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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깨어라!—19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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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어라!—1972
깨72 9/22 8-11면

주교 회의—그것은 어떠한 성과를 거두었는가?

약 210명의 주교들과 ‘가톨릭’ 고위 간부들이 지난해 9월 30일부터 11월 5일까지 ‘로마 교황청’에 모여 회합을 가진 목적은 무엇이었는가? 그 목적은 ‘바오로’ 교황에게 그의 ‘양떼’의 상태와 그 대책에 대하여 건의할 사항을 협의하기 위함이었다. 교황이 건의를 듣기를 원한 문제는 “제사직”과 “세계 정의와 평화”였다.

‘바티칸’ 제2차 공의회의 소산인 그 회의의 기초가 된 원칙은 “협동”이었다. 다시 말하면 ‘로마 가톨릭 교회’의 주교들이 이제 더는 교황의 단순한 대행자가 아니고 교황과 권위를 분할하게 되었다.

주교들은 첫 번째 문제인 “제사직”을 고려할 때 그 점에 대하여 아무런 성과를 거두지 못한 것 같다. 왜냐 하면 그들은 ‘바오로’ 교황에게 아무런 새로운 것을 말해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편으로 그들은 독신에 대한 교황의 태도를 재인정하였고 다른 편으로는 그들이 결혼한 남자들을 특수한 경우에 사제로 임명하는 문제에 대하여 교황 자신보다도 더욱 부정적이기까지 하였다. 한 ‘가톨릭’ 주간지는 이렇게 보도하였다. “주교 회의는 교황이 결코 추호의 의심도 표명한 일이 없는 교리상의 원칙에 대하여 교황에게 가르치는 엉뚱한 일을 하였다.”—1971년 11월 26일자 「코몬윌」지.

이러한 결과에 이른 이유는 간단하다. ‘바오로’ 교황이 논제를 택하였고 용어를 택하였다. 그는 회의의 회원들에게 압력을 가하였다. 또한 그가 임명한 사람들이 토의 방법을 조종하였다. 뿐만 아니라 개회사에서 교황은 주교들에게 외부의 압력에 좌우되어서는 안된다고 준엄하게 경고하였다. 그러므로 한 ‘가톨릭’ 통신원은 이렇게 말하였다. “그는 주교들이 많은 음모자들 즉 주교들로 하여금 신앙에 순응하는 것을 의심하게 하고 전통을 경멸하며 세속주의에 더러워진 결정을 내리도록 하는 수많은 음모자들에 둘러싸여 있다고 묘사하였다.”

그러므로 한 미국 잡지에는 교황이 측근자에게 종이 한장을 넘겨 주면서 “회의에서 달하게 될 결론이 여기 있소” 하고 말하는 만화가 실렸다. 그리고 한 예수회 관측자는 “선체(船體)를 흔들지 말라. 무엇보다도, 공개적으로 그것을 흔들지 말라”는 태도가 지배적이었다고 평하였다. 교황이 폐회사에서 ‘로마 가톨릭’ 사제들이 독신을 유지해야 함을 또 한번 강력히 다짐한 사실은 이러한 결론을 지지하는 것 같다.

“세계 정의와 평화”

주교 회의에서 두번째 논제였던 이 문제를 토론할 때 주교들은 여러 가지 면을 다루었다. ‘로마 가톨릭’ 교회는 정의에 대하여 말할 때 교회 자체의 행동으로 성실성을 나타내야 한다고 주장한 주교들이 있었다. 영국의 대주교인 ‘히낸’ 추기경이 그 중의 한 사람이었다. 그는 “교회들과 수도원들과 수녀원은 팔아도 되는 재산이 얼마나 있는지 살펴볼 것”과 그 수입을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데 사용할 것을 요구하였다. 그는 이렇게 덧붙였다. “깊은 존경심을 가지고 건의하거니와 ‘로마’ 교황청이 솔선수범해야 할 것입니다. ··· 거의 사용되지 않는 수천개의 성찬배와 성체 안치대 등 거룩한 기물들이 많을 것입니다.”

‘필리핀’ 주교 한 사람은 “정의를 운운하는 사람부터 의로워야 할 것”이라고 말하였다. 그는 교회가 치부하게 되면 “그것은 부유하고 세력있는 교회가 되어 부정을 규탄하고 정의를 부르짖을 때 신용을 상실한다”고 말하였다. ‘캐나다’ 대표도 “‘바티칸’ 교황청과 전국 의회와 주교 관구와 종교단과 그리고 관련있는 단체에서 재정상황을 공개”할 것을 촉구하기까지 하였다.

‘바티칸’ 교황청은 세가지 점에서 비난을 받았다. 첫째로, 재산을 “가난한 사람들의 재산”으로 사용하지 않고 재산을 축적하려 하였기 때문에 비난을 받았다. 둘째로, 고용인들에게 충분한 임금을 주지 않고 불량한 노동 조건하에 두었다는 것이 지적되었다. 세째로, 교황청이 신도들에게 함구령을 내리고 비행의 혐의가 있는 자들을 충분히 심문하지도 않고 유죄 선고하였기 때문에 비난을 받았다. “의사여, 그대 자신부터 고치시오” 하는 식으로 한 대표자는 생각하였다.

한 예수회 관측자에 의하면 발언하던 많은 고위 성직자들은 신경 과민이 되었다. 왜냐 하면 청중 가운데는, 사회상의 부정에 대하여 막연히 논하지 말고 실제로 죄를 범하는 정부의 이름을 대라고 요구하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많은 주교들이 교회가 사회 문제에 좀 더 관여할 것을 원한 것은 사실이지만 이러한 행동을 반대한 주교들도 있었다.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기존 사회 상태를 전복시킬 혁명가인양 특권층이 아닌 일반 국민들과 순수하게 인간적으로 결속하려” 하지 않으셨다고 말하면서 반대하였다.

‘우크라이나’ 대표는 ‘바티칸’ 교황청이 특수한 관례를 버리고 공산주의자들과 흥정을 한다고 비난하였다. ‘아프리카’ 대표들은 정치적이고 교회적인 식민정책과 흑인에 대한 경멸을 반대하는 발언을 하였다. ‘앙골라’ 대표와 ‘모잠빅’ 대표들 중에는 그들에 대한 ‘포르투갈’ 정부의 시책을 호평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극구 반대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리고 ‘칠레’에서 온 주교는 그리스도교가 사회 주의를 의미할지도 모른다고 발언하여 고위 성직자들을 “비틀거리게 하였다”고 한다.

또 다른 주교는 이렇게 경고하였다. “항상 공포와 고통의 위협을 받는 사람들은 외부의 간섭이 없는 것이 가장 좋다고 말할 것입니다. 또한 우리 모두는 멀리서 바라 볼 때 교회가 정죄하기는 쉬우나 흔히 해결책을 발견하기는 어렵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러한 토론에 이어 여성에 대한 정의, 생태학, 인구 제한 문제 등에 대한 토론이 있은 후 주교 회의는 “세계 정의와 평화”에 대한 최종 결의문도 작성하지 않은채 산회하였다.

이 토론에 대하여 미국의 한 주간지는 이렇게 보도하였다. “‘세계 정의’는 주로 경제학과 생태학 등의 제목에 대한 평온하고 막연한 논의로 이루어졌다. 그리고 그것은 비공개로 교황에게 전달되었다. ‘발언권을 박탈한 부정’을 항의하였으나 ‘브라질’이나 남‘아프리카’의 실례를 드는 것을 갑자기 중단하였다.”—1971년 11월 15일자 「타임」지.

간단히 말해서 이 점에 있어서도 주교 회의는 교황을 당혹시킬 문제를 내세우지 않으려고 세심한 주의를 하였다.

주교들의 소감

주교들 각자는 이번 회의에서 있었던 일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였는가? 한번은, 수정된 것인줄로 생각되었으나 제안된 수백가지 수정안을 무시한 성명서가 주교들에게 전달되었는데 이 때 ‘아프리카’ 주교 ‘다옌’은 “나는 꼭둑각시 노릇을 하려고 고국에서 수천 ‘킬로미터’를 여행하지 않았다. 수정안은 어찌 되었는가?” 하고 비난하였다.

예수회 주간지 「아메리카」지는 “전세계와 주교 회의를 좀더 면밀히 지켜 본 우리는 ‘다옌’ 주교와 같은 심정이었다”고 말하였다. 그후에 발행된 같은 주간지는 이렇게 말하였다. “‘로마’ 주교 회의는, 우선 무엇보다도 대표자들 자신들에게, 절차상의 혼란과 사실상의 좌절감을 가르쳐 주고 끝났다.”

영국 태생 ‘말레지아’ 주교는 이렇게 한탄하였다. “여기에 모인 주교들은 완전히 서로를 불신한다. 그리고 신임하지 않는다면 방해하는 것이나 매한가지일 것이다.” 그리고 ‘벨지움’의 ‘수에넨스’ 추기경은 기자들에게 주교 회의 진행이 “따분하고 쓸모없는 것이었다”고 말하였다. 그는 이렇게 말하였다. “사제들은, 적어도 내가 ‘벨지움’에서 알고 있는 사제들은 무엇인가 훌륭한 것을 기대하였다. ··· 나는 그들에게 뭣이라고 말해 주어야 할지조차 모르겠다. 이제 교황 ‘바오로’는 주교 회의로 대표된 전 교회가 충분한 토의 결과 여러 세기 동안 존속해 온 독신의 계율을 유지하는데 있어서의 교황의 태도를 승인하였다고 말할 수 있게 되었다.”

성과는 무엇인가?

주교 회의의 성과에 대하여 ‘가톨릭’ 평신도를 위한 잡지인 「코몬윌」지는 사설에서 이렇게 말하였다. “제3차 주교 회의는 일대 혼란과 비참한 좌절로 끝났다. 주교들은 빈손으로 돌아갔다. ··· 마지막 날 그들은 사제들이나 세상에게 함구불언하라는 교훈을 들었다. ··· 단지 교황에게 사적으로 제안할 수 있다는 교훈을 들었다. ···”

이어서 동 잡지는 이렇게 계속하였다. “주교 회의에서 무엇이 잘못되었는가? 그릇될 수 있는 거의 모든 것이 잘못되었다. 토론 기술이 전혀 없었고, 회의 진행 순서가 엉터리였으며, 두 개의 논제는 주어진 시간에 비하여 너무 광범위한 것이었으나, 무엇보다도 주교들 자체가 본래 신도들의 지도자들이라는 것을 제외하고는 각양 각색의 사람들이었다.”—1971년 11월 26일자.

이번 제3차 주교회의에 대하여 「뉴스 위크」지 종교란 담당 기자 ‘케네드 엘. 우드워드’는 이렇게 기술하였다. “제3차 세계 주교 회의는 대표자들이 처음과 동일하게 착잡한 심정을 품은채 지난주 ‘바티칸’ 교황청에서 어설프게 끝났다. ··· [그것은] 올바른 일을 거의 하나도 하지 못한 회의였다. 211명의 주교들과 종교단의 원로들과 수뇌들이 9월말에 ‘로마’에 도착했을 때 ‘바티칸’ 당국에서 발행한 노동 증명서가 그들이 이전에 받은 서류와 꼭같지 않음을 발견하였다. ···

“회의에 참석한 대부분의 교부들은 교황 ‘바오로’ 6세가 듣기를 원치 않은 것을 그에게 굳이 말하려고 하지 않았다. 교황은 이미 사제들이 독신 생활을 선택할 자유를 허용하는 것을 강력히 반대한다는 말을 하였기 때문에 이러한 대안은 진지한 토론도 없이 일축되었다. ··· 회의가 교황 자신이 큰 관심을 가진 세계 정의와 평화 문제로 넘어 갔을 때 대표자들은 역시 사실상 교황이 듣기를 원한 것만 그에게 말하였다. 본국에 있을 때 감히 발언하지 못한 주교들이 ··· ‘로마’에서 갑자기 발언권을 얻었다. 그러나 한 대표자가 인정하였듯이 주교의 용기를 시험한 것은 ‘정부에 대한 우리의 발언 내용이 아니라 교회안에 정의를 이룩하기 위한 우리의 행동이었다.’”

이와 유사하게 1971년 11월 15일자 「타임」지에서 ‘메이오 모스’는 이렇게 기술하였다. “아마 금년 가을에 진정으로 문제되는 것은 주교들이 무엇을 하였고 무엇을 하지 않았는가보다 전세계의 ‘가톨릭’ 교도들이 그들이 무엇을 하든지 진지하게 관심을 두느냐 않느냐 하는 것일 것이다. 대부분의 주교들은 아직도 교황의 말을 청종할지 모르나, 교황이나 주교들의 말을 청종하는 사제들의 수는 점점 줄어 들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허다한 평신도들이 누구의 말도 청종하지 않고 있다.”

그러면 그 이유는 무엇인가? ‘모스’는 이렇게 계속 설명한다. “문제가 된 것은 교회의 신앙이라기보다 ··· 조직 자체이다. ··· 그리스도의 신비로운 몸[로마 교회]은 신경 쇠약에 걸린 것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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