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치타워 온라인 라이브러리
워치타워
온라인 라이브러리
한국어
  • 성경
  • 출판물
  • 집회
  • 깨77 2/22 8-11면
  • 나는 심장 절개 수술을 받았다

관련 동영상이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동영상을 불러오지 못했습니다.

  • 나는 심장 절개 수술을 받았다
  • 깨어라!—1977
  • 소제목
  • 비슷한 자료
  • 병증이 뚜렷이 나타나다
  • 원인이 밝혀지다
  • 수혈 없는 수술?
  • 수술 준비
  • 회복
  • 수혈 없이 행한 심장 수술
    깨어라!—1971
  • 수혈 없이 행하는 대수술
    깨어라!—1974
  • 마술사도 신도 아니다
    깨어라!—1994
  • 의사들이 강제 수혈을 시도할 때
    깨어라!—1974
더 보기
깨어라!—1977
깨77 2/22 8-11면

나는 심장 절개 수술을 받았다

장소는, ‘오스트레일리아’ ‘멜보른’의 ‘세인트 빈센트’ 병원. 때는, 내가 심장 수술을 받기 24시간 전. 나의 자녀가 보낸 정성 어린 편지를 읽으면서, 나는 “하나님의 도움이 없다면 이 상태에서 결코 살아남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지난 몇년 동안 내 병증의 원인을 뚜렷이 밝히지는 못하였지만 전반적인 건강에 어떤 이상이 있음을 나는 자주 느껴왔다. 1973년 3월에는 내가 근무하는 회사의 모든 간부들이 종합 진찰을 받았다.

그 검진에서도 아무 이상이 나타나지 않았으나 결코 만족스럽지는 않았다. 주로 기분이 좋지 않았다. 별로 심한 활동을 하지 않아도 숨이 찼다. 그러나 몇 주일이 지나자 그런 현상을 내 나이의 사람들에게 흔히 있는 일로 생각하게 되었다. 내 나이는 48세였다.

병증이 뚜렷이 나타나다

1973년 12월 나는 ‘오스트레일리아’ 동해안 ‘시드니’의 ‘랜드윅’ 경마장에서 열린 여호와의 증인의 대회에 가족과 함께 참석하였다. 거기에는 모두가 차를 세울 수 있는 커다란 주차장이 있었다. 그러나 좌석은 상당히 떨어진 곳에 있어서 그곳까지 걸어가야 하였는데 매일 차를 주차시킨 후 나는 숨이 차서 다른 사람들을 미처 따라가지 못하였다.

대회를 마치고 해변의 휴양지에 계시는 장인과 장모를 방문하기 위해 아내와 나는 차를 몰고 ‘저비스’ 만으로 갔다. 어느날 아침에는 습관대로 해변길을 따라 몇 ‘킬로미터’ 걸은 후 파도 속에 몸을 던졌다. 그런데 잠시 수영을 하니 기절할 것 같았다. 가까스로 물에서 나와서 해변으로 비틀거리며 걷다가 쓰러졌다.

다시 정신을 차려 보니 내 아들과 몇 사람이 나를 들것에 실어 가고 있었다. 나의 머리에는 이런 생각이 번개같이 스쳐갔다. 죽은 사람은 아무 의식이 없는 것인데 나는 내 상여를 메고 가는 사람들을 똑똑히 볼 수 있으니 어떻게 된 것인가? 어떤 일이든 익살스러운 면이 있는 모양이다.

‘앰뷸런스’에 실려 인근 병원으로 가서 진찰을 받았다. 그런데 건강 상태가 좋다는 결정이 나서 그냥 퇴원하였다. 그 다음날은 아픈 데가 없어서 해변 산보를 그만두고 가벼운 수영만 하기로 했다. 그 결과 전날과 같은 일이 반복되었다. 그 ‘앰뷸런스’ 운전사와는 이제 구면이 되었다.

이번에는 병원측에서도 무엇인가 잘못이 있음을 깨달았다. 그러나 정밀 검사를 하지 않고서는 원인을 알아 낼 수가 없었다. 그들은 서부 ‘오스트레일리아’의 우리 집에 돌아가는 즉시 정밀 검사를 받아보라고 제안하였다.

원인이 밝혀지다

우리는 무사히 집에 돌아오게 되었는데 운전은 대부분 아내가 하였다. 나는 전문의를 찾아가 보기로 하였다. 원인은 확실히 몰랐지만 심장 전문의를 찾아갔다.

노련한 의사는 바로 첫 진찰에서 청진기 소리만 듣고도 심장 판막에 이상이 있음을 알아냈다. 그러나 그의 진단이 확실한지 그리고 다른 이상이 있는가 확인하기 위하여 심장 ‘카테테르’ 삽입법이라는 간이 수술을 받게 되었다. 그렇게 하려면 병원에서 하룻밤을 지내야 한다.

속이 빈 관을 팔의 정맥을 통해 팔 윗쪽으로 밀어 넣은 다음 심장부로 밀어 내렸다. 그곳에서 어떤 액체 곧 색소를 피 속으로 들여 보냈다. 그 결과 관상 동맥과 심장부 사진을 ‘비데오 테이프’에 찍을 수 있었다. 의사들과 나는 벽에 걸린 화면을 통해 그 사진을 볼 수 있었다. 그것은 으례히 실시하는 진찰이라고 한다.

대동맥 판막에 실제로 이상이 있음이 판명되었다. 또한 심장에 피를 공급하는 두개의 관상 동맥이 하나는 거의 완전히 그리고 다른 하나는 부분적으로 막혀 있었다. 그러므로 곧 심장 수술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첫째로 결함이 있는 대동맥 판막을 인공 판막으로 대치해야 한다. 바로 이 판막을 통해서 피가 좌심실에서 대동맥을 통해 전신으로 퍼지게 된다.

두번째로 나의 다리에서 혈관의 일부를 끊어 내어 두 관상 동맥의 보조 혈관을 만들어야 한다. 그렇게 하면 지방성 축적물 때문에 막힌 부분 대신 우회하는 새로운 통로가 생겨서 피가 흐를 수 있다. 그렇게 해야 혈액이 순조롭게 흘러 심장에 신선한 산소가 공급될 것이다.

오늘날 지방성 축적물로 관상 동맥의 일부가 막히는 일은 흔히 볼 수 있다. 심장 마비를 포함하여 상당히 많은 심장 질환이 그로 인해 발생되고 있다.a 나의 경우 어떤 심장에 손상을 입지 않고 일시적 기능 정지의 형태로 이상이 나타난 것은 참으로 다행한 일이다.

수혈 없는 수술?

나는 수술 준비를 해 달라고 요청하였다. 그러나 피를 취하는 것은 성서적인 나의 믿음에 위배되기 때문에 수혈은 하지 않겠다고 하였다. 의사는 아마도 내가 상태의 심각성을 몰라서 그런다고 생각했음인지, 그러면 그 대신 다음주쯤 내 몸에서 피를 뽑아 저장하였다가 그 피를 수술 때에 사용하자고 하였다.

나는 피의 사용에 관한 하나님의 견해를 설명하면서 신명기 12:23, 24을 읽어주었다. “오직 크게 삼가서 그 피는 먹지 말라. 피는 그 생명인즉 네가 그 생명을 고기와 아울러 먹지 못하리니 너는 그것을 먹지 말고 물 같이 땅에 쏟으라.” 그러므로 수혈하기 위해서 피를 저장하는 것도 성서적으로 볼 때 할 수 없다고 나는 말하였다.

그 문제에 대하여 그 의사는 다른 세명의 의사들과 협의한 후 그런 조건이라면 서부 ‘오스트레일리아’에서는 수술을 할 수 없다고 하였다. 그들은 동부 ‘오스트레일리아’의 ‘멜보른’ 시에 있는 어느 고명한 의사를 찾아가 보라고 제안하였다. 그 의사는 수혈하지 않고 여호와의 증인들에게 심장 수술을 시행한 바 있었다. 그러나 기대를 갖기에 앞서 자세한 내용을 ‘멜보른’의 의사에게 통고한 다음에 결정을 내리는 것이 좋다고 그들은 설명하였다. 인공 판막으로 대치하는 일, 두개의 우회 혈관 이식 그리고 다리 혈관을 끊어 내는 것, 그 모든 수술을 수혈없이 행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 당시에는 그것이 아주 좋지 않은 소식이었다. 맨 처음에는 두 가지 면으로 충격을 느꼈다. 첫째는 내 생애에서 처음 있는 그런 일이 다른 사람 아닌 내 자신에게 일어났다는 점이었고, 둘째로는 갑자기 사망하면 그것은 졸지에 당하는 놀라운 경험이라는 점에서였다. 그러나 용기와 힘을 달라고 의뢰할 수 있는 하나님 여호와가 계시기 때문에 참으로 위안이 되었다.

나의 심장 사진을 포함하여 검사 결과를 ‘멜보른’에 있는 의사에게 보냈다. 며칠 후 그 의사는 기꺼이 수술을 해 보겠다는 소식을 전해 왔다. 48시간 내에 ‘멜보른’에 도착해야 하였다. 도착한지 몇 시간 내에 그 병원에 입원하였다.

심장 수술을 위한 장비는 너무 비싸서 ‘오스트레일리아’의 각 주 수도에 그러한 수술할 수 있는 병원이 하나씩 밖에 없다. ‘멜보른’에는 ‘세인트 빈센트’ 병원이 그런 병원이다. 첫날 저녁에 담당 의사가 병실로 찾아와서 아주 위험한 수술이니 피에 관해서는 신앙을 포기하라고 아주 강력히 권고하였다. 사실상 그는 겁을 주려고 하였으며 그 점에 있어서는 그가 성공하였다.

나는 담요를 덮은 나의 무릎이 마주치는 것을 느꼈다. 그가 떠난 후, 나는 그가 수술 여부를 재고하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도 역시 수술을 포기할까 생각했다. 옷을 입고 병원을 나와야 할지 거기에 계속 머물면서 사태의 추이를 살펴야 할지 몰랐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상당한 시련이었다. 나는 우리에게 참으로 하나님이 필요함을 더욱 깨닫게 되었다.

그후 의사는 나의 아내에게 자기가 입장을 신중히 고려해 보았으며 그러한 수술을 받은 환자의 30‘퍼센트’가 내출혈을 경험하게 되는데 피를 보충해 주지 않으면 생명이 위험하다는 점을 지적하였다. 그러나 내가 입원하고 있는 그 병원에서 어떤 환자가 맞지 않는 피를 수혈 받아 바로 그날 사망하였다는 신문 기사를 읽고 격려를 받았다. 내 옆의 침대에 누워있는 남자는 “수혈하는 것이 이제 걱정됩니다. 수혈은 위험을 각오하는 것 같습니다” 하고 나에게 말하였다.

수술 준비

환경 적응, 호흡 연습 및 더 많은 검사를 받기 위해 수술 전 일주일 동안을 병실에서 보내게 되었다. 심장 수술을 한 환자는 처음에 호흡에 어려움을 느끼게 된다. 그러므로 어떤 일이 있을 것이고 그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 미리 알아두는 게 중요하다. 그렇게 하면 나중에 정신의 안정과 개인의 복지를 위해 도움이 된다.

수술에 앞서 이번 주일에는 수술에 참여할 여러 의사들이 나를 방문하였다. 그 수술은 고명한 여러 의사들의 협동적인 노력이 될 것이다. 심장 수술을 하기 위해서 흉골 즉 가슴뼈를 절단하게 될 것이라고 설명하였다. 일종의 소형 톱을 사용하였다. 나는 다행히 그 때 잠들어서 그러한 기구를 보지 못하였다.

심폐기(心肺機)를 맡은 의사는 수술시 약 2시간 동안 그 기계가 나의 심장과 폐의 기능을 대신하게 될 것이라고 설명하였다. 보통 그 기계는 피를 넣어 가동시키지만 나의 경우는 염수로 대신하게 되었다. 내 피가 몸에서 기계를 통해 흐르는 동안 피는 산소와 결합하고 섭씨 약 29도로 냉각된다. 그 다음 그 피는 나의 순환계로 다시 보내진다. 그 동안 의사는 나의 심장을 수술한다. 심장은 저온 상태로 인하여 운동을 중지하게 된다.

마침내 심장 수술을 마치고 심장의 온도를 정상으로 회복시키는 결정적인 순간에 이르게 된다. 그 다음 전기 충격을 통해 심장 운동이 다시 시작되고 나는 ‘다시 활동을 시작’하게 된다. 마지막으로 나의 가슴을 봉하게 된다.

수술하기 며칠 전에 보조 혈관 전문가가 자기 소개를 위해 방문하였다. 그는 자기 형이 여호와의 증인이라고 말하였다. 그는 우리가 미신적이 아님을 알고 있었으며 내가 그 심폐기를 사용하게 되는 열 세번째 여호와의 증인이라고 말하였다. 나를 안심시키기 위해서 그는 오래 전에 한 번 실수한 일 밖에 없다고 말하였다. 그의 방문은 매우 고마왔다.

주말쯤에 가서는 의사와 간호원들이 나의 입장을 더 잘 이해하게 되었으며 나에게 깊은 온정을 베풀었다. 사실 나는 거기있는 사람들과 성서에 관하여 자주 토론하였다. 인생의 비참함, 질병이나 불완전성의 영향을 온전히 느낄 수 있는 그런 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성서 소식을 잘 받아들였다.

수술하기 바로 전날밤 가족이 병실을 떠난 후 나는 기도를 통해 참으로 평온함을 느꼈다. 내가 손에 성서를 들고 잠들었음에 틀림없다. 다음날 아침 수면 상태에 있도록 주사를 맞을 때도 침대에 성서가 있었기 때문이다. 1974년 2월 22일에 관해 기억할 수 있는 것은 그것이 마지막이다.

회복

나는 며칠 후 중환자실에서 깨어 났는데 다량의 진정제 투여로 완전히 진정되어 있었다. 맨 처음 의식을 회복한 후 아내가 침대를 향하여 걸어 오는 것을 보았는데 그는 ‘마스크’와 외투와 모자를 착용하고 있었다. 병균 감염의 위험성이 높기 때문에 아내는 그곳에 단지 몇 분만 있도록 허락되었다. 아내는 “잘 하셨겠지요?”라고 말하였다. 나는 ‘파이프’와 ‘호스’가 많이 꽂혀 있어서 어떻게 할 도리가 없었다고 말했다.

그 의사는 나의 아내에게 수술이 끝나면 즉시 전화로 연락해 주겠으니—그는 그렇게 하였다—수술날에는 병원에 있지 말라고 부탁했었다. 그 의사는 아내에게 나의 상태가 좋다고 전하였다. 수술은 다섯 시간 걸렸는데 수혈없이 성공적으로 끝났다. 의사들의 말대로 그 수술은 “자기들의 경험에 있어서 일보 전진”이었다.

그 수술은 “대”수술이 아니라 “광역” 수술로 취급되었다. 수술진이 특별히 조심하였기 때문에 나는 수술 도중에 피를 단지 반 ‘리터’ 정도 밖에 잃지 않았다. 그후 나의 아래쪽 흉부에 꽂혀 있던 관에서 반 ‘리터’의 피가 흘러나왔다. 그렇게 흘러나오도록 그 관들을 그곳에 꽂아 두었던 것 같다.

수술 후 이틀째가 되었을 때 나는 분명히 정신적인 혼란을 느꼈다. 그러나 그러한 상태는 일시적이었다. 나흘째 되던 날 회복실로 옮겨졌고 그후 얼마 있지 않아 곧 호전되기 시작하였다. 물론 신체적으로 아주 쇠약한 상태였다.

수술한지 2주 후에 퇴원하였다. 일주일이 지난 후 ‘제트’기를 타고 고향으로 오기 전에 수술 책임자였던 의사를 마지막으로 방문하였다. 일반 검사와 진찰을 받기 위해서였다. 그 의사는 앞으로의 경과를 걱정하면서 서부 ‘오스트레일리아’의 ‘퍼어드’에 있는 나의 주치의에게 자주 연락을 취하겠다고 말하였다. 나는 그에게 성서 한권과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하는 진리」 책을 전해 주었는데 그는 읽어 보겠다고 약속하였다.

아직 질병 수당을 받고 있지만 나는 가까운 장래에 다시 활동하게 되기를 바란다. 나의 건강은 상당히 좋아졌다. 퇴원한 이후 매일 수영을 하고 ‘골프’를 쳤으며 대략 계산해 보니 3,200‘킬로미터’ 정도를 걸었다.

돌이켜 볼 때 나는 지난 2년 동안이 나의 생애에서 가장 보람있는 때였다고 진심으로 말할 수 있다. 내가 20년간 근무해 온 회사가 나의 상태를 위험하다고 생각하여 나를 해고한 것은 사실이다. 그 당시에는 병이 너무 심해서 상심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그후 나는 영적으로 보람있는 경험을 많이 하였으며 여러 가지 사물에 대하여 더 나은 인식을 갖게 되었다.

예를 들어 나는 병약자나 노령자에 대해 이해심과 동정심을 더 느끼게 되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현재의 생활은 이전 어느 때보다도 더 진정한 목적과 의미를 가지고 있다. 하나님 여호와께 대하여 느끼는 사랑을 말로서는 이루 다 표현할 수가 없다.

수술한지 6개월 후 나는 아내의 부축을 받으며 호별 방문 증거를 다시 시작할 수 있었다. 거의 예외 없이 집주인은 우리를 안으로 초대하였으며 우리는 앉아서 우리의 방문 목적을 이야기하였다. 성서에 근거한 훌륭한 소망을 다른 사람들에게 이야기해 주는 것은 참으로 격려적이며 나에게 보람을 주는 일이었다.

현 상태하에서는 나의 수명이 줄었을지도 모르며 사업적인 면에서 불리한 사람일지 모르지만 인류가 자기의 왕국 통치 아래서 완전히 건강한 가운데 영원히 살도록 하나님께서 마련하셨음을 확신하고 있기 때문에 나는 계속 힘을 얻고 있다. 성서는 하나님의 통치 아래서 살게 될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고 약속하고 있다. (계시 21:4)—기고.

[각주]

a 1975년 12월 22일자 「깨어라!」지의 “심장 마비—현대의 역병을 극복하는 일”이란 기사 참조.

[11면 삽화]

나는 매일 수영을 하고 있으며 건강은 상당히 좋아졌다

    한국어 워치 타워 출판물 (1952-2026)
    로그아웃
    로그인
    • 한국어
    • 공유
    • 설정
    • Copyright © 2026 Watch Tower Bible and Tract Society of Pennsylvania
    • 이용 약관
    • 개인 정보 보호 정책
    • 개인 정보 설정
    • JW.ORG
    • 로그인
    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