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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어라!—1976
깨76 2/8 8-11면

투우—‘스페인’의 축제

‘스페인’ 주재 「깨어라!」 통신원 기

전세계적으로 투우 그림을 벽에 걸어놓은 집이 많다. 투우는 어디에서나 사람들의 호기심을 끈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투우를 실제 구경해 본 일이 없다. 투우란 어떤 것인가? 이제 우리와 함께 ‘스페인’의 ‘바르셀로나’에 있는 ‘황소 기념 광장’이라는 투우장으로 가보자.

가까이 가보면 흥분과 긴장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지붕이 없는 ‘무어’ 건물 입구에 사람들이 많이 모여 들고 있다. 그들은 500‘페세타’나 1,000‘페세타’(9‘달러’나 18‘달러’)를 주고 표를 사고 있다. 그러나 입장료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관객들이 몰려 든다.

투우장에 들어서면 왼편으로 ‘스탠드’ 높은 곳에 악단이 자리를 잡고 투우장에서 언제나 들려 주는 ‘가소 도블’이란 노래를 연주하고 있다. 오른편 높은 곳에는 귀빈석이 있는데 보통 투우를 관장하고 상품을 수여하는 지방 고위인사가 앉게 된다. ‘토릴레스’라고 표시를 한 구역이 있는 데 혈통을 자랑하는 여섯 마리의 황소가 그곳에 대기하고 있다. 그 소들은 적어도 4년 동안 준비를 갖추고 훈련된 것들이다. 이번의 경우에는 각 황소의 무게가 500‘킬로’나 나간다.

왼편 아래쪽에 세 명의 투우사가 대기하고 있다. 저마다 일단의 보조자들이 있는데 그들 중 어떤 사람은 말을 타고 있고 어떤 사람은 그냥 서 있다. 오늘안으로 이들 세 명의 투우사들이 각각 두 마리씩 전부 여섯마리의 소를 처치하게 될 것이다.

투우가 시작되다

투기장에는 세 사람 가운데서도 더 고참인 투우사가 먼저 나선다. 문이 열리자 우람하게 생긴 검은 소 한 마리가 튀어 나온다. 이 반 ‘톤’짜리 황소는 누구든지 한번 겨뤄보자는듯이 머리를 쳐들고 경기장 주변을 맴돈다. 그 소는 오래 기다릴 필요가 없다. 투우사가 쳐다보자 보조자들이 자기들의 ‘망토’로 그 소를 시험해 보기 시작한다.

이제 투우사는 경기장의 중앙에 자리를 잡고 큰 망토를 사용하여 몇 가지 묘기를 보이게 되며 소가 돌진해 올 때는 서서히 비켜선다. 투우사가 특별히 자신이 있을 때는 무릎을 꿇은 자세로 망토를 펄럭거리며 재빨리 움직이는 ‘망토’를 소가 몇번이고 지나가게 함으로써 자기의 ‘망토’ 사용 솜씨를 보인다. 관중은 목청을 다해 “올레! 올레!”하는 환호성으로 응답한다. 그런데 이제 나팔 소리가 들린다.

그 소리는 ‘망토’를 사용한 묘기가 끝나고 기마 투우사의 연기가 시작됨을 알리는 것이다. 손에 창을 든 기마 투우사는 경기장의 가장자리에 자리를 잡고 소가 공격해 오도록 유인한다. 그 소는 갑자기 훨씬 더 큰 목표물을 본다. 그 소는 돌진하여 말의 오른쪽 옆구리를 들이받는다. 눈을 가리고 갑옷을 입은 말을 소가 뿔로 들이받으니 말과 탄 사람은 그 충격 때문에 뒤로 밀려난다. 말은 균형을 유지하려고 버둥거리고 그와 때를 같이하여 기마 투우사는 창으로 황소의 어깨 부분을 찌르고 전력을 다해서 누른다. 그리하여 소의 근육과 심줄을 얼마간 절단하여 힘센 그 동물이 머리를 늘어뜨리게 해 놓는다. 그렇게 하는 것은 나중에 투우사가 작은 천을 사용한 묘기를 보여 주는 데 필요하다. 그 소는 잠시 물러 섰다가 재차 공격하지만 또 다시 창으로 어깨를 찔리고 더욱 힘이 빠져 속도가 줄게 된다.

이제는 ‘반데릴레로’들이 확약할 시간이다. 그들의 역할은 ‘반데릴라’ 즉 날카로운 갈고리가 달린 30‘인치’ 길이의 작살을 소의 어깨에 박아 놓는 일이다. 20 내지 30‘미터’ 거리에서 ‘반데릴레로’는 소리를 쳐서 소의 주의를 이끈다. 그 다음 양손에 작살을 들고 소에게 달려 간다. 결정적인 순간에 발꿈치를 들고 팔를 뻗쳐 갈고리 달린 작살을 소에 찌른다. 그러한 과정을 네번 쯤 반복하기도 하고 말을 타고 그렇게 하는 수도 있다.

이 때쯤 되면 소가 대부분 기력을 상실한다. 어깨의 상처에서 피가 솟아 몸으로 흘러 내린다. 안간 힘을 쓰느라고 소의 전신이 꿈틀 거린다. 나팔 소리가 다시 들리는 데 그것은 그 소가 최후를 맞이하는 장면이 시작됨을 알리는 것이다.

죽이러 들어감

죽이러 들어가기 전에 투우사는 모자를 벗어 들고 청중석에 있는 어떤 사람, 아마 저명 인사라든가 어떤 경우 일반 관중에게 그 소를 바친다. 그리고 나서 ‘뮬레타’ 즉 유인하는 데 사용하는 작은 천을 펴들고 소에게로 나아간다. 그는 그 천을 사용하여 소가 공격해 오도록 자극을 한다. 소는 기진맥진해 있지만 그 도전을 받아들여 돌진해 온다. 그러나 그 천이 빨갛기 때문에 그러는 것이 아니다. (소는 색맹임) 그것의 움직임 때문에 끌리는 것이다.

투우사는 소가 수차 자기 옆으로 지나가도록 하는데 그 위험한 뿔을 조심스럽게 살피면서도 매번 자기에게 더 가까이 지나가게끔한다. 한 번은 너무 가까이 지나가게 되어 투우사가 몸의 균형을 잃을 뻔한다. 그가 소를 마주 보기 위해 돌아서니 옷에 소의 피가 묻은 것이 보인다.

이제 투우사는 특수한 칼로 소를 처치할 준비를 한다. 소와 투우사는 최후의 결전을 위해 대면한다. 한 편은 지치고 피를 흘리고 숨을 헐덕이고 여섯 개의 갈고리 작살을 등에 꽂고 있다. 상대편은 두발을 모으고 서서 칼을 들고 노려본다.

규칙에 따라 깨끗이 해치우려면, 어깨뼈 사이를 단번에 칼이 손잡이 있는 데까지 들어가도록 찔러서 동맥이나 주요 기관을 베어버려야 한다. 그러나 단번에 그렇게 되는 일은 드물다. 이번의 경우에는 두번째에 가서 성공한다. 결국 완전히 되면 소는 잠시 동안 혀를 늘어뜨리고 입에서 침과 피를 쏟으면서 서 있다가 거꾸러져 죽는다. 확실히 하기 위해서 보조자가 특별한 단검을 가지고 와서 뿔 뒤쪽 척추를 끊는다.

죽인 후

이제는 관중이 의견을 표시할 때이다. 그러한 표현은 완전한 침묵(승인하지 않음을 나타냄)으로부터 휘파람을 불고 박수갈채를 보내고 손수건을 흔들 때까지 아주 다양하다. 그런 일이 진행되는 동안 몇마리의 말이 시체를 끌고 나간다. 소가 처음 나타나서 다 끝날 때까지 약 15분 걸린다.

이제 주관자는 ‘트로피’를 줄 것인가의 여부를 결정하게 된다. 투우사가 상당히 잘 했다면 소의 귀 하나를 받을 수 있다. 특별히 우아하고 훌륭한 솜씨를 보였다면 두개의 귀를 받을 수 있다. 최고도의 솜씨를 보였다면 최고상으로서 두귀와 꼬리를 받게 되며 그와 함께 영광과 명성을 얻고 그 후의 투우에서는 더 많은 보수를 받게 된다.

여러 세기에 걸친 투우

투우는 수천년에 걸쳐 발전해 왔다. ‘스페인’에서는 더욱 그러하였다. 그것은 ‘스페인’ 황소가 투우에 필요한 특성들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15년 동안 ‘스페인’ 투우는 급증하는 관객들로부터 경제적 지원을 많이 받았다. ‘스페인’에 오는 관광객은 매년 약 삼천만에 이른다. 대부분의 관광객은 투우가 ‘스페인’의 전형적 행사라고 생각하여 투우를 구경한다. 그러나 그것은 사실과 거리가 멀다. 투우가 ‘스페인’의 국기로 고려되고 있지만 대부분의 ‘스페인’ 사람들은 투우장에 가지 않으며 그에 대해 관심도 별로 없다. 그러나 구경하려는 사람들이 충분히 있는 한은 싸우려고 하는 투우사나 황소를 기르는 사육자들이 계속 존재할 것이다. 그러면 투우는 그것을 구경하는 관중에게 어떠한 영향을 주는가?

사람들에게 미치는 영향

투우에 대한 반응은 가지각색이다. 어떤 사람들은 그것을 싫어하는 데 어떤 사람들은 매력을 느낀다. 예를 들어 좋아하는 사람들은 소가 죽어도 아무렇지 않게 생각한다. 그들은 ‘망토’나 ‘뮬레타’를 사용하는 투우사의 솜씨나 우아함이나 기술에 더 흥미를 느낀다. 그러나 투우사의 솜씨나 우아함에 관심이 많은 것도 사실이지만 현대 투우의 옹호자들까지도 동물에 대한 잔인성은 인정하고 있다. 예를 들어 한 백과 사전은 투우가 오랫 동안의 변화를 통해 “잔인한 점들이 대부분 사라지게” 되었다고 주장하면서도 “아직도 어떤 점에서는 잔인”하다고 인정하였다.—‘고딕’체는 우리가 부가한 것임.

고려해야 할 다른 요소는 관중을 기쁘게 하기 위해서 투우사가 자기의 생명을 고의적으로 위험에 처하도록 한다는 점이다. 「브리타니카 백과사전」은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관중은 실제 사람이 죽는 것은 바라지 않는다. 그러나 그들은 죽을 수 있는 가능성 그리고 투우사가 부상당하는 것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또 그것을 기술적으로 피하는 것을 보고 좋아한다. 관중은 투우사가 단지 경기장에 나타나 가장 안전한 방법으로 소를 죽이고 상처도 하나 입지 않는 것을 보는 데는 관심이 없다. 그들은 기술과 우아함과 모험을 보기 원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투우는 사실상 사람과 소의 대결이라기 보다는 사람과 그 자신과의 대결인 것이다. 즉 그는 뿔이 얼마나 자기에게 가까이 지나가도록 모험을 할 것인가? 그는 청중을 기쁘게 하기 위해 어느 정도까지 할 것인가? 하는 것이 중요하다.”

흥미롭게도 ‘포르투갈’ 투우(소를 죽이게 되어있지 않다)는 관중을 별로 끌지 못한다.

예상할 수 있는 바와 같이 모든 투우가 투우사에게 유리하게만 진행되는 것은 아니다. 「브리타니카 백과 사전」은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거의 모든 투우사가, 경중의 차이는 있지만, 최소한 ‘시즌’에 한번씩은 뿔에 받힌다. ‘벨몬트’(1920년대의 유명한 투우사)는 50번 이상 뿔에 받혔다. (1700년 이후) 약 125명의 일류 투우사들 중 42명이 투우장에서 사망하였다. 그 수자에는 초보적인 투우사나 ‘반데릴레로’ 및 기마 투우사들의 사망은 포함되지 않았다.” 그렇지만 이번 ‘시즌’에도 ‘스페인’의 투우장에서는 3,000마리 이상의 황소가 격식에 따라 죽임을 당할 것이며 일주일에도 몇 번씩 수십명의 투우사들이 생명을 걸고 싸우게 될 것이다.

‘가톨릭’ 교회와 투우

오랫 동안 ‘가톨릭’ 교회는 투우를 금지하였다. 교황 ‘비오’ 5세(1566-1572)는 투우사들을 파문에 처하고 그리스도인으로서 매장을 거부한다는 교서를 발표하였다. ‘클레멘트’ 8세(1592-1605)에 이르기까지 다른 교황들도 그와 같은 입장을 고수하였다. ‘클레멘트’ 8세는 이전의 파문을 철회하였으나 ‘스페인’에서 성일에 투우를 해서는 안된다고 규정하였다. 그렇지만 투우는 종교적 활동과 축제들을 기념하는 전형적인 행사가 되어버렸다. 「유니버살 일러스트라다 백과 사전」은 그 점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한 제단에서 다른 제단으로 지성물을 이동하는 것을 투우로 축하하였다. 성자들의 유품이나 형상을 옮기는 일이나, 도시나 마을의 수호 성자를 기념하는 일, 교회를 세우는 일, 성자로 추대하는 일이나 다른 여러가지 종교적 축제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였다. 성 ‘테레사 디 졔수’를 성자로 추대할 때는 약 30회의 투우를 통해 200마리 이상의 소를 희생시켜 그것을 축하하였다. ‘팔렌시아’ 대성당 안에서 투우가 행해졌다. 성자들을 기념하기 위하여 죽임을 당한 소의 고기는 기념품으로서 그리고 병고치는 효력을 가진 것으로서 보존되었다. 교직체가 투우를 조직하였고 자금을 공급하였다. ··· ‘투들다’에서는 투우하는 날 아침에 ‘카푸친’회 수도승을 데려다 소들이 포학해지도록 주문을 외우게 하였다.”

투우사들은 다분히 종교적이다. 그러나 그들 중 어떤 사람들이 인정하는 바와 같이 미신적이다. 어떤 사람은 투우장마다 소와 대결하기에 앞서 투우사가 들어가 기도할 수 있는 부속 예배당이 있다고 설명하였다. 사실상 많은 투우사들은 여행 때에 일종의 휴대용 제단을 가지고 다니면서, ‘호텔’ 방에 그것을 설치해 놓고 경기장으로 가기 전에 기도를 한다.

투우가 그리스도인들에게 합당한가?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은 투우를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그와 관련하여 몇 가지 질문을 해 볼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어졌고 하나님은 사랑이라면 동물들에게 잔인한 행동을 하면서도 그 사람이 그러한 사랑을 나타내고 있다고 할 수 있는가? (창세 1:26; 요한 1서 4:8) 그리스도인이 자기 생명을 하나님께 헌신했다면 일부러 거치른 황소를 자극하여 자기 생명을 위험하게 하는 것이 이치적인가? 인간이나 동물이 “해됨도 없고 상함도 없”을 새 질서에서도 그러한 일이 계속 있을 것인가?—이사야 11:9

그러면 투우 장면 혹은 투우사의 그림을 수집하거나 집에 걸어두는 것은 어떤가? 생명의 선물을 경시하고 동물에 대한 잔인성을 공개적으로 나타내어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을 우상시하는 것은 균형잡힌 견해나 건전한 정신 혹은 좋은 판단력을 나타내는 것인가? 다른 점도 있다. 즉 집에 그러한 그림이 걸려 있을 때 동료 그리스도인들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칠 것인가? 혹은 동료 그리스도인이 투우장에 가는 것을 보면 그것을 본 사람은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 그러한 점들은 생각있는 그리스도인들이 고려해 보아야 할 심각한 질문들인 것이다. 왜냐 하면 사도 ‘바울’이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기 때문이다. “누구든지 자기의 유익을 구치 말고 남의 유익을 구하라.”—고린도 전 10:24.

[10면 삽화]

‘바르셀로나’의 ‘황소 기념 광장’ 부속 예배당 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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