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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올림픽’ 경기는 장차 어떻게 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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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77 5/8 5-8면

‘올림픽’ 경기는 장차 어떻게 될 것인가?

‘캐나다’ 주재 「깨어라!」 통신원 기

다음 ‘올림픽’ 경기는 1980년 여름 ‘모스크바’에서 개최될 예정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올림픽’ 경기가 어떻게 될 것인지 궁금하게 생각한다. 그들은 이 ‘스포오츠’ 제전이 현상을 계속 유지할 수 있을지 우려하고 있다.

그 이유가 무엇인가? 몇 가지 이유가 있는데 그 한 가지는 ‘올림픽’의 규모가 커진 점과 관련되어 있다. 근래에 와서 여러 가지 새로운 경기가 추가되었다. 이전 어느 때보다 더 많은 국가들과 선수들이 참가하고 있다. 따라서 모든 경기를 진행하고 많은 선수, 기자, 관중들을 수용하는 데 시설이 더 많이 필요하게 되었다. 현재는 부유한 나라가 아니라면 ‘올림픽’을 유치할 꿈도 못꿀 지경이 되었다.

또 다른 이유는 정치적인 점과 관련되어 있다. 국가 상호간의 관계가 ‘올림픽’ 경기에 반영된다. 적대감이 아주 심한 경우에는 일부 국가들이 ‘올림픽’ 자체를 거부할 때도 있다.

심한 국가주의로 인해 적의가 어디서나 나타나고 있다. 각국은 선수에게 거의 모든 희생을 강요하다시피 하면서 가능한 한 많은 ‘메달’을 따려고 노력한다. 주로 국가의 위신을 위해서 어려서부터의 훈련을 통해 ‘특수’ 선수를 양성해 내는 나라들이 많다. 일부 국가들 특히 몇몇 공산국가들과 서방 국가들 간의 경쟁은 전쟁을 방불할 정도로 치열하다.

또한 선수들 간의 경쟁도 들 수 있다. 이겨야 한다는 강한 의무감과 국가적인 압력 때문에 종종 선수들은 상호간에 심한 적의를 나타내게 된다. 유리한 입장에 서기 위해서 속임수를 쓰거나 마약을 사용하는 일이 있다.

1976년 여름의 ‘캐나다’ ‘몬트리올’ ‘올림픽’ 대회에서 이런 문제들이나 기타의 문제점들이 표면화되었다. 그러므로 국가간의 이해와 친목을 도모한다는 ‘올림픽’ 경기가 실제로는 그것과 거리가 멀다.

‘올림픽’ 경기의 역사

‘올림픽’ 경기가 어떻게 지금과 같은 형태로 발전하게 되었는지 간략하게 그 역사를 살펴보는 것은 흥미있는 일이다. 결국 고대 ‘올림픽’ 경기에서 발생했던 비슷한 양상이 현대의 ‘올림픽’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기록에 나타난 첫 ‘올림픽’ 경기는 기원전 776년 서부 ‘그리이스’의 ‘올림피아’ 평야에서 개최되었다. 그때는 고대 ‘히브리’ 예언자 ‘이사야’가 ‘유다’ 나라에서 예언하기 시작한 것과 거의 같은 시기이다. 그러나 ‘이사야’는 살아계신 하나님에 관하여 전파하였지만 고대 ‘그리이스’인들의 ‘올림픽’ 경기는 거짓 신 ‘제우스’를 위한 것이었다. ‘제우스’를 영화롭게 하는 것이 그 경기의 목적이었기 때문에 ‘제우스’와 기타 신화적인 신들에게 제사를 드렸다. ‘올림피아’의 성화를 숭배하는 일도 있었다.

그 당시의 ‘올림픽’ 경기는 도보 경주였다. ‘그리이스’의 여러 도시 국가에서 선수들이 파견되었기 때문에 여러 번에 나누어 경주하였다. 다음에는 그러한 예선에서 이긴 사람들끼리 다시 경쟁하였다. 최종 경주에서 결승점에 먼저 도착한 사람이 승리자가 되었다. 이 방법은 오늘날에도 사용되고 있다.

기원전 708년경에 뛰기, 던지기, ‘레슬링’이 ‘올림픽’ 종목에 포함되었다. 후에 권투와 전차 경주가 더 들어갔다. 가장 중요시되었던 경기는 한 선수가 달리기, 넓이 뛰기, ‘레슬링’, 원반 던지기, 투창의 다섯 가지 경기를 하는 ‘오종 경기’였다. ‘오종 경기’의 변화된 형태가 현대의 ‘올림픽’ 경기에서 시행되고 있다. 즉 남자들의 10종 경기와 여자들의 5종 경기가 그것이다.

고대 ‘올림픽’의 승리자들에게는 월계관이 수여되었고 많은 찬사가 주어졌다. 그들의 이름이 선포자들에 의해 전국적으로 알려졌다. 그들을 조각한 상이 세워졌고 시인들은 그들에 관하여 시를 썼다.

고대 ‘올림픽’ 경기 참가자들에게는 연습에 적어도 10개월을 바치도록 요구되었다. 또한 그들은 규칙을 지키고 어떠한 부당한 행위도 하지 않겠다는 서약을 하였다.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다른 나라 선수들도 경기에 참여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개인을 영화롭게 하던 그 경기가 점차 국가의 명성을 구하는 경기로 탈바꿈하였다. 이기심과 야만성 역시 더욱 뚜렷이 나타났다. 그 경기가 심히 부패해져서 기원 394년에는 ‘로마’ 제국의 ‘테오도시우스’ 황제에 의해 그것이 폐지되었다.

15세기가 지난 1896년에 그 경기가 다시 부활되었다. ‘프랑스’의 ‘피에르 드 쿠베르탕’ 남작은 그 해에 ‘그리이스’ ‘아테네’에서 ‘올림픽’ 경기가 개최되도록 힘을 썼다. 8개국이 참가하였다. (동계 ‘올림픽’은 1924년에 시작되었다) 근대 ‘올림픽’ 경기는 제1차 세계 대전과 제2차 세계 대전 중을 제외하고는 매 4년마다 열렸다.

꿈과 현실

‘드 쿠베르탕’의 꿈은 계급, 인종, 종교의 장벽을 허물어 뜨릴 범세계적인 ‘스포오츠’ 제전을 이루는 것이었다. 그 경기가 평화 유지에 도움이 되고 국가간의 이해와 협조를 증진하는 것이 되기를 바랬다. 확실히 그러한 동기는 고상한 것이었다.

고대 ‘그리이스’의 ‘올림픽’ 경기도 원래는 그 동기가 고상한 것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그러한 고대 ‘올림픽’의 원래 목적과 현실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었다. 학자들에 의하면 고대 ‘올림픽’ 경기의 참가자들은 그들의 인품과 ‘스포오츠’인다운 행실보다는 야수성 때문에 널리 알려졌다고 한다. 권투, ‘레슬링’, 그리고 누구나 자유로이 참가할 수 있었던 권투와 ‘레슬링’이 혼합된 권투-‘레슬링’의 경우가 특히 그러하였다고 한다.

현대에도 고상한 목적은 엄연한 현실 앞에 밀려나게 되었다. 어떻게 그러한가?

정치적 문제들

1976년의 ‘몬트리올’ ‘올림픽’은 우울한 상태에서 시작되었다. 정치적 이유 때문에 ‘올림픽’ 역사상 가장 많은 국가들이 참가를 거부하였다.

‘아프리카’ 20개국은 개회식 참가를 거부하였다. 그 ‘아프리카’ 국가들은 ‘뉴우지일랜드’의 ‘럭비’팀이 남‘아프리카’에 간 일이 있었다는 이유로 ‘뉴우지일랜드’의 ‘올림픽’ 참가를 금지시키도록 요구하였다. 남‘아프리카’가 인종 분리 정책을 시행하는 나라이기 때문에 ‘아프리카’ 국가들은 ‘뉴우지일랜드’가 남‘아프리카’와 그러한 ‘스포오츠’ 관계를 가진 것에 반대하였던 것이다. 그리하여 ‘아프리카’인들은 퇴장하였고 ‘구야나’와 ‘이라크’ 등 그에 동조하는 나라의 대표들도 그에 합세하였다.

결국 전부 30개국이 불참하였다. 119개국의 참가가 예상되었기 때문에 그 수는 참가 예상국의 4분의 1이 되는 수자이다. 본국 정부의 훈령에 따라 600명 이상의 선수들이 참가를 거부하고 돌아갔다.

‘올림픽’ 경기 참석이 거부된 나라들도 있었는데 그 중의 하나는 대만이었다. 대만은 “중화민국”이라는 이름으로 참가할 것을 고집하였는데 ‘캐나다’는 중공을 합법적인 정부로 인정한다고 주장한 결과이다.

대만 문제가 한창 거론되었을 때 국제 ‘올림픽’ 위원회 위원장인 ‘킬러닌’ 경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이 세상은 ‘스포오츠’ 문제에 개입하는 정치가들로 가득차 있는 것 같다.” 그리하여 어떤 사람들은 ‘올림픽’기를 제외한 모든 국기와, 승리자들을 위해 국가를 연주하는 일을 폐지하자고 제안하였다.

그러나 현실주의자들은 현실주의자들대로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국가의 구분도 없고 국가도 연주되지 않는다면 필요한 경제적 및 정신적 지원을 할 나라가 과연 얼마나 되겠느냐고 반문하였다. 또한 많은 경우에 선수 자신도 국가의 이름을 빛낸다거나 본국에서 명성이나 재산을 얻는다는 등의 이유로 국가를 대표하여 출전하는 것을 더 좋아한다.

다른 면 즉 광범위한 보안 조처를 통해서도 정치적인 성격을 잘 알 수 있다. ‘올림픽’ 경기장을 무장 경비원들이 순찰하였다. 하늘에는 ‘헬리콥터’들이 날아 다녔다. 16,000명 이상의 군인들이 배치되어 있었다. 왜 그러한 보안 조처를 취하였는가? 그들은 혹시 일어날지도 모르는 ‘테러’ 행위를 대비하고 있었던 것이다. 4년전 ‘뮌헨’ ‘올림픽’에서 있었던 일이 생생하게 기억되기 때문이다. 그 때 한밤중에 정치 ‘테러’범들이 ‘이스라엘’ 선수들을 무참하게 살해하였던 것이다.

경비 문제

각국이 선수들의 지원을 위해 쓰는 경비는 엄청나다. 그러나 특히 ‘몬트리올’ ‘올림픽’은 ‘캐나다’에 엄청난 경제적 짐을 안겨다 주었다.

‘캐나다’ 국민은 그 ‘올림픽’ 경기가 “자체-재정”으로 운영되기를 바랐었다. 그러나 실제 경비는 약 15억 ‘달러’에 달했다. 그것은 20년전 성 ‘로렌스’ 해로를 건설한 비용보다 더 많은 금액이다. 수입금을 공제하고도 총 결손 금액이 약 10억 ‘달러’나 되었다.

종합 경기장, 새로운 주거 지역이나 기타 시설을 위해서 경비가 많이 들었다. 그 외에도 여러 가지 감탄스러운 과학적인 장비를 사용하였기 때문에 경비가 더 많이 들었다. 예를 들어 투창이나 투원반의 경우 일일이 줄자로 재는 것이 아니라 적외선 조사(照射) 장치를 통해 즉시 그 결과가 ‘밀리미터’ 단위까지 정확히 밝혀지게 하였다. 달리기의 경우 ‘디지틀’ 시계와 ‘컴퓨터’ 장치를 한 사진기에 의해 100분의 몇초까지도 정확히 잴 수 있었고 출발 지점은 어떤 선수도 먼저 출발하지 못하도록 전자 장치로 감시하였다.

수영 경기장의 경우는 각 선수가 자기 진행로 끝에 설치된 전자 장치에 접촉하게 되면 즉시 그 구획을 위한 시계가 정지되게 되어 있었다. 사실상 금‘메달’을 타느냐 은‘메달’을 타느냐 하는 것은 단지 백분의 몇초 정도의 차이로서 사실상 손톱이 얼마나 기냐 짧으냐의 차이로 결정되었다.

한 경기가 끝나면 일시에 38,000개의 전구가 켜져서 4층 건물 정도의 높이에 위치한 두개의 커다란 화면에 선수의 사진 및 등위와 함께 그 결과가 나타났다. 또한 경기 내용을 기록하는 데 1,600‘킬로미터’ 이상의 녹화 ‘테이프’와 약 360‘킬로미터’의 ‘필름’이 사용되었다. 그것은 지금까지 경기 내용을 기록하던 방법 중에서도 가장 웅장하고 가장 과학적이며 가장 경비가 많이 드는 방법이었다. 그리고 92개의 천연색 ‘텔레비젼’ ‘카메라’가 위성중계를 통해 경기 내용을 전세계로 전달하였다.

승자와 패자

수십개의 세계 기록과 ‘올림픽’ 기록이 깨어졌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패자들은 “‘올림픽’의 의의는 승리에 있는 것이 아니라 참가에 있다”고 한 ‘드 쿠베르탕’ 남작의 말이 사실과는 다름을 깨닫게 된다. 오늘날의 선수들은 중요한 것은 승리라고 생각한다. 많은 사람들이 ‘올림픽’ 경기에 임하는 자세를 보면 그 점을 잘 알 수 있다.

「오늘날의 심리학」은 “고개는 숙이고, 눈은 감고, 혼자 앉아서 다음 선수에 대한 적개심과 증오감을 길렀다”라고 한 한 선수의 말을 인용하였다. 어떤 선수들은 근육이 발달되도록 ‘아나볼릭 스테로이드’(합성 ‘호르몬’)을 복용하였다. 혈액의 산소 함유량을 증가시키기 위하여 피를 화학적으로 처리하고 자신의 피를 빼내었다가 경기가 시작되기 직전에 몸에 다시 집어 넣은 선수들도 있다. 일부 선수들은 강한 힘을 내기 위하여 여러 가지 마약을 사용하였다. 어떤 선수는 그가 복용한 마약 때문에 기절하였다.

한 ‘펜싱’ 선수는 속임수를 사용하다 발각되었다. ‘펜싱’ 경기에서는 상대편 선수의 흉판을 칠 때마다 점수판에 자동적으로 점수가 기록된다. 그러나 이 ‘펜싱’ 선수는 그의 ‘펜싱’ 칼 손잡이에 전자 장치를 붙여서 그가 단추를 누를 때마다 점수가 올라가게 하였다. 그런데 도가 지나쳐서 한번은 접근하지 않았는데도 점수가 올라가게 하였다. 결국 그의 ‘펜싱’ 칼을 조사하게 되었고 그 장치가 발견되어 수치스럽게도 그는 ‘올림픽’ 경기 출전이 정지되었다.

‘올림픽’ 경기에서 이기려는 안간힘의 현실을, 한 ‘코치’는 “‘아마튜어’ 경기에서 이기려고 각국은 직업 선수를 고용한다”고 말하였다.

암담한 장래

여러 가지 문제들이 증가되고 있기 때문에 ‘올림픽’ 경기의 장래를 불확실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몬트리올’의 한 신문은 그 ‘올림픽’ 경기에서 “실망과 환멸”을 느꼈으며 “왜곡된 원칙”과 “타락한 정신”을 볼 수 있었다고 지적하였다.

영국의 ‘필립’공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일단 사람들이 ‘메달’이나 그와 같은 것을 많이 얻어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면 경기를 중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한 경기는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그는 국가 대표 선수들이 충분한 ‘메달’을 획득하지 못했다고 정부가 진상 조사를 하는 것은 “개탄스러운” 일이라고 하였다.

실망한 어떤 ‘캐나다’ 권투선수는 이렇게 말하였다. “백만 ‘달러’를 준다 해도 나는 ‘올림픽’ 경기에 다시는 출전하지 않겠다. 정치의 개입이 너무 심해서 그렇게 희생할 만한 가치가 없다. 이들 강대국들은 선수를 정치적으로 이용하고 있다.”

‘몬트리올’ ‘올림픽’을 돌이켜 보며 많은 사람들이 다음과 같은 의문을 제기하였다. “원칙이 더 이상 무시될 수 있을 것인가? ‘올림픽’ 경기에서 얼마나 더 많은 속임수나 술책, 정치적인 다툼이 계속될 것인가? 돈을 얼마나 소비해야 하는가? ‘올림픽’ 경기가 계속 허영에 들떠 있도록 상업주의에 의해 지배되어야 하는가?”

사실상 그러한 점들은 다음과 같은 질문으로 요약된다. ‘몬트리올’에서 ‘올림픽’ 경기는 그 기능을 상실하였는가? 1980년 ‘모스크바’ 대회 전이 아니면, 늦어도 그 때까지는 그 답을 얻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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