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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어라!—1980
깨80 6월호 36-39면

‘아시아’의 불청객 “선상 주민”

「깨어라!」 ‘홍콩’ 통신원 기

처음에 탐지되었을 때에는 그저 수평선 상의 까만 하나의 점과 같았다. 그러나 가까와짐에 따라 해양 경비대는 그것이 기대하던 것임을 명백히 알 수 있었다. 수백 번 목격한 끔찍한 광경이 여기에 또 다시 재현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의 앞에는 180명의 불청객을 터져 나가도록 태우고 빈약한 식량을 실은 채 ‘홍콩’으로 접근해 오는 배가 나타난 것이다. 이 배는 좁고 18‘미터’ 정도의 길이로 낡아빠진 데다가 비바람에 시달리고 더우기 2주일부터 1개월 이상에 걸쳐 항해해온 명목상의 배에 불과하다. 간신히 앉을 자리만 얻은 채 ‘베트남’으로부터 남지나해를 약 1,000‘킬로미터’나 항해해 온 것이다.

불안스레 요동하는 배는 검역 정박소로 조심스럽게 예인되어 그들은 정부 1부두에서 상륙할 차례를 기다리게 된다. “선상 주민”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최악의 경험들이 이제 지나간 일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그들이 모르고 있는 것은 고향이라 부를 곳을 얻기까지 그들 앞에 놓여있는 것이 좋지도 않은 상태에서 수 개월 동안을 기다려야 한다는 사실이다.

비극적인 이 여행자들은 누구이며 그들의 사연은 무엇인가?

피난민

역사를 통하여 불안이나 전쟁, 국가주의, 편견, 그리고 그와 관련된 문제가 있을 때면 피난민이 생기기 마련이었다. 어떤 사람들은 이기적인 이유에서 피난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더욱 많으며 그러한 피난민들은 세태가 만들어 내는 무구한 피해자들이다. 현재 피난민이 세계적으로 1,100만 이상인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동남 ‘아시아’의 집없는 30여만의 피난민 중 그 대부분은 “선상 주민”이다. 나머지는 주로 ‘캄보디아’ 전쟁 지역으로부터 ‘타일랜드’로 도망해 간 ‘캄푸치아’ 사람들이다. 그들은 ‘타일랜드’의 시설을 부득불 이용해 왔으며 어떤 경우에는 곤경이 종류만 바뀔 뿐이었다.

그러나 세계의 관심을 피난민 문제로 이끈 원인은 소위 “선상 주민”의 진상이었다. 이들은 초만원인데 더하여 흔히 항해에 부적합한 온갖 형태와 크기의 배를 타고 ‘아시아’의 다른 항구를 향해 출범한 ‘베트남’ 피난민들이다. 어떤 배들은 남으로 향하여 ‘말레이지아’, ‘인도네시아’, ‘타일랜드’ 그리고 호주에까지 항해해 갔다. 나머지 배들은 남지나해 연안을 얼마간 끼고 돌아 ‘해이난’ 섬쯤에 멈추어 식수와 빈약한 식량을 얻은 후 ‘마카오’와 ‘홍콩’으로 서서히 항해한다. 이런 여행들은 위험을 안고 있다.

남쪽으로 향해 간 사람들은 그 중 70‘퍼센트’ 가량이 바다에서 실종되었으며 ‘홍콩’으로 향한 사람들은 40내지 50‘퍼센트’가 수장되었을 것으로 추산되었다. 어떠한 이유로 이 사람들이 그토록 위험천만한 항해를 시작하게 되었는가?

‘베트남’ 전쟁이 끝난 후 남부에 살던 많은 사람들은 신정부의 보복이 두려워 대거 도피했으며 나머지 다른 사람들은 이기적인 이유로 그렇게 했다. 이러한 탈출은 비교적 짧은 시일에 끝날 것으로 생각되었고 사실상 그 숫자가 감소되어 갔다. 그런데 1978년 12월 23일 ‘홍콩’앞 바다에 앞으로 닥칠 일에 대한 선구자가 나타났다. 그것은 “후에이 퐁”호였다. 그것은 승선해 있는 거의 3,400명의 피난민들과 함께 세계의 이목을 끌었다. 몇 개월 후 1979년 2월에 중-월 국경분쟁에 뒤이어 수만명의 중국인과 소수의 ‘베트남’인들이 다른 나라로 가기 위해 생사를 건 항해를 시작했다.

사소한 세부점을 제외하면 중국인 피난민들의 사연은 모두 같았다. ‘베트남’으로부터 모든 중국인 추방 운동이 전개되고 있다는 것이다. 국경 분쟁으로 도주하는 길이 막힐 때까지, 20만명 이상이 국경을 넘어 중국으로 도주했다. ‘베트남’ 특히 국경 분쟁이 일어난 북부에 아직도 중국인들이 있는데 떠나라는 공공연한 명령을 받고 있다. 그 중 한 사람의 말을 들어보자, “처음에는 경찰이 한 달에 한 번씩 찾아 왔다가 그 다음에는 일 주일에 한번씩, 마침내는 매일같이 우리가 떠날 차비를 시작할 때까지 찾아 왔읍니다. 우리는 재산을 ‘베트남’ 사람들에게 헐값으로 넘겨야 했읍니다.” 이 사람은 먼저 자기 가족의 출국을 위해 요금을 지불했으며 자기 가족을 배편으로 ‘홍콩’을 향해 떠나게하고 자기는 몇 주 후에 출국하도록 천신만고 끝에 요금을 긁어모아 지불할 수 있었다. ‘홍콩’에 도착한 후 그는 희망에 찬 눈으로 바다를 지켜 보았다. 그의 가족은 결코 도착하지 않았다.

‘베트남’ 북부에 아직 남아있는 많은 중국인들은 노동자들이어서 저축을 많이 할 수가 없다. 그 나라로부터의 출국과 항해를 위해서 비교적 저렴한 일인당(미화) 600‘달러’ 정도를 지불한다고 한다. 협박군과 정부 관리가 어느 정도로 관련되었는가 하는 문제는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다. ‘베트남’에서 나갈 방도를 얻지 못한 중국인들은 새로운 “경제 지대”로 보내지는데 이 곳은 식품도 식수도 없는 미개간지라고 하며 농기구 몇 가지와 얼마간의 곡식 종자만으로 그 곳에서 새 생활을 시작하라고 한다는 것이다.

남부에는 물질적으로 부유하여 금괴를 저장해 두었거나 ‘베트남’ 전쟁에 편승하여 그것을 구입해둔 중국인들이 많았다. 그들은 선박의 도항권을 사는데 성인 일인당 미화 수천 ‘달러’에 상당하는 8내지 15‘온스’의 금을 지불했다고 한다. 더 많은 돈을 지불한 사람은, 커다란 화물선에 승선이 허락된 것 같은데 그 배는 바다에서 피난민들을 찾아준다는 가장된 배에 불과하며 사실은 이렇게 하여 인간 화물을 거래하고 있는 것이다. 1978년 12월 ‘홍콩’에 입항한 “후에이 퐁”호가 그런 배였다.

“콩나물 시루”같은 선박들

“후에이 퐁”호는 도착하여 ‘홍콩’ 영해 바로 밖에 머물렀다. ‘홍콩’ 정부에서는 그 선박의 등록된 최초의 기항지가 ‘타이완’의 ‘까오슝’으로 되어있기 때문에 ‘타이완’으로 항해해 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렇지만 공급품을 배로 보내고 환자를 치료해주며 심지어 어떤 환자는 비행기로 병원까지 수송해 주었다. 3,400여명 대부분이 더 이상 배에 계속 머물러 있기를 원하지 않았으며 ‘타이완’으로 가는 것 또한 바라지 않았다. ‘타이완’에서는 어찌됐건 피난민들을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성명을 이미 발표한 바 있었다. 선장은 피난민들에게서 위협을 받아 배를 움직이는 것을 두려워했다고 말했다. 사태는 진퇴양난에 처한 것 같았다.

선장과 피난민들은 그 배가 침몰하는 배로부터 피난민들을 구조했으며 인도적인 견지에서 ‘홍콩’의 상륙 허가를 내어 달라는 요청을 했다. 관련된 정부 차원의 외교적 협상을 한 후 ‘후에이 퐁’호는 입항이 허락되었다. 때가 되어 피난민들은 비좁은 난민 수용소 가건물에 보내졌다.

그 다음 정부는 세밀한 조사를 시작했다. 항해 일지와 대조해 보니 진술한 이야기 가운데 모순되는 점이 많았다. 사실 철저한 조사를 해 보니, 미화 1,300만 ‘달러’ 상당의 금이 선박 속에 숨겨진 사실이 밝혀졌다. 1979년 8월 “후에이 퐁”호의 선장과 선원들이 재판에 회부되었다. 압도적인 증거들이 제시되어 이 여행이 많은 법을 어기고 생명을 위태롭게 하면서 자행된 황금 추구의 모험극이었음이 증명되었다. 선장과 선원들은 검사가 “사기 여행”이라고 부른 그들의 행동에 대해 징역형을 언도받았다.

‘홍콩’에 입항한 또 한 척의 배는 ‘스카이러크’호였다. 그 배는 1979년 2월 7일에 도착했고 2,665명의 피난민을 태우고 있었다. 배의 설비가 비좁은 피난민 수용소와 비등했으므로 상륙이 허가되지 않았다. 식량과 다른 필수품이 정박해 있는 그 배로 매일 운반되었다. 이런 일이 6월 29일까지 무려 넉 달 이상이나 계속되자 더 이상 참지 못하여 피난민들이 스스로 문제 해결을 떠맡은 것이다. 그들이 배를 장악하고 닻줄을 끊어 버렸으며, 물결따라 마침내 ‘홍콩’의 한 섬에 불안정하게 닿게 되었다. 정부는 이 피난민들을 형무소를 개조하여 난민 수용소로 만든 임시 수용 ‘센터’에 정착시켰다.

실제로 여러 화물 선박이 ‘아시아’의 항구간의 정기 노선 항해중 침몰하는 배로부터 피난민들을 구조하여 다음 기항지로 데리고 갔었다. 그러나 이러한 일은 선박 회사에 문제를 초래케 했다. 왜냐하면 그 선박이 속해 있는 나라에서 그러한 피난민들의 정착을 맡겠다고 하지 않는 이상 대개 기항한 항구에서 피난민들의 상륙을 허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선박은 수 일 동안 때로는 수 주일간 항구에서 지체하게 되고 선박 회사는 선박의 크기와 종류에 따라 그 연장 정박에 대해 하루 미화 5,000‘달러’ 내지 20,000‘달러’ 정도를 가외의 비용으로 지불해야 한다. 이러한 일은 어떤 선장들로 하여금 구조 작업을 꺼려하게 하지나 않을까 하는 두려움을 준다.

염려하는 이유

‘홍콩’의 입장을 보면 피난민들이 기항(寄港)국으로부터 환영 이하의 대우를 받는 이유 몇 가지를 알 수 있다. 국제 연합 난민 고등 판무관 사무소에서는 그 비용을 지불하고 1978년 말까지 도착한 피난민들의 구호를 위한 조직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1979년 수천명이 더 도착하자 ‘홍콩’에서는 복지 기구의 도움을 받아 그 비용 대부분을 지불하기 시작했다. 온갖 긴급 대책을 세워 난민들을 어느 정도 질서있게, 위생적으로 수용하였다.

그러나 ‘홍콩’은 1,045평방 ‘킬로미터’ 가량 밖에 되지 않으며 그나마도 4분의 1은 대도시 형태의 발전과 농업에 적당한 곳이다. 1978년 중반까지 이미 470만명이 이 곳에 거주하게 되었고 대도시 지역은 인구 밀도가 2.6평방 ‘킬로미터’ 당 67,000명 이상이 되었다. 두말할 나위 없이 난민들이 급작스레 물밀듯이 들이 닥친다는 사실이 진실로 염려가 되는 이유이다.

더욱 사태를 악화시키는 일로 1979년 처음 5개월간 중국으로부터 들어온 합법적 이주자가 매달 평균 만여 명에 달하였다. 수만 명의 불법적 이주자가 또한 국경을 넘어 밀려 들고 있다. 그래서 매달 약 22,000명의 합법적 및 불법적 이주자 및 피난민들이 이 식민지에 도착하였다. 경찰과 군대 그리고 사회 봉사 기관들이 극도 부담을 지고 있다. 그런데도 여러 신문의 표제가 말해 주듯이 “아직도 그 사람들이 오고 있다 ·⁠·⁠·”는 것이다

‘아시아’의 다른 나라들과 국민들은 이러한 이민이 장래에 자국의 경제와 ‘인플레’ 그리고 소위 “민족의 균형”에 끼칠 영향에 대하여 두려워하고 있다. 그러므로 피난민들이 어떤 해안에 접근하면 그 지방 주민들은 돌을 던지며 자기네 땅으로부터 배를 밀쳐 내곤 한다. 70,000명 이상의 “선상 주민”으로 두통을 앓고 있는 ‘말레이지아’에서는 “절망적인 사람들의 절망적인 행동”이라고 묘사되는 태도를 취하기 시작했다. 당국에서는 난민선을 수선하여 바다로 다시 밀어 내기 시작하고 있다. ‘포르투갈’의 작은 요지인 ‘마카오’도 이미 중국으로부터 온 이민들로 넘치고 있어 이제는 포화점에 이르렀다고 말하고 있다. 그래서 이러한 선박들이 ‘마카오’에 닿으면, 음식과 식수 및 의약품을 공급한 다음 대개 약 66‘킬로미터’ 떨어진 ‘홍콩’으로 향하도록 바다로 떠나가게 하였다.

‘홍콩’ 정부가 인도적인 입장을 취하여 “선상 주민”을 돌려 보내지 않겠다고 표명한 것은 칭찬 받을 일이다. 관리들은 그 사람들을 돌려 보내는 것은 그 중의 많은 사람들에게 수장을 언도하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그러나 외국의 도움이 몹시 필요하다. 1979년 중반까지 정부에서는 ‘홍콩’에 주재한 국제 연합 난민 고등 판문관 산하의 구호 대상에 끼지못한 난민들을 먹이고 입히고 수용하는 데 매일 미화로 약 50,000‘달러’씩 지불해 왔다.

국제적인 원조

‘아시아’의 나라들은 외교적으로 솔선하여 국제 연합과 세계의 여러 정부에게 필사적으로 도움을 간청하였다. 그들은 부유한 나라들이 난민 수용 설비는 그렇게도 많이 비판하면서 돕겠다거나 정착 시키는 문제에 대하여는 너무나 무관심하다고 생각한다. 많은 지도자들은 국제 난민 회의를 소집 해야 할 긴급한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리하여 1979년 7월 20일, 21일 양일간 국제 연합 ‘인도차이나’ 난민 회의가 개최되었다. 강대국가들과 ‘베트남’을 포함한 동남 ‘아시아’ 제국의 대표들이 참석했다. 이 회의의 결실은 ‘베트남’이 피난민들의 출국을 질서있고 규제된 출발이 되도록 완화시키는 데 동의한 사실이다. 또한 26개국이 30만명의 피난민을 동남 ‘아시아’로부터 데려가 정착시킬 것에 동의했다. 「‘사우드 차이나 모닝 포우스트’」지 1979년 7월 22일자에 의하면 중국은 이미 국내에 있는 25만명에 더하여 10,000명의 피난민을 더 받아 들이겠다는 제안을 해 왔다고 한다. 더우기 국제 연합 난민 고등 판무관에게 난민 비용 충당을 위해 미화 100만 ‘달러’를 희사하겠다고 제안했다.

1979년 9월 1일자로 국제 연합 난민 고등 판무관은 ‘홍콩’ 피난민에 대한 전체 책임을 떠맡았다. ‘아시아’의 전 난민들이 앞으로 18개월 동안에 정착하게 될 것이라는 약속이 이루어졌다. 그래서 대책과 앞으로의 계획이 세워졌다. 오직 시간만이 실제로 어떤 일이 이루어질 것인지 말해 줄 것이다.

이제는 “선상 주민”편에서 정착 마련에 있어서 자기 차례가 올 때까지 비좁은 상태를 참아나가는 일 밖에 없는 것 같다. 설사 다른 나라로 이주해 간다 할지라도 여전히 언어의 장벽과 편견, 오해 그리고 그 지방 주민들과 직면하는 일들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홍콩’의 한 교직자가 난민 문제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품고 있는 느낌을 잘 요약해 주었다. 그는 “해결될 수 없는 문제”라고 말했다. 그러면 그 이유는?

왜냐하면 피난민 문제가 영구적으로 해결되려면 전쟁이 제거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탐욕과 증오를 없애고 전 인류의 완전한 유익을 위해 지구 자원이 사용되는 것을 방해하는 국가주의적 분열을 제거해야 함을 의미한다 어떠한 인간 정부나 인간 정부들의 동맹체도 이 모든 일들을 성취해 줄 것으로 기대할 수는 없다.

그러나 성서에서는 인류의 창조주이신 여호와 하나님께서 바로 이 모든 일을 성취하실 것을 알려준다. 어떻게? 땅으로부터 증오와 탐욕을 조장하는 모든 사람들과 전쟁을 선동하는 사람들을 깨끗이 제거함으로써. (시 46:9, 10; 요한1서 3:15; 고린도 전 6:9, 10) 그분께서는 하늘에서 통치하는 한 정부를 마련하셨으며 이 정부를 통하여 ‘모든 백성과 나라들과 각 방언하는 자’들을 그 영역내에서 연합시킬 것이다. (다니엘 7:13, 14) 난민들이 수용소 밖으로 자유로이 나가 다닐 수 있게 됨에 따라 “선상 주민”들은 단 하나의 믿을 수 있는 이 희망에 대하여 배울 기회를 가지고 있다. 그런 기회는 당신에게도 열려져 있다.

[36면 삽입]

‘‘베트남’으로부터 남쪽으로 향한 피난민들 중 70‘퍼센트’가 바다에서 실종되었으며, 북쪽으로 향한 사람들은 약 40내지 50‘퍼센트’가 수장되었다.’

[37면 삽입]

“전세계에는 1,100만 이상의 피난민들이 존재한다.”

[38면 삽입]

“피난민들이 어떤 해안으로 접근하면, 그 지방 주민들은 돌을 던지며 선박들을 밀쳐내곤 한다.”

[38면 삽입]

“매월 약 22,000명의 합법적 및 불법적 이주자 및 피난민들이 ‘홍콩’에 도착하였다.”

[39면 삽입]

‘항해중 구조된 피난민들은 그 선박이 속한 국가에서 그들을 떠맡겠다고 동의하지 않는 한 아무 곳에도 상륙하는 것이 허락되지 않았다.’

[39면 삽입]

‘피난민 문제를 영원히 해결하는 데는 전쟁이 없어야 하고, 탐욕과 증오 그리고 모든 인류의 온전한 유익을 위하여 지구 자원이 사용되는 것을 방해하는 국가주의적 분열이 제거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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