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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가 너희에게 책임을 맡기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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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가 너희에게 책임을 맡기노라”
  • 깨어라!—19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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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80 10월호 29-32면

“내가 너희에게 책임을 맡기노라”

여호와 하나님은 사람에게 지구를 관리하고 지키며, 살아있는 모든 생물을 돌보라고 말씀하셨다. 사람은 이 책임을 얼마나 잘 돌보아 왔는가?

사람들은 머리 위의 별로 수 놓인 하늘을 경외감으로 응시한다. 캄캄한 밤에 하늘은 가득 차 보이지만, 보이는 수천개의 별은 우주를 구성하는 수 조(兆)의 별 가운데 소수에 지나지 않는다. 이 무수한 별들은 창조주가 세워 놓으신 운행 법칙의 지배를 받는 정확한 궤도에 따라 움직인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우주의 그 광대함과 복잡함은 인간 관찰자들의 정신을 현란케 한다.—창세 1:1.

하늘과 비교할 때 지구는 단지 작은 반점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지구도 우리 인간에게는 거대하며 생명으로 가득차 있다. 단 한 찻숟가락 정도의 흙에도 5,000,000,000개의 살아 있는 유기체가 함유되어 있다. 그리고 누가 “바다 방목장”에 있는 생물의 수효를 추측이나 할 수 있겠는가? “여호와여 주의 하신 일이 어찌 그리 많은지요. 주께서 지혜로 저희를 다 지으셨으니 주의 부요가 땅에 가득하니이다. 저기 크고 넓은 바다가 있고 그 속에 동물 곧 대소 생물이 무수하니이다”—시 104:24, 25.

지구에 그러한 엄청난 수효의 생물이 공존하는 것은 문제가 될 수 있다. 모든 종류가 충분한 빛, 공기, 물, 식량, 생활 공간 그리고 생존에 필요한 기타 마련들을 갖기 위해서는 균형이 유지되지 않으면 안된다. 이것을 “자연의 균형”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만일 불균형이 초래된다면 그 장치는 자체 조정을 한다. 여호와께서 그렇게 잘 마련하신 것이다. 이 땅은 그분께 속해 있다. “땅과 거기 충만한 것과 세계와 그 중에 거하는 자가, 다 여호와의 것이로다.”—시 24:1.

여호와께서는 이 지구를 사람에게 맡기셨다. “하늘은 여호와의 하늘이라도 땅은 인생에게 주셨도다.” (시 115:16) 사람들에게 부과된 책임이 첫 인간 부부에게 명백히 설명되었다. “하나님이 ·⁠·⁠·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책임을 맡기노라, 좋은 소식 성서] 하시니라.” 지구에 대한 사람의 책임은 보호하는 것이었다.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 동산에 두사 그것을 다스리며 [경작하며, 좋은 소식 성서] 지키게 하시[니라.]”—창세 1:27, 28; 2:15.

사람들이 이 관리인의 책임을 수행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모양을 닮아야 한다. 이 말은 사람이 공의, 사랑, 지혜, 능력과 같은 여호와의 일부 특성들을 가지고 창조되었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특성들은 그들이 지구와 그 식물, 동물들의 관리인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하도록 해주지만, 이러한 특성들을 적용하지 않거나 오용한다면 사람에게 “자연의 균형”을 혼란시킬 힘을 줄 수도 있는 것이다. 만일 그들의 능력이 부당하게 혹은 사랑이 없거나 지혜롭지 못하게 사용된다면, 지구 환경의 자체 조정 과정은 위태롭게 될 것이다.

동물을 다루는 데 필요한 지침

하나님의 모양과 일치하게 사람은 하나님과 같이 동물에 대한 관심을 나타내야 한다. 수많은 성귀들은 동물을 다루는 방법에 있어서 지침이 된다. 사람들은 극단으로 흐르는 경향이 있으며 동물에 대한 태도 역시 예외가 아니다. 어떤 사람들은 감정에 의해 지배되며 어떤 사람들은 잔인한 무관심에 의해 지배된다. 동물들은 사람들을 위해 매우 다양한 일을 수행하는 데 사용될 수 있다. 그들은 적합하게도 식품 즉 우유, ‘버터’, 달걀, ‘치이즈’ 그리고 심지어는 고기까지 공급하는 데 사용된다. 인간은 잔인하게도 부드러운 털이 있는 동물들에게 다리를 치는 강철 덫을 놓지만 동물들은 양모나 털 뿐아니라 가죽으로 옷을 공급해 준다.—창세 3:21.

그러나, 동물의 이러한 사용에도 생명의 신성함에 대한 존경심을 나타내야 한다. 단순히 ‘스포오츠’의 목적으로 죽이는 것은 생명에 대한 무정한 냉담을 나타내는 것이다. 심지어 사냥꾼이 식용으로 죽이는 경우에도 생명에 대한 존경을 나타내야 할 의무가 있었다. “사냥하여 잡거든 그 피를 흘리고 흙으로 덮을찌니라. 모든 생물은 그 피가 생명과 일체라.”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이러한 제한을 주신 것은 생명의 신성함 때문이었다. “너희는 어느 육체의 피든지 먹지 말라 하였나니 모든 육체의 생명은 그 피[에 있느니라.]”—레위 17:13, 14.

동물이 인간 생명을 유지시키기 위해 식물로 사용될 수 있다면, 동물을, 생명을 구하기 위한 의학 실험에 사용하는 것도 이치적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것은 제한 받지 않는 흔히 무가치하고, 반복적인 격렬한 고통을 수반하는 실험을 위한 면허장이 아니다. 많은 과학자들은 잔인한 실험들의 윤리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워싱턴’에 본부를 둔 미국 과학자 연합의 이사인 ‘제러미 J. 스톤’은 “동물의 생명과 고통은 확실히 중요하게 고려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영국의 생리학자인 ‘D. H. 스미드’ 박사도 “어떤 지식은 참으로 비싼 값으로 획득된다.”고 동의한다. 「동물 실험의 대안」이라는 그의 저서에서 ‘스미드’ 박사는 연구원들에게 고통스러운 동물 실험이 아닌 다른 많은 선택의 자유가 열려 있음을 지적한다. 지식의 대가가 다음 도표에서 보여 주는 것과 같이 잔인한 행동일 필요는 없다.

야생 동물의 멸종

인간의 책임 하에 있는 동물들이 재난을 당하고 있다. 한 종(種)의 멸종은 “멸종된 ‘도우도우’”라는 유명한 말을 낳았다. 다른 많은 동물들이 사멸되었다. 한때 철 비들기 떼가 북미 상공을 검게 뒤덮은 적이 있었다. ‘오더본’은 한때 10억 마리가 있는 것으로 집계되었다. 그들의 이동은 머리 위로 여러 날이 걸렸다. 그런데 지상에서 마지막 철 비들기가 1914년에 죽어 갔다. 한때 미국의 서부 평원은 들소로 검게 뒤덮였었다. 1900년까지 약 5,000만 마리가 불필요하게 터무니 없이 죽임을 당하였고, 천연 야생 떼가 거의 멸종에 이르게 되었다. 오늘날 많은 야생 종들이 위험에 처해 있다. 물질주의, 자아 제일주의, 밀엽, 탐욕, 오염, 서식지의 파괴, ‘니므롯’과 같은 전리품에 대한 허영—이와 같은 것들이 야생동물에 대한 파괴적인 폭행의 주요인들이다.

위험에 처해 있는 종의 목록은 수십만종에 달하고 있다. 현재 하루에 한종이 사라지고 있으며, 1980년대 말까지는 매 시간당 한종씩 사라질 것이라고 추산되고 있다. 1970년대의 단 2년 동안 ‘케냐’에서 코끼리 수는 40,000에서 20,000마리로 떨어졌으며, 얼룩말은 15,000에서 1,500마리로 감소되었고, ‘케냐’의 ‘나쿠루’ 호수에는 수백만 마리의 분홍빛 홍학이 모였었는데 이제는 “세계에서 가장 많은 장관인 이 새”의 소수만이 남아 있다. 수백만 마리가 이 호수의 산업 공해로 인해 죽었거나 떠나갔다. ‘아마존’의 열대 우림 지대도 지금 한창 개발중인데, 만일 이 상태가 계속된다면, 수십만 종의 식물과 동물이 2000년까지는 사멸될 것이다. 멸종 목록이 늘어나고 있는데 이것은 사람이 지구와 그 식물과 동물 생명을 보호하는 데 실패했기 때문이다.

책임을 전가하려는 헛된 시도

이러한 파국을 보고 어떤 사람들은 “이것은 하나님의 잘못이다!”라고 외친다. 이러한 외침 중 하나는 유명한 역사가인 ‘아놀드 J. 토인비’가 한 것이다. 그는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책임을 맡기셨을 때 “‘아담’과 ‘하와’가 동물에 대하여 하고 싶은 대로 할 면허장을 준 것이다”라고 주장한다. 그와는 반대로 하나님께서는 단지 그들에게 이 지구를 보호하고, 지키고, 돌보도록 허락하신 것이다. 그러나 이 첫 부부는 이 명령과 하나님의 다른 계명들을 불순종했다. 마치 그 이래로 그 후손들이 행해온 것과 같았다. 그들은 “자연의 균형”을 혼란시켰고, 환경을 오염시켰고, 거주하기에 적합한 행성인 이 지구를 파괴하고 있다. 성서가 “어떤 사람은 자기의 어리석은 행동으로 자기를 파멸시키고는 주를 비난한다.”고 말한 바와 같다. 이러한 어리석고 파괴적인 행동이 계속 허용되지는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여호와께서 “땅을 망하게 하는 자들을 멸망시킬 때”가 되었다고 말씀하시기 때문이다.—잠언 19:3, 좋은 소식 성서; 계시 11:18.

“의인은 그 육축의 생명을 돌아보나 악인의 긍휼은 잔인이니라.” (잠언 12:10) 악인은 제거되고 의로운 자는 남게 될 것이다. “대저 정직한 자는 땅에 거하며 ·⁠·⁠· 악인은 땅에서 끊어지[리라]” 이 지구는 영원히 남아 있을 것이며, 영원히 거주자가 있을 것이며, 하나님의 모양으로 돌아와 동물에게 공의와 사랑의 방법으로 그들의 능력을 행사하는 남녀들에 의해 영원히 낙원으로 지켜질 것이다.—잠언 2:21, 22; 전도 1:4; 이사야 45:18.

“그 때에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거하며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어린 사자와 살찐 짐승이 함께 있어 어린 아이에게 끌리며 암소와 곰이 함께 먹으며 그것들의 새끼가 함께 엎드리며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을 것이며 젖먹는 아이가 독사의 구멍에서 장난하며 젖뗀 어린 아이가 독사의 굴에 손을 넣을 것이라. 나의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해됨도 없고 상함도 없을 것이니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임이니라.”—이사야 11:6-9.

그 때에 인류는 오래 전에 여호와께서 ‘내가 너희에게 책임을 맡기노라’고 표현하신 그 임명을 완수할 것이다.

[30면 네모]

동물들에 대한 하나님의 관심

하나님은 관심을 갖고 계시다:

“참새 두 마리가 ·⁠·⁠·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지 아니하시면

그 하나라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마태 10:29.

친절한 배려를 요구하신다:

‘너는 육일 동안에 네 일을 하고 제 칠일에는 쉬라. 네

소와 나귀가 쉴 것이[니라.]’—출애굽 23:12.

“곡식 떠는 소의 입에 망을 씌우지 말찌니라.”—신명 25:4.

“너는 소와 나귀를 겨리하여 갈지 말[찌니라.]”

—신명 22:10.

“네가 만일 너를 미워하는 자의 나귀가 짐을 싣고

엎드러짐을 보거든 ·⁠·⁠· 그를 도와 짐을 부리울찌니라.”

—출애굽 23:5.

“너희 중에 누가 그 ·⁠·⁠· 소[가] 우물에 빠졌으면 안식일에라도

곧 끌어내지 않겠느냐?”—누가 14:5.

종류 보존을 위한 마련을 하신다:

“새의 보금자리[를] ·⁠·⁠· 만나거든 그 어미새와 새끼를

아울러 취하지 말[찌니라.]”—신명 22:6.

식량을 공급하신다:

“안식년의 소출은 너희의 먹을 것이니 ·⁠·⁠· 네 땅에 있는

들짐승들이 다 그 소산으로 식물을 삼을찌니라.”

—레위 25:6, 7.

“주께서 손을 펴신즉 저희가 좋은 것으로 만족하[니라]”

—시 104:28.

“공중의 새를 보라 ·⁠·⁠· 너희 천부께서 기르시[느니라.]”

—마태 6:26.

생존에 필요한 지혜를 주신다:

“땅에 ·⁠·⁠· [본능적으로] 지혜로운 것[이] 있나니 ·⁠·⁠· [개미가]

먹을 것을 여름에 예비하[느니라.]”

—잠언 30:24, 25. 신세 참조.

합당한 존중심을 나타낼 것을 요구하신다:

“너는 염소 새끼를 그 어미의 젖으로 삶지 말찌니라.”

—출애굽 23:19.

[31면 네모]

동물 학대에 대한 인간의 잔인한 기록

‘스포오츠’라는 명목으로:

곰 놀리기. ‘영국’에서 11세기부터 19세기에 행해 졌다. 사슬에 묶인,

이가 갈려서 짧아진 곰을 네 마리의 맹견이 공격한다.

황소 놀리기. 사슬에 묶인 황소가, 소의 코를 공격하고

물고 늘어지도록 훈련받은 개에게 공격받는다. 개는 황소가

쓰러질 때까지 잇따라 공격한다.

투우. 한 기수가 황소의 목과 어깨 근육에 창을 던져 찌른다.

다른 기수들이 장식 달린 창들을 그 어깨에 던져 찌른다.

그후, 투우사가 견갑골 사이에 칼을 꽂아 황소를 죽이려고 한다.

그래도 황소가 살아 있다면 척수가 절단 되어 죽게 된다.

여우 사냥. 사냥개와 기수들이 추격해서 공포에 질린 여우를 죽인다.

개들은 여우 새끼들을 죽임으로 이런 사냥을 위해 훈련받는다.

투계. 길이 3‘인치’되는 쇠 발톱을 단 수탉들이 싸우며 대개

이 “스포오츠”에서 죽는다.

투견. 강아지들에게 새끼 고양이들을 죽이도록 준다.

다음에는 더 큰 고양이들과 어린 개들을 주어 피를 보는 일을

즐기게 한다. 이런 개들이 불법적인 투견에서 사용되는

투견장 ‘볼테리어’가 된다. 피로 뒤덮이고, 눈은 찢기고,

양 귀는 물려 떨어지고, 부러지거나 찢겨진 다리를 끌고

그들을 사랑한다고 주장하는 주인을 만족시킬 때까지 계속

싸운다. 매년 수천 마리의 개들이 죽어 간다.

과학이라는 명목으로:

● 원숭이들과 토끼들이 폐암으로 죽을 때까지 흡연하도록

강요된다.

● 어떤 동물들은 완전히 기운이 빠질 때까지 전기 충격을 받는다.

● 토끼들을 차꼬에 채우고 양쪽 귀에 ‘체체’ 파리통을

부착시켜 둔다. 다른 토끼들은 양눈에 궤양이 생길 때까지

눈환장을 하고 머리 염색 약을 눈에 넣는다.

● 어떤 원숭이들은 굶주리게 하고, 답차(踏車) 위에서 계속 뛰도록 강요되고

방사선에 노출된다. 죽을 때까지의 평균 시간은 37시간 걸린다.

● 어떤 고양이들은 눈 멀게 되고, 거세되고, 후각이 파괴되고,

성 기관의 신경들이 절단된 후 성 반응을 시험받는다.

● 어떤 동물들의 성대를 파괴시켜 울 수 없게 만든다.

● 미국에서만도, 매년 64,000,000마리의 동물들이 이러한

의학 실험으로 죽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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