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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어라!—1979
깨79 4월호 15-16면

세계 대전이 우리 가족에게 미친 영향

어느 젊은 학생이, 그의 친척이 겪은 쓰라린 경험을 이야기한 것이다.

세계 제1, 2차 대전이 우리 가정에 미친 영향에서 알려 주듯이 국제적인 전투중에는 진기한 일이 일어난다. 우선 나의 증조부 ‘에밀’과 ‘맥스’에 관하여 여러분에게 말하고자 한다.

‘에밀’은 나의 외가쪽으로 증조부이다. 그는 미국 ‘미네소타’ 주에 있는 조그마한 마을에 살았던 독일 이주민의 아들이었다. ‘에밀’이 제1차 세계 대전중 보병대로 징집되어 ‘프랑스’ 전쟁에 참가하였을 때 그의 나이는 겨우 19세였다.

나의 외가쪽의 또 다른 증조부는 ‘맥스’라는 분이었다. 그는 독일 ‘아인베르크’의 조그마한 마을에서 살았다. 그의 아내 ‘메어리’가 그 즈음에 결핵으로 사망하였으므로 ‘맥스’는 10세, 8세, 6세, 그리고 4세짜리 이렇게 네명의 어린 아들들을 돌봐야 하였다. 이 아이들을 돌볼 엄마가 없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맥스’는 소집되어 독일을 위하여 ‘프랑스’ 전쟁 마당—나의 증조부 ‘에밀’이 미국을 위하여 싸우고 있던 바로 그 장소로 보내졌다.

‘맥스’의 네 아들들 중에는 ‘루디’가 있었는데 그가 나의 외할아버지이다. ‘맥스’가 ‘프랑스’ 전쟁터로 떠나 버리자 이웃 사람들이 때때로 ‘루디’와 그의 세 어린 동생들을 돌보아 주기는 하였지만 그들은 아주 딱한 처지에 있게 되었다. 아버지가 식량을 사놓고 간 것이 없는 데다가 전시라 식량이 매우 희귀했기 때문에 그 아들들은 몹시 굶주렸다. 그래서 그들은 살기 위하여 도둑질하는 법을 배웠다.

그 동안 ‘프랑스’에서는 나의 외증조부 ‘맥스’와 ‘에밀’이 참호에서 전투하고 있었다. 그 당시 전쟁 무기 중에는 독 ‘가스’탄이 있었는데 ‘에밀’의 참호는 폭격을 받아 인명 피해가 많았다. ‘에밀’은 병원으로 옮겨졌다. 그는 회복되었으나 독 ‘가스’의 후유증으로 평생을 고생하다가 매우 이른 나이에 사망하였다. 우리는 지금도 ‘에밀’과 ‘맥스’가 전쟁터에서 서로 만나지나 않았는지 궁금하다. 두분 다 모든 전쟁의 종결이라고 생각하였던 이 전쟁에서 생존하였다.

후에, ‘히틀러’가 독일 무대에 등장하였다. 이 때에 ‘맥스’의 아들들은 다 커서 징집 연령이 되었다. 그들 중 세명이 ‘히틀러’군에 입대하게 되었다. 그러나 나머지 한명인 나의 외할아버지 ‘루디’는 미국으로 이주하여 제빵업자가 되었다. 그는 ‘에밀’이 태어났던 ‘미네소타’ 주에 있는 바로 그 조그마한 마을에 정착하였다. 여기서 그는 ‘에밀’의 딸인 나의 외할머니와 결혼하였다.

더 큰 고난기

오래지 않아 미국과 독일간에 다시 전쟁이 일어났다. 이 때가 나의 외증조모들에게 퍽 어려운 때였다. 그들은 나의 외할아버지 ‘루디’가 징집되어 반대편에 있는 그의 동생들과 싸우게 되지 않기를 얼마나 바라고 기도하였는지 모른다! 다행히도 전쟁이 발발하였을 때 정부는 그를 징집하지 않았다. 왜냐 하면 그는 그 지역을 위한 식품을 공급하는 제빵업자로서 필요한 존재라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쟁중 ‘루디’는 독일에 있는 그의 동생들에 관하여 걱정하였으며 그들의 생존 여부를 궁금해 하였다.

미국이 참전하였을 때 나의 외할머니의 동생은 17세였고 이제 막 고등학교를 졸업하였다. 졸업식 다음 날 그는 군대에 징집되어 훈련소로 보내졌다. 그도 또 그가 알고 있기는 하지만 전혀 본적이 없는 친척들과 싸워야 한단 말인가?

이 무렵 독일에 있는 나의 외할아버지 ‘루디’의 동생들에게는 어떠한 일이 일어 났는가? 한명은 ‘러시아’ 포로 수용소에 있었고 또 한명은 ‘프랑스’에 있는 미국 포로 수용소에 있었다. 한 수용소에서는 포로들이 너무 배가 고파서 어느날 철조망 울타리를 지나가던 고양이 한 마리를 나의 외증조부는 잡아 죽여서 껍질을 벗겨 날 것으로 먹은 일이 있었다! 세째 동생은 전쟁이 끝날 무렵에 군용 열차로 이송되고 있었다. 휴전이 선포된 바로 그 날이었다. 그가 탄 열차가 폭격을 받아 그는 죽고 말았다.

네 형제가 자라던 ‘아인베르크’의 조그마한 마을에서는 또 다른 심상치 않은 사태가 일어나고 있었다. 나의 외증조부 ‘맥스’는 재혼하였는데 그에게는 자녀가 두명 더 있었다. 독일은 전쟁에서 패배하고 있었고 점령군들이 그 나라 곳곳에 깔려 있었다. 대부분의 가장들이 전쟁터로 나갔으므로 집에는 가족들을 돌볼 사람이 없었다.

집들은 파괴되었다. 도둑이 들끓었으며 때때로 여자들은 강간을 당하였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은 군인들이 들어오고 있다는 경고를 듣게 되면 딸들을 데리고 나가 그들이 안전하도록 건초 더미에 숨기곤 하였다.

전쟁은 끝났으나 평화 조약에 서명하는 것으로 전쟁 여파가 종결되지는 않았다. 외할아버지의 동생들은 열차에서 사망한 동생 하나를 빼놓고는 독일 ‘아인베르크’로 돌아왔다. 그들의 생활은 결코 예전과 같지 않았다. 한 동생은 평생 동안 병원 출입이 잦았으며 매우 이른 나이에 죽었다. 또 다른 동생 ‘베른하르트’는 최근에 ‘캘리포오니아’ 주(미국)에 살고 있는 우리를 방문하려고 독일에서 왔다. 그 아들은 벌써 제대하였다. 그래서 나의 외가 친척들이 이곳 미국에 와 있다. 이러한 모든 일들이 이치적인가? 도대체 전쟁은 어디서 그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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