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은 어디로 가고 있는가?
연사는 ‘로스앤젤레스’의 고위 경찰 간부였다. “과거에는 누군가를 죽였을 때 그만한 이유가 있었읍니다.” 하고 말하면서 그는 이렇게 덧붙인다. “오늘날에는 아무런 이유없는 ‘드릴’을 맛보기 위한 살인이 더 큰 비중을 차지합니다.”
그 나라 저편인 ‘뉴우요오크’ 시경 국장도 비슷한 점을 지적했다. “오늘 0.357구경 연발 권총으로 다른 아이나 노(老)부인에게서 42‘센트’(약 300원)를 빼앗고는, 그 아이의 표정이나 노부인의 눈물이 꼴볼견이라 하여 죽여버린 아이가 있는데, 그 아이는 체포될 때에도 싱글벙글 웃고 있드라니까요 ··· 아무도 이해할 수 없는 일입니다. 두려운 일이죠.”
무분별한 살인, 전쟁, 인질 납치, 폭력, 이 모든 일들은 오늘날 세상에서 흔히 있는 일이 되었으며, 두려워 떠는 시민들과 희생자들로 ‘이 세상은 어디로 가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제기하게 한다.
그 ‘로스앤젤레스’ 경찰 간부는 한가지 이론을 말하였다. “사회가 존재하기 위하여는 어떤 수준 정도의 도덕성을 유지해야 한다는 것을 역사는 보여줍니다.” 그리고 그는 청중에게 이렇게 지적하였다. “그런데 우리는 이미 그 수준 아래로 빠져 들어가는 도중에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감각이 무디어지고 있다
그 경찰 간부가 실정을 과장한 것이라고 주장할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흔히들 실제로는 사태가 지난날보다 그렇게 더 악화된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그들의 말이 옳은가? 아니면 단순히 사람들이 충격적인 신문 표제를 쉴새없이 접하다 보니까 둔감해져 버린 것인가?
‘뉴우요오크’ 시의 학교 교사들에게 일어나고 있는 일을 고려해 보자. “‘뉴우요오크’ 시의 공립 학교 교사들에 대한 범죄 행위가 너무나 흔한 일이 돼 버렸기 때문에 많은 교사들에게 그런 일이 있다는 사실이 더는 충격을 주지 않고 있다”고 ‘뉴우요오크’ 「타임즈」지는 최근에 주장하였다. 여러 차례 떠밀침, 위협, 악담 및 강탈 등을 당한 적이 있는 한 교사는 이렇게 말한 것으로 인용되었다. “자신의 감각을 무디게 해야 하고 아예 무시하는 견해를 가지지 않으면 안됩니다.”
세상 상태가 악화됨에 따라,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스스로 ‘감각이 무디어’지고 전망을 잃어가고 있는 것인가?
결국 우리 대부분은 신문지상에서 전쟁, 잔학한 행위, 및 타락한 사회 상태에 관해 읽으면서 성장해 왔다. 우리는 사실상 다른 어떤 것을 전혀 알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일부 나이든 사람들은 아직도 전혀 달랐던 시대를 기억하고 있다.
“모든 것이 끝나고 말았읍니다”
전 영국 수상인 ‘해롤드 맥밀란’은 최근 강연에서 자기 어린 시절의 세상을 회상하였다. ‘빅토리아’ 여왕 시대에 사람들은 “순조로운 진보”를 기대했었다고 그는 말하였다. “모든 일이 점점 호전될 전망이었읍니다.” 하지만 그렇게 되기는커녕 “갑자기 예기치 않게 1914년의 하루 아침에 모든 것이 끝나고 말았읍니다.”
일반 시민들도 비슷한 견해를 표명하였다. “아무도 제1차 세계 대전이 일어나리라고는 생각지 않았죠” 하고 1899년에 태어난 미국인 ‘죠오지 한난’은 지적한다. “그것은 엄청난 충격이었어요. 사람들은 세계가 전쟁을 하기에는 너무 개화되었다고 말해 왔었거든요. 하지만 난데없이, 흡사 청천 벽력같이 세계 대전이 터지고 말았어요.”
흥미롭게도 1914년에 인기를 끈 서적은 ‘노만 앵겔’의 「위대한 환상」이었는데, 그 책의 의도는 전쟁이란 그것이 가져올 국제적 재정에 미칠 손상을 고려할 때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일임을 증명하려는 것이었다.
‘유워트 치티’는 전쟁이 발발했을 당시 16세였으며 본국인 영국에 있었다. “1914년 전의 세상은 전혀 달랐읍니다.” 하고 그는 회고한다. “오늘날에는 찾아 볼 수 없는 보편적인 안정감이 있었읍니다. 사람들은 그것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였읍니다.” 오늘날에는 얼마나 되는 사람들이 안전한 것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 들이고 있는가?
“전쟁이 시작됐을 때 나는 ‘오스트리아’ ‘비엔나’에 있었읍니다.”라고 현재 90세인 ‘맥스웰 프렌드’는 말한다. “그 전쟁으로 인해 사람들이 달라졌읍니다. 사람들은 극히 애국주의적이고 국가주의적이 되었읍니다. 많은 사람들의 마음이 무정해졌읍니다. 나는 소련군에 쫓기어 동쪽에서 ‘비엔나’로 밀려 들어 오던 피난민의 행렬을 기억합니다. 그들은 모든 것을, 심지어 눈물마저도 잃어 버렸읍니다. 더 이상 나올 눈물이 없을 정도로 이미 울어 버렸던 것입니다.”
전쟁과 종교
인류 역사상 유례없는 전쟁인 제1차 세계 대전이 살아 남은 사람들에게 남긴 상처를 상상해 보라. 「워얼드 북 백과사전」이 이렇게 설명한 바와 같다. “제1차 세계 대전을 통해서, 인류는 역사상 처음으로 총력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전쟁 당사국의 전체 인구가 전쟁 수행 활동을 거들었다. 수백만명의 남녀와 어린이들이 살해되었다.”
“영국의 국력은 소진될 대로 소진되었읍니다.” 하고 당시 ‘런던’에 있었던 ‘유워트 치티’는 말한다. ‘오스트리아’에서는 “나라 전체가 피와 눈물로 뒤범벅이 되었읍니다” 하고 ‘맥스웰 프렌드’는 설명한다. 생존자들은 어떤 영향을 받았는가?
“나는 제1차 세계 대전 도중에 많은 군인들이 교직자들의 위선을 보았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전쟁이 그들을 바꿔 놓았읍니다. 그들 중 다수가 종교에 대한 존경심을 상실했읍니다. 어떤 이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아주 돌아섰읍니다” 하고 ‘유워트 치티’는 기억을 더듬으면서 이렇게 덧붙인다. “내가 어렸을 때는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인 성서에 관심이 있었읍니다. 사람들은 성서를 존중하였읍니다. 그것에 관해 누구하고나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지요. 그러던 것이 전쟁이 일어난 후에 달라지기 시작하더군요. 오늘날 사람들은 성서를 아주 잊어 버린 것 같이 보입니다.”
78세인 ‘존 부드’는 미국에서 일어난 비슷한 일을 이렇게 회고한다. “교회들이 전쟁 수행 활동에 깊이 개입하였읍니다.” 하고 그는 말한다. “모든 설교자들이 독일인의 잔학한 행위에 관해 말하곤 하였고 ‘세계가 안전한 가운데 민주주의를 구가하기 위해서’ 전쟁이 필요하다고 설교하곤 했읍니다.
“그 모든 애국적 열정은 당시 조그만 시골 교회 관리인이었던 나의 아버지를 괴롭히곤 했읍니다. 인근 교회의 한 설교자가 전쟁 설교를 거절했다하여 설교단에서 제거되었을 때 아버지가 슬퍼했던 일이 기억납니다.”
전세계에 있는 정직한 마음을 가진 모든 사람들은 비슷한 말을 하였다. 이런 전면 전쟁의 결과는? “1914-1918년의 전쟁은 자기 문명의 공적에 대한, ‘유럽’의 이지러져 가는 자신감을 깨뜨려 버렸다. 그리스도교 국가들끼리 전쟁을 벌였으므로 그것은 세계적으로 그리스도교를 약화시켰다.”—「브리태니커 백과사전」
‘그리스도’교 혹은 ‘그리스도’교국?
사실상, 제1차 세계 대전의 발발이 모든 사람들에게 충격을 준 것은 아니었다. 여러 해 동안 하나의 작은 열성스러운 ‘그리스도’인 집단은 1914년에 극적인 세계 사건이 일어나리라는 것을 예언해 오고 있었다. 그 집단은 ‘만국 성경 연구생’이라고 불리웠으며, 오늘날은 ‘여호와의 증인’으로 알려져 있다.
“‘성경 연구생’들은 1914년에 대한 그들의 견해로 인해 매우 잘 알려져 있었읍니다” 하고 ‘죠오지 한난’은 회상한다. “모든 것이 너무나 평화스러워 보이던 그 해의 처음 반년 동안 그들은 상당히 조롱을 받고 있었읍니다. ‘성경 연구생’들은 ‘그들의 연대 기둥을 뽑아 내어’ 다른 어느 연대에 심어야 할 것이라고 사람들은 말하고 있었읍니다.”
갑작스런 전쟁의 시작은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만국 성경 연구생’들의 예언을 상기시켜 주었다. 1914년 8월 30일자 ‘뉴우요오크’ 「워얼드」지는 잡지난에 ‘성경 연구생’들을 위해 한 기사를 할애하였다. 그 기사는 “‘유럽’에서의 끔찍한 전쟁의 발발은 비상한 예언을 성취시켰다.”고 기술하였다.
그리스도교국의 주요 종파들이 놀라움에 사로 잡혔을 때 왜 이 작은 그리스도인 집단은 난관이 있을 것을 기대하고 있었는가? 이들 ‘여호와의 증인’들은 성서 예언을 예리하게 조사한 연구생들이었기 때문이다. 성서 예언은 현 20세기의 상태에 관해 많은 점을 알려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