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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깨어라!—19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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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어라!—1981
깨81 3월호 6-7면

인생을 의의있게 하는 일

목표를 세움으로

“수레를 별에다 매라”(대망을 품으라)는 옛 격언의 충고가 있다. 높은 목적의 목표들은 우리 인생에 의의있는 방향을 제시해 주고, 우리가 표류하거나, 허위적거리거나, 비틀거리지 않게 해준다. 인간 피조물들은 목표지향적이다. 목표를 세우는 것은 발전하도록 도움을 주고 목적을 강화시켜 준다. 정신병학자 ‘빅터 프랭클’은 「인간의 의의 탐구」에서 심지어 ‘나찌’ 수용소에서까지 목표가 필요함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록한다. “수용소 내에서 인간의 내적 힘을 회복하고자 하는 어떤 시도는 첫째로 그에게 어떤 장래 희망을 보여 주는 데 성공하는 일에 있었다.”

그는 수용소 내에서 자살하기로 결심한 두 사람에 대해 말한다. 그들은 무엇을 위해 살 필요가 있었는가? 한 사람은 사랑하는 아이가 자기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 또 다른 한 사람은 마쳐야 할 일련의 과학 서적이 있었기 때문에, 그 두 사람은 모두 사는 길을 택했다. ‘프랭클’은 다음과 같이 썼다. “자기 인생에 의의가 있다는 것을 아는 것만큼, 심지어 가장 최악의 상황에서도 생존하도록 그렇게 효과적인 도움이 될 것으로는 세상에 아무 것도 없다고 나는 감히 말할 수 있다.”

만약 이것이 “최악의 상황”에서 참되다면, 사람들의 일상 생활에서 목표를 세우고 그것에 도달하려고 노력하는 것은 얼마나 더욱 그러하겠는가!

일을 함으로

하지만 목표 자체는 의의가 거의 없다. 오로지 그 목표에 행동이 수반될 때만 그 목표는 참된 의의를 지니게 된다. 농부가 어떤 농작물의 수확을 목표로 삼을 수 있지만,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씨를 뿌리고 농작물을 가꾸고 거두어 들이기 위해 필요한 모든 일을 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는 전도서 11:4에서 다음과 같이 묘사된 농부처럼 될 수는 없다. “풍세를 살펴보는 자는 파종하지 아니할 것이요. 구름을 바라보는 자는 거두지 아니하리라.”

달성된 일은 그 일꾼의 특성과 능력을 반영하고, 그가 어떤 사람인가를 보여 준다. 그리고 그것이 성공적일 때는 그에게 성취감을 준다. ‘한스 셀리에’ 박사는 “성취감이 없는 긴 인생은 매우 지루하다”고 말한다.

어린이들까지도 일을 함으로 유익을 얻는다. ‘매사추세츠’ 대학의 사회학자인 ‘앨리스 로시’ 교수는 부모들에게 권하기를, 집에서 자녀들에게 일을 주라고 하였다. “필요하고 유용하다고 느끼는 것은 사랑을 받고 있다고 느끼는 것만큼 중요하다. 하지만 우리의 자녀 양육 사상에는 단지 사랑과 오락의 필요성만이 강조되어 왔고 자녀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소홀히 되어 왔다.”

영적인 일들을 생각함으로

목적과 의의는 육적인 것이 아니라 영적인 것에 기초한다. ‘프랭클’은 영적인 힘 때문에 수용소의 고문을 저항할 수 있는 능력에 대해 다음과 같이 썼다. “자기의 내적인 가치를 의식하는 것는 더 높고 보다 영적인 일들에 고정되며 수용소 생활에 의해 흔들릴 수 없다.” 물질적으로 부유하고 성공적인 중역들이 중년에 생업을 바꾸는 이유는 무엇인가? 심리학자 ‘레빈슨’은 그들이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하기 시작한다고 말했다. “이것이 전부인가? 이것은 모두 내가 도중에 포기해야 할 만한 가치가 있었는가? 나는 내 인생의 여생을 이와 같이 살아가기를 원하는가?”

그것은 한 인간의 영적인 필요를 의식하는 것과 자기 생애에 행복과 의의를 가져다 주는 것을 성취하는 것이다. (마태 5:3) 사도 ‘바울’은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하나님과의] 평안[평화, 신세]이니라.” (로마 8:6) 성서를 연구하여 하나님과 그리스도 예수를 알게 되라. 왜냐 하면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기 때문이다.—요한 17:3.

올바른 태도로

예수께서는 보기를 원하는 두 맹인에게 “너희 믿음대로 되라”고 말씀하셨다. 이 일은 그들이 적극적인 태도를 취했고 믿었기 때문에 발생했다. (마태 9:29) 당신은 의심하거나 이리 저리 표류하지 않고 신념과 활력을 가지고 목표를 향해 일하는가? 소극적으로 생각하면 소극적인 결과를 얻는다. 적극적인 결과를 얻기 위해 적극적으로 생각하라. 의심은 우리가 노력하기를 두려워하지 않으면 성취할 수 있을 것을 상실하게 만드는 배반자이다. 선한 것에 대해 생각하라. (빌립보 4:8) 이것이 왜 그렇게 중요한가? 잠언 23:7에 표현되어 있는 원칙 때문이다. “그 마음의 생각이 어떠하면 그 위인도 그러[하니라.]”

다른 사람들을 섬김으로

다른 사람들을 도울 때 우리는 유용함을 느낀다. 그것은 예수의 말씀처럼 우리가 제공할 어떤 것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 준다.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사도 20:35) 유용한 인생은 의의있는 인생이 된다. 자기 자신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보게 된다. 인류를 섬기는 그 자체는 한 인간의 인생 목표가 될 수 있고, 또 인생에 의의를 부여할 수 있다.

비록 광대한 우주 가운데 미소하고 단지 시간의 흐름 가운데 잠간 동안 존재하지만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는 일은 우리로 우리의 인생을 의의있는 것으로 보도록 하는 방향으로 더욱 더 기여한다.

의를 위하여 고통을 받음으로

‘프랭클’은 다음과 같이 기록한다. “희생의 의의와 같은 어떤 의의가 발견될 때 고통은 어떤 면으로 더 이상 고통스러운 것이 되지 않는다. 인간은 자기의 고통이 어떤 의의를 갖는다는 것을 확실히 알면 고통을 당할 준비까지 한다.” 고통이 의를 위한 것보다 더 큰 어떠한 의의를 가질 수 있겠는가?

예수께서는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는 사람들은 복이 있다.”고 말씀하셨다. 사도들은 이러한 즐거움을 경험하였다. “저희[‘유대’인 ‘산헤드린’ 종교 법정]가 옳게 여겨 사도들을 불러들여 채찍질하며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는 것을 금하고 놓으니 사도들은 그 이름을 위하여 능욕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기뻐하면서 공회 앞을 떠나니라.” (마태 5:10-12, 새번역; 사도 5:40, 41) 악행 때문에 고통을 받는 것에는 아무런 유익이 없다. 그러나 당신이 선한 일을 하기 때문에 고통을 받는다면 이것은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운 일입니다.”—베드로 전 2:20, 새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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