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AU를 자세히 살펴봄
‘리베리아’ 주재 「깨어라!」 통신원 기
1963년 5월 25일이었다. 제 1차 전‘아프리카’ 정상 회담은 실패의 위기에 놓였다. 31명의 ‘아프리카’ 지도자들은 독립국가 연맹 형성론을 둘러싸고 논쟁을 벌였다. 논쟁에 지친 끝에 헌장안이 각국 수뇌들에게 제시되었으나, 거부되고 말았다!
그러나 그날 ‘아디스 아바바’ 소재 ‘아프리카 회관’에서 회의를 가진 수뇌들은, 그들이 여러 가지 언어, 문화 및 정치적 견해로 분열되어 있지만, ‘아프리카’ 국가들에게 어떤 형태의 실제적 단일체를 가져오기로 결정하였다. ‘아프리카’의 유력자들은 오랫 동안 그것을 위하여 노력하여 왔다.
국가 수뇌들은 첫 번째 헌장안을 배척하고 나서 그들 자신이 두번째 시도를 하였다. 그들의 토론은 자정이 너머서까지 계속되었으나 이번에 표결이 있을 때에는 만장일치였다! 그 극적인 순간에 대하여 한 목격자는 이렇게 기술하였다. “그들이 곁에 있는 아무와도 악수를 할 때 환호와 갈채가 있었고 다른 때에는 냉소적인 사람들의 눈에 눈물이 흘렀다. ‘오에이유(OAU)’가 탄생한 것이다. 의혹과 논쟁과 설득과 탐색은 끝났다.”
해방과 단결
신생 ‘아프리카 단결 기구’(OAU: Organization of African Unity)는, 그 헌장에 의하면, 대륙으로부터 식민 정책을 제거하고, 참으로 ‘아프리카’를 단결시키기 위하여 창설되었다. 경제 협조, 중재를 통한 화해, 많은 다른 마련이 공약되었다. 이제 그 역사적 문서가 서명된 후 10여년이 흘렀다. 헌장의 공약 중 얼마나 많은 것을 OAU는 실현시켰는가?
창설된지 수개월 내에 ‘콩고’에서 다시 전쟁이 일어났다. 다른 신생국들은 국경 문제를 둘러싸고 격렬한 논쟁을 일으켰다. 초강대국들과 ‘아랍’ 세계는 이러한 분규에 좀처럼 관심을 갖지 않았다. 그러나 ‘아프리카’ 지도자들은 그들의 문제를 토론하는 논쟁에 솔선적 태도를 취하였다. 그 결과는? ‘콩고’에서의 두번째 대립은 처음보다 심하지 않았다. ‘모로코’와 ‘알제리아’ 사이의 싸움은 중지되었고 ‘소말리아’와 ‘이디오피아’는 회담을 시작하였다. 최종 해결에 이르지는 못하였으나 싸움보다는 회담이 좋았으며, OAU는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다. 그 후로 ‘기니아’와 ‘가나’, ‘콩고 공화국’과 ‘자이레’, ‘우간다’와 ‘탄자니아’, ‘이디오피아’와 ‘수단’, 및 ‘가본’과 적도 ‘기니아’ 사이의 문제를 성공적으로 중재하였다.
쇠퇴하는 기동력
그러나 그후 일부 사람들은 OAU가 원래의 기동력을 상실한 것이 아닌가 하고 의아하게 생각하였다. OAU의 모든 중재 노력이 성공을 거두었거나 즉시 시도된 것이 아니었다. 예를 들면 ‘나이지리아’의 내란은, 그 전쟁이 3개월간 계속될 때까지 OAU의사 일정에 오르지 않았으며 OAU조사 위원회는 그후 한달이 넘도록 현지에 도착하지 않았다. ‘우간다’의 ‘아시아’인을 위한 아무런 조치가 없었고 ‘부룬디’ 학살을 막기 위한 조치도 없었다. 비평가들은, 독립 국가의 문제에는 불개입한다는 구실로 태만이 가리워졌지만 그러한 개입이 ‘아프리카’식 행동이라고 비난하였다.
1973년 5월호 「아프리카」지에는 ‘라고스’ 대학교 ‘오그볼루 오콘지’의 기사와 관련하여 그 이상의 비평이 게재되었다.
“OAU는 분쟁을 해결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지 않는다. 회원국들은 기구보다 더 유력하였으며, 어떤 때에는, OAU가 실패할 때 성공을 거두었다. OAU는 진정한 노력없이 가능할 때에만 성공하는 경향이 있다!”
OAU자체의 구조에 대하여 ‘오그볼루 오콘지’는 ‘제네크 세르벤카’의 논평을 인용하였다.
“창설 이후 OAU의 역사는 명백히, 1963년에 ‘아디스 아바바’에서 발전된 이 기구가 ‘아프리카’의 적의의 즉각적인 해소자로서의 역할을 수행할 만큼 강하지 않음을 증명하였다. 과거와 현재의 분쟁은, 분쟁을 해결하기 위한 OAU헌장에 안출된 체제의 약점을 드러냈다. ··· 개개 ‘아프리카’ 정치인들은 OAU의 조직된 권위를 초월하는 우선권을 계속 가지고 있다.”
처소를 잃은 수십만명의 ‘아프리카’ 피난민은 어떠한가? OAU는 그들에 대하여 어떠한 조치를 취하였는가? 새로운 장소를 찾는 이들에게 도움을 주기 위한 국제 연합 공동 위원회와 함께 OAU사무국이 별도로 설치되었다. ‘조예칸가키’는 “OAU가 피난민 문제에 상당한 진보를 보였다”고 선언하였다.” ··· OAU를 통하여 재정착하고 ‘아프리카’ 여러 나라에서 정상적인 생활을 다시 시작한 피난민이 많다. 우리는 또한 ‘아프리카’ 안팎에 교육 시설을 마련하는 데 학령기의 어린 피난민과 함께 일할 수 있었다. ··· 그러므로 나는 지난 10년간의 우리의 기록이 적극적이고 격려적이었고 우리는 확신을 가지고 미래를 직면하고 있다고 말하고 싶다.”
경제적 협동
‘아프리카’는 발전을 절실히 필요로 하며 OAU는 이 대륙의 발전을 촉진하는 데 주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과거에 ‘아프리카’ 여러 나라는 거의 전적으로 미국과 ‘유럽’으로부터 경제 원조를 받았으나 이제 ‘프랑스’어를 말하는 나라들은 방향을 돌려 경제적 협동과 개발의 도움을 위하여 ‘아프리카’ 자매국에게 향하고 있다.
정치적 혼란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강한 상태를 유지하는 여러 지역의 경제적 공동체가 설립되었다. ‘항공 아프리카’와 ‘차드’호 및 ‘세네갈’ 강 유역 합동 시공과 같은 일부 계획은 말썽을 일으켰다. ‘몸바사’에서 ‘라고스’까지 ‘아프리카’를 횡단하도록 계획된 ‘아프리카’ 횡단 고속도로에 대하여 OAU대변인은 “관련된 모든 국가는 OAU 및 ‘아프리카’ 경제 위원회와 훌륭히 협조하였고 우리는 모두 다음 수년 내에 고속도로가 실현되기를 희망하고 있다고 말하였다.”
경제 성장 역시 뚜렷하였다. 내란에도 불구하고 ‘나이지리아’의 성장률은 지난 10년 동안 5‘퍼센트’에서 12‘퍼센트’로 증가하였으며, 그리하여 ‘나이지리아’는 두달 일찍 외국의 부채를 청산할 수 있었다. ‘나이지리아’는 제 9위의 산유국이지만 농업은 이 나라의 경제 발전에 크게 기여하였다.
OAU로부터의 격려로 ‘아프리카’ 상호 협동은 향상하고 있다. ‘아프리카’ 여러 대학에 장학제도가 마련되었으며 무이자 대부의 형태로 원조가 있었다. ‘나이지리아’가 인접국 ‘다오메이’에게 ‘다오메이’ 영토 내의 도로 건설을 위하여 그렇게 하였다.
농업과 의술
‘아프리카’의 굶주리는 사람들을 위하여 더 많고 더 나은 식량을 마련하기 위하여 수백명의 노련한 연구가들은 옥수수, ‘기니아’ 옥수수, 기장, 완두콩, 병에 강한 종자를 실험하고 있다. OAU의 한 대변자는 이렇게 밝혔다. “우역(牛疫) 퇴치 운동은 중서 ‘아프리카’에서 거의 완전히 성공하였으며 현재 동‘아프리카’에서 거의 완결되고 있다.”
다른 연구가들은 소의 늑막 폐렴 소탕전을 벌이고 있다. ‘아프리카’의 광물 자원과 해산 자원이 지도에 나타나고 있다. 심지어 ‘아프리카’의 전통적인 의약도 그것이 치료에 도움이 될 수 있는가를 확인하기 위하여 적극적인 연구 대상에 오르고 있다. 이미 계획된 다른 많은 사업은 자금의 부족으로 이행되고 있지 않다. 유감스럽게도, ‘아프리카’에는 천연 자원이 풍부하지만, 굶주리는 인구는 가뭄이 심한 지역에서 겨우 연명하고 있는 실정이다.
목표가 달성되었는가?
OAU창설 목표는 주로 식민 정책을 제거하고 ‘아프리카’ 제국가간의 단결을 이룩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목표는 달성되었는가? OAU의 원래의 회원국은 30개국에서 41개국으로 증가하였지만, 식민 정책은 아직도 대륙의 일부 지역에서 유력하다. 이 때문에 ‘오그볼루 오콘지’는 OAU가 “실패이며 커다란 실망”이라고 비난하였다. 그 한 가지 이유는 회원국들이 그들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하여 “약간 양보”하기를 꺼려하였기 때문이다.
‘아프리카’인들의 해방에 대하여 1973년에 ‘탄자니아’의 ‘줄리어스 나이리어’는 다음과 같은 흥미있는 논평을 하였다.
“‘아프리카’ 정권은 식민주의자들과 민족 차별주의자들이 우리의 동포를 대하는 것보다 ‘아프리카’인들을 더 낫게 대하지 않으며, 실제로 더 악하다. ··· ‘아프리카’인들에 대하여 ‘아프리카’인 지도자들이 저지른 잘못은 ‘아프리카’ 상호 협조에 진정한 방해물이며 그것이 틀림없다. ··· 짓밟히는 인도적인 원칙과 달리—그리고 이에 대하여 ‘아프리카’ 국가들은 염려해야 한다—해방 투쟁의 개념 전체는 정의와 인간의 존엄성의 원칙들이 독립한 ‘아프리카’에서 조롱받을 때에 영향을 받는다.”
그 좋은 예로, 당원증을 사기를 거부한 ‘말라위’의 여호와의 증인들에게 공적으로 행한 살인과 고문과 강간을 포함한 극단적이고 비인도적인 대우가 있다. 그 무법 행위에 대한 보고가 1972년 12월 8일호 영문 「깨어라!」에 게재되었다. 수만명의 증인들은 역설적인 일이지만, OAU로부터는 아무런 공적인 위안의 말을 듣지 못하였으나, 식민주의국인 ‘모잠비크’에서는 평화로운 피난처를 발견하였다.
OAU의 처음 10년 동안에 많은 사람들은 ‘이안 스미드’가 ‘로디지아’에서 소수파 정권을 세웠을 때에 영국과의 외교 관계를 끊으려는 위협을 이행하지 못한 것에 실망하였다. ‘줄리어스 나이리어’는 ‘프랑스’와 영국이 ‘아프리카’ 국가들 보다 OAU에 더 많은 세력을 가지고 있다고 논평하였다. ‘오그볼루 오콘지’는 이렇게 개탄하였다. “‘로디지아’ 위기에서의 OAU의 역할에 대한 이야기는 많이 들었지만 그것은 희생을 요하는 상황에서 얕은 꾀를 부린다는 것이 분명하다.”
‘오콘지’는 또한 OAU헌장을 ‘더욱 침식’하기 위한 더 강한 결의문이 제시되었을 때에 회원국들은 표결에서 그것을 유효케하는 데 실패하였으며 그리하여 “회원국들이 참다운 단결을 원한다는 보이는 징후가 없다”는 것을 시사하였다. 더우기, ‘아프리카’ 지도자들은 인종 긴장을 증가시킨다는 비난을 받았다. “가난하고 무력하고 불안정한 독립 국가들은 ‘아프리카’의 대중의 관심사에 이바지하지 않는다”는 주장이 나왔다. 그러므로 그러한 국가들은 강력한 ‘아프리카’ 국가들을 형성하기 위하여 보다 강력한 나라들과 기꺼이 단결해야 할 것이다.
OAU의 처음 10년을 재고하는 것이 필요한 이유는, ‘존 피. 모레이스’가 기술한 바와 같이 “‘아프리카’ 청소년들의 젊은 세대에게 OAU는 대륙의 실체와 접촉이 없는 것 같이 보였고 ‘아디스’는 실속없는 결의, 사치스러운 연회, 거짓 약속의 장소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절규되고 있는 것은 OAU가 식민 정치에서의 해방과 여러 분야에서의 단결이라는 목표를 추구하는 데 있어서 더욱 구체적인 일을 달성하는 것이다.
완강한 ‘아프리카’인의 의지
과거를 돌이켜 보면 또한 내재하는 약점에도 불구하고 OAU가 외교 분야에서 성과를 거두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여러 국가의 수뇌들 및 국제 연합 대표단을 통하여 일하면서 “그것은 국제 외교에서 보기드문 연속적인 탄원과 결의로” 국제적 압력을 계속 가하였다. 국경 문제와 기타 분쟁의 해결에 있어서 기구의 노력은 미국 관리들로부터 드높은 찬양을 받았다. 한 국무성 관리는 “그보다 더 인상적인 기록을 가지고 있는 동일한 지역적 기구가 없다”고 말하였다.
그러므로 OAU를 더 자세히 살펴볼 때 성공과 실패, 발전과 퇴보를 알게 된다. 그러나 엄청나게 많은 방해물—여러 형태의 정치적 통치, 많은 부족, 여러 가지 언어, 종교 혹은 화폐, 불공평한 영토 경계, 흔히 침체된 경제 상태—을 고려할 때 OAU가 십년간 끈질기게 존속하여 온 사실은 완강한 ‘아프리카’인의 의지를 반영한다.
OAU는 길을 비켜야 한다
‘아프리카 단결 기구’(OAU)는 많은 고상한 의도를 가지고 있지만 메시야 왕국만이 할 수 있고 또 이룩할 일을 결코 성취할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물론 국제 연합과 기타 인간의 기관도 마찬가지이다. ‘불럭’으로 역할하는 OAU회원국들은 국제 연합 기구에서 강력한 발언권을 가지고 있으며, 아직도 그 기구가 세계 평화와 안전을 가져다 줄 것을 기대한다. 이 정치국가 집성물 내의 정치 강국들은 성서에서, 상징적인 큰 음녀인 큰 ‘바벨론’ 즉 거짓 종교 세계 제국을 적대하여 “불로 아주 사르”리라고 예언되어 있다.—계시 17:16.
그 일로 예언된 “큰 환난” 곧 강력한 인간 조직인 “산악”이 무너지고 사라지게 할, 하나님께서 가져오실 재난의 큰 “지진”이 시작될 것이다. OAU는 그 대격변을 생존하지 못한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왕국 통치에 길을 비켜야 한다.—마태 24:21; 계시 16:18-20; 다니엘 2:44.
해방? 그렇다. 압제적인 정권으로부터만이 아니라 질병과 사망과 무덤 자체로부터도 해방이 있을 것이다! 단결? 그렇다. 왕국 통치의 축복하에서 사람들은 하나님의 길로 걸을 것이다. ‘그의 길은 사랑’이다. 바로 이것이 전‘아프리카’와 여타 인류에게 가까운 장래에 실현될 진정한 희망이다.—계시 21:3, 4; 20:13; 요한 1서 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