 불행히도 죽음이 불가피해 보였거든요. 그 다음에, 성서에서 ‘피를 멀리하라’[사도 15:20; 21:25]는 하나님의 명령을 배웠을 때, 우리는 ···”
주셉페: “ ··· 성서 원칙을 고수하기로 결정하였지요. 그 길이야말로, 하나님께서 ‘이사벨라’를 죽은 자로부터 부활시키실 때 그 아이가 건강한 모습으로 되돌아오는 것을 볼 희망을 가질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읍니다. 우리는 수혈이 그 병을 막지 못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으며, ‘사르디니아’에 있는 많은 어린 아이들이 수혈을 받는 데도 불구하고 그 동일한 병으로 어린 나이에 죽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읍니다. 또, 우리가 들은 바로는, 많은 부모들이 여러 달 수혈을 해도 아이의 상태가 호전되지 않자, 아이를 집에서 덜 고통스럽고 덜 무서운 수단으로 돌보아 주기로 하였다는 것입니다.”
콘실랴: “‘이사벨라’를 건강한 모습으로 다시 보게 될 유일한 전망, 즉 하나님의 약속에 기초한 전망을 우리가 어떻게 물리칠 수 있겠읍니까? 그러한 치료의 결과에 관하여 읽고 나서 우리는 수혈이 좋은 것이 아님을 깨달았읍니다. 우리는 수혈이 흔히 중요 기관들에 치명적인 해를 끼친다는 것을 알게 되었읍니다.”
주셉페: “우리는 우리의 결정을 의사들에게 알렸고, 그렇게 해서 이 유명해진 이야기가 시작된 것입니다.”
콘실랴: “‘이사벨라’는 아주 예민하고 정이 많고 영리하였읍니다.”
주셉페: “그 아이는 겨우 두살이 넘었지만, 이미 「나의 성서 이야기 책」에 나오는 많은 내용을 알고 있었읍니다. 그 아이는 하나님의 이름 여호와를 알고 있었읍니다. 그 아이는 성서 인물들에 관한 이야기에 나오는 그림들을 알아보고는 우리에게 이야기해 줄 정도였읍니다.”
콘실랴: “엄마로서 자기 아이에게 계속 살아가게 할 만큼 건강한 신체를 물려 주지 못했다는 것을 아는 것은 끔찍한 일입니다. 우리 딸 ‘에스테르’는 ‘이사벨라’ 생각이 많이 나게 합니다. 이제 나는 이 건강한 아이에게, ‘이사벨라’에게 계속 쏟고 싶었던 사랑을 주고자 합니다. 다시 가족과 함께 있게 되고 우리에게 그토록 다정히 대해 준 그리스도인 형제들과 다시 함께 있게 되어 정말 기쁩니다. 그러나 나는 교도소에서 보낸 삼년 반을 결코 잊지 못할 것입니다. 그 동안에는 같은 감방에 있던 사람이 절망감으로 인해 자살을 기도한 일도 있었읍니다. 내가 그 여자를 구해 줄 수는 있었지만, 그것은 끔찍한 경험이었읍니다. 그러나 그 일은 내가 여호와 하나님을 더욱 의지하는 데 도움이 되었읍니다.”
주셉페: “나와 같은 감방에 있던 사람들은 나의 그리스도인 성실성을 파괴하기 위해, 폭력, 동성애 행위 및 기타의 부패한 행위 등 갖은 방법을 다 썼읍니다. 내가 가장 두려워한 것은 내가 성실을 지키지 못하여 하나님께서 주시는 행복한 새로운 사물의 제도에서 살게 될 전망을 상실하게 되지나 않을까 하는 것이었읍니다. 때때로, 상소 재판소가 원심을 확정지었을 때와 같은 때에는 절망하였읍니다. 때때로 나는 아예 태어나지 않았었으면 좋았겠다고 생각하였읍니다. 그렇지만, 나는 간절한 기도를 통해 여호와로부터 위로를 받았읍니다. 내가 또 감사한 것은 그분이 성서에다 「욥기」를 포함시키신 것이었읍니다. 왜냐하면 ‘욥’의 경험과 나의 경험에는 유사한 점들이 있다고 느꼈기 때문입니다. 물론, 하나님께서는 ‘욥’에게 응답하셔서 그에게 시험을 견딜 힘을 주시고 ‘피할 길’을 찾게 해주셨읍니다.—고린도 전 10:13.
“악몽같은 교도소 생활 중에서 가장 슬픈 순간에도 나는 끊임없이 여호와께 문의하였읍니다. [요한 1서 1:5] 또한 나를 크게 북돋워 준 것은 여러 나라에서 수없이 많은 편지를 보내 준 동료 그리스도인들이었읍니다. 그들의 사랑에 넘친 관심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버리시지 않는다는 것을 확증해 주었읍니다. 로마서 1:12 및 마가 복음 13:13과 같은 성귀들도 내가 끝까지 버티도록 도와주었읍니다. 내가 교도소에서 나올 때에는, 사도 ‘바울’의 말처럼 ‘거꾸러 뜨림을 당’하기는 하였지만, ‘망하지는 아니’하였읍니다.”—고린도 후 4:9.
콘실랴: “법적 소송이 마침내 끝났을 때, ‘주셉페’와 내가 완전히 무죄 석방될 것인지의 여부는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는 도움을 베풀어 준 분들과, 우리가 우리 딸을 살해했다는 누명을 씻어 주기 위해 여전히 노력하고 있는 분들에게 감사하는 바입니다. 그것은 부모에게 있어서 가장 끔찍한 죄명입니다.”
주셉페: “일어난 일에 대해 누구도 미워하지 않는 가운데 견뎌낼 수 있었던 것이 기쁩니다. 하나님과 이웃에 대한 사랑은 확실히 우리가 받고 있는 많은 축복들을 헤아려보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가족이 있고 영적 형제들이 있고 믿음과 희망이 있읍니다.”
아마 독자는 ‘사로크’에 사는 이 겸손한 부모가 누명을 썼다는 데 동의할 것이며, 그들이 당한 고통에 대해 동정심을 느낄 것이다. 그러나 자녀들의 건강을 돌보는 데 부모가 관련된 이 문제의 몇 가지 부면에 대해서는 궁금한 점이 있을 것이다. 그렇다. 그것은 우리 자신이나 친척 및 벗들 누구에게나 직접 영향을 줄 수 있는 쟁점이다.
[각주]
a 「깨어라!」(영문) 1982년 10월 22일호 및 ‘이탈리아’어판 1983년 5월 22일호.
[10면 네모]
아기 ‘제인 도우’—부모는 어떻게 할 것인가?
사랑이 있는 부모는 때때로 괴로운 결정에 직면하게 된다. 예를 들어, 가령 독자가 아기 ‘제인 도우’의 부모라면, 어떻게 하겠는가? 「뉴우요오크 타임즈」지는 다음과 같이 보도하였다. (1983년 11월 1일자)
“삼 주일 전에 ‘롱 아일랜드’의 한 부부는 딸을 낳았는데, 그 아기는 건강하지 못했다. 아기 ‘제인 도우’의 척추는 이분 척추였다. 그 아기는 두개골이 비정상적으로 작았으며, 뇌액이 과도하게 많은 수두증과 기타의 기형 현상들을 앓고 있었다. 수술을 받는다 하더라도, 심한 발육 부진 상태가 지속될 것이며, 몸져 누워, 그 아기의 경우에는 약 20년간을 살게 될 것이다. 의사, 사회 사업가 및 교직자들과 상의한 후에, 아기 ‘제인’의 부모는 고통스러운 선택을 하였다. 즉 수술은 포기하고, 자연의 순리에 내맡기기로 한 것이다.”
일부 제 삼자들은 그 결정을 못마땅해 하여, 그 문제를 법정으로 가져갔다. 그러나 그 사건이 미국 대심원에 이르렀을 때, 그 법원은 그 사건의 청취를 거부하였다. 아기 ‘제인 도우’의 경우는 사랑이 있는 부모일지라도 직면하게 될 수 있는 괴로운 문제를 예시해 준다.
[8면 삽화]
출감하여 딸 ‘에스테르’와 재회하는 ‘콘실랴 오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