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화가 ‘콘코디아 신학교’를 분열시키다
충격파가 아직도 ‘미주우리’ 주(미국), ‘세인트 루이스’의 ‘콘코디아 신학교’를 뒤흔들고 있다. 지난 수개월 동안 미국 ‘루터’교 신학교 중 가장 큰 이 학교는 대대적인 반항으로 비틀거려 왔다. 현재 거의 모든 주요 종교 조직들이 고난에 처해 있기는 하지만 그 신학교의 사건은 일부 사람들에게는 의외의 일로 보일 것이다. 그 이유는?
왜냐 하면, 135년의 연륜을 가진 동 ‘콘코디아(“조화”라는 의미임) 신학교’는 매우 안전하게 보였었기 때문이다. 동 신학교는, 종교 문제에서 “보수적” 성격이 강하며 3백만의 교인을 포용하고 있는 ‘루터’ 교회—‘미주우리’ 협의회의 지원을 받고 있다.
그러면 어떠한 일이 발생하였는가?
타격적인 불화
금년 1월에 동 신학교 학장 ‘존 에이치. 티이첸’이 학교 관리 위원회에 의하여 정직을 당하였다. 동 위원회가 지적한 이유는, 협의회의 ‘제이. 에이. 오. 프류스’ 회장에 대한 반항을 포함한, 배임 및 거짓 교리 옹호라는 것이었다. 동 해고 조치에 대한 반응으로 교수단의 대부분은 출강을 거부하였다. 수일 만에 43명의 교수, 즉 5명을 제외한 전원은 출강 거부로 해고되었다.
‘티이첸’이 정직된지 한달 후, 총수 약 600명의 학생들 중 450명 이상이 ‘유배된 신학교’로 축출된 교수들을 따라 갔다. 그 학교는 ‘세미넥스’(Seminex, 즉, ‘seminary in exile’, ‘유배된 신학교’)라고 불리우게 되었다. 학생들의 행동은 자발적이었다. 그들은 ‘콘코디아 신학교’에 남아 있으면 자기들이 “비-그리스도교적”이며 “부도덕”한 조치라고 개탄한 바 있는 그 교수들의 해고 조치에 동조함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느꼈던 것이다.
이 새로운 신학교는 근처의 예수회가 관리하는 ‘세인트루이스’ 대학교의 신학부 그리고 매우 자유주의적인 연합 그리스도 교회가 운영하는 ‘에덴 신학교’의 시설을 빌려 운영하였다. 동교의 계획은 복음주의 ‘루터’교 선교단(ELIM)의 재정적인 지원을 받았으며, 기부금에 의존하고 있다. 새로운 시설을 이용하여 강의를 재개한지 한 달 후인 3월 중순경 복음주의 ‘루터’교 선교단은 동 단체의 출판물인 「미주우리 인 퍼스펙티브」지를 통하여 동 신학교가 800,000‘달라’에 달하는 기부금과 헌물을 접수하였다고 보도하였다.
불과 소수의 학생들만이 ‘콘코디아 신학교’에 남았다. 춘계 학기에는 약 90명의 학생들과 19명의 상임 및 객원 교수들이 이 학교에 남아 있었다. 분명히 이들 중 다수도 실상은 분파 집단에 가담하고 싶었지만, 부모들의 압력, 재정적 두려움 및 앞날에 대한 의구심 때문에 남아 있었던 것이다. 몇몇 학생들은 신학 과정을 아주 중단해 버렸다.
이러한 불화는 상당한 변화였다. 대학생들의 기성 체제에 대한 반항이 유행처럼 여겨지던 1960년대에도 ‘콘코디아 신학교’는 잠잠하였다. 사실상, 그 기간 중에 대학가에서는 동 신학교가 “만족의 온상”이라는 익살스러운 말이 퍼졌을 정도였다.
그러나, 그러한 만족의 시절은 영원히 사라져버렸다. 그 이유는? 무엇이 그러한 불화의 불을 질렀는가?
불화의 주 원인
문제의 저변에는 교리상의 견해 차이가 있다. 각 진영—보수파와 온건파—은 제 나름의 견해를 지지하기 위하여 광범위한 주장을 펴고 있다. 간단히 말하여 그들의 주장은 무엇인가?
보수파는 “성경의 모든 말씀”은 하나님이 직접적인 영감에 의한 것으로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큰 물고기가 ‘요나’를 삼켰다고 성서에 기록되어 있다면 그것은 실제 발생하였던 일이라고 믿는다. 그들은 창세기 1장부터 3장에 서술되어 있는 창조, ‘에덴’ 동산 및 범죄에 관한 기록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인다고 주장한다.
한편, 온건파는 자기들도 “성서를 영감받아,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으로 무조건 받아들인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들은 이른바 ‘역사적 비평 방식’이라는 것을 이용하여 성서를 해석한다. 이 방식에 따르면, 예수께서 전파하신 복음 즉 좋은 소식이 성경의 제반 부분들을 평가하는 기준이라고 온건파는 생각한다. 때때로 보수파는 이것을 “복음 환원법”(福音 還元法)이라고 부른다.
흥미롭게도, 온건파는 자기들의 입장과 보수파의 입장 사이의 차이를 가능한 한 작게 보이게 하려고 노력한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미주우리’ 협의회에 속한 많은 사람들이 전통적으로 보수적 견해를 더 좋아하기 때문이다. 만일 온건파가 어떤 식으로든 성서를 의심하는 것처럼 보이면, 그들은 동 교파의 상당한 부분으로부터 소외당할 것이다.
그러므로 온건파는 종종 자기들의 성경 해설에 신중함과 조심성을 보인다. 예를 들면 이러하다. 만일 보수파 한 사람이 온건파 사람에게 “당신은 ‘요나’가 실존 인물임과 큰 물고기가 실제 그를 삼켰음을 믿는가?” 하고 묻는다면 그 온건파 사람은 어떻게 대답할 것인가? 온건파 교수인 ‘리차드 알. 캐머러’는 이렇게 대답한다. “나는 내가 ‘요나’를 역사적 인물이 아니라고 생각하였거나 그 이야기를 과도한 기적인양 신비화하려고 하였다고는 생각치 않는다. 이미 목회 시절부터 내가 최대의 기적이라고 느낀 점은 그가 ‘물고기 뱃속에서’ 하나님께 기도드린 그 아름다운 말들을 기억한 그 기억력이다(2:1 이하).”
보수파는 그러한 대답을 듣거나 읽고 “그 교수가 실제로 믿는 것은 무엇인가? 그는 ‘요나’를 실존 인물로 그리고 큰 물고기가 참으로 그를 삼킨 일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인가 아닌가?” 하고 의아하게 생각한다. 그 대답은 보수파를 만족시킬 만큼 명확지가 않다.
“그리고 「창세기」의 창조 기사에 대하여는 어떠한가? 그것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는가?” 하고 보수파는 질문한다.
그 온건파 교수는 이렇게 대답한다. “‘마르틴 루터’처럼 나도 「창세기」 1장의 궁극적인 해석에 대하여 신중을 기하였다. 그리고 「창세기」 3장을 인간과 ‘사단’ 사이의 최초의 투쟁에 대한 희곡 이외의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을 나는 아직 모른다. 게다가 거기서는 ‘사단’을 언급하지 않고 있다.”
이것 또한 보수파를 매우 모호하게 만들 뿐이며 성서에 대한 믿음으로부터 교활하게 이탈시키고 있다. 온건파의 주장이야 어떻든 두 집단의 성서에 대한 견해 사이에는 차이가 크다.
“교회 정치”도 불화의 원인
불화는 교리상의 차이만이 아니다. 교권(教權), 즉 “교회 정치” 문제도 있다. 교회에서 권세를 잡고 있는 자들과 그것을 잡고자 하는 자들 사이에 분쟁이 따르고 있다.
동 협의회 회장 ‘프류스’는 ‘미주우리’ 협의회 운영 방침에 대해 강한 견해를 지니고 있음이 분명하다. 그의 비평자들 중 하나인 ‘샘 로드’ 박사는 ‘프류스’가 “의심과 불신을 조장해 왔다”고 말하고 있다. 신학 교육 합동 기획 이사인 ‘존댐’ 박사는 말하기를 협의회 회장은 “감히 그의 견해에 동조하지 않는 사람들을 모조리 파멸시키기 위하여 자기 권한을 아낌없이 휘둘러 왔다”고 단언하였다.
‘프류스’가 4년 이상 동 협의회를 통솔하는 동안 그들에게 와서 불평의 원인에 관하여 자문을 구한 것은 두번 뿐이었다고 그들은 주장하고 있다. 그리고 이 경우 중의 한 번은 어떤 질문이든 사전에 서면으로 제출할 것을 요구함으로써 대화를 방해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보수파는 ‘티이첸’과 그의 추종자들에게 수차의 예비 교섭을 시도하였지만 응답이 없었다고 말하고 있다. 온건파는 정당한 교회의 권위에 복종하기를 원치 않는 것 뿐이라고 그들은 주장한다.
‘콘코디아’에 조화의 가능성은?
어느 쪽도 장래를 확실히 모르고 있다. 일부 사람들은 온건파가 떨어져 나가서 얼마 후 별개의 교회를 형성할까 우려하고 있다. ‘프류스’는 그 문제를 해결하는 데 10여년 걸릴 것이라고 했다고 한다.
의심할 여지없이 온건파는 성경적으로 몇가지 난처한 곤경에 처해 있다. 그 문제들을 ‘밀워키’의 ‘콘코디아’ 대학에 다니는 18세된 한 학생은 이러한 질문으로 요약하였다. “사람들이 ‘요나’와 고래에 관한 이야기 그리고 다른 성서의 이야기들을 신화라고 말한다면, 그들은 어디서 그칠 것인가? 그들은 그리스도의 부활까지도 신화라고 말할 것인가?” 그리고, 이러한 질문도 부가할 수 있을 것이다. 즉 만일 교리 문제에서 수문이 터진다면, 후일에 온건파 신학자들이 성서의 도덕 표준들도 ‘역사적 비평법’에 규제를 받아야 한다고 말한다면 무엇으로 막을 것인가?
다른 각도에서 보면, 성경과 ‘루터’교의 “수호자” 입장을 취하는 일부 보수주의자들도 마찬가지 난처한 질문을 안고 있다. 예를 들면, 그들이 그렇게 강하게 정죄하는 온건파는 어디에서 생겨났는가? 그들은 교회 밖에서 생겨났는가? 그렇지 않다. 그들은 바로 교회 내부에서 배태되고 성장하였다. 더 나아가서, 이 온건파 운동에 가담한 사람들은 신학교에서 소수에 불과하며, 거의 모든 조직에나 있게 마련인 소수의 반대 분자라고 부를 수 있는가? 이것도 그렇지 않다. 교수단과 학생의 약 80‘퍼센트’가 ‘콘코디아 신학교’를 버렸으니 이들을 단순히 소수파라고 할 수는 없다!
게다가 떨어져 나가서 ‘세미넥스’를 형성한 사람들이 모두 신학교를 갓 졸업한 젊은이들만은 아니다. 보수파는 그 유해한 ‘역사적-비평’ 방법의 영향은 비교적 새로운 것이라고 암시하기를 좋아한다. ‘미주우리’ 주, ‘벨폰테인’의 ‘미주우리’ 협의회 소속 목사인 ‘피. 지. 키일’은 말하기를 “지난 15년 내지 20년 동안 ‘콘코디아 신학교’ 직원들 중 여러 상이한 신학교, 신학 대학에 유학하여 ··· 다른 학교에서 사용하는 방식에 영향을 받은 다음 ··· 돌아와서 동 신학교의 교과 과정에 ··· 그들의 가르침을 침투시킨 사람들이 있었다.”고 말하였다. 이러한 관습은 의심할 바없이 ‘콘코디아신학교’의 불화에 기여하였다. 그러나 보수파에서 옳지 않다고 생각하는 모든 사상이 다 수입해 들인 것이거나, 새로운 것이 아니다. 앞서 인용한 바 온건파 견해를 밝힌 ‘캐머러’ 교수를 고려해 보라. 그는 46년 동안이나 교인 생활을 해 왔고 34년간을 그 학교에 재직하였다.
모든 요인을 종합해 보면, 보수파가 온건파 사상이라고 생각하는 그 사상에 크게 영향을 받은 것은 전체 교회이지, 단 하나의 파벌만은 아님이 분명하다. 문제의 심각성은, 자기들로서는 그 학교를 떠난 교수들을 대체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는 보수파의 말로써 지적되고 있다. 어떤 사람은 심지어 그만한 학식을 갖춘 다른 사람을 찾는 데는 “한 세대가 걸릴 것”이라고 자인하고 있다. 이러한 사실은, 전체 협의회가 실제로는 성서에 근거한 강한 보수적 견해가 아니라, 동일한 자유주의적 견해에 물들어 있음을 지적하는 것이 아닌가?
실제로, 이러한 사실을 보고 ‘루터’교 신학에 정통한 보수파는 놀랄 것이 없다.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마르틴 루터’ 자신이 실제로 일종의 “역사적 비평법”을 자기의 성서 연구에서 이용하였기 때문이다. 「크리스찬 센츄리」지는 보수파에게 이렇게 알려 준다.
“‘루터’는 이러한 방식을 창안하였을 뿐만 아니라 그것을 응용하였다. 이를 테면 「야고보서」의 신학에 대한 그의 비평, 「히브리서」에 관한 그의 의심, 그리고 「계시록」의 사용에 관한 그의 경고를 살펴보라. 어떤 성서 귀절과 복음의 내용 사이에 [‘루터’ 나름의 생각으로] 모순이 있으면, ‘루터’는 그 귀절을 무가치한 것이라고 선언하였다. 그는 이 점에 있어서 직해(直解)주의자는 아니었다.”
만일 ‘미주우리’ 협의회가 받들고 있는 ‘마르틴 루터’ 자신이 일종의 “복음 환원법”을 채용하였다면 그 기본 사상의 가지가 전체 교회에 침투한다는 것은 당연하지 않겠는가? 분명히 그러하다. 이것은 예수께서 산상수훈에서 말씀하신 것과 일치한다.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 (마태 7:18) 그러므로 온건파 사상이 ‘루터’ 교회에 침투해 있는 정도는 보수파가 인정하고 있는 정도보다 훨씬 큰 것이다.
이러한 사실을 일부 보수파는 두려워한다. 온건파가 교회의 지배권을 장악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온건파가 세력을 잡을 것인가?
만일 그렇게 된다면, 보수파는 어떻게 할 것인가? 물론 ‘미주우리’ 협의회의 많은 ‘루터’교 교인들은 그렇게 될 수는 없을 것이라고 믿으려 한다. 그러한 일이 발생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주의깊은 ‘루터’교인들은 그렇게 될 가능성이 있음을 알고 있다.
그들은 비교적 소수의 순회교구 대의원들만이 협의회 총회에서 교회 규칙 및 교권 문제를 놓고 투표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들의 투표 결과는 수많은 일반 ‘루터’교인들에게 영향을 미친다. 그러나 그들의 투표는 성서 또는 교리보다 외적인 요인에 영향을 받을 수도 있다. 예를 들면, 어떤 요인들인가?
목사들은 교회 내에서의 지위 때문에 투표권을 가진 순회교구 대의원 선출에 큰 영향력을 발휘한다. 이 사람들의 중요한 교회 문제에 대한 견해에 영향을 주는 것은 무엇인가? ‘톰 베이커’ 목사는 이렇게 말하였다. “125명의 목사들이 있는 ‘세인트 루이스’ 지역에서, 그들 중의 70내지 80 또는 90명은 ‘세미넥스’ 쪽으로 기우는 사람들인데, 이는 특별히 신학상으로 그러한 것이라기보다는 단순히 이들 신학교 교수들 중의 반수가 그들의 친척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온건파가 결국 협의회의 지배권을 장악할 수도 있다는 말은 전혀 당치않은 것이 아니다. ‘베이커’는 “지배권을 장악하거나 투표에서 이기기 위하여는 소수의 순회교구만 더 확보하면 된다.”고 말하였다. 만일 그러한 일이 발생한다면 보수파는 어떻게 할 것인가? 그러면 그들은 두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 한 가지로서 ‘베이거’는 이렇게 언급하였다. “이와 같은 어떤 특정한 교회 내에서 양심을 유지하기 위하여는 물론 협의회의 결의에 동의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러나, 보수파는 온건파를 “성서를 의심하는 자들”이라고 불러오지 않았는가? 그렇다면 어떻게 그들 중의 하나라도 “양심”을 가지고 온건파와 동조할 수 있겠는가? 그러면 다른 선택의 여지란?
그들은 자기들이 지금 온건파가 저지르고 있다고 비난하는 바로 그 일을 행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 그들은 ‘교권’에 반항하고, 아마 떨어져 나가서 소수교인들로 구성된 새로운 교회를 형성할 수도 있을 것이다.
동 협의회 산하에 성실하게 성서를 낭독하고 있는 ‘루터’교 교인들은 이 모든 교리적 혼란에 대해 눈이 멀어 있지 않다. 나아가서 그들은 교회 정치와 강한 개성의 충돌을 주시하고 있다. 그러나 솔직히 말하여, ‘미주우리’ 협의회의 ‘루터’교인들은 또한 사건의 진상 곧 내면을 살펴 보아야 할 것이다. ‘콘코디아 신학교’의 상황은 전체 교회가 심각한 문제로 점철되어 있음을 보여 주는 것임을 그들은 깨달아야 할 것이다.
‘미주우리’ 협의회 산하의 성실한 ‘루터’교인들은 하나님께서 어디엔가 성서의 진리를 참으로 믿는 하나의 조직을 마련하셨을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성경은 그 점을 확언하고 있다. (에베소 4:11-16) 그러나 자기네 협의회의 상황이 날로 심각해지고 있으므로, 그들 중 많은 사람들은 “그러한 하나님께서 승인하시는 조직을 다른 곳에서 찾아 보아야 할 것인가?” 하고 자문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