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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깨어라!—19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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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어라!—1977
깨77 4/8 5-7면

독신자들을 혼란시키는 것들

남편 구함—인정있고 성품이 원만하고 생활력이 강하며 결혼할 생각이 있는 27-40세의 남자. 사진 원함. 성실한 고독녀. #312456.

이런 “구혼 광고”를 내 본 사람은 극히 드물지만 이 광고의 배후에 깔린 고통스러운 문제점에 수긍이 가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그보다 더 간접적인 방법으로 그들도 “광고”를 해 보았으며 오늘날의 세상에서 배우자를 구하는 것이 흔히 욕구불만과 강박 관념을 초래한다는 것을 경험하였다.

30대의 외로운 여인 ‘일레인’은 자신이 경험한 절망 상태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다. “터놓고 이야기할 상대가 없었어요. 먹는 것도 잊어버리고 무작정 울곤했지요. 그리고 내 처지를 너무 부끄럽게 생각했기 때문에 누구에게 신세 타령을 할 수도 없었읍니다. ··· 사람들은 내가 시집가기 틀렸다고 생각했지요.”—‘뉴우요오크’ 「포우스트」지.

‘일레인’과 같은 많은 남녀들이 염려는 하면서도 그들이 왜 그런 입장에 처해 있는지 그 이유는 알아 보지 않은 것이 보통이다. 그들은 흔히 좋은 배우자를 발견하기가 점점 더 어려워진다고 지적하는 사회학자들의 연구 결과에 대해서 모르고 있다. 이러한 연구는 그에 대한 이유로서 인구의 도시 집중 현상 및 그에 수반하여 남녀 관계의 거의 모든 면에 이의를 제기하는 “도덕 혁명”과 같은 요인을 지적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정중한 말로 “이혼”이지 사실상은 결혼 생활의 실패가 급증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들은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새로운 연인이 나타났을 때에 이전의 연인을 잔인하게 그리고 돌연히 버린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들은 그들이 받는 충고가 상호 모순되는 경우를 많이 보며 독신 친구들의 배우자를 구하는 여러 가지 파격적인 방법들을 보고 있다. 그들은 혼란을 느낀다.

이 모든 것에서 헤어날 길이 있는가? 배우자를 선택하는 것은 엄격히 개인적인 문제이지만 연령의 고하를 막론하고 누구나 따라야 할 지침 혹은 원칙이 있는가? 분명히 피해야 할 그런 함정이 있는가?

‘결혼 신화’를 직면함

물론, 어린 자녀들을 가진 미망인이나 나이가 든 이혼한 남자와 젊은이들의 입장과 필요는 각각 서로 크게 다르다. 그러나 연령에 관계 없이 독신들은 그들을 더욱 갈팡질팡하게 하는 결혼 “신화”에 직면한다. 이러한 점들을 몇 가지 조사해 보면 혼란을 어느 정도 감소시키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한 가지 보편적인 신화는 ‘양극은 서로 끌어당기는’ 법이므로 본인과는 아주 배경이 다른 사람이 흥미를 더해 줄 배우자가 될 것이란 주장이다. 물론 환경, 종교 및 국적이 다른 점에서 많은 호기심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과학적인 연구에 의하면 그러한 결합이 이혼으로 끝나는 예가 더 많다. 예를 들면 「결혼 파탄」이라는 책에서 ‘도미니안’ 박사는 이렇게 말하였다. “모든 주요한 연구의 결론에 의하면 [종교적으로] 차이가 있는 결혼의 경우에 결혼 파탄의 위험성이 아마 더 높은 것 같다.”

잘 믿어지지 않는가? 사실 친구란 공통적인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이라는 것은 상식이 아닌가? 항상 다른 방향으로 가거나 당신이 즐기는 일을 경멸하는 사람과 어떻게 화목할 것인가? 성서 창세기 2장은 여자가 남자의 “돕는 배필”이 되도록 창조되었다고 알려 준다. 당신과 당신의 돕는 배필이 잘 조화되려면 관심사와 목표와 도덕 표준이 동일해야 하지 않겠는가?

실제로, 부부가 생활의 가장 중요한 면에서 일치하면 할수록, 그들의 일상 생활은 더욱 순조로울 것이다. 차이점이 처음에는 아기자기하게 보일지 모르지만, 얼마 안가서 긴장의 원인이 될 수 있다.

또 다른 결혼 신화는 “도취”와 관련되어 있다. 여기서 말하는 “도취”는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을 이상화하여 무분별하게 반해 버리는 것을 의미한다. ‘오직 그이뿐’이라는 신화, ‘첫 눈에 반했다’는 신화는 모두 “도취”의 징후이다.

합당한 남성 혹은 바람직한 여성을 배우자로 구할 때에, 갑자기 적성에 맞는 배우자가 나타날 것을 기대할 수 있다. 물론, 처음에 더 호감이 가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의 외모, 태도, 그 때의 기분, 이 모든 것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매우 위험한 것은 그러한 사람에게 신화적인 매력을 부여하여, 즉시 그 사람을 사모하고 ‘길이길이 행복하게 살’고 싶어 하는 것이다.

그러나, 처음의 구애 과정에서는 그처럼 도취했던 사람이라도 마침내는 ‘색안경’을 벗게 된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른다. 유감스럽게도, 언제나 그런 것은 아니다. 도취 상태로 결혼에까지 이를 수 있다. 어떻게 그러한가? 감정적으로 “충만한” 상태에서 출발한 관계는 흔히 육체 관계로 인도하기 때문이다. 종종 그처럼 도취된 사람들은 차이점을 애무에 의한 격정으로 덮어 버린다. 그 결과, 위험 천만하게도 사실상 낯선 두 사람이 인생에서 가장 밀접한 관계에 들어가게 된다.

“각 사람을 위한 ‘오직 그이’가 세상 어디엔가에 있다는 생각은 깊이 뿌리박은 가설과 전통이다” 하고 「이상적인 결혼 생활」이라는 책은 말한다. 그 책은 계속 이렇게 말한다. “잘 적응하는 사람은 누구와 결혼하여도 행복할 수 있고 적응을 잘못하고 불행한 사람은 누구와 결혼하여도 불행할 수 있다는 것이 더욱 실제적인 견해이다.” 배우자와 사별한 사람들이 후에 재혼하여 행복을 얻는 경우는 그 말이 참되다는 것을 지지해 주는 것 같다.

독신 생활은 “비정상”?

불행히도, 몇 가지 결혼 신화들이 독신인 사람들을 괴롭힌다. 흔히 친척이나 친구들의 입에서 나오는 이러한 신화 중 두 가지는, ‘결혼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누구나 약점이 있다’는 것과 ‘불행한 결혼 생활도 독신 생활보다는 낫다’는 것이다. 결국 독신 생활이 본래 나쁘다는 주장이다. 이러한 이론은 당사자를 “비정상” 혹은 심지어 동성애 소질이 있다고 느끼게 한다.

결혼은 해야 하겠는데 결혼하는 것이 두려워서 하지 않는 것과 결혼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결혼하지 않는 것과는 전혀 다르다. 교육자 ‘헨리 보우먼’ 박사는 이렇게 말하였다. “독신 생활이 생활에서 더 큰 행복을 얻는 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무슨 일이 있어도 독신을 유지해야 한다. ··· 잘 적응하는 독신들이 있으며, 기혼 ‘노처녀’와 기혼 ‘노총각’이 있다.”

그렇다. 두려워하며 원치 않는 결혼을 억지로 하는 것보다는 현명한 선생님,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람들에 대해 지적하신 점을 받아 들이는 것이 더 낫다. 그분은 행복하게 독신 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선물” 즉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고 말씀하시고 이 “선물”을 가진 그리스도인은 그것을 굳게 잡고 하나님을 섬기는 데 그것을 사용하라고 격려하셨다.—마태 19:10-12, 신세.

신화란 가공의 이야기, 널리 퍼진 거짓말이다. 그리고 이상에서 논의한 신화를 따르는 것은 결혼과 독신 문제를 놓고 고심하는 사람에게 혼란을 더해 준다는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많은 현대 젊은이들은 가설을 두려워할 이유가 없다고 말할 것이다. 감정을 억제할 필요가 없다고 그들은 말한다. 오류를 범할까 염려할 필요가 없고, 한 동안 동거해 보고 사랑이 유지되면 결혼하라는 것이다. 그러면 “시험 결혼”이 문제의 해결책인가, 아니면 그것도 신화인가?

“시험 결혼”—만족한 해결책인가?

물론, 결혼하지 않고 동거하는 것은 새로운 현상이 아니다. 새로운 것은 공개적으로 그렇게 하는 사람들의 수가 급증하는 점이다. 미국 정부의 보고서에 의하면, 1960년에서 1970년 사이에 결혼하지 않고 동거하는 사람들이 700‘퍼센트’ 증가하였다. 더욱 최근의 보고서들은 더욱 크게 증가하였음을 지적하고 있다.

그것은 그리스도인 양심에 분명히 어긋나는 일이기도 하지만, 이러한 문제점들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이들 동거자들은 “결혼 생활”을 즐기고 있는가? 이러한 동거 생활을 통해 그들은 혼란에서 벗어나 의미깊고 영속적인 관계에 들어가게 되는가?

평생 동안 동거하는 사람들도 있기는 하지만, 대체로 이러한 결합은 오래 가지 못한다. 그 결과는 이혼과 같이 쓰라린 감정적 상처를 남기는 경우가 많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잠간 정직하게 생각하여 보라. ‘떠날 자유’를 서로에 대한 진정한 약속보다 더 가치있게 생각하는 상호 관계가 무슨 바람직한 관계인가? 두 사람은 자기들이 이기적으로 ‘받’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즐거움을 ‘나누’는 것이라고 주장할지 모르지만 약속도 없이 고귀하고 친밀한 것을 줄 수 있다는 것이 이치적인가?

“시험”이라는 말은 “실험”과 통한다. 실험 결혼은 할 만한 것인가? 결혼이란 공용 의복과는 다른 것이다. 옷이 반으로 찢어지거나 못 쓰게 되면 나가서 다른 옷을 사면 된다. 그러나 친밀한 인간 관계는 그것이 깨지면 그로 인한 감정적인 상처가 큰 법이다. 그로 인해 자살하는 사람들도 있다.

진정으로 서로를 염려하는 사람들도 감정을 동요시키는 문제 곧 불안정이란 문제가 있다. 결혼하지 않고 함께 살다가 이제 결혼하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묻는 친척에게 한 부부가 “서약을 원하기 때문”이라고 말한 바와 같다.

그러나, ‘그 사람과의 결혼이 어떠할 것인지 시험해 보지 않고는 확실히 알 길이 없다’는 주장은 어떠한가? 한 저술가는 결혼하지 않고 사는 사람들과 관련하여 이렇게 말하였다. “독신 상태에서는 결혼의 적절성 여부를 시험할 수가 없다. 시험을 하는 사람들의 생각에는 성공적인 것 같이 보이는 경우에도, 그들이 함께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지 못하였다.” 또한 어떤 사람들이 몇몇 다른 사람들과 결혼 밖의 성 관계를 가지며 생활해 왔다고 해서 그 사람들이 깊은 통찰력을 갖고 새로운 관계를 시작하는 것은 아니다. 이전의 생활에서 배운 것이 별로 없기 때문에, 감정적인 대가를 치르다 보면, 대체로 그들은 문제를 직면하는 능력이 부족하게 되고, 덜 헌신적이며, 의심을 잘 하는 사람이 된다.

물론, “자제”라는 옛 미덕은 오늘날 인기가 없다. 그것은 인간성을 억압하고 제약하며 유해한 것으로 받아 들여지고 있다. 그러나, “성적 억제는 위험한가?”라는 질문에 「현대인의 결혼」이라는 책은 이렇게 대답하고 있다. “결혼 전의 성적 억제는 성적 만족을 취하는 것보다 생리적, 심리적, 사회적으로 위험성이 더 적다.”

그러므로, 다른 결혼 신화와 마찬가지로, “시험 결혼”은 그것을 믿고 생활을 구축하기에는 너무나 위험하고 불안정한 기초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피해야 할 점들이 어떠한 것인지는 그러한 점을 통해 잘 알 수 있지만, 더 나아가 어떠한 ‘적극적인’ 원칙이 있는가? 내가 결혼할 준비가 되어 있는지를 어떻게 알 수 있는가? 나는 어떻게 현명하게 배우자를 선택할 수 있는가?” 하고 반문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른다.

이러한 어려운 질문에 대하여는 ‘간단 명료한’ 대답이 없다. 그러나, 통찰력을 가진 사람들이 ‘뛰기 전에 살필’ 믿음직한 지침이 있다. 다음 기사에서 그러한 점을 살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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