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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깨80 5월호 26-29면
  • 당신은 자녀들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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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당신은 자녀들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 깨어라!—19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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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어라!—1980
깨80 5월호 26-29면

당신은 자녀들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축복이다.”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이다.” “참된 기쁨이다.” “우리 마음의 즐거움이다.” 여러 부모들로부터 이러한 말을 들을 때 얼마나 흐뭇한가! 특히 모든 부모들이 다 자기들의 자녀들을 축복으로 여기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고려할 때 더욱 그러하다.

그러나 이러한 질문이 있다. 당신의 자녀에 대하여 어떻게 느끼는가? 당신은 부모로서 여러 국면의 역할에 대해 즐거워하는가? 당신은 자녀들에 대한 사랑을 확신시키며 그들에 대해 감사하고 있음을 계속 확신시키는가? 마지막으로 그들을 안아주고 그들에 대한 애정을 나타낸 때는 언제였는가?

확실히, 부모가 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것은 어렵고 힘든 일이 요구되고 때때로 좌절감을 주는 때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기에는 크나큰 보상이 따를 수 있다. 그리고 자녀들을 기르면서 얻게 되는 좋은 결과들은 직면하게 되는 문제들보다 훨씬 더 많다. 많은 부모들은 그렇게 느낀다. 당신도 그렇게 느끼는가?

물론 여러 가지 다른 견해가 있다. 모든 부모들이 다 기쁘게 자신들의 책임에 임하지는 않는다. 어떤 이들에게는 자녀들이 부모의 사적인 것과 자유 시간을 앗아가는 것으로 보일지도 모른다. 왜냐 하면, 자녀들이 어떤 계획된 일을 추구하는데 방해가 되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어떤 부모들은 복잡한 부모의 역할을 수행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을 수도 있다. 또한 어떤 이들은 부모의 책임 수행에 요구되는 희생에 대해 분개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이유가 어떠하든지 간에 그것은 슬픈 일이다. 특히 그러한 부정적인 태도는 분명히 이들 부모들의 자녀들을 생각하고 대하는 방법에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사실 어떤 부모들은 자기 자녀들을 “애새끼”나 “무례한 자식”이라고 부르기까지 한다. 그러므로 어떤 어린이들을 다루기가 힘든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이런 자녀들은 자기들이 필요가 없고 사랑을 받지 못한다고 느낀다. 그리하여 여러 가지 방법으로 보복을 하고자 한다.

부모로서의 긍정적인 면들

그러나 자녀들을 사랑하고 소중히 여기는 부모들은 어떠한가? 그들로부터 무엇인가 배울 수 있는가? 자녀들에 대한 그들의 견해는 우리 자신의 감정을 평가하는 데 도움이 되는 어떤 통찰력을 줄 수 있는가? 정말로 그럴 수 있다. 자녀들에 대해 그들이 긍정적으로 느끼는 것은 자녀들이 맺는 열매에서 분명히 볼 수 있다. 자녀들은 그들이 받는 사랑과 보살핌에 대해 사랑과 순종으로 보답하고, 자라서 책임감있고 사랑이 많은 성인이 된다. 그리고 한편 그들은 젊을 때 부모로부터 받은 원칙과 훌륭한 교훈을 자기 자녀들에게 전해준다. 그리고 그렇게 되는 것이 부모로서 바라는 전부가 아닌가?

그러나 당신의 자녀들은 어떠한가? 그들은 반응이 좋고 순종적이고 존경심이 있는가?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실망하지 말라. 당신이 자녀들에게 교훈하고 그러한 반응을 기대하는 것은 이치적인 것이다. 우리가 이런 말을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왜냐하면, 창조주 자신이 자녀들을 부모들의 직접적인 다스림 아래 두셨기 때문이다. 이것은 참으로 경건한 마련이다. 에베소서 6:1, 2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있는 첫계명이니[라.]” 이 성귀는 자녀들이 하나님께서 주신 책임을 수행하는 여러분 부모들에게 순종하도록 격려한다.

자녀 교육에 성공하는 데는 힘든 일이 요구된다. 다섯 아들을 가진 한 미망인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나는 그들을 교훈하느라고 시간을 바쳤읍니다. 나는 이제 그들로부터 유익이 오는 것을 봅니다. 즉 그들의 행동과 태도에서 말입니다. 그들은 거칠지 않습니다. 말을 잘 듣고 존경심이 있읍니다. 아들들은 이제 이와 같이 말을 합니다. ‘어머니, 어머니께서는 우리보다 경험이 더 많으십니다—우리는 그것을 알고 있읍니다.’ 그것은 나에게 축복입니다.” 자기 자녀들로부터 이러한 말을 듣기 원하지 않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한편, 자녀들이 좋은 반응을 보이기를 원한다면 부모들이 자기 자녀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 한다. 부모들이 자녀들에게 따라야 할 규율과 법칙을 세워 두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부모들은 자녀들과의 의사소통을 하기 위하여 최선을 다해야 한다. 자녀들의 취미와 관심에 따라 보조를 맞추어 주는 부모들은 자녀들과 의사소통을 하는데 거의 문제가 없다. 11살 된 아들을 둔 한 어머니는 그 사실을 다음과 같이 증언한다.

“나는 아들로부터, 평상시에는 내가 관심을 가지고 있지 않은 어떤 것을 배웁니다. 예를 들어, 나는 그 애가 어떤 일을 하게 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생각했읍니다. 그래서 아들에게 열대어 몇 마리를 사 주었읍니다. 그런데 그것은 아들에게 도움이 되었을 뿐 아니라 나에게도 유익했읍니다. 나는 이제 그 물고기들이 나에게 응하는 것을 보는 데 즐거움을 얻고 있읍니다. 아들의 관심이 커지자 나의 관심도 함께 커진다는 것을 알았읍니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를 서로 가깝게 이끌어 줍니다.”

당신의 경우에도 그러한가?

최근에, 어떤 아버지들은 자녀들을 돌보는 데 있어서 감정적인 여러 국면에 보다 더 많은 관련을 갖게 되었다. 아버지들은 오랫동안 가정에서 징계자로 간주되어 왔다. 그러나 최근에 자녀들을 위해 계획을 세우고 돌보는 여러 분야에 참여하는 경향이 있었다. 한 아버지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는 아버지들이 가능한 한 자녀 출산에 활동적으로 참여해야 한다고 확실히 믿습니다. 그래서 나는 첫 딸이 태어날 때 분만실에 있었읍니다. 첫 딸이 태어난 직후 의사가 그 애를 내 팔에 안겨 주었을 때에 내가 느꼈던 아름다운 감정은 말로써 이루 형언할 수 없었읍니다. 그 때 그 자리에서 나는 그 축복에 대하여 여호와 하나님께 들리는 소리로 감사의 기도를 드렸읍니다. 그리고 아내와 나는 아직도 우리의 두 딸을 축복으로 생각하고 있읍니다.”

모든 자녀들이 다 축복으로 간주될 수 있는가?

정상적이 아니고 건강하지 않게 태어난 자녀들은 어떠한가? 그들도 축복으로 간주될 수 있는가? 그리고 그러한 자녀들을 가진 부모들도 자녀에 대한 책임을 수행하는 데 기쁨을 얻을 수 있는가? 심장 기능이 좋지 않은 불구아를 가진 부모가 이 질문에 대답하는 말을 들어 보자. 먼저 그 아버지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읍니다. “의사들은 딸애가 아무튼 죽을 것이기 때문에 포기할 수 밖에 없다고 말했읍니다. 나는 그들에게 이 애를 위해 어떤 방법이 없겠는가를 물었읍니다. 그러자 그들은 우리가 애를 살리고 싶어 한다는 것을 알고 놀라는 것 같았읍니다. 그들은 속수무책이라고 말했으며 죽을 것이니 집으로 데리고 가시라고 하였읍니다.” 그 어머니는 이와같이 말을 이었읍니다.

“처음부터 그들은 우리 아기를 지체 불구아 수용실에 넣으라고 촉구했읍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들의 말을 듣지 않았읍니다. 우리는 아기를 우리 사랑에서 떼어 놓는 일을 순간이라도 생각할 수가 없었읍니다. 사실 이 애는 우리가 (아들 넷을 낳은 후) 오랫동안 기다렸던 딸이었읍니다. 그리고 우리는 단지 이 애가 우리와 함께 있기를 원했을 따름입니다. 이제 의사들은 이 딸애가 잘 자라는 것을 보고 의아하게 생각합니다. 의사들이 3개월 밖에 살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지만, 우리 아기는 이제 14개월이 되었읍니다. 그리고 이제 사랑을 받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읍니다. 그리고 이 때문에 정신적 장애와 심각한 심장 상태에도 불구하고 잘 자라게 되었읍니다. 그리고 이 애는 내가 여태까지 보아온 중에서 가장 사랑이 넘치는 아이입니다. 물론 나는 애의 어머니이기 때문에 사랑합니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께서 우리 아이에게 나타내시는 사랑을 보면 정말로 놀랍습니다. 하나님 그분만이, 애가 살아있도록 하셨읍니다. 그러니 어찌 우리가 그러한 하나님을 숭배하지 않을 수 있겠읍니까?”

어떤 면으로 장애를 받고 있는 자녀를 가진 부모들이 재정적으로, 특히 감정적으로 훨씬 더 어렵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그러한 아이들은 정상적인 아이들보다 사랑과 주의를 더 많이 요구하기까지 한다. 그런데 거기에 부모의 사랑이 주어지면, 그러한 아이들은 보통 긍정적인 반응을 보일 것이다.

문제들을 극복하는 방법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제들이 더러 생기며 이러한 질문이 생긴다. 그러한 문제들을 극복하기 위해 부모들이 어떻게 할 수 있는가? 단순히 순종하라고 명령만 한다면 아무 것도 이룰 수 없다. 문제가 있는 어린이들이 부모들과의 의사소통을 하는 것이 허락되지 않는다면, 그들에게 분개심이 자라나게 될 것이며, 자연히 불경한 마음이 생길 것이다. 에베소서 6:4은 다음과 같이 교훈한다. “그리고 여러분, 아버지들이시여, 여러분의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그들을 여호와의 징계와 정신적 단속으로 양육하십시오.”(신세)

네 명의 아들을 가진 한 아버지는 이 성서의 교훈을 따른 결과를 이와 같이 말한다. “나는 자녀들의 마음에 있는 바를 알아 내기 위하여 그들의 말을 듣는 데 최선을 다합니다. 그럴 때에만 나는 자녀들을 진정으로 도울 수 있읍니다. 나는 매주 한번씩 성서 연구를 사회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보통 성서가 문제에 대해 대답하도록 합니다. 자녀들은 우리가 주는 교훈이 우리에게서가 아니라 하나님께로부터 나온 것이라는 것을 압니다. 그리고 그것은 크게 도움이 됩니다.”

문제를 극복하는 데 크게 도움이 되는 또 한 가지는 유용성이다. 자녀들에게 문제가 있을 때가 부모들의 도움이 가장 필요한 때이다. 한 어머니는 그의 생각을 다음과 같이 피력하였다. “우리는 항상 유용되게 합니다. 그들로 하여금 어떠한 일이든지 우리에게 가지고 올 수 있다는 것을 알도록 하는 것입니다. 심지어 문제가 우리 부모들에게는 사소하게 보일지라도 종종 그들에게는 매우 큰 문제가 됩니다. 그럴 때가 중요합니다. 자녀들은 우리가 그들을 돌본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무엇이든지 우리에게 가지고 옵니다.” 모든 어린이들이 욕설이나 비난을 받지 않고 어떤 문제를 가지고 있든지 그들의 부모들에게 자유롭게 접근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당신의 경우도 그러한가? 당신은 조용히 들으면서 그들이 자유롭게 말하도록 격려하는가?

또한 부모들이 약속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어린이들이 많은 것을 받아들일 수 있지만 실망이나 변덕은 잘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 같다. 한 어머니는 이와같이 지적했다. “내가 지킬 수 없는 약속을 하는 것은 어린이들에게 좌절감을 일으킬 뿐입니다. 자녀들은 어머니의 말에 많이 의존합니다. 그래서 나는 일단 약속을 한번 하면, 그 약속을 지키려고 노력합니다. 그리고 내가 어떤 것을 할 수 없을 경우에는 그 이유를 설명해 주고 미안하다고 말해줍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들은 나도 부족한 점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우리들 사이의 유대를 굳게 해줍니다.”

당신이 약속을 지킬 수 없어서 자녀들에게 미안하다고 말한 것은 가장 최근으로 언제 있었는가?

피해야 할 일들

기회가 두번째 주어질 때 부모들이 달리 행할 일들이 몇 가지 있다. 어떤 이들은 자녀들의 말을 충분히 듣지 않은 것을 후회하였다. 또 어떤 이들은 자녀들이 처음으로 접근해 왔을 때에 지레 짐작한 것을 후회하였다. 그들은 판단을 하는 데 성급했을지도 모른다. 결정을 내리기 전에 모든 사실을 아는 것이 지혜로운 방법이다.

또 하나의 중요한 점은 자녀들을 공정하게 대하는 것이다. 한 아이를 다른 아이와 비교하는 것은 지혜롭지 못하며 옳지 못하다. 그렇게 하면 질투와 분개심을 조장할 수 있다. 어린이마다 재능이 다르며 저마다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 한 아이를 다른 아이와 얕보는 식으로 비교하면 한 아이에게는 자신감과 자존심을 상하게 하며, 다른 한 아이에게는 우월감과 거만함을 조장하게 된다.

피해야 할 한 가지 일은 ‘텔레비젼’을 무분별하게 보도록 허락하는 것이다. “‘텔레비젼’만큼 한 세대 동안에 어린 시절의 상태를 변화시킨 것은 없었다.” (‘뉴우요오크’ 「타임즈」지 1979년 3월 4일자) 이 참된 말은 많은 부모들에게 ‘텔레비젼’ 시청이 자녀들에게 미치는 강력한 영향력에 대해 경고가 되었다. ‘텔레비젼’이 교육적인 가치가 있다는 것을 부인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주의하지 않는다면, 어린이들은 악 영향을 받을 수 있다. 예를 들어, 폭력에 관한 ‘프로’를 계속 봄으로 그렇게 될 수 있다. 사실상, 최근의 일부 청소년 범죄의 증가는 어린이들이 폭력을 주제로 한 ‘텔레비젼 프로’를 보는 데 직접 기인해 있다.

친구 혹은 부모—어느 쪽인가?

당신의 가족 내에서는 ‘텔레비젼’을 많이 보는 것이 문제가 되지 않을지 모른다. 당신은 직접 자녀들과 함께 시간을 많이 보낼지도 모른다. 그것은 칭찬할 만한 일이다. 하지만 당신은 자녀들과 어떠한 관계를 가지고 있는가? 자녀들이 당신을 친구로 생각하는가 아니면 부모로 생각하는가? 어떤 가정에서는 어린이들이 부모들을 자기들과 동일한 입장에서 대하고 이야기하는 것이 관찰되어 왔다. 그리고 관계가 지나치게 친밀하여 징계가 필요할 때에도 징계를 하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된 부모들도 있다. 그것은 자기 부모들 뿐 아니라 가족 밖의 사람들에 대한 불경의 씨앗을 심을 수도 있다.

한 어머니는 그러한 관계를 반대하면서 이와 같이 말했다. “그들은 자기 부모들을 귀담아 듣고 순종해야 할 연장자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친구’는 그들과 동일한 수준에 있읍니다. 어린이들은 성인들처럼 스스로 생각하거나 분별하거나 시정할 수가 없읍니다. 그들은 그러한 역할을 해 줄 부모들을 필요로 합니다.” 그 부인의 남편은 이와 같이 부언했다.

“우선 나는 부모가 되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그 이유는 엄격함과 존경심이 있을 때 우정이 뒤따르고 자라날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자녀들은 존경을 나타내는 한 그들의 의사를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도록 격려받습니다. 우리는 종종 자녀들에게 이와 같이 말합니다. ‘너희들이 말하는 내용보다도 말하는 방법이 중요하다.’ 우리는 그들에게 말하는 방법을 가르치고자 노력합니다. 그들이 우리를 존경하지 않으면 누구를 존경하겠읍니까?”

물론, 이 말은 참된 뜻에서 친구가 될 수 없다는 의미가 아니다. 많은 부모들은 자녀들과 따뜻하고 훌륭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자녀들을 사랑과 존경심을 가지고 대한다. 하지만 윗사람에 대한 존경심이 급격히 줄어들고 있는 세상에서 부모들의 합당한 권위에 대한 존경심을 손상시키는 일이 용납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부모와 자녀들의 친밀감이 지나치면 멸시하는 태도가 자라나게 될 수도 있다.

자녀들의 생활에 미치는 하나님의 역할

눈에 보이는 부모와 다른 사람들을 공경하는 어린이들은 실제로 보이지 않는 그들의 창조주를 숭배할 수 있는 입장에 있게 된다. 자녀들을 교훈하는 부모들의 직위는 독특한 것이다. 부모들은 인자하게 자녀들의 주의를 창조주께로 이끌 수 있다. 그렇게 하는 것은 필수적이다. 그리고 꾸준히 그렇게해야 한다. 부모들은 자녀들을 교훈하는데 부지런해야 한다. 감정이나 압력이 그들을 방해하도록 해서는 안된다. 자녀들이 좋은 결과를 맺기를 원한다면, 부모의 책임을 다른 사람들 즉 다른 가족 성원, 교사 혹은 종교 지도자들에게 위임할 수 없다.

분명, 지름길은 없다. 거기에는 시간, 노력, 사랑 및 인내가 필요하며, 여러 차례에 걸쳐 조정을 해야만 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주신 책임을 성실히 수행하는 부모들은 훌륭한 결과를 맺을 수 있다. 부모들이 자기 자녀들을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로 생각하고 그들이 사랑을 받고 있다는 것을 알게 한다면, 그런 가족은 많은 축복을 거둘 것이고 부모들은 크게 보상을 받고 있음을 느낄 것이다. 시편 필자는 이와 같이 말했다. “자식은 여호와의 주신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로다.”—시 127:3.

당신의 자녀들에 대한 당신의 견해도 이러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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