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치타워 온라인 라이브러리
워치타워
온라인 라이브러리
한국어
  • 성경
  • 출판물
  • 집회
  • 깨77 5/22 18-20면
  • 부는 나를 행복하게 하지 못했다

관련 동영상이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동영상을 불러오지 못했습니다.

  • 부는 나를 행복하게 하지 못했다
  • 깨어라!—1977
  • 소제목
  • 비슷한 자료
  • 순조로왔던 초기 생활
  • 불행의 원인
  • 종교가 해답이었는가?
  • 우유부단, 그 다음 변화
  • 진정한 행복을 찾게 됨
  • 성서가 생활을 변화시키다
    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2011
  • 행복한 가정 생활—우리가 그것을 달성한 방법
    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76
  • 나의 생애 중 가장 좋았던 사십년간
    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77
  • 성서가 생활을 변화시키다
    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2011
더 보기
깨어라!—1977
깨77 5/22 18-20면

부는 나를 행복하게 하지 못했다

비록 당신이 나를 개인적으로 알지 못한다 해도 당신은 나의 부모님 댁에 손님이 된 일이 있을지 모른다. 다시 말해서, ‘텔레비젼’을 통해 이곳을 방문한 적이 있는 시청자들 중 한 사람일지 모른다. 그 집은 최근 여러 개의 ‘에미’상을 획득한 작품을 비롯한 영화와 TV ‘프로그램’을 촬영하는 데 사용되어 왔다.

영화사는 하루 임대료로 보통 1,500‘달러’ 내지 2,500‘달러’를 지불한다. 20세기 초에 지어졌고, 미국 ‘캘리포니아’ 남부에 위치해 있는 이 집은 방이 50개 정도나 된다. 요즈음에 그와 같은 집을 지으려면 일백만 ‘달러’에서 이백만 ‘달러’ 정도의 비용이 들 것이다.

그 집은 값진 골동품과 동양의 양탄자로 가득차 있고, 많은 방들은 ‘마호가니’ 판자로 아름답게 꾸며져 있고, 몇개의 방은 순금으로 덮혀 있어서 그야말로 형용키 어려울 정도로 우아한 걸작품이다. 이 집에는 길이 22‘미터’의 무도회장이 있는가 하면 실내 수영장과 많은 침실이 있다. 집 밖에는 정원들과 정구장이 있다.

순조로왔던 초기 생활

어렸을 때부터 나의 부모는 나를 위해서라면 돈을 아끼지 않았다. 나는 실제로 필요한 것보다 더 많은 물질을 소유했었다. 부모는 멋진 자동차들을 사 주었고, 법과 대학 교육을 포함하여 광범위한 교육을 시켜 주었다. 그들은 나에게 한 것처럼 내 어린 동생을 위해서도 돈을 아낌없이 쓰셨다. 동생은 운전할 만한 나이가 되기 전에 이미 20대의 자동차를 가지고 있었다!

아버지는 우리에게 “생활에서 더 훌륭한 것들”로 생각되는 것을 마련해 주기 위해 젊었을 때에 매우 열심히 일하였다. 아버지는 내가 백만장자가 되는 것을 원했기 때문에 투자에 관한 제반 문제를 가르쳐 주셨다. 따라서 백만장자가 나의 목표였고, 나는 결국 백만장자가 되리라는 것을 의심하지 않았다.

우리는 매우 친밀한 가족이어서 많은 것들을 함께 했다. 종종 우리는 가족용 ‘요트’를 타고 주말을 보냈다. 부모는 또한 내가 종교적인 훈련을 받는 것에도 관심이 있었다. 그래서 부모님은 일요일에는 나를 ‘루터’ 교회로 보냈다.

나를 둘러싸고 있는 이러한 모든 물질적 부로 인해 당신은 내가 매우 행복하였을 것이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실상은, 그와 정반대였다.

불행의 원인

나를 괴롭혔던 한 가지는 많은 친구들이 나의 물질적인 소유 때문에 나를 우러러 보는 것이었으며, 어떤 친구들은 단순히 그런 이유 때문에 나와 교제하려고 하였다. 비록 부자집 아들이라고 인정을 받았지만 나는 “사교계”에 관심이 없었다. 나는 이러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진 속물 근성이 싫었다.

심한 열등감 때문에 나는 대인 관계가 어려웠다. 그리하여 나는 이것을 극복하기 위해 신체적 활동에 깊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후에 나는 ‘레슬링’이나 기타 운동에 훌륭한 솜씨를 나타내게 되었다. 마침내 나는 육체미 대회에 참가했고 ‘모델’로서 사용되었다. 나는 그처럼 인정받는 것이 즐거웠다.

얼마 후 나의 열등감은 자만심과 교만으로 대치되었다. 나는 여자들을 단순히 이기적 쾌락을 위한 대상으로 생각했고 이러한 교제에는 부도덕한 생활이 수반되었다.

세상에 대하여 환멸을 느꼈기 때문에 나는 가족 이외의 사람들을 전혀 믿을 수가 없었다. 비록 그것이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내가 가지고 있지 않은 무엇인가가 필요함을 느꼈다. 그리고 “쾌락”과 “행복”에는 차이가 있다는 점을 점점 더 느끼게 되었다. 사람들은 나를 “행운아”로 생각하여 부러워했을지 모르나 나는 나보다 더 불행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생각했다.

그 결과, 한 동안 나는 자살할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 저택의 외딴 방에서 내가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을 찾을 수 있게 도와 달라고 울며 하나님께 기도하곤 하였다. 나는 훌륭한 교육을 받았고, 신체적 건강도 좋았으며, 높은 보수를 받는 직장을 가질 수 있었다. 나에게는 물질적으로 많은 문들을 열 수 있는 “열쇠들”이 있었으나 나에게 없는 한 가지 “열쇠”는 “행복의 열쇠”였다.

종교가 해답이었는가?

나는 기성 종교의 위선을 철저히 볼 수 있었기 때문에 행복을 발견하는 수단으로서 기성 종교는 단념했었다. 여러 해 동안의 경험을 통해 나는 교회들이 할 수 있는 한 물질적으로 많은 것을 얻어내려고 사람들을 무지 가운데 붙들어 두었음을 분명히 알게 되었다. 나는 또한 교회들이 행하고 있는 많은 것들이 성서에 배치된다고 느꼈다. 일례로, 언젠가 나는 벌거벗은 교직자가 주례를 선 나체 결혼식에 참석했었다! 나는 속으로 “이 사람은 나보다 훨씬 더한 위선자”라고 생각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성서에 관심이 많아서 종종 개인적으로 성서를 읽었다. 어느날 한 어린 소년이 「파수대」와 「깨어라!」 잡지를 갖고 우리 집에 왔다. 나는 그 잡지를 받았고, 후에 그 소년의 소개로 두 부인이 나와 이야기하기 위해 방문하였다. 나는 그들의 어리석은 신앙을 폭로해 줄 의도로 안으로 초대했다. 그런데, 오히려 우리는 재미있게 토론을 했다. 토론이 끝나자, 나와 동년배의 젊은이가 오면 어떻겠는지 물었고, 나는 그 제의를 환영하였다.

약속된 날 저녁에 젊은 남자가 찾아왔고 그는 2층 서재로 안내되었다. 나는 ‘여호와의 증인’들에 관한 책들을 조사해 보았고 그래서 그의 종교를 폭로하는 데 잘 준비되어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약 30분간의 대화를 나눈 후, 나는 그가 성서에 관하여 상당히 많이 알고 있음에 놀랬다. 그는 권위있게 그러면서도 아주 겸손한 태도로 나에게 관심을 기울이며 말하였다. 비록 나처럼 정규 교육을 받지는 못했지만, 그는 자신의 종교를 통하여 즐기고 있는 월등한 교육 과정을 설명하였다. 이것은 나에게 깊은 감명을 주었고, ‘여호와의 증인’들에 대한 존경심이 자라갔다.

그는 성서가 참으로 하나님의 영감받은 책이라는 나 자신의 생각을 더욱 깊게 해 주었고, 후에 내가 여러 가지 성경적 가르침을 이해하도록 도와 주었다. ‘루터’ 교회에서 받은 이전의 훈련 때문에 나는 성서가 전능하신 하나님은 한 하나님 안에 세 위로 되어 있다는 삼위일체를 가르친다고 믿어 왔다. 또한 인간은 불멸의 영혼을 가지고 있다고 믿었다. 거의 3개월 동안 매주 그 젊은 남자와 나는 이러한 가르침들을 지지한다고 생각한 많은 성귀들을 토론했다.

주의깊이 대조한 후에 이전의 교회에서 거짓 가르침을 배웠음을 확신하게 되었다. 내가 받아 들이기 어려웠던 점은 그리스도인이 정치적인 중립을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요한 17:16; 18:36) 나는 국민이라면 기꺼이 국기를 사수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 점에 있어서도 사실상 나는 위선자였다. 나 자신도 될 수 있는 대로 그러한 일에 관여되기를 원치 않았기 때문이다.

우유부단, 그 다음 변화

비록 얼마 동안 성서를 연구한 후 성서의 가르침이 참으로 이치적임을 알 수 있었지만 어떤 행동을 취하기를 주저하였다. 그렇게 하려면 부도덕한 생활을 그만 두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의 내부에서는 갈등이 계속되고 있었다.

그러는 동안 나는 어떤 아름다운 여자를 사귀게 되었고 그를 사랑하게 되었다. 나와 달리, 그는 수줍고 사려깊었으며 나에게 아주 잘해 주었다. 반면에, 나는 그에게 그렇게 잘 대우해 주지 못했고, 다른 여자에게 관심을 갖는 것에 반대하지 않는다면 결혼하겠다고 말했다. 어쨌든 우리는 결혼해서 ‘유럽’으로 신혼 여행을 갔다.

아내는 매우 종교적인 가정에서 자랐기 때문에 나는 아내와 함께 종종 내가 배운 내용을 토론하였다. 아내는 성서에 대한 나의 관심이 일시적인 것이 아님을 깨닫게 되었다. 내가 성서 연구에 매일 여러 시간을 바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점차적으로 변화하기 시작했고, 도덕적으로 깨끗한 생활을 하려고 노력했으며 나의 성품을 제어하려고 노력했다. 당신은 아마 틀림없이 이러한 변화를 아내와 가족이 좋아했을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사실은 그 반대였다.

‘여호와의 증인’에 대한 나의 관심이 커지자, 아내는 처음으로 나와 결혼한 것을 후회한다고 말하였다. 나의 가족까지도 아내의 편을 들었고, 우리의 결혼 생활은 파국을 향해 나아가는 것처럼 보였다. 나의 아버지는 나의 아내에게 내가 ‘여호와의 증인’이 된다면 돈은 일전 한푼도 주지 않고 나와 의절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나는 내가 얻고 있는 성서적인 지혜를 고수하기로 결심했고, 이 성서적 지혜는 내가 가졌던 것 중에서 가장 가치있는 재산이었다. 특히 내 생활에서 처음으로, 진정한 행복을 맛보고 있었다. 나는 잠언 3:13-15의 이러한 내용을 몇번이고 되풀이 해서 읽었다: “지혜를 얻은 자와 명철을 얻은 자는 복이 있나니 이는 지혜를 얻는 것이 은을 얻는 것보다 낫고 그 이익이 정금보다 나음이니라. 지혜는 진주보다 귀하니 너의 사모하는 모든 것으로 이에 비교할 수 없도다.”

진정한 행복을 찾게 됨

얼마 후 나의 아내는 나와 성서를 연구하기로 결정하였고, 아내는 자신이 배우고 있는 것들을 받아 들이고 생활에 적용하기 시작했다. 행복하게도, 우리는 함께 1970년 11월 21일 ‘여호와의 증인’으로서 여호와 하나님께 우리의 헌신을 상징하는 침례를 받았다. 나의 아내는 곧 전 시간 증거 활동에 참여했다. 약 1년 후 나도 법률 사무소에서 전 시간 일을 시작하는 것보다 오히려 아내와 같은 활동을 하기로 결정했다.

부모가 나의 결정에 반대하였기 때문에 나는 그 저택을 떠나서 조그마한 ‘아파아트’로 이사하는 것이 더 나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생활 방식을 과감하게 변화하는 것과 함께 우리는 생활 수준을 더 낮추어야 했다. 나는 수집해 놓은 자동차들을 팔고 경제적인 차와 자전거를 샀다.

시간은 흔히 가장 큰 실망까지도 누그러지게 해준다. 마침내 나의 가족은 나의 아내와 내가 참으로 행복하며, 우리의 증인 동료들이 점잖고 다른 사람들을 돕는 데 관심있는 좋은 사람들임을 알게 되었다. ‘여호와의 증인’들은 착실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그들 중에서는 부유층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알코올’ 중독자들이 없다는 것은 명백하였다.

얼마 후에 나의 부모는 두 분 다 나와 성서 연구할 것에 동의하였고, 내가 결혼을 주례하거나 성서 공개 강연을 할 때는 ‘여호와의 증인’의 왕국회관에 오기도 하였다. 또한, 나는 부모님 댁에서 일하고 있는 몇명의 하녀들과 성서 연구를 할 수 있었다. 89세된 토지 관리인은 이제 정규적으로 그리스도인 집회에 참석한다. 그는 나에게 할아버지와 같기 때문에 이것은 나를 행복하게 하였다.

이제 나의 아내와 나는 풍부에서도 만족할 줄 알고 적은 물질로도 만족할 줄 알게 되었다. 왜냐 하면 우리는 “행복의 열쇠”를 찾았기 때문이다. 이전에는 결코 열리지 않았던 “문들”이 이제 열려졌다. 우리는 마음의 평화를 얻었고, 마치 우리를 자기의 가족 성원처럼 사랑해 주는 동료들이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우리는 창조주와 좋은 관계를 갖게 되어 만족스럽다.—기고.

[19면 삽입]

“나에게 없는 한 가지 ‘열쇠’는 ‘행복의 열쇠’였다.”

[20면 삽입]

“우리의 결혼 생활은 파국을 향해 나아가는 것처럼 보였다.”

    한국어 워치 타워 출판물 (1952-2026)
    로그아웃
    로그인
    • 한국어
    • 공유
    • 설정
    • Copyright © 2026 Watch Tower Bible and Tract Society of Pennsylvania
    • 이용 약관
    • 개인 정보 보호 정책
    • 개인 정보 설정
    • JW.ORG
    • 로그인
    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