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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깨어라!—19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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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어라!—1972
깨72 6/8 16-18면

나는 ‘힌두’ 여신 숭배자였다

‘기아나’ 주재 「깨어라!」 통신원 취재담

이 광경을 상상할 수 있겠는가? 일요일에 장단 맞추어 울리는 염소 가죽으로 만든 북소리는 모두에게 일손을 멈추라고 강요하는 것같았다. 남녀노소가 마을의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그들은 북소리에 동요되어 목을 내밀고 ‘힌두’ 여신 ‘칼리’가 재빨리 지나가는 것을 보려고 하였다. 이미 흰 수탉을 한 마리 잡았고 그것이 내뿜는 피는 승려가 마셨다. 이제 북을 치고 화려한 색깔의 옷을 입은 사람들이 호위하는 가운데 ‘칼리’와 수탉은 사원으로 옮겨지고 있었다.

사원 의식이 끝난 후 군중들은 그 근처 즉 승려가 주문을 외우는 동안 다른 두 소년과 내가 중앙에 움직이지 않고 서 있는 곳으로 몰려 왔다. 우리는 ‘칼리’의 영의 소유가 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다른 두 소년이 몸을 떨며 뒤틀기 시작했다. 북소리가 점점 세게 울리자 두 소년은 미친듯이 몸을 비틀었다. 그들은 무아의 경지에 이른 것처럼 보였다. 나는 겁이 나서 군중들 틈에 숨었으며 마침내 군중들은 사원으로 들어갔다. 그날 ‘칼리’는 단지 두 사람의 영매를 요구하였다. 나는 세번째로 영매가 되게 되어 있었다.

나는 어떻게 그곳에 있게 되었는가? 1838년에 ‘기아나’에서 노예 제도가 폐지된 후 설탕 재배장의 소유주들은 인도 원주민들을 뽑아서 계약 기간 동안 농장에서 일하게 하였다. 이 기회에 인도 동해안 ‘마드라스’ 주에서 태어난 나의 부모도 소란스러웠던 1914-1918년 당시의 영령 ‘기아나’로 이주하게 되었다. 나는 1925년에 태어났다.

그리하여 나는 ‘마드라스’ 주민들이 신봉하던 종교의 신앙과 의식을 어려서부터 알았다. 마을 사람들 대부분은 ‘힌두’의 파괴의 여신인 ‘칼리’를 숭배하였다. 그들은 의사들이 고칠 수 없다는 병을 포함한 모든 병을 고쳐 주는 능력을 ‘칼리’가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였다. 마을 사람들은 ‘칼리’가 아기를 낳게 할 수 있으며 귀신들린 숭배자에게서 귀신을 쫓아 낼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믿었다.

내가 앞에서 이야기한 의식은 내가 처음으로 참여한 의식이 아니었다. 나는 세살 때에 처음으로 ‘칼리’ 의식에 참여하였다.

어린 소년들은 귓불에 구멍을 뚫고 머리는 완전히 삭발하는 것이 관습이었다. 그리고 머리칼은 ‘칼리’에게 바쳤다. 내가 ‘코란틴’ 해안의 ‘알비온’ 마을을 다니며 놀아도 동료 동인도인들은 호기심을 갖지 않았다. 그리고 설탕 재배장 소유주들인 ‘유럽’인들도 이미 이 ‘힌두’ 습관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별로 놀라지 않았다.

나의 아버지는 우상을 만드는 사람으로 이 지방에서 유명하였으며, 몇년 전까지만 해도 이 마을에 서 있던 ‘칼리’의 거대한 형상이 아버지의 솜씨를 증거해 주고 있었다. 나의 아버지가 조각한 여신은 빛나는 면류관을 쓰고 있었다. 그 여신은 오른 손에 세갈래 ‘포크’를 들고 있었고, 왼 손에는 짧은 칼의 칼자루를 잡고 있었다. 그 여신은 ‘힌두’인들이 명상에 잠길 때와 같이 다리를 포개고 앉아 있었다.

물론 나는 소년 시절부터 아버지가 형상을 만드는 것을 거들었다. 그리고 나이를 먹어 감에 따라 나의 예술적 재능도 향상되었다. 나는 ‘칼리’ 숭배에 깊이 빠지게 되었다.

나의 의문이 해결되다

나는 나의 부모에 대한 순종심에서, 그리고 가정과 이웃의 분위기 때문에 ‘칼리’ 숭배를 계속하였다. 그러나 내가 청년이 되었을 때 나는 때때로 이러한 숭배 형식이 지존하신 하나님이 보시기에 올바른지에 대하여 의문을 품곤 하였다. 나는 나의 아버지에게 이에 대하여 질문하기도 했다. 아버지는 언제나 아버지의 부모도 같은 종교를 가지고 있었으며 아버지는 그의 선조들이 인도에서 행한 숭배방식 외에는 다른 것을 알지 못한다고 말하면서 자신의 종교적 행동을 정당화하려고 하였다.

내가 출세하기를 원한다고 하면 아버지는 내가 ‘칼리’ 숭배자로 머물러야 하며 이 종교를 옹호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나는 나이를 먹어가면서 단순히 가정의 의례와 전통으로 생각하고 ‘칼리’ 예식에 참여하였다.

나의 의문은 아직도 해결되지 않았다. ‘이러한 숭배형식이 지존하신 하나님이 보시기에 올바른가? 나는 평생 ‘칼리’ 숭배자로 머물러야 하는가?’ 간단한 초대가 나로 하여금 그 의문의 대답을 얻도록 도왔다.

1946년 어느 일요일 오후에 여호와의 그리스도인 증인 한 사람이 왕국회관에서 열리는 그들의 집회에 참석해 보라고 나를 초대하였다. 나는 호기심이 생겨서 가 보기로 하였다. 그 건물에 들어가자마자 나는 거기에 아무런 현상이 없음을 발견하고 참으로 놀랐다.

나를 초대한 증인이 나를 알아보고 즉시 나에게 와서 환영하였다. 우리는 그 집회 중에 같이 앉아 있었다. 나는 연사가 천적 생명을 얻을 사람들이 누구일 것인가에 대하여 연설하는 말을 주의깊이 들었다. 내가 들은 지식은 나에게 새로운 것이었고 나는 더 알기를 원하였다. 예를 들면 나는 그 연설을 통하여 단지 144,000명만이 하늘에 간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가 들은 것은 나의 신앙과는 아주 달랐다. 나는 일련의 재생에 의하여 하늘에 갈 수 있는 것으로 믿었다. 그래서 나는 그 연설이 끝난 후에 옆에 앉은 증인에게 그 문제에 대하여 성서가 알려 주는 것을 좀더 구체적으로 설명해 달라고 부탁하였다. 그는 나의 집에서 나와 성서 연구를 갖기로 마련하였다. 나는 크게 환영하였다. 내가 성서에서 배운 것은 이치적이었고 시간이 흐름에 따라 성서에 대한 호기심은 성서에 대한 신앙으로 변하였다.

증인은 꾸준히 나를 집회에 초대하였고, 집회에 참석하면서 나의 지식은 증가하기 시작하였다. 나는 하늘로 가는 길이 하나님께서 개개인을 선택함으로써 그리고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 희생을 기초로 영적 생명으로 부활시킴으로써 열린다는 것을 배웠다. 나는 특히, 천적 생명을 얻을 144,000명 외에도 바로 이 땅에서 끝없는 생명과 행복을 누릴 ‘큰 무리’가 모든 민족에게서 나온다는 것을 알고 가슴이 설레였다. 이 지식은 나에게 감명을 주었다.—계시 7:4, 9; 21:3, 4.

시간이 흐름에 따라 나는 참되고 전능하신 하나님의 이름이 여호와라는 것을 이해하게 되었다. 나는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형상 숭배를 승인하시지 않는다는 것을 성서로부터 배웠다. 성서는 명백히 이렇게 알려 준다. “나는 여호와니 이는 내 이름이라. 나는 내 영광을 다른 자에게, 내 찬송을 우상에게 주지 아니하리라.” “자녀들아 너희 자신을 지켜 우상에서 멀리하라.” (이사야 42:8; 요한 1서 5:21) 내가 오랫 동안 품어온 의문은 해결되었다. 즉 내가 우상에 불과한 여신 ‘칼리’를 숭배하는 것은 지존하신 하나님이 보시기에 올바르지 않다는 것이다.

성서 진리를 다른 사람에게 전함

때때로 나는 ‘왙취 타워 협회’에서 발행한 「파수대」와 「깨어라!」지와 여러 가지 성서 연구 보조물에서 배운 훌륭한 것을 나의 아버지에게 이야기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아버지는 격렬하게 반대하였다. 어떤 때는 아버지가 나를 가만두지 않겠다고 위협하였다. 한 동안 나의 새로운 숭배 방식에 대한 아버지의 증오심이 줄어들고 아버지는 협회 잡지를 좀 읽기까지 하였다. 나는 아버지도 참 숭배로 개종하기를 바랐지만 나의 기대는 완전히 무너졌다. 아버지는 후에 점장이가 되어 하나님의 말씀인 성서에서 저주하는 마술에 더욱 깊이 빠졌기 때문이다. (신명 18:10-12; 갈라디아 5:19-21) 나의 아버지는 심지어 나보고도 그런 일을 하라고 요구하였지만 나는 듣지 않고 다른 방으로 가거나 아주 집에서 나와야 하였다.

가정 성서 연구에 의하여, 그리고 집회에 참석하고 이러한 진리를 남에게 전하여 줌으로써 점차적으로 나의 믿음과 성서에 대한 지식은 증가되어 나는 1954년에 ‘조지타운’에서 열리는 여호와의 증인의 지역 대회에서 물의 침례로써 유일하신 참 하나님께 대한 나의 헌신을 상징하기로 결심하였다.

한편 나는 결혼을 하였기 때문에 나의 아내와 나는 함께 그 대회에 참석하였다. 아내는 당시 ‘기아나’를 방문 중인 ‘왙취 타워’ 협회장의 연설에 감동을 받았다. 또한 증인들 사이에 넘치는 사랑과 연합을 보고 깊을 인상을 받았다. 그래서 집에 돌아오자마자 나의 아내는 성서를 연구하기 시작하였다. 얼마 안있어 나의 아내는 나와 함께 숭배에 가담하였으며 다른 사람들도 성서를 배우도록 돕는 데 참여하였다. 후에 나의 아내도 역시 생명을 참 하나님이신 여호와께 바쳤을 때 나는 참으로 기뻤다.

참으로 나는 참 하나님에 관하여 다른 사람들도 배우도록 도우면서 많은 축복을 받고 있다. 나의 큰 딸은 성서에 있는 하나님의 진리를 전 시간으로 전파하는 사업을 즐기고 있으며 나는 이곳 ‘기아나’의 한 회중에서 훌륭한 특권을 가지고 있다. 나는 여호와께 대한 참 숭배를 발견하게 된 것과 ‘칼리’ 숭배를 중지하게 된 것을 참으로 기뻐한다.

    한국어 워치 타워 출판물 (1952-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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