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집에서 해산하였다
한 여인이 집에서 해산하기로 결정한 이유와 이 해산을 위해 어떻게 준비하였는가를 설명한다
이곳 미국에서도 계획했던 바와는 달리 병원이 아닌 다른 곳에서 아이를 낳게 되어 그 부모가 당황하였다는 이야기를 종종 들을 수 있다. 그러나 부모가 계획적으로 그렇게 했다는 이야기는 듣기 어렵다. 그러나 우리는 그렇게 하였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그렇게 하기로 결정하였을 때 경제 문제도 어느 정도 고려하였으나 우리가 병원비를 감당할 수 없을 만큼 곤란한 것은 아니었다. 또한 출산시에 있을 수 있는 병발증을 포함해서 산모 및 아이에게 관련된 위험성을 모르고 무분별하게 결정한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우리로서는 관련된 모든 요소를 균형잡히게 고려한 후 결정하였다. 첫째로 출산의 위험성에 대해서 우리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위험한 것은 아니라고 믿으며, 둘째로 병원 간호의 가치도 많은 경우 대부분의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그렇게 대단한 것은 아니라고 믿고 있다.
병원 간호
어린 소녀였을 때는 나도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처럼 병원이란 병약자가 용의주도하고 고도로 전문화된 보호를 받는 곳으로 믿었다. 그러다가 19세 되어서, 나는 남부 ‘캘리포니아’의 한 도시에 있는 작은 병원에 간호 보조원으로 취직을 하게 되었다.
현대적인 병원들에는 훌륭한 시설이 갖추어져 있으며 응급 환자를 즉시 돌볼 수 있는 숙련된 사람들이 일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사람이 얼마나 간호를 잘 받고 그 대가를 지불하느냐 하는 것은 그러한 전문화와는 무관한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나는 놀랐다. 집에서도 돈을 덜 들이고 더 많은 사랑을 받으면서 비슷한 간호를 받을 수 있는 환자들이 많다고 나는 생각하였다.
내가 그 병원에서 근무하던 첫날 산부인과의 분만실에서 일하였던 기억이 난다. 나는 해산의 진통을 겪고 있던 어떤 부인을 맡게 되었는데 나를 데려온 사람은 그 환자에게 “안부” 조차 묻지 않고 그의 경과를 나에게 설명하였다. ‘지, 이 여자는 자기 생애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에 단순히 사무적인 토론의 대상이 되어 있구나’라고 나는 생각했다. 나는 자신을 소개하였으며, 그 부인이 어느 정도 신체적으로 불편한 상태에 있었지만 아주 침착한 좋은 분임을 알 수 있었다.
나는 그 부인에게 자녀가 몇이냐고 물었다. 이번이 일곱째가 된다고 하였다. 나는 아직 미혼이라고 대답하였다. 그 부인은 나의 손을 어루만지면서 “염려 마세요. 당신에게 걱정끼치지 않고 잘 해 낼께요”라고 말하는 것처럼 미소를 지었다.
잠시 후 그 부인은 아이가 곧 나오려고 하니 간호원을 불러달라고 부탁하였다. 그래서 간호원에게 전화하였다. 그러나 그 간호원은, 자궁 입구가 얼마나 열렸는지 의사가 검사했는데 좀 더 있어야 아이가 나올 것같다고 나에게 말하였다. 그래서 10대 처녀인 나는 전화를 끊고 그 부인에게 아직은 아이가 나오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였다. 그러나 잠시 후에 일곱번째 아이가 머리를 내밀었다. 의사는 출산이 거의 다 끝나서야 도착하였다. 또한 내가 그후에 본 다른 경우에도 그런 일이 있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산부인과 의사들의 태도
분만실에서 직접 관찰할 때 어떤 산부인과 의사들의 오만불손함에 짜증이 날 때가 많았다. 인간적인 친절이나 예의가 없기 때문에 그들이 분만 중인 산모들에게 말을 거는 일은 별로 없으며, 한다고 해 봐야 무뚝뚝한 말뿐이었다. “빨리 내려 가요.” “다리를 올려요.” “누가 의사요? 나요 당신이요?” “내 말대로 할거요? 그렇지 않으면 내가 그만 두리까?”
물론 모든 의사들이 본래부터 쌀쌀하거나 무뚝뚝하지는 않다. 인정있는 사람들도 많다. 또한 어떤 의사들은 과로하고 있는데 분명히 그 점이 그들을 성급하게 만드는 한 가지 원인이다. 그렇지만 의사들이 환자의 부탁—이전 분만 때 그로 인해 위장이 좋지 않았다면서 제발 “마취제”는 사용하지 말아달라고 사정하는 그러한 부탁—을 무시하는 것을 볼 때 마음이 아팠다. 그 여자의 부탁은 무시되었으나 설명이나 사과도 없었다.
그후 분만 중 약에 취해서 등을 아래로 향하고 누워있는 산모는 자신의 목구멍이 막혀 질식할 위험성이 있으며 “마취제”가 그렇게 하는 원인이 될 수 있다는 글을 읽고 나는 충격를 받았다. 많은 의료 관계 권위자들이 과도한 약물 치료는 위험하다고 생각하는데도 산모들의 불편을 줄이기 위해서 관례적으로 산모들에게 투약하는 일이 많다. 나는 그러한 약이 태반을 통과하여 아기에게 이르게 되며 아기의 간과 뇌에 축적된다는 설명도 읽었다. 미국 아이들 35명 가운데 한 아이는 심한 지체아(遲滯兒)인데, 불필요한 약물, 분만 촉진 등과 같은 인위적인 방법에 의해서도 그런 해로운 결과가 나올 것으로 생각된다.
그 병원에서 출산과 관련해서 사망한 경우는 한번 밖에 보지 못했다. 그것은 산모에게 행한 수혈의 부작용 때문이었다. 수혈의 위험성이 잘 알려져 있는데도 많은 산부인과 의사들은 분만 후에 거의 관례처럼 수혈을 하게 하는 것을 나는 보았다. 만일 그 여자가 아주 가난하여 병원에서 아이를 낳을 수 없었다면 오늘날까지 살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산부인과 병원에서 생명을 구하게 된 사람도 있다. 그러나 실제로 얼마나 많은가? 그리고 그 수를 생명을 잃는 수와 비교해 보면 어떤가? 1972년에는 세계 15개국의 신생아 사망율이 미국보다 낮았다. 1965년에 ‘네델란드’에서 태어난 아이들의 약 69‘퍼센트’는 집에서 태어 났으나 신생아 사망율은 1,000건 당 14.4건에 불과하였다. 그러나 출산의 97‘퍼센트’ 이상이 병원에서 행해지는 미국에서는 신생아 사망율이 1,000건 당 24.7건이었다!
치솟는 병원비—필연적인 결과?
나의 조상 중에 병원에서 해산한 것은 나의 어머니가 처음이었다. 이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병원 아닌 다른 곳에서 해산하는 것을 잊어버린 듯하다. 그리고 병원에 대한 의뢰도가 높아감에 따라 병원비도 비싸졌다.
32년 전 내가 태어 났을 때 아버지는 의사에게 75‘달러’를 지불하셨고 ‘로스앤젤레스’에서 나와 어머니가 10일 동안 체제한 입원비로 75‘달러’를 더 지불하였을 뿐이다. 오늘날 ‘캘리포니아’에서는 정상 임신과 출산의 경우 620‘달러’에서 1,500‘달러’ 혹은 그 이상을 지불해야 한다!
신생아의 간호
내가 근무하던 병원에서는 순전히 실용적인 목적때문에 육아실을 한 사람의 간호 보조원에게 맡기고 있었다. 지성있고 친절한 사람이었지만 그 여자가 여러 부모들보다 더 전문적인 훈련을 받은 일은 없었다. 그 여자에게 자녀가 몇명 있다는 사실 때문에 그가 그 임무에 적격자라고 고려되었다.
그러나 그 점 때문에 그 여자가 신생아를 돌볼 자격이 있다면 왜 자녀를 가진 부모들, 조부모들, 아주머니나 아저씨들이 자기 가정에서 태어난 아이들을 돌볼 자격이 없겠는가? 즐거워하는 가족 또는 여러 아이를 책임맡고 있는 한 간호 보조원 중 누가 더 많이 당신의 아이를 살피고, 뽀뽀해 주고, 안아 주고, 냄새를 맡아 보고, 돌봐 줄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한 가지 적절한 예로서 우리 고향에 사는 한 가족의 경험을 생각해 보자. 그 어머니는 사람들이 하는 것처럼 얼마 동안 병원에 있다가 갓난애를 데리고 집으로 왔다. 집에 온지 이틀째 되었을 때 그 어머니에게 걱정이 생겼다. 그 아이에게 변통이 없었다. 그는 그 아이를 의사에게로 데려가서 진찰을 받았다. 그 의사는 그 아이에게서 이상을 발견하였다. 태어난 이후로 그 아이에게 변통이 한번도 없었을지 모른다. 그런데도 병원에 있는 나흘 동안 그러한 점이 발견되지 않았다. 당신은 그 어머니가 바로 처음부터 그 갓난아이를 집에서 돌보았다면 더 일찍 그러한 일을 알아내었을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가?
또한 많은 의사들은 병원의 섭생법이 모유로 키우는 일에 도움을 주지 못한다는 점을 시인하고 있다. 젖이 잘나게 하기 위해서는 아이에게 젖을 빨려 가슴에 자주 자극을 주어야 한다. 그런데 많은 병원에서는 산모에게 모유를 먹이는 것을 권장하지 않으며 심지어 어떤 때는 태어난지 18시간이 지나도록 아이에게 젖을 주지 못하게 한다. 병원에서 출생된 아이를 어머니에게 돌려준 후에도 일정한 간격을 두고 짧은 시간 동안만 젖을 주게 하는 것이 보통이다.a
그러므로 남편과 내가 세번째 아이를 집에서 낳기로 결정한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우리와 다른 경험을 하였을지 모르며, 따라서 우리의 결정에 동요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우리는 다른 사람에게 더우기 초산은 보통 더 어려운 해산이기 때문에 특히 초산부에게는 집에서 해산하도록 권고하지 않는다. 그러나 심사숙고한 후에 적어도 우리는 가정에서 해산하면 손실보다는 이점이 더 많다고 생각하였다. 그리하여 우리는 준비를 진행하였다.
사전 준비
해산 전에 산모는 특별한 간호를 받아야 한다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었다. 병발증이 발생할 수 있다. 정상 분만을 하기에 충분할 만큼 자궁 입구가 열리지 않을 수도 있고 일반적인 경우처럼 미리부터 나오는 것이 아니라 거꾸로 나온다거나 다태 임신인 경우도 있다. 과거에는 그러한 상황에서 사망하는 일이 자주 있었으나, 현대 의술로 인하여 이제는 그러한 아이들의 생명을 많이 구하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미리 의사에게 검진을 받았으며, 모든 점으로 보아 정상 분만을 할 것임을 알았다.
나는 전문적인 산파가 나를 돌보아 주었으면 하였다. 그러나 ‘캘리포니아’ 주에서는 산파직이 불법으로 되어 있다. 단지 면허있는 의사만이 자기의 봉사에 대해서 돈을 요구할 수 있다. 그런데 한 지방 검사를 포함하여 내가 그 문제를 함께 논의한 권위자들은 보수가 관련되지 않는다면 어떤 사람에게서도 도움을 받을 수 있다고 하였다. 그래서 나는 한 친구로 하여금 “산파” 역할을 해 주도록 하였다.
사실 마취 상태에서 해산한 사람들을 포함해서 많은 여자들이 아이를 어떻게 낳는지 잘 모르고 있는 것을 보고 종종 놀라게 된다. 그들은 이렇게 묻는다. “누가 아이를 호흡하게 합니까?” “아이의 심장을 주물러 주어야 합니까?” “무엇을 해야 하는지 어떻게 알죠?” “큰 실수를 저지를까 두렵지 않아요?” “탯줄은 어디에 붙어 있나요?” “그것을 어떻게 매고 자릅니까?” “집에서 출산하려면 어떤 장비가 필요합니까?”
오랫 동안 당연지사로 생각되어 온 여러 가지 관례들에 대한 태도가 달라지고 있는 오늘날 자녀를 가질 나이에 있는 기혼 부인들은 출산에 관한 사실들을 알아두는 것이 좋을 것이다. 계획적이건 우연한 환경으로 인해서건 병원 밖에서 해산하게 되었을 때 어떻게 할 것인지 생각해 두는 것이 좋을 것이다.
집에서 해산하는 데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먼저 쪼그리고 앉을 수 있는 혹은 눕기를 더 좋아 한다면 누울 수 있는 깨끗한 장소가 필요하다. 그 정도로 간단할 수도 있다. 어떠한 특별한 교훈이 필요한가? 사실상 위대하신 생명의 수여자께서 세부적인 모든 주요점들을 준비해 놓으셨으며 아주 분명한 점들만 산모의 본능과 지성에 맡기셨다. 진통이 있고 분만을 할 때 산모는 아이를 낳기 위해서 몸이 요구하는 대로 하게 되는데 그것은 올바른 일이다.
일을 더 편리하고 위생적으로 처리하기 위해 나는 몇 가지 간단한 준비를 하였다. 우리는 친정 어머니가 사용하시던 바느질 판 위에서 해산하도록 마련하였다. 그래서 나는 습기를 방지하려고 ‘페인트’ 가게에서 물이 새지 않는 합성수지로 만든 커다란 보자기 둘을 구입하였다. 그 외에도 나는 낡은 홋이불 몇장과 수건들을 빨았다. 마른 후에 그것들을 갈색 종이 부대에 넣고 봉한 후 그것을 ‘오븐’에 넣고 저온에서 몇 시간 동안 구웠다. 홋이불은 그 위에 쪼그리고 앉는 데 사용하고 수건은 필요한 대로 사용하려는 것이었다. 과거에 산모들이 질병에 감염되는 무서운 사례가 일반적으로 집에서 해산하는 산모들에게는 없었으며, 오히려 의료인들이 병원에서 산모들을 다루다가 그런 병을 옮겨 주었다.
그 다음에 나는 필요하면 아이의 코에서 점액을 제거하려고 끝에 고무가 달린 주입기를 약방에서 구입하였다. 나는 그것을 탯줄을 끊는 데 사용할 가위와 함께 물속에 넣고 끓였다. 그 후에 그것들을 각각 ‘비닐’ 봉지에 넣고 봉하였다. 그 외에도 나는 바느질 용품상에서 산 옷단을 매는 데 쓰는 ‘테이프’ 꾸러미를 ‘오븐’에 넣고 구웠다. 그것은 탯줄을 매기 위한 것이었다. 또한 나는 커다란 위생 수건을 상당히 많이 구입하였으며 아이를 위해 옷도 얼마쯤 마련해 놓았다.
병발증의 가능성에 대해서 알아 두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우리는 비상시에 어떻게 할 것인가 생각해 보았다. 진통이 정상으로 진행되지 않을 경우에는 병원으로 갈 생각이었다. 병원은 친정집에서 멀지 않는 곳에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거기에서 해산하기로 하였다. 또한 해산 후에 자궁이 수축되지 않는다면 병원으로 갈 예정이었다. 출혈이 멈추려면 해산 후 자궁이 오므라져서 단단해져야 한다.
출생시에 아이의 목에 무엇이 막혀 있는 것 같다면 우리는 그것을 손가락으로 제거할 것이다. 그것은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다. 어떤 경우에는 큰 아이들의 목에 무엇이 걸려 있을 때에도 부모들이 그렇게 해 주어야 한다. 아이가 숨을 쉬는 것이 더디다면 우리는 그 애를 거꾸로 들거나 입과 입을 대어 행하는 인공 호흡을 할 것이다. 조그만 아이들이 숨이 막히거나 물에 빠지거나 전기 충격을 받았을 때에도 인공 호흡이 필요할 경우가 있으므로 그런 것은 모든 부모들이 알아두어야 한다.
진통이 시작되다
진통은 월요일 저녁부터 시작되었다. 여러 단계에서 기본적으로 어떤 일이 있게 되는가를 미리 알고 있어서 도움이 되었다. 자궁은 자루 입구를 졸라매는 것과 같은 역할을 하는 일군의 근육에 의해 입구가 단단히 막혀 있는 고무병과 같다는 설명은 나에게 아주 도움이 되었다. 진통의 초기에 산모는 약 20분 혹은 30분 간격으로 자궁이 수축되는 것을 느끼게 된다. 그러한 수축은 약 40초 동안 계속된다. 산모가 자기 배 위에 손을 얹어보면 단단한 덩어리가 생겼다가 수축하는 일이 가라앉을 때는 다시 유연해지는 것을 감촉할 수 있다. 그 덩어리가 바로 아이가 들어 있는 커다란 근육 덩이인 자궁이다.
진통이 계속 진행되면서 수축은 더 빈번해지고 더 강열해진다. 임신 중 자궁을 막고 있었던 ‘자루 입구를 졸라매는’ 근육이 압력으로 인해 열리게 될 때까지 자궁이 수축하게 된다. 병의 입구라고 할 수 있는 자궁 경부가 그처럼 점차적으로 열리는 것을 “확장”이라고 한다. 그것이 진통의 첫 단계이다. 그 모든 것은 산모가 협조 혹은 주의를 기울이지 않더라도 발생하게 된다.
결국 확장이 완료되는 진통의 첫 단계가 끝날 때쯤 되면 수축이 더 심해지고 빈번해져서 산모는 다른 것을 생각할 수 없게 된다. 나는 수축 빈도의 증가에 의해서가 아니라 내 자신의 집중력에 의해서 진통의 진행 정도를 측정하였다. 더 이상 다른 것에 정신을 집중할 수 없으면 이제 아이를 낳는 데 관심을 기울일 때가 된 것이다. 그것으로 진통의 둘째 단계가 시작된다.
아이를 낳을 시간이 임박했다는 것을 깨달은 때가 화요일 이른 아침이었다. 그래서 아이들은 동서에게 맡겨 두고 나와 남편은 차를 몰아 친정 ‘아파트’로 갔다.
나의 양친과 남편이 앉아 있는 동안 나는 마루를 걸어 다녔다. 나에게는 걷는 것이 진통 중에 가장 자연스러운 행동이었다. 그것은 아래로 밀어내리려는 신체의 노력에 도움을 주는 것 같았다. 그렇게 하는 것은 또한 불편함에서 주의를 다른데로 이끌게 해 주었다. 그렇게 하는 데는 노래를 크게 부르는 것도 역시 도움이 되었다. 그리고 숨을 죽이는 것이 긴장을 막는 데 도움이 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진통의 두번째 단계에서는 이제 그 입구가 활짝 열린 자궁이 강력한 ‘피스톤’처럼 움직이기 시작한다. 자궁은 아이의 머리가 골반의 뼈로 된 좁은 통로를 향하도록 밀어 내게 된다. 그렇다. 진통이란 말은 적절한 표현이다. 아이를 낳을 산모에게 아무리 “좋게” 말한다 해도 진통이란 매우 불유쾌한 것이다.
아이가 나오는 통로로 아이를 밀어 내기 위해서 사정없이 수축이 일어난다. 두부가 골반으로 더 깊숙히 밀려 들어오는 감각은 사람을 당황케 한다. 그러나 그에 저항하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다. 병원에서 나는 가끔 산모들이 몸에 힘을 주어 수축하는 힘에 저항하려 하는 것을 보았다. 그들은 얼마 가지 않아 좌절감을 느껴 신경질적이 된다.
두부가 골반에 이르게 되면 산모는 “힘을 쓰”거나 “밀어 내”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된다. 산모는 그러한 충동에 협조해야 한다. 그러나 너무 폭발적으로 아이가 나오면 질이 파열되는 수도 있기 때문에 분만 시에는 힘쓰는 일을 그만 두는 것이 현명하다. 수축과 밀어 내는 힘이 최고도에 달했을 때는 자동차 같은 무거운 물체를 밀 때 호흡이 멈추어 지듯이 본능적으로 호흡이 정지되었다. 그것은 자궁의 노력에 도움이 되었으며 수축력을 더 쉽게 견딜 수 있게 하였다.
그처럼 심한 수축이 있을 동안에는 걸음을 멈추고, 발을 넓게 벌려 쭈그려 앉은 자세로, 말로 표현하기는 이상하지만 끙끙거리는 것이 나에게는 자연스러웠다. 그 말이 깔끔한 사람에게는 좀 거칠게 들릴지 모르지만 이 때야 말로 여성다운 행위에 대하여 어린애 같은 생각을 하지 않아야 한다. 해산하는 것보다 더 여성다운 일이 무엇이겠는가?
이곳 내 친정의 현관방에서 나는 걷다가 쭈그리고 앉았다가는 끙끙거렸다. 낯 익은 얼굴들 그리고 그들의 목소리와 미소는 나에게 위안이 되었다. 그러한 분위기는 새로운 식구를 맞아들이는 데 적절하고 자연스러운 것으로 생각되었다.
분만
양수가 들어 있는 주머니가 터지면 아이가 얼마 있지 않아 나온다는 것을 이전의 경험을 통해 나는 알고 있었다. 나는 무릎까지 올라오는 양말을 발에 신었고, 남편은 내가 바느질 판에 오를 수 있게 부축해 주었다. 그 판위에는 깨끗한 홋이불을 깔아 두었다.
나는 쉽게 눈에 띄고 또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마루보다 바느질 판 위에 쭈그리고 앉기로 결정하였던 것이다. 이런 경험을 하고 있는 동안은 본능적으로 도움과 위로를 구하겠지만, 나는 사실 도움없이 해산 시 일을 성공적으로 처리하였다.
전에 내가 두 아이를 낳을 때는 의사가 허용할 때까지만 걷다가 분만 직전에 마지 못하여 분만대 위에 누웠다. 이번에는 의사에게 편리한 자세가 아니라 내게 편한 자세로 해산하게 되어 기뻤다. 결국 나는 엉거주춤하게 쭈그리고 앉는 자세로 분만하였다. 그러한 자세를 취할 때 나를 받쳐줄 것만 있었다면 좀 더 쭈그려 앉는 것이 해산하는 데 더 편리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나는 산파의 도움을 받던 ‘히브리’ 여인들이 일종의 해산대로 몸을 떠받쳤다는 점을 기억하였으며 사실상 그렇게 받쳐 주는 것이 유익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출애굽 1:16-19.
산파 역할을 하기로 한 여자 친구는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 그래서 나의 양친은 내 뒤쪽으로 바느질 판 양쪽에 선채 그들의 손을 판위로 내밀어 세번째의 외손자를 받았다. 그 아이는 몸이 완전히 나오기도 전에 울기 시작하였다. 나의 새로운 아이 ‘폴’을 어깨 너머로 보았을 때가 오전 4:15이었다.
조그마한 ‘폴’의 배에 연결되어 있는 탯줄은 아직 나의 복부에 들어 있는 태반에 연결되어 있었다. 태반은 뱃 속에 들어 있는 기관으로 아이가 호흡하고 노폐물을 방출하고 생존을 위한 다른 기능을 수행하는 데 필요한 아주 놀라운 기관이다. 몇분 동안에 탯줄은 피가 가득차서 검어졌다. 그러나 어머니가 나의 몸 아랫쪽에 ‘폴’을 계속 들고 있자 그 피는 작은 그 소유주에게로 흘러 들어갔다. 그러자 그 줄은 약해져서 생명없는 하얀 껍질이 되었다. 이제 분명히 자를 때가 된 것이다.
그 때에는 원래 산파 역할을 하기로 한 사람이 이미 도착해 있었으며 그 여자가 ‘폴’의 몸에서 몇 ‘인치’ 떨어져 두 곳을 매고 나서 그 두 마디 사이를 끊었다. 매건 매지 않건 출혈의 위험성은 없을 것 같았다. 며칠이 지나니까 태의 나머지가 말라 붙어 떨어져 버렸다.
출산 후의 간호
얼마 있지 않아 아빠와 할아버지가 부엌에서 ‘폴’을 처음으로 목욕시키고 그의 피부를 ‘올리브’유로 닦아냈다. 그에게서 곧 ‘이태리’ 식품과 같은 냄새가 풍겼다. 우리는 소아용 저울을 하나 사 두었다. 출산 시에 무게를 달지 않아도 아이의 생존과는 관련이 별로 없지만 많은 주에서는 출생 시의 무게를 기록하기를 원하기 때문에 그렇게 하면 등록하는 데 조금 더 편리하다. 이제 ‘폴’을 보기 위해서 식구 전체가 부엌으로 갔기 때문에 나는 진통의 마지막 단계를 기다리며 재봉실에 혼자 서 있었다.
약 15분 후에 출산의 마지막 단계인 태반이 나왔다. 우리는 매끄럽게 보이고 손상된 흔적이 없는가를 알아 보려고 그것을 검사하였다. 태반의 일부가 자궁 속에 남아 있어도 후에 출혈을 일으킬 수 있다. 우리는 ‘비닐’ 봉지에 담아 쓰레기 통에 버렸다.
이제 나는 심한 진통이 시작된 후 처음으로 눕고 싶은 생각이 났다. 그러한 점들에 관하여 잘 아는 나의 친구는 질이 파열되었는지 검사하였다. 나는 필요하다면 꿰매기 위해서 병원에 갈 계획을 세워두고 있었다. 나의 어머니와 친구는 깨끗한 잠옷으로 갈아입도록 나를 도와 주었으며 위생 수건들을 갖다 주었다. 그 다음에 나는 바느질 대에서 내려와서 따스한 침대가 나를 기다리고 있는 부모님의 침실로 걸어갔다.
이제 옷이 입혀지고 담요를 두른 ‘폴’이 방으로 오게 되었고 이어서 나의 품에 안기게 되었다. 우리는 태 밖으로 나와서 그가 첫 식사를 열심히 먹는 것을 보고 흥미를 느꼈다. 젖을 빨면 자궁이 수축되고 그 결과 끊어진 혈관이 막혀 과도한 출혈을 막게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가 옆에 있는 것은 위안이 되었다. 또한 「오늘의 건강」이란 책에서 ‘뉴우요오크’의 산부인과 의사 ‘어윈 차본’이 최근에 이렇게 설명한 것은 흥미있다. “자기 아이에게 젖을 먹이는 산모의 자궁은 임신 전의 크기로 회복되지만 젖을 먹이지 않는 산모의 자궁은 임신 전 보다 어느 정도 커진 상태를 계속 유지하게 된다.”
곧 ‘폴’은 잠이 들었고 우리 모두는 식탁에 앉아 아침 식사를 들면서 좀 전까지의 일을 곰곰히 생각해 보았다. 우리 모두는 좀 더 친근감을 느꼈으며 우리의 새로운 가족이 무사히 도착한 데 대하여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드렸다.
끝으로 나는 모든 산모들에게—특히 첫 아이를 낳으려는 사람에게는—집에서 출산하도록 권하는 것이 아님을 강조하고 싶다. 또한 나는 임산부가 가능하다면 언제나 능숙한 의사에게 검진을 받는 것이 중요함을 강조하고 싶다. 많은 경우에, 그러한 사람들은 출산 시에 있을 수 있는 병발증에 대해 진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시에 산모가 잘 알아두고 경험있는 사람의 도움을 받는다면 내가 한 것처럼 집에서도 출산할 수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기고.
[각주]
[18면 삽입]
“나는 친정 어머니가 사용하는 바느질 판 위에서 해산하도록 마련하였다”
[19면 삽입]
“나는 반쯤 서고 반쯤 쭈그려 앉은 자세로 분만하였다”
[20면 삽입]
“아기는 몸이 완전히 나오기도 전에 울기 시작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