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락의 필요성을 무시하지 말라
너무 없어도 좋지 않고 너무 많아도 좋지 않다
일을 중요시하던 과거에는, 많은 사람들이 오락을 시간의 낭비라고 생각하였다. 오늘날에 와서는 쾌락 추구가 많은 사람들에게 인생의 주요 목적이 되었다. 하지만, 일과 오락은 서로 균형이 이루어져야 한다.
올바른 작업은 인생에 의미와 목적을 부여한다. 합당한 오락은 피곤해진 일꾼들에게 휴식을 주고 일을 하고자 하는 의욕을 일으켜 주는 환영할 만한 기분 전환의 역할을 한다. 너무 오랫동안 일을 많이 하면 육체적으로 지치게 되고, 정신적으로도 침체된다. 휴식에 필요한 정도 이상의 긴 휴가는 지루한 감을 일으킨다. 오락을 무시하고 일만하는 것은 좋지 않다.
우리는 청교도들처럼 모든 오락을 나쁘게 생각하는 과오를 범해서는 안된다. 폭식이 싫다고 먹는 일을 단죄해서는 안된다. 과음이 밉다고 술을 마시는 일을 금하지도 않는다. 마찬가지로 극단적인 사람들이 오락에 지나치게 몰두한다고 해서 오락을 못마땅한 것으로 봐서는 안된다. 우리는 오락을 거부할 것이 아니라 올바른 오락 그리고 올바른 정도의 오락을 분간하도록 해야 한다.
집 밖에서 오락을 즐기는 일
많은 사람이 해변, 산 또는 공원으로 몰려들기 때문에 어떤 지역은 사람이 너무 많이 몰려 문제가 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곳들은 수없이 다양한 여러 가지 오락—걷기, 수영, 서서히 달리기, 배낭을 지고 ‘하이킹’을 가는 일, ‘캠핑’, 야유회, 자연을 관찰하는 일 등등—을 제공해 준다.
하지만 반드시 멀리 여행을 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많은 사람들은 숲 근처에 살고 있다. 뒷뜰에라도 새집과 새 모이 주는 곳을 만들어 줄 수 있다. 단순히 풀밭에 엎드려 관찰해 보더라도 온갖 벌레들, 개미들, 거미들이 흥미있게 움직이는 것을 구경할 수 있다. 당신은 대도시 ‘아스팔트 정글’ 속에서 살고 있는가? 그러한 곳일지라도 공원이나 동물원에 가 볼 수 있다. 박물관과 식물원에 가 보면 즐거움도 있고 배우는 점도 있다.
당신이 부모라면 자녀들을 위해 그러한 계획을 세워 보라. 그들에게 여러 가지 가능성을 지적해 줌으로써 방향을 제시하고 자극을 주라. 아마 그들에게 나비나 개미의 일생의 과정을 설명해 줄 수도 있을 것이다. 여호와의 창조물에 관한 자녀들의 호기심을 만족시켜 주라. 이것은 자녀들에게 여호와 하나님과 그분의 피조물들에 대한 관심을 갖게 해 주고, 땅과 그 위의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목적에 관해 자녀들에게 가르치는 좋은 방법이다. 욥기 12:7-10에서 말한 대로 해 보라. “모든 짐승에게 물어보라. 그것들이 네게 가르치리라. 공중의 새에게 물어보라. 그것들이 또한 네게 고하리라. 땅에게 말하라. 네게 가르치리라. 바다의 고기도 네게 설명하리라.”
때로는 일 자체가 오락이 된다. 사무실에서 사무를 보는 사람 또는 일주일 내내 책과 씨름하는 학생은 마당에 나가 일하는 것이 휴식이 되고, 또는 조그마한 밭을 일구는 것이 만족감을 줄 것이다. 대도시에 사는 사람도 조그마한 땅을 일굴 수 있을 것이다. 혹은 창가에 놓은 화초 상자에 꽃이나 채소를 가꿀 수 있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실내의 화초에 재미를 붙이는데, 이것은 집안을 장식해 주기도 한다. ‘카나리아’나 기타 새들을 집안에서 키울 수도 있다. 금붕어 키우는 일도 재미있는 일이다.
여호와의 흥미로운 창조물들을 집안으로 들여와서 관찰하고 즐기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이 점에서도 상상력을 사용하고 여러 가지 가능성에 대하여 부모가 자녀들의 관심을 이끌어 주는 것이 중요하다.
취미
어린 아이들은 흙으로 과자 만드는 것을 좋아한다! 그러나 어머니들은 그런 놀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흙은 그렇게 더러운 것이 아니고 쉽사리 물로 씻어 낼 수 있다. 아이들이 조금씩 자라면서 이러한 놀이가 취미로 변할 수 있다. 흙이 백토로 바뀌고 과자가 도자기로 바뀐다. 도자기 제조는 흥미있는 공예로서, 능란한 기술을 가진 사람들이 오래 전부터 그 일을 해 왔다. 기타 취미로서 매듭 화분 걸이를 만드는 일, 바느질, 뜨개질, 요리, 무늬를 넣고 꼬는 가죽 세공, 등등의 것들이 있다.
“윈도우 쇼핑”은 건장한 남자도 떨게 만드는 일이지만, 많은 여자들은 그것을 즐겨 한다. 어머니들은 그것을 통해 교육을 줄 수 있다. 가격, 품질, 흥정하는 일 및 경제 원칙들을 함께 이야기한다. 특히 상점들이 문을 닫은 후에 “윈도우 쇼핑”을 하게 되면 돈안드는 소풍이 된다.
또 한 가지 흥미있고 교육적인 일은 공장 견학이다. 가족을 데리고 인쇄소, 신문사, 방직 공장, ‘초콜레트’ 공장, 자동차 공장, 탄광 등을 가 보라. 많은 공장들은 견학을 시켜 주며, 매일 얼마의 제품이 생산되는가를 알아 보면, 매우 흥미있고 즐겁다. 예를 들어 제철소를 견학하면 학교에 제출할 보고 자료를 쉽사리 얻을 수 있다.
흥미 본위
오락이 항상 교육적이어야 되는 것은 아니다. 단순히 재미를 위한 것일 수도 있다. 그것 역시 가치가 있다. 그것은 나이 많은 사람에게나 젊은 사람에게나 심각한 일들을 대처해 나아갈 수 있도록 기분 전환과 휴식을 얻게 해 줄 것이다.
그러나 사람마다 흥미를 갖는 점이 다르다. 어떤 사람에게는 흥미로운 것이 다른 사람에게는 지루할 수 있다. 남녀에 따라서도 흥미의 대상이 달라질 수 있다. 연령도 관계가 있다. 나이 많은 사람들은 젊은이들이 자기들처럼 앉아 이야기를 나누거나 책을 읽거나 장기 두는 일을 항상 만족스럽게 여길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10대들은 활력이 넘치며, 그것이 발산되어야 한다. 그들은 야구나 배구, ‘배드민튼’, 송구, 농구, 축구, 또는 기타 다른 놀이를 하고 싶어할 것이다.
아마 두세 가족이 함께 공원으로 가서 야유회를 즐길 수도 있을 것이다. 그 후 원하는 사람들은 서로 모여 이야기를 나눌 수도 있고, 다른 사람들은 어떤 ‘게임’을 통해서 억제되었던 힘을 발산할 수도 있다. 만일 자연스런 시합을 한다면 해롭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승리만을 추구한다면 다툼이 일어나고 재미도 없어진다.
좀더 어린 자녀들은 그네를 탄다든가 모래 상자에서 놀 수도 있다. 빈 상자, 몇개의 막대기 또는 나무 토막이 아이들의 풍부한 상상력에 따라 집이나 동굴도 되고, 비행기나 자동차 등등이 된다. 많은 경우 값비싼 장난감들은 버려둔 채, 아이들은 온종일 모래더미에서 지내거나 커다란 마분지 상자를 가지고 논다. 그들의 상상에 따라 그것은 순간 순간 그들의 마음에 드는 무엇으로든지 변한다. 20‘달러’짜리 ‘플라스틱’ 불자동차는 언제까지나 불자동차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큼직한 마분지 상자는 무엇으로든지 바뀔 수 있다!
어른들은 아이들이 노는 것을 바라보든가, 아니면 다른 사람들의 공놀이를 구경하든지, 할 만하다고 생각되면 거기에 함께 어울릴 수도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이 가족들이 함께 어울리게 되면 가정이 화락해지고 서로가 가까와지며 세대 차가 없어진다. 또 이러한 마련은 나쁜 길에 빠지는 것을 막아 준다. 만일 모두가 창조주를 숭배하는 사람들이라면, 악한 교제로 인해서 선한 습관이 침해되는 일을 피하게 된다. (고린도 전 15:33) 가족들이 함께 공부하고 전도할 뿐 아니라 함께 깨끗한 오락을 즐길 때 회중에는 형제 사랑과 이해가 증진될 것이다.
음악과 ‘댄스’
어떤 가족은 음악을 좋아할지 모른다. 악기 연주법을 배우는 일은 도전이면서도 만족감을 주며, 듣는 사람들에게도 즐거움을 줄 수 있다. 만일 그리스도인 가족 중 몇명이 악기를 다룰 줄 알면, 그들은 함께 연주하여 자신들도 즐기고 남에게도 도움을 줄 수 있다. 다른 사람들은 음악에 맞추어 춤을 추고자 할지 모른다.
음악(성악이든 기악이든)이나 춤은 하등 나쁜 것이 없다. ‘이스라엘’에서의 여호와의 숭배에는 기악과 성악이 사용되었다. 노소가 음악에 맞추어 춤을 추었으며, 때로는 혼자서 때로는 집단적으로 춤을 추었다. (출애굽 15:20; 시 87:7; 149:3; 150:4; 사사 11:34; 예레미야 31:13; 마태 11:17; 누가 15:25) 한번은 심하게 춤을 춘다고 불평한 사람도 있었지만 여호와께서는 싫어하지 않으셨다.—사무엘 하 6:20.
하지만, 춤을 추는 일은 앞서 말한 바 먹고 마시는 일과 같다. 그것은 절도 여부에 따라 선할 수도 있고 악할 수도 있다. 음악은 감미롭고 부드럽게 흘러나올 수도 있고 강한 박자를 가질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소리가 지나치게 소란스럽고 커서 듣는 사람의 청각에 불쾌감을 주거나 다른 사람에게 방해를 주어서는 안된다. 춤의 경우는 속도 여부에 따라 그 춤의 양불량이 결정되지는 않는다. 다만 그 춤이 성적인 암시나 자극을 주는 것이라면, 그것은 합당한 오락이 될 수 없다!
경험에 의하면 그러한 경우에 적절한 감독이 필요하다. 이것은 물론 깨끗하고 순결한 즐거움을 방해하기 위함이 아니고 그리스도인 도덕을 위태롭게 만드는 극단적 행동을 막기 위함이다. 어떤 분위기 하에서는 심지어 ‘월츠’도 부도덕하게 될 수 있다. ‘포크 댄스’, ‘스퀘어 댄스’ 및 대부분의 현대 ‘댄스’는 적절히 즐길 수 있다. 그러나 좋지 못한 분위기에서는 그러한 춤도 타락할 수 있다.
독서와 대화
좋은 책들과 잡지 기사들 가운데는 즐거움을 주는 것도 있고 도덕을 해치는 것도 있다. 후자에 속하는 것들은 그리스도인인 ‘우리 중에서 그 이름이라도 불러서는’ 안된다. 참되고, 덕이 되고 칭찬받을 만한 것을 표준으로 삼아야 한다.—에베소 5:3; 빌립보 4:8.
이러한 원칙은 영화와 ‘텔레비젼’에도 적용된다. 아직도 깨끗하고 온당한 오락이 되는 영화들이 있기는 하나 그러한 영화는 보편적이 아니라 예외적인 것이 되어가고 있다. 많은 ‘텔레비젼 프로그램’들은 기분을 전환시켜 주며, 교육적인 가치가 있다. 여러 기록 영화들은 과학, 자연의 역사, 우리 시대의 사건 기타 흥미있는 분야들을 다루고 있다. 그러한 것들은 좋은 독서물들과 더불어 다른 사람들과 함께 나눌 수 있는 재미있는 대화 거리를 제공해 준다.
대화? 그렇다. 대화는 쓸모없는 것이 아니다. 대화를 원한다는 사실은 인기있는 ‘텔레비젼’ 이야기 ‘쇼우’를 보면 알 수 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더 이상 흥미있게 대화를 해 나아갈 줄 모르는 것같다. 그들은 이야기를 하기는 하지만 고무적인 사상이나 생각을 전달하지는 못한다. 그러나 그러한 사람들에게서도 흥미있는 사실들을 이끌어 낼 수 있다. 그들의 어린 시절, 그들의 처음 직업, 그들이 현재의 직업을 갖게 된 경위, 어떻게 그들의 종교를 받아들이게 되었는지 등—그러한 화제를 이끌어 내는 질문을 하면 놀랍게도 흥미있는 대화가 이루어진다.
만일 우리가 지각이 있고, 예의바르며, 재치있고, 진지하게 사의를 표하는 사람이라면, 보통 말이 없는 사람들도 대화에 잘 응하고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나눈다. 그들에게 흥미를 가지면 그들도 당신에게 흥미를 가지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곧 두 사람 사이에, 네 사람 또는 여섯 사람 사이에 대화가 오가게 되고, 모든 참여자가 즐기게 될 것이다. 통용 기원 제1세기에 희랍 사람들과 그들의 방문객들은 이야기하기를 무척 좋아하였다. “모든 ‘아덴’ 사람과 거기 살고 있는 외국인들은 무엇이든지 새로운 것을 말하고 듣는 일로만 세월을 보내고 있었읍니다.”—사도 17:21, 새번역.
읽고, 관찰하고, 듣고 생각하라. 그러면 재미있는 대화의 소재가 될 만한 참신한 생각을 갖게 될 것이다. 논쟁적이 되거나 독선적이 되는 일을 피하라. 그것은 대화를 중단하게 만든다. 격려적이고 재치있으며 즐거운 대화자가 되도록 하라.—잠언 15:1; 16:21-24; 25:11; 전도 12:10; 골로새 4:6.
결론적으로, 못마땅한 오락을 단지 거절만 할 것이 아니라, 적절한 오락으로 대치하라. 만일 당신의 종교가 무조건 모든 오락을 단죄한다면, 당신의 자녀들은 당신과 그 종교를 떠나 버릴 것이다. 그러므로 오락이 없는 공백 상태를 방치하지 말라. (마태 12:43-45) 다음 기사에서는 즐길 수 있는 여러 가지 오락을 더 알려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