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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로잔’ 회의—오순절 혹은 ‘바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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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로잔’ 회의—오순절 혹은 ‘바벨’?
  • 깨어라!—19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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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어라!—1975
깨75 3/22 17-20면

‘로잔’ 회의—오순절 혹은 ‘바벨’?

“‘로잔’과 같은 회의는 이전에 별로 없었다.”고 「이터니티」 잡지는 말하였다. “이 세계 복음 전도에 관한 국제적 회의는 선교회의였으며, 이색적이었다.”

다른 보도들은, “그것은 오순절과 같았다” 하는 식으로 ‘스위스 로잔’에서 작년 7월 16-25일에 열린 회의를 묘사하였다. 이 회의는 여러 나라, 문화 및 배경을 대표한 대표자들이 참석하였다. 그 공표된 목적은 “땅은 그의 음성을 들을지어다”를 성취하기 위한 수단 방법을 토론하기 위한 것이었다. 즉, 2000년까지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의 소식에 대한 그들의 견해를 전파할 것인가에 관한 것이었다.

많은 관찰자들은 ‘로잔’을 또 다른 “오순절”이라고까지 칭하지는 않지만, 대부분은 그것이 실로 “이색적”이라는 점에는 동의할 것이다. 최근 얼마 동안에 무분별한 복음 전도와 선교 회의들이 개최되었었다. 하지만 ‘로잔’은 종파를 초월하여, 정교한 방법으로, 여러 복음 전도 집단으로부터, 150개국으로부터 2,700명의 선정된 대표들이 모였었다. 십여개 언어들을 대표하였고, 회의에 칠개의 공식 언어가 사용되었다.

각계 각층의 선교계 인사들을 골고루 초대하는 데 특별한 노력이 경주되었다. 즉 여러 다른 국가와 문화계의 사람일 뿐 아니라, 여자, 교직자, 평신도, 복음 전도자, 선교사, 교육자, 젊은이 및 노인들이 포함되었다. ‘제 삼 세계 국가들’로부터 온 대표자 천여명 중의 많은 사람들은 등록금으로만도 수주의 급료에 해당하는 돈을 지불하였다.

‘로잔’ 회의는 또한 실무회의로 형성되었다는 점에 있어서 이색적이었다. 지구상 방방곡곡에 그리스도교국의 선교 활동이 미친 범위를 설명하는 상세한 보고서가 사전에 작성되었다. 또한 ‘아파트’에 거주하는 사람들 혹은 거대한 사무실 ‘빌딩’에서 일하는 사람들처럼 “그리스도인” 세계의 접근하기 어려운 사람들을 어떻게 접촉하느냐 하는 점도 중점적으로 다루어졌다. 그러므로 조직자들은 그 회의가 단순히 신학과 이론에 그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참석자들을 “참가자”들이라고 하였다.

또한 이 특별한 회의에 대하여 ‘뉴우스’ 보도도 대단하였다. ‘빌리 그래함’이 처음 그 회의를 발기한 때부터 그에 대한 관심이 광범하게 일어났다. 그는 나중에 명예 의장이 되었으며, 동시에 특별 연사로서 일하였다. 준비하는 데만도 수개월이 걸렸으며, 결국 삼백만 ‘달러’ 이상이 들어갔다.

왜 지금에 와서?

돌연히 열렬한 복음 전도의 필요성이 이 종교 지도자들에게 동튼 것 같이 보인다. 사년전만 해도 대부분이 그런 회의를 좋아하지 않는 것이 세계적 여론이었다. 그들은 이년도 못되어 그들의 견해를 달리하여, ‘로잔’ 회의를 준비하기 시작하였다. “지금이야말로 세계적 복음 증거의 좋은 기회이다.”라고 이사 중 한 사람은 말하고, 이어서 “그러므로 이 좋은 기회를 타서 현 세기에 우리는 세계적 복음 전파의 목표를 향해서 움직여야 한다는 것이 일치된 의견이다.”라고 말하였다. 그렇게 짧은 기간에 태도가 변경된 이유는 무엇인가?

‘로잔’ 회의에 참석한 아무도 확실히 모른 것 같다. 그러나 여러 연사들은 ‘세계 상태는 그리스도에 대한 증거를 위해 무르익었다.’고 말하였다. ‘스위스’의 ‘오스 기네스’는 사람들은 “세속 사상의 붕괴”로 인하여 지금 그리스도교의 소식에 굉장한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그의 의견을 말하였다. 다른 주 연사, 영국의 ‘말콤 머거리지’도 ‘긴네스’에 동의하여 이렇게 말하였다. “나 보기에는 오래 전부터, 아직도 서구 문명이라고 불리우는 이 문명이 와해 단계에 있으며, 또 하나의 암흑 세계가 이미 시작되었든지, 아니면 닥치리라는 것이 의심할 여지없이 분명하다.”

그러나 물론 이런 여러 종교에 속한 복음 지도자들의 압도적인 질문은, 그리스도의 성서 소식에 대한 돌연한 관심의 원인이야 어디에 있든지, 그들이 전세계에 복음을 전할 수 있겠는가? 하는 점이다.

복음 전도자들이 세계에 전도를 할 수 있는가?

이런 의욕을 비난할 수는 없다. 왜냐 하면 예수께서, “그러므로 가서 모든 나라의 백성으로 제자를 삼고,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그들에게 침례를 주고, 내가 여러분에게 명령한 모든 것들을 그들이 지키도록 가르치십시오.”라고 교훈하셨기 때문이다.—마태 28:19, 20, 신세.

그러나 이것이 수행되어야 한다고 인정하는 것 이상이 고려되어야 한다. “모든 나라의 백성에게 가고자 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예수께서 주신 ‘모든 명령’을 순종하고 있어야 한다. 그들 자신들이 예수의 음성을 청종해야 한다. 더우기, 예수의 명령은 모순이 없으므로 그를 순종하는 모두는 필연적으로 서로 연합해 있어야 한다. 제 일세기에 오순절에 모인 예수의 추종자들을 생각해 보라. 그들은 모두 같은 정신을 가지고 평화를 유지하지 않았는가? 물론 그들은 그러했다.—사도 행전 2장.

그러나 ‘로잔’에서는 대표자들이 진실로 예수의 말씀에 대한 참된 순종에 기초하여 연합을 유지 하였었는가? 그것을 알아 보기 위하여 ‘로잔’에서 연설되고 행해진 바를 예수의 실제 가르침과 비교해 보자.

예수께서는 그의 추종자들에 관하여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 같이 저희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였”으며, 이는 “저희도 다 하나가 되”기 위함이라고 말씀하셨다. (요한 17:16, 21) 예수께서는 분명히 그의 추종자들 사이에 국가적, 인종적 경계를 둘 것을 뜻하시지 않았다. 그러나 ‘로잔’에서는 세상의 국가주의적, 인종적 차별이 매우 컸었다.

한 ‘아시아’국의 대표자들은 다른 ‘아시아’국의 국기가 밖에 이전 대회 때에 세워 놓은 그대로 서있던 처사에 대하여 분개하였다. 어떤 ‘아프리카’의 대표자들은 그 대부분이 격리된 숙소에 임명된 것을 불평하였다. 어떤 ‘아프리카’인들은 외국인들이 그들의 나라 밖으로 나가야 할 사항, 즉 ‘선교사 활동 중지’를 제안하였다. 이 모임을 강하게 지지한 「크리스차니티 투데이」지는 “많은 경우에 있어서, 참여자들은 자국에서 있었던 분열을 ‘로잔’에 그대로 가져왔으며, 국가적 술책으로 회기는 흔히 긴장과 소란을 겪었다”고 말하였다.

회의 지도자들은 그런 경쟁을 망각하지 않고 심지어는 거기에 주의를 환기시켰다. 그러나 여하튼 1,900명의 대표자들과 ‘업저어버’들이 서명하였고, ‘가장 중대한 문제에 대한 복음적 합의서’라고 하는 ‘로잔’ 언약에는 일관성이 없게도 제5항에 복음 전도와 사회-정치 관여는 두 가지 다 우리 그리스도인 의무이다”고 하였다. (‘고딕’체는 발행자가) 예수의 외침은 그의 추종자들이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이었고, 그러므로 진실로 예수께 청종하는 자들이 장애물을 초월한 연합을 이루도록 강조하셨다. 그러나 ‘로잔’ 회의는 바로 그와 반대의 길을 격려하였다.

이제, 이런 문제들 외에 이 회의에서 나타난 종교적 불화를 생각해 보라. 예수께서는 그의 참 추종자들에게 “내 안에 거하라”고 요구하신다. (요한 15:4) ‘로잔’ 대표자들은 예수와 함께 연합하였는가?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는가?

‘로잔’에 대표자를 참석시켰던 성공회, 침례교, “그리스도의 제자들”, 자유 감리교, ‘루터’교, ‘메노나이트’교, 개혁 장로교 등이 각각 서로 반대되는 교리를 가르치고 있는데, 그 모두가 예수와 함께 어떻게 연합할 수 있겠는가? 그것은 전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고린도 전 1:10) 그러므로 다른 면으로는 물론 종교적으로도 ‘로잔’에서 그리스도와 같은 연합은 없었다.

그러나 설사 그들이 연합했다 할지라도, 어떻게 “복음 전도자들”이 “모든 나라의 백성으로 제자를 삼”을 것을 희망할 수 있겠는가? 십일에 걸친 그 회의 기간에도 지상의 인구는 거의 이백만이 증가하였는데, 이것은 바꾸어 말하자면 ‘로잔’의 공식적 대표자 한 사람에게 650명에 해당한다. 복음전도 지도자들은 세계에 전파하는 데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을 자인한다. 그 도움을 위하여 그들은 어디로 향하고 있는가? “평신도”에게로 향한다.

“평신도”가 도울 수 있는가?

성령은 제 일세기 오순절에 참석하였던 남녀 노소를 움직여 “하나님의 큰 일”을 말하게 하였다. (사도 2:11) ‘브라질’의 ‘에이치. 슈나이더’ 교수는 복음에 관하여 아는 바를 전하는 것은 단지 교직자들에게 만이 아니라 모든 그리스도인들 위에 놓여진 의무임을 강조하였다. ‘달라스’ 신학교의 ‘조오지 더불류. 피터스’도 동일하게 “복음 전도의 주된 인력 자원”으로서 “대량의 교회 신자들”을 사용해야 할 동일한 필요성을 강조하였다.

그러나 그 “주된 인적 자원”도 마른 우물일지 모른다. ‘아르헨티나’의 침례교인 ‘레네파틸라’는 대표자들에게 상기시키기를, 평균 교회 신자는 예수의 말씀에 정신적 동의 이상을 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그는 말하기를 대부분은 단축된 혹은 “생략된 복음”을 받아 들였다고 말하고, 이렇게 부언하였다. “반 복음은 권위도 없고 장래도 없다. 유명한 노새처럼, 그것은 조상의 자랑도 후손의 희망도 없다.”

바꾸어 말하자면, 수많은 연사들이 명백히 말한 바와 같이 교회들은 나머지 세상 사람들에게 전도할 희망을 갖기 전에 교회 신자들을 먼저 개종시켜야 한다. “평신도들”은 ‘로잔’의 경우에서 설명해 주는 바와 같이 “임명된 그리스도인들”로 구성되어 있지 않다. 한 참석자는 “인도에 가 있는 ‘에이레’ 선교인들에게 고국으로 돌아가 ‘에이레’ 사람에게 전도하라”고 주의를 환기시켰다. 왜냐 하면 그 나라에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 사이의 살륙전이 있기 때문이다. ‘에이레’ 사람들은 변명하려고 할지 모르지만, “폭력 지지자들은 그들이 명의상 어떤 종파에 속한다고 주장할지 모르지만 독실한 그리스도인들이 아니다.”라는 말을 부정할 수는 없다. 분명히 그들은 전쟁을 중단하기에 충분한 “독실한 그리스도인들”이 아님이 분명하다. 하지만, “그리스도교”라고 주장하는 어느 나라가 자기 나라 사람들은 더욱, ‘그리스도에게 독실’하다고 솔직하게 말할 수 있는가?

교회 성원들이 그리스도의 말씀에 대하여 그렇게도 흔히 귀를 닫아버리는 이유는 무엇인가? 왜냐 하면 교직자들이 그들을 가르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교직자 자신들도 예수의 가르침을 믿지 않는다. ‘페루’의 ‘사무엘 에스코바르’와 같은 ‘로잔’의 어떤 사람들은, 평신도들에게 “그들의 가정 생활에서 그리스도의 가르침과 본을 적용”할 것을 강조해야 한다고 말하였다. 그러나 일부다처주의를 허용하는 종교의 신자들에게 전파한 사실에 대한 보고서는 그 보고서 작성자들이 실제 그것을 믿고 있음을 나타내고 있는가? 여러 명의 아내를 가지고 있는 남자가 ‘그리스도를 받아들였다’고 하자. 그 다음에 어떻게 되는가? 보고서를 보면 이러하다. “그것은 아주 미묘한 일이다. 그러나 이 보고서의 작성자 대부분은 남편이 그의 아내들을 내보내서도 안되고 동시에 새 아내들을 얻어서도 안된다고 믿고 있다.” 그것은 다처주의를 그리스도인 회중 안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지원하는 처사이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결혼에 관하여, “둘”이, 즉 한 남자와 한 여자가 “한 몸이 될찌니라”고 하셨다. (마태 19:5) 회의 공식 보고는 예수의 말씀을 고의적으로 은폐하려는 것이었다. 그러니 일반 교회 신자들이 가정 생활에 관한 예수의 가르침을 알면서도 실생활에 적용하지 않는 것이 놀랄 것이 있는가? 어떻게 그런 사람들이 세상 사람들에게 전도할 “주된 인적 자원”이 되겠는가?

그리스도를 찾기 위하여 다른 곳을 보라

세상에 많은 정직한 사람들은 예수의 음성을 듣고 있다. 그들은 사람을 자유케 하는 진리를 열망한다. 그러나 솔직하게 그 소식은 ‘로잔’ 회의의 결과로서 오지 않을 것이다.

‘로잔’의 어떤 지지자들은 여러 언어를 사용한 많은 사람들이 예수의 공동 소식을 지지한 ‘또 다른 오순절’이라고 자랑하였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그것은 여러 세기를 통하여 사람들을 분열시켰던 동일한 옛 신조들을 고수하는 갖가지 종파, 정치, 인종으로 나누인 ‘바벨’이었다. 그것은 신도들 전체가 더 “자유적” 교회 집단의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실제로는 예수의 음성을 듣지 않았음을 복음전도 지도자들이 인정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동시에 그것은, 어떻게 해서 그 교인들이 전세계 복음화에 도움을 주리라고 요행을 기대하는 간절한 표현이었다.

많은 혼잡하고 불확실한 음성들이 ‘로잔’에서 있었다. 그러나 그들 가운데 예수의 음성은 없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은 예수의 명확한 소식을 듣기 위하여 다른 곳으로 그들의 귀를 기울여야 한다.

[18면 삽화]

영국 국교회 주교 ‘잭 데인’(왼쪽)과 복음 전도자 ‘빌리 그래햄’이 ‘로잔’ 언약에 서명한다. 그 첫째 점은 이러하다. “우리는 세상을 따르게 됨으로 혹은 세상을 떠남으로써 우리의 천직을 흔히 부인하였고, 우리의 사명에 실패한 것을 자인하고 수치로 여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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