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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독이 없는 세상이 가능한가?
  • 깨어라!—19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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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어라!—1980
깨80 12월호 18-19면

고독이 없는 세상이 가능한가?

“고독에는 해결책이 없다. 그것은 바로 정상적인 삶의 일부이다. ·⁠·⁠· 고독은 나쁘거나 부끄러운 것이 아니다. 그것은 단지 존재한다. 즉 항상 존재해 왔고 언제나 존재할 것이다.” 이와같이 한 여류 작가는 고독에서 언젠가 자유롭게 될 것인가에 대해 자신의 비관을 표현했다. 많은 사람들은 이 말에 동의한다.

오늘날과 같은 인생이 현실이므로 우리는 모든 사람이 따뜻한 가족 관계를 즐기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또한, 그가 바라는 다른 사람들과의 만족한 관계를 온전히 즐기는 일을 환경으로 인해 방해 받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상태가 항상 그와 같지 않을 것임을 믿을 수 있는 건전한 이유가 있다.

머지않은 세계 변화

“왜 우리 세대는 이렇게도 사랑에 굶주리고 있는가?” 하고 최근에 한 ‘예일’ 대학 졸업생은 질문한 다음에 필자인 ‘크리스토퍼 에드워드’는 이렇게 부언했다. “나는 그 대답이 단순히 이러하다고 믿는다. 즉 우리가 한 개인으로서의 상호 관심을 잊은 것 같다.” 이 말은 뜻깊은 말인가?

성서 예언의 연구생들은 예수께서 “사물의 제도의 결말”을 표시하는 상태들 가운데 이러한 일이 있을 것이라고 예언하신 것을 기억한다.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 (마태 24:12) 그리고 “마지막 날”을 식별케 하는 징조에 관해 사도 ‘바울’은 이렇게 기록하였다. “이것을 아시오. 마지막 날에 처신하기 어려운 위험한 때가 올 것입니다.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 애정이 없고 합의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디모데 후 3:1-3, 신세) 이러한 태도는 이 세대의 두드러진 특성이다. 이것은 세계 변동이 가까왔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 일이 어떻게 일어날 것인가?

제거될 냉담하고 무정한 사회

오늘날 세상은 성서에서 “폭력으로 가득찬” 세상이라고 묘사된 고대 세상과 상태가 매우 비슷하다. (창세 6:11, 신세) 그 세상은 무려 4,000여년 전에 존재했으며 과학적인 발견a은 “그때 세상은 물의 넘침으로 멸망하였[느니라]”는 성서의 말이 참됨을 확증해 준다.—베드로 후 3:6.

하나님의 그러한 행하심에 기초해서 성서는 미래에 대해 이렇게 지적한다. “이제 하늘과 땅은 그 동일한 말씀으로 불사르기 위하여 간수하신 바 되어 경건치 아니한 사람들의 심판과 멸망의 날까지 보존하여 두신 것이니라.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의 거하는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베드로 후 3:7, 13) 단지 경건한 ‘노아’와 그의 가족만이 땅에 살아 남은 것처럼 오직 비이기적인 사람들 즉 하나님과 관계를 갖고 있는 사람들만이 “새 땅”의 일부로 남게 될 것이다. 이들은 구원을 받아 친절과 사랑이 넘치는 세상으로 들어갈 것이다.

사랑이 넘치는 세상

하나님께서 ‘자기를 두려워하는 자들에게’ 가져 오실 “구원”으로 초대하는 묘사가 시편 85편 9-12절에 이렇게 나와 있다. “진실로 그의 구원이 그를 경외하는 자에게 가까우니 ·⁠·⁠· 긍휼과 진리가 같이 만나고 의와 화평이 서로 입맞추었으며 진리는 땅에서 솟아나고 의는 하늘에서 하감하였도다. 여호와께서 좋은 것을 주시리니 우리 땅이 그 산물을 내리로다.”

냉정한 행동이 아니라 ‘사랑의 친절’이 지적 사회에 편만할 것을 생각하면 참으로 마음이 설레이지 않는가! 사람들 사이의 의심과 의혹은 “진리”에게 그 자리를 양보하게 될 것이다. 오늘날 세상에서 그렇게도 흔한 기만과 남을 이용하는 이기심은 “의와 화평”으로 대치될 것이다. 이것을 상징적인 언어로 말하자면 그들이 “서로 입맞”춘 것이다.

그 때 살아 있는 사람들의 마음이 이러한 특성들로 채워질 때, 당신은 그 곳에 조금이라도 고독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되는가? 그와는 반대로, 인간 관계는 이전에는 꿈꾸지 못했던 행복과 만족의 수준에 이르게 될 것이다. 게다가 이러한 우정은 영원히 계속될 것이다.—요한 1서 2:17.

지금 그 예고편을 즐기라

평화에 대한 하나님의 충고에 응하여 심지어 지금도 ‘여호와의 증인’의 회중에서는 좋은 결과를 산출하고 있다. 관찰자들은 종종 자기들이 ‘증인’과는 상이한 믿음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거의 이구 동성으로 ‘증인’들 사이에서 명백히 볼 수 있는 따뜻함과 사랑에 대해 칭찬해 왔다. ‘가톨릭’ 필자인 ‘윌리엄 J. 왈렌’은 1979년 1월호 「U. S. 가톨릭」지에 다음과 같이 썼다. “이 나라에서 그리고 전세계에서 다수의 “증인”들은 ‘로마 가톨릭’교 출신이다. 이 교파가 ‘가톨릭’교인들을 끄는 어떤 매력이 있는가? ·⁠·⁠· 많은 [‘가톨릭’] 교구의 크기와 비개인성은 왕국회관의 친밀성과 우정과 대조가 된다. ‘증인’ 회중은 거대한 ‘가톨릭’ 교구가 필적할 수 없는 친근감을 갖추고 있다.”

이보다 5년 전에 「현대 ‘아메리카’의 종교 운동」이라는 책에서(1974) ‘L. R. 쿠퍼’는 이렇게 기술하였다. “‘증인’들은 그들의 회중 생활에서 진정한 신뢰와 용납의 사회를 이룬다.” 참으로 “신뢰와 용납”은 의미 깊은 관계를 이룩하는 데 중요하다.

모든 연령과 배경을 가진 수십만의 고독한 사람들이 ‘여호와의 증인’의 회중과 연합하여 진정한 우정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렇게 함으로 그들은 단순한 친구 이상의 것을 발견하였다. 그들은 이 회중들에서 참 그리스도교를 식별케 하는 표를 발견하였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그 점을 요한 복음 13장 35절에서 이렇게 묘사하셨다.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줄 알리라.”

그러나 그들은 곧 ‘증인’들이 사랑을 동료 신자들에게만 국한시키지 않는다는 것을 인식하게 된다. 그들은 그들의 이웃 역시 사랑한다. 그래서 그들은 다른 사람들이 고독에서 자유케 될 세상에 대해 성서가 알려 주는 놀라운 희망에 관해 배우도록 돕는다.

당신도 다른 사람들에게 이러한 사랑스런 관심을 나타내는 사람들과 교제하고 싶지 않은가? ‘여호와의 증인’에게 연락하거나 우리에게 편지를 보내주기 바란다. 그러한 문의를 통해 당신은 모든 것을 얻게 될 것이고 아마 당신이 잃게 되는 유일한 것은 고독일 것이다.

[각주]

a ‘왈취타워’ 성서 책자 협회 발행, 「성서는 참으로 하나님의 말씀인가?」 3장 “세계적인 홍수가 있었는가?”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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