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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72 6/8 20-22면

‘오끼나와’—동서양이 공존하는 곳

‘오끼나와’ 주재 「깨어라!」 통신원 기

일본과 대만 사이로 징검다리 돌처럼 약 140개의 작은 섬이 1,100‘킬로미터’ 이상 뻗쳐 있다. 이 섬들이 ‘류큐’ 열도이지만 때때로 대표적인 섬의 이름 즉 ‘오끼나와’라고 불리운다.

‘류큐’ 열도의 반수 가량은 무인도이다. 나머지 반수 가운데 ‘오끼나와’는 가장 크고 가장 인구가 많아 약 95만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길이는 110‘킬로미터’가량이지만 폭은 3내지 29‘킬로미터’밖에 되지 않으므로 넓이가 1,160평방 ‘킬로미터’가량되는 ‘오끼나와’는 ‘로스앤젤레스’와 크기가 비슷하다. 따라서 ‘오끼나와’는 세계에서 가장 인구가 조밀한 곳 중의 하나이다.

동쪽으로 광막한 태평양이 있고 서쪽으로 동지나해가 있다. ‘오끼나와’ 군도는 “태풍 길목”에 있다. 태평양에서 일어난 폭풍이 ‘아시아’ 본토로 가는 길에 ‘오끼나와’를 지나간다. 1년에 한 두번 강한 태풍이 ‘오끼나와’를 강타하는데, 시속 300‘킬로미터’의 태풍이 밀어닥칠 때도 있다.

동서양이 마주친 때

‘류큐’ 열도에는 여러 인종이 모여 사는데 특히 중국인과 일본인들이 살고 있다. 1879년에 일본은 ‘류큐’ 군주국을 폐하고 정식 일본 영토의 일개 도로 그 섬을 합병하였다. 일본어가 공용어가 되어 많은 ‘류큐’ 방언을 대신하였지만 아직도 약간의 방언이 있긴 하다.

두 세대 전에만 해도 ‘오끼나와’는 사실상 서양인들에게 알려지지 않았었다. 몇명의 서양인이 방문하였다. ‘카먼도어 매튜 페리’는 1853년에, 일본과 미국 사이의 통상 조약을 맺을 때 이 섬을 본부로 사용하였다. 몇명의 외국 선교사들이 왔고, 가끔 박물학자나 탐험가가 잠간 체류하였다. 그러나 고작 그 정도로 동서양이 접촉하였다.

그러다가 1945년에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나가고 있을 때였다. 일본은 ‘오끼나와’에서 마지막으로 버티고 있었다. 4월 1일에 미국의 공격이 시작되었다. 다음 3개월간에 2차 대전중 가장 치열한 격전이 있었으며, ‘오끼나와’는 그 틈바구니에 끼어 있었다.

사상자 수와 황폐상은 끔찍하였다. 인구의 90‘퍼센트’는 가옥을 잃었으며 10‘퍼센트’ 이상이 사망하였다. 군인과 민간인 사상자 수는 560,000명에 달하였다! 그 섬의 남부지역은 전멸되었고 건물의 95‘퍼센트’는 파괴되었다. ‘오끼나와’인들이 그 전쟁을 가리켜 “강철 태풍”이라고 부르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공존할 뿐 융화되지는 않음

전면 황폐 상태로부터 재기하여 ‘오끼나와’의 수도 ‘나하’ 시는 약 30만명이 사는 번화한 도시로 발전하였다. 그리고 한 때 농촌이었던 ‘코자’는 인구 약 7만명의 도시로 성장하여 전쟁전의 ‘나하’보다 큰 도시가 되었다.

대부분의 건물은 ‘콘크리트’로 건축된 “방(防) 태풍” 건물인데 대개 1층집들이다. 그러나 고층 ‘아파트’도 수백동이 세워졌다. 10만대 이상의 자동차가 이 섬을 누비며 ‘러시 아워’에 도시의 거리를 메우고 있다.

그러므로 서양인들이 이 섬에 와도 다른 많은 서양인들을 포함하여 눈에 익은 모습을 많이 보게 된다. 대전 후에도 미군들이 모두 떠나지 않았다. 결코 떠나지 않았다. 지금도 이 섬에 약 9만명의 미군과 부양 가족이 살고 있다. 미국은 ‘오끼나와’에서 약 120개 군사 시설을 갖춘, 역사상 가장 만만치 않는 군사적 집결지의 하나로 유지해 왔다. 군사 기지들이 완전히 이 섬의 4분의 1을 차지하고 있다.

‘오끼나와’인들은 외향적이지만 영어를 말하는 서양인들과 결코 융화하지 않는다. 두 문화가 물과 기름처럼 병존한다. 두 문명이 만나지만 융화하지는 않는다. 미국인 ‘오끼나와’가 있고 ‘오끼나와’인 ‘오끼나와’가 있다. ‘오끼나와’인 가운데는 영어를 배운 사람이 드물며, 임시 이 섬에 거주하는 대부분의 미국인들은 이 섬 사람들의 생활 방식을 답습하지 않았다.

여러 해 동안 ‘오끼나와’를 일본이 되찾으려는 노력이 있었다. 그 한 가지 이유는 ‘오끼나와’인들이 육지를 절실히 요하는데 미국이 그 대부분을 점하고 있기 때문이다. 1953년에 미국은 ‘류큐’ 열도의 북부의 작은 섬들인 ‘아마미’ 제도를 일본에게 돌려 주었다. 그리고 1971년 6월 17일에 미국은 ‘오끼나와’와 ‘류큐’ 열도의 기타 섬들을 반환한다는 협약에 조인하였다. 1972년 어느 때에 반환할 것이 예상된다. 그러므로 일본은 2차 대전 중에 미국에게 마지막으로 빼앗긴 지역을 약 27년만에 되찾게 되었다.

그렇다고 하여 미국인들이 ‘오끼나와’에서 철수하는 것은 아니다. 미국은 88개의 군사 시설을 보존할 것이며 계속 많은 사람들이 배치되어 있어야 할 것이다.

동서양이 융화함

유명한 핵무기고를 포함하여 강력한 군사기지를 보존하는 것이 ‘오끼나와’인들에게 지금까지 달갑지 않았다. 그들은 “강철 태풍”을 경험하였으며 군사무기는 유쾌하지 않은 기억을 되살린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다스림 아래에서는 사람들이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들” 것이라는 성서의 약속을 그들 중 많은 사람들이 즐거운 소식으로 생각한다.—미가 4:3.

1952년에는 ‘오끼나와’에서 하나님의 왕국이 가져올 평화를 전파하는 여호와의 증인이 하나도 없었지만 지금은 500명 이상의 증인이 있다. 그들은 열 한 개의 회중으로 정기적으로 모여서 연구하고 교제한다. 열개의 회중에서는 일본어로 집회가 사회되고, 1968년 이후로 영어를 말하는 회중이 하나 있으며 성원은 지금 100여명 된다. 이 회중은 ‘오끼나와’에서 영어를 말하는 사람들을 방문하는 데 다른 곳에서 성서를 연구한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이러한 많은 사람들이 도움을 받아 영적으로 발전하였다.

그들은 자기들이 아는 언어로 성서를 연구하기 위하여 따로 모이지만 일본어를 말하는 증인들과 영어를 말하는 증인들 사이에는 진정한 협조가 있다. 예를 들면 지금 750명 이상이 모이는 그들의 대회에서 그들은 함께 친밀하게 일하여 그러한 모임을 성공적인 대회가 되게 한다. 대화는 주로 ‘제스추어’로 하지만 그들 사이에서 볼 수 있는 연합은 사람들이 함께 어울려 평화롭고 행복하게 살 수 있음을 강력히 증명한다.

다른 사람들의 보기에 이러한 연합은 주위에 있는 분열 및 혼란과 대조를 이룬다. 실제로 영어를 말하는 회중과 일본어를 말하는 회중이, 비어 있는 상업 건물을 집회 장소로 사용하기 위하여 개조하였을 때 이웃 사람들은 그 두 집단이 함께 일하는 모습을 보고 놀라서 많은 사람들이 와서 질문을 한 일이 있다. 그렇다. 동서양 출신인 이들 ‘오끼나와’인들은 단지 만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연합된 그리스도인 가족으로 융화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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