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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82 5/15 14-16면

이름에는 무엇이 관련되어 있는가?

「깨어라!」 ‘짐바브웨’ 통신원 기

여러 해째 결혼 생활을 했음에도 그들에게는 자녀가 없었다. 그러다가 마침내 아들이 태어나자, 그들은 아기 이름을 “우리가 정복했다”는 뜻인 “타쿤다”라고 지었다. 그렇다, 그들은 자녀없는 상태를 “정복”한 것이다. 이곳 ‘짐바브웨’에서는 이름이 흔히 그 배후에 의미와 목적을 지닌다.

지상의 첫 사람은 ‘아담’이라 불리웠는데, 그 이름은 “땅의 인간” 또는 “인류”라는 뜻이다. 그 때 이래로 모든 사람이 이름을 지녀 왔고, 그 모든 이름에는 거의 다 뜻이 있었다. 오늘날 (특히 서구의) 이름은 상당수가 ‘히브리’어, 희랍어, ‘라틴’어 및 ‘튜튼’어에서 온 것들이다. (‘앵글로 색슨’어는 ‘튜튼’어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고대에는 이름에 뜻이 부여된 것이 매우 중요하였다. 예를 들어 성서 인물 ‘룻’을 생각해 보자. 그의 이름은 “우정”이라는 뜻인 것 같다. ‘나오미’의 며느리인 이 젊은 ‘모압’ 여인은 남편과 사별했다. ‘나오미’가 ‘유다’ 지역의 ‘베들레헴’에 있는 고향으로 돌아가기로 결정했을 때, ‘룻’은 그를 따라 가기로 결심하였다. 동족과 함께 머물러 살라는 ‘나오미’의 강권에, ‘룻’은 이렇게 대답했다. “나로 어머니를 떠나며 어머니를 따르지 말고 돌아가라 강권하지 마옵소서.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이다.]” (룻 1:16) ‘룻’은 자기 이름의 뜻에 얼마나 합당히 살았는가!

어린 자녀가 출생하면 부모나 어떤 가까운 친척이 이름을 지어주지만, 수년후엔 이 이름이 종종 바뀌거나 그 사람의 어떤 개성을 더욱 생생히 묘사하는 부가적인 이름이 주어지는 일이 있었다. 예를 들어, ‘나오미’는 자기에게 닥친 재난에 비추어 보건대 자신의 이름이 더는 적절치 않다고 생각하여, “나를 ‘나오미’[나의 희락]라 칭하지 말고 ‘마라’[괴로움]라 칭하라”고 말했다.—룻 1:20.

때때로 하나님께서 친히 특정한 목적으로 사람들의 이름을 바꾸셨다. 일례로, ‘아브람’(“높임의 아비”라는 뜻)이 99세였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의 이름을 “많은 무리의 아비”라는 뜻인 ‘아브라함’으로 바꾸시면서, 그의 후손이 많아질 것이라는 약속을 재보증하셨다.—창세 17:1-6.

별칭의 사용

예상할 수 있는 바와 같이, 인구가 증가하자 같은 이름을 가진 사람들을 식별하는 문제가 커졌다. 이리하여 별칭(Surname)의 사용이 발전되었다. 별칭은 또한 별명(nickname)으로도 알려졌다. (하지만 모든 별명이 별칭은 아니다.)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에 따르면, 별칭은 다음의 다섯 가지의 종류로 분류될 수 있다. (1) 사람의 외모를 묘사하는 것; (2) 생애에 있은 사건이나 공적을 표시하는 것; (3) 흔히 아버지 등 다른 사람과 관련지어 그 사람을 식별하는 것; (4) 그가 사는 곳을 알려 주는 것; (5) 그의 직업을 보여 주는 것.

이런 이름은 실용적이었는가? 많은 사람이 “존”(영미 사회에서 흔한 이름)이라는 이름을 가진 고장에서의 상황을 고려해 보자. 그들은 어떻게 서로 구분될 수 있었는가? 어떤 “존”은 키가 매우 큰 반면, 다른 “존”은 매우 작았을지 모른다. 그들을 “빅 존”(큰 ‘존’), “리틀 존”(작은 ‘존’)으로 구별짓는 것보다 더 나은 방도가 있었을까? 또 다른 “존”은 목수였을지 모른다. 그는 무엇이라고 불렀을 것인가? 아마도 “존 더 카펜터”(목수 ‘존’)였을 것이다.

성(姓)

이런 별칭 중 많은 것이 굳어져서, 성이 되었다. 실제로 성은 중국인들이 처음 사용한 것으로 믿어지고 있다. ‘로마’인들도 일종의 성을 사용했지만, ‘로마’ 제국이 쇠망하자 그것도 사라졌고, 이름만 쓰는 것이 다시 관례화되었다.

기원 1200년경이 되어서야 비로서 성이 다시 보편화되었다. 인구의 계속적 증가 및 분명한 기록의 필요성이 그 이유였다. 점차적으로 별칭이 성이 되었다. 예를 들어, ‘리틀 존’(Little John)은 ‘존 리틀’(John Little)이 되었고, ‘로버트’의 아들 ‘헨리’(Henry, Son of Robert)는 ‘헨리 로벗슨’(Henry Robertson)이 되었으며, 숲속의 ‘존’(John at the Wood)은 ‘존 애트웃’(John At-wood)이 된 따위다.

그러나 이런 성은 처음엔 세습적이 아니었다. 예컨대, ‘헨리 로벗슨’의 아들 ‘차알스’가 자동적으 ‘차알스 로벗슨’이 되지는 않았다. 오히려 위에 언급된 다섯 가지 구분 중 어느 한 가지로 식별되는 일이 더 흔했다. 목제 조각이 능숙하다면, 그는 ‘차알스 카버’(조각사 ‘차알스’)로 알려졌을지 모른다.

처음에는 단지 귀족 사회에서만 일종의 가문 자랑으로 성을 사용했다. 그러나 점차적으로 평민들도 그 관습을 받아들임에 따라, 그것은 더욱더 대중화되었다. 중세 후기까지는 이 관습이 많은 나라들, 특히 서방 세계에서 널리 퍼졌으며, 오늘날에는 거의 모든 나라에서 자유스럽게 사용되고 있다.

오늘날의 이름

이곳 ‘짐바브웨’에서, 관습적 성은 ‘유럽’계 사람들이 사용하고 있지만, 많은 토착민들은 다른 방법들을 사용한다. 예를 들어, 이 나라의 많은 지역에서, 만일 아버지의 이름이 ‘제임즈 무풍가’이면, 그의 아들 ‘데이빗’은 ‘데이빗 무풍가’가 아니라 ‘데이빗 제임즈’로 알려질 것이다. 어떤 경우, 결혼하지 않은 여자들은 결혼할 때까지는 아버지의 이름으로 불린다. 그 후에는 남편의 이름으로 알려지게 된다. 당신은 이런 일이 기록 유지 관리에 초래하는 문제들을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나라의 또 다른 흥미있는 관습은 고대 ‘히브리’인들의 그것과 비슷하다. 즉 이름을 사건, 상황, 느낌 따위에 맞추어 사용하는 것이다. 1978년 ‘여호와의 증인’의 한 “승리의 믿음” 대회 도중 어느 전 시간 봉사자의 아내가 아들 딸 쌍동이를 출산했다. 주저함 없이, 그 행복한 부모는 아들을 “빅터”(승리), 딸을 “페이드”(믿음)라고 이름지었다.

명성과 직위

당신의 이름이 언급될 때, 듣는 이들의 머리에는 어떤 인상이 떠오를 것인가? 아마, 그것은 사실상 인격체로서의 당신이 어떤 사람이냐에 달려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은가? 이것은 “이름”이라는 단어가 그 사람의 명성으로 달리 사용되고 있음에 우리의 주의를 이끈다. “많은 재물보다 [좋은] 명예[이름, 신세]를 택할 것”이라고 잠언 22:1은 말한다. 명백히 이것은 사람의 입장이나 명성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공동 사회 내에서 “좋은 이름”을 지니고 있다는 것은, 그가 곧고 정직하며 좋은 도덕 표준을 갖춘 사람이라는 뜻이다. 우리가 출생할 때 받은 이름이야 선택할 수 없겠지만, 그 이름이 다른 사람들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질 것인지는 확실히 우리에게 달려 있다.

이름은 또한 어떤 사람의 직위나 권한과 관련이 있을 수 있다. 정부 대표자들이 정부의 “이름으로” 말한다고 언급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이것은 정부의 “권한으로”라는 뜻이다. 비슷한 경우로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하기 위하여 그분의 이름을 사용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을 때도, 그것은 마치 하나님께 요망 사항을 중계해 주는 일종의 전화 교환원인 양 “예수”라는 이름을 그저 사용해야 한다는 뜻이 아니었다. (요한 14:13, 14) 오히려 우리는 하나님의 대표자이시며 대제사장이신 그분의 직위, 그분의 권한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그분의 이름으로 기도할 때, 우리는 기도가 하나님께 가납되도록 그분의 권한이 우리를 위해 행사되어 달라고 요청하고 있는 것이다.

모든 이름 가운데 가장 위대한 이름

시편 필자는 “여호와라 이름하신 주만 온 세계의 지존자로 알게 하소서”라고 기록했다. (시 83:18) 그렇다, 여호와는 우주의 최고 통치자의 이름이다. 그 이름은 독점적이며, 당연히 어떤 다른 자에게도 속하지 않는다. ‘히브리’어 어근에 따르면, 그 이름은 “그는 되게 하시다”를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그것은 그분이 약속하신 것을 틀림없이 성취시키시며 어떤 상황이 발생한다 하더라도 완전히 조절하실 수 있다는 사실에 주의를 이끌고 있다.

아마 당신은 자신의 이름을 사랑하며 귀히 여길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이름에 관해서는 어떻게 느끼고 있는가? “하나님이 불의치 아니하사 너희 행위와 그의 이름을 위하여 나타낸 사랑 ·⁠·⁠· 을 잊어버리지 아니하시느니라.” (히브리 6:10) 당신은 하나님의 이름을 사랑하는가? 그것은 단지 그분이 이름을 갖고 계심을 알 정도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는 또한 그 이름에 의해 대표된 인격체 즉 그분의 목적, 활동 및 특성을 알 필요가 있다. 그리고 그 지식은 우리 생활의 모든 부면에 반영되어야 한다. 당신은 그런 의미로서의 하나님의 이름을 알기 원하는가? ‘여호와의 증인’들은 기꺼이 당신에게 도움을 베풀고자 한다.

[16면 삽화]

당신은 우주에서 가장 위대한 이름이 무엇인지 아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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