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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단하는 자가 되지 않도록 주의하라!
  • 깨어라!—19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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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어라!—1976
깨76 12/8 3-4면

중단하는 자가 되지 않도록 주의하라!

‘정오가 지났는데도 내 아들이 잠옷 바람으로 부엌을 들락날락하였을 때 그 애의 어깨를 잡고 이가 덜덜거릴 때까지 흔들어 놓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 애는 오후에 대부분 빈둥거리고 누워서 전축에서 흘러 나오는 ‘로큰로울’ 음악을 듣다가 갑자기 힘이 나면 청바지와 ‘스웨터’를 걸치고 ‘오오토바이’를 타고 요란스레 시내로 질주할 것이 뻔하였다. 그 애는 대학을 완전히 중단하였다. 우리의 생각에는 그 애가 만사를 포기하고, 나머지 생애를 목적없이 빈둥거리며 보내려는 것으로 보인다.’a

수심 어린 어느 부모의 이 말은 당신의 귀에도 익은 소리인가?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학교 뿐만 아니라 결혼 생활, 가정 생활, 생계비를 위한 직장 등 아주 기본적인 책임마저도 이행하지 않고 중단하고 있다. 사람들이 중단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매일 힘들여 일을 해도 아무 보람이 없어 마치 개미가 쳇바퀴 도는 것 같다고 불평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한 사람들에게는 인생의 목적이 없다. 좌절감에서 벗어나기 위해 그들은 사람들이 ‘제도’라고 부르는 것으로부터 무턱대고 나와 버린다.

인간적 업무에서 좌절감을 느낀다고 하여 개성에 심각한 결함이 있음을 의미하는가?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성서는 대부분의 인간 활동이 좌절감을 일으킨다는 점을 이렇게 시인하고 있다. “내가 해 아래서 행하는 모든 일을 본즉 다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로다.” (전도 1:14) 이 세상에서 ‘앞서려는 것’에 대하여 동일한 성서 필자는 다음과 같이 선언하고 있다. “내가 또 본즉 사람이 모든 수고와 여러 가지 교묘한 일로 인하여 이웃에게 시기를 받으니 이것도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로다”—전도 4:4.

그러나 중도에서 그만 두고 목적없이 빈둥거리는 것이 그 해결책은 아니다. 인간에게는 생의 목적, 보람을 느끼게 하는 어떤 것이 필요하다. 성서는 그러한 것을 제공해 준다. 그리고 그렇게 하면서 성서는 전 인류의 장래와 관련된 놀라운 희망을 알려 주고 있다.

하나님께서 멀지않아 실망적인 현 사물의 제도를 멸하시고 그 대신 의로운 새 제도를 세우실 것이라고 성서에 예언된 것을 당신은 알고 있는가? (베드로 후 3:11-13) 그 때에는 하나님께서 “모든 눈물을[인류의]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할 것이다. (계시 21:4) 그것은 참으로 좋은 소식이 아닌가? 그러나 언제 그것이 이루어질 것인가?

예수께서는 현 사물의 제도의 ‘결말’ 즉 마지막 기간의 ‘징조’로서 유례없는 전쟁, 식량 부족, 온역, 불법의 증가 등등 무서운 재난들을 예언하셨다. (마태 24:3-12, 34 신세; 계시 6:1-8) 인류는 1914년 이래 전세계적인 범위로 그러한 일이 발생하는 것을 보아왔다. 다른 많은 성서 예언과 함께 예수께서 말씀하신 징조가 우리 시대에 성취되고 있다는 것은 지금 이 제도의 “마지막 날”이 61년 이상 흘러갔음을 의미한다. (디모데 후 3:1-5, 새번역) 그것은 오늘날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놀라운 생의 목적을 가질 기회를 열어 주고 있다. 왜 그러한가?

왜냐 하면 ‘결말의 징조’의 또 다른 부면으로서 예수께서 “이 왕국의 좋은 소식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되기 위하여 사람이 거주하는 온 땅에 전파될 것입니다. 그러면 끝이 올 것입니다” 하고 예언하셨기 때문이다. (마태 24:14, 신세) 오늘날 210개 나라와 바다의 섬에서 2,000,000명 이상이 그러한 세계적인 증거 활동을 수행하고 있다.

그러나 “좋은 소식” 전파자들도 중단하는 자가 될 위험성이 있다. 그 이유는? 자주 무관심한 사람들을 만나게 되고 때로는 그들의 소식에 대하여 노골적인 반대를 받기도 하기 때문이다. ‘예레미야’의 경우와 같이 그 때문에 실망을 할 수도 있다. 그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여호와의 말씀으로 하여 내가 종일토록 치욕과 모욕거리가 됨이니이다. 내가 다시는 여호와를 선포하지 아니하며 그 이름으로 말하지 아니하리라.”—예레미야 20:8, 9.

오늘날의 “좋은 소식” 전파자도 마찬가지로 실망할 수 있는가? “사물의 제도의 결말”에 관한 유명한 예언 가운데서 예수께서는 추종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미리 경고하셨다. “그 때에 사람들이 너희를 환난에 넘겨 주겠으며 너희를 죽이리니 너희가 내 이름을 위하여 모든 민족에게 미움을 받으리라.” (마태 24:3 신세, 9) 그들은 어떠한 태도를 취해야 하는가?

‘예레미야’의 예를 고려해 보자. 그는 중단하는 자가 되지 않았다. 그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소식을 들을 필요가 있음을 알았다. ‘예레미야’는 계속하여 이렇게 말한다. “나의 중심이 불붙는 것 같아서 골수에 사무치니 답답하여 견딜 수 없나이다” (예레미야 20:9) 예수께서는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고 말씀하심으로써 그의 제자들도 그런 행로를 따르도록 격려하셨다. (마태 24:13) 당신은 무관심이나 반대 때문에 하나님의 봉사를 늦추는 일이 없도록 하겠다는 각오가 서 있는가?

중단하도록 압력을 가할 수 있는 또 다른 부면이 있다. 당신은 ‘그것이 무엇인가?’라고 질문할 것이다. ‘데마’의 경우를 생각해 보자. 한 때 그는 충실한 그리스도인이었고 사도 ‘바울’의 동료 일군이었다. (골로새 4:14; 빌레몬 24) 그러나 ‘로마’에 두번째로 투옥되었을 때 ‘바울’은 ‘디모데’에게 “‘데마’는 ··· 나를 버리”었다고 편지하였다. 그 이유는? “이 세상을 사랑하”였기 때문이다.—디모데 후 4:10.

경계를 게을리하는 사람들에게는 물질적인 부, 성적 부도덕 및 기타 유혹이나 소위 이 세상의 “자유” 등이 큰 매력을 나타낸다. 그러므로 통용 기원 1세기 말경에 사도 ‘요한’은 다음과 같이 편지할 필요를 느꼈다.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 온 것이라.” (요한 1서 2:15, 16) 오늘날의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의 유혹 때문에 하나님께 대한 봉사를 중단할 위험성이 더 크지 않는가?

그러한 것들 외에 그리스도인들은 초인간적인 악령들로부터 그리고 자신들의 죄있는 육체 내부로부터 압력을 받고 있다. (로마 7:13-23; 에베소 6:12) 다음과 같은 성서의 경고는 참으로 중요하다. “형제들아 너희가 삼가 혹 너희 중에 누가 믿지 아니하는 악심을 품고 살아 계신 하나님에게서 떨어질까 염려할 것이[라].”—히브리 3:12.

오늘날 “좋은 소식” 전파자들이 절실히 필요하기 때문에 모두는 의미있는 생의 목적을 가질 수 있다. 당신은 그러한 책임을 받아 들였는가? 그렇다면 그것을 중단하지 말라. 오히려 다음과 같이 선언한 성서 필자의 정신을 가지라. “우리는 뒤로 물러가 침륜에 빠질 자가 아니요 오직 영혼을 구원함에 이르는 믿음을 가진 자니라.”—히브리 10:39.

[각주]

a 1976년 3월호 「굿 하우스 키이핑」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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