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숭배를 택하기 위하여 교회를 떠남
전세계적으로 그러하다. 매년 수만명의 사람들이 ‘가톨릭’ 교회와 ‘프로테스탄트’ 교회 및 기타 종교 조직을 떠나, 여호와의 그리스도인 조직과 함께 참 숭배를 드리고 있다. 그들은 교회의 언행이 그리스도인답지 않음을 인정하며, 그 결과 많은 사람들이 그러한 조직으로부터 나오고 있다. 다음과 같은 경험담에 유의하라.
“나는 국민학교를 졸업한 후, ‘미시간·시다레이크’에 있는 안식교회 ‘아카데미’에 입학하였읍니다. 나의 아내도 안식교회 학교인 ‘미시간·베리엘 스프링즈’의 ‘임마누엘’ 선교 대학교를 졸업하였읍니다. 우리는 안식교인으로서 완전한 종교 교육을 받았읍니다.
“그러나 우리가 ‘켈리포니아’로 이사갔을 때 나의 아내는 여호와의 증인의 한 사람에게 성서를 가르쳐 달라고 부탁하였읍니다. 왜냐 하면 교회에서는 성서 연구 마련을 해 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나는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리기 위해서는 안식일을 지켜야 된다는 필요성을 증인들에게 가르쳐 줄 생각으로 공부하는데 동의하였읍니다.
“그러나 증인은 성서로부터 출애굽기 31:13과 에스겔 20:12을 보여 주면서, 안식 율법은 ‘이스라엘’ 민족에게만 주어졌음을 알려 주었읍니다. 그 다음, 그는 그리스도인들이 ‘모세’ 율법과 그 율법에 포함된 안식일 준수 규정 아래 있지 않음을 알려 주는 로마서 7:4-6과 골로새 2:14-17을 보여 주었읍니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서 안식교회의 다른 교리들도 틀리다는 것이 분명해 졌읍니다. 예를 들면 삼위일체 교리라든가 십일조를 바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의무라는 가르침입니다. 말할 필요도 없이 나의 아내와 나, 그리고 우리 다섯 아이들은 현재 여호와의 증인들입니다.”
작년에는 12,000명 이상의 사람들이 여호와의 증인들로서 침례를 받았다. 이들 중 많은 사람들은 참 종교를 추구하던 사람들이었다. 그러한 한 사람은 이렇게 이야기한다.
“나는 목사가 되고 싶었읍니다. 그래서 영령 ‘콜럼비아’ ‘뱅쿠버’ 시에 있는 ‘노드웨스트’ 침례교파 신학교에 입학하였읍니다. 나는 성서 소식을 다른 사람들에게 효과적으로 전하는 방법을 대학에서 배우리라고 기대하였읍니다. 그러나 그 대신 나는 다른 것만 배웠는데, 그 중에는 ‘프로이드’ 심리학도 들어 있었읍니다. 특히 나는 전도 사업에 대한 냉담과 무관심에 불만을 가졌읍니다. 나는 침례교인들이 마태 28:19, 20에 가서 제자를 삼으라는 예수의 명령에 순종하지 않고 있음을 알 수 있었읍니다.
“마침내 1966년 11월 4일, 금요일, 나는 신학교를 나왔읍니다. 그날 나는 아무 목적지도 없이 걸어 갔읍니다. 그러나 예수께서 그리스도인들에게 명령하신 대로 전도하고 싶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었읍니다. 나는 걸어 가면서,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전도할 짝을 마련해 주십사고 기도하였읍니다.
“드디어 나는 어떤 청년을 만났읍니다. 나는 그에게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가?’ 하고 물어 보았읍니다. 그는 알고 있었읍니다. 그래서 나는 전도하려는 의도를 그에게 말하였읍니다. 그는 여호와의 증인의 한 사람이었읍니다. 오랜 시간 토론한 후, 나는 여호와의 증인이야말로 내가 찾던 참 종교임에 틀림없다고 확신하게 되었읍니다.
“다음날 우리는 신학교에 가서 나의 소유물을 다 가지고 나왔읍니다. 바로 그날 오후 나는 나의 소원을 성취하였읍니다. 즉 나는 여호와의 증인과 함께 전도를 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참 숭배를 택하기 위하여 교회를 떠나는 사람들 가운데는 교직자들도 있다. 그 중 한 사람은 이렇게 말한다.
“1942년에 ‘듀크’ 신학교를 졸업한 후, 나는 전 시간 전도 사업을 시작하였읍니다. 그러나 나는 내가 기대하던 것과는 다르다는 것을 곧 깨닫게 되었읍니다. 나는 교회가 신도들의 영적 상태에 대해 무관심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읍니다. 그리고 교회 회의에서는 더 좋은 교회당을 짓고 더 높은 봉급을 받기 위해 정치적 책략을 사용하는 것을 주시하였읍니다. 이 모든 일에 나는 혐오감을 느꼈읍니다.
“더 나아가, 교회 교리들이 마음에 걸렸읍니다. 예를 들면, 죽음은 육체에만 영향을 주며, 생명이나 의식은 사후에도 중단되지 않는다는 교리였읍니다. 영원한 고초의 교리에도 의문이 갔읍니다. 나는 공의롭고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께서 어떻게 사람들을 지옥불에 넣어 영원무궁토록 고생을 시킬 수 있겠는가 하고 의아하게 여겼읍니다. 물론, 나는 감리교회 목사였고, 그러한 것이 감리교회 교리였기 때문에, 설교는 계속 그렇게 하였읍니다.
“나는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자기를 진정으로 사랑하고 섬기는 백성을 지구상 다른 곳에 가지고 계신다는 것을 확신하였읍니다. 그러나 어디에? 나는 다른 종교를 검토해 보기 시작하였읍니다. 그러나 그러한 교회의 상태도 대동소이하였읍니다. 그러자 1965년 어느날, 두 명의 여호와의 증인이 나를 찾아왔읍니다.
“나는 그들이 대단히 단순하고 성실하게 증거하는데 큰 감명을 받았읍니다. 나는 내가 찾던 그 무엇—즐거움과 평화—이 그들 가운데 있음을 인식하였읍니다. 몇번 흥미있는 토론을 가진 다음, 그들은 그 지방 여호와의 증인의 감독자와 정기적으로 성서 연구를 매주 가지면 어떠하겠는가 하고 제의하였읍니다. 나는 동의하였읍니다. 얼마 공부하지 않아서, 나는 여호와의 말씀에 나오는 여러 가지 예언들이 내 목전에서 성취되고 있는 중임을 이해하게 되었읍니다. 나는 또한 성서 원칙에 입각한 생활을 하고 참 사랑을 표시하는 한 집단의 사람들을 보았읍니다.
“1966년 초, 나는 교회와의 관계를 일체 끊었읍니다. 나는 감리교 목사 임명장을 반환하였읍니다. 이제 나는 200개 나라에서 여호와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에 의한 그분의 왕국의 기쁜 소식을 전파하는 백만 이상의 참 그리스도인 형제 자매들과 함께 섬기는 행복을 맛보고 있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