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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태도
  • 깨어라!—1970
깨어라!—1970
깨70 3/22 20-21면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태도

당신의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어떠한 견해를 가지고 있는가? 진정으로 성서를 받아 들이고 가르치는가? 혹은 다음 경험담에서 말한 교회와 같은 태도를 나타내는가?

“1967년 가을, 우리는 아들을 유년주일학교에 처음으로 보낼 준비를 하였읍니다. 그런데 우리 교회에서 사용하는 새로운 공과가 「창세기」의 처음 열 한장이 참 역사가 아니라고 가르친다는 것을 알았읍니다. 또한 그 책에서는 성서 내의 기적들도 꾸민 이야기라고 하였읍니다.

“우리는 유년주일 학교 선생에게 ‘‘캐나다’ 연합 교회’가 정말로 그렇게 가르치는가를 물어보았읍니다. 그의 대답은 그렇다는 것이며, 자기로서는 그렇게 된데 대해 기뻐한다고까지 말하였읍니다. 그는 성서란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어 기록케 한 책이 아니라고 주장하였읍니다.

“한편 여호와의 증인이 우리 집을 방문하였읍니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간 창조에 관한 성서 기록을 진리로 받아들이셨음을 성경으로부터 증명해 주었읍니다. (창세 2:21-24; 마태 19:4-6) 또한 예수와 그의 제자들이 ‘노아’ 홍수와 기타 성서 사건들을 역사적 사건으로 생각하였음도 보여주었읍니다. (마태 24:37-39; 디모데 전 2:13, 14; 유다 14) 그러므로, 성서의 그 부분들이 신화라고 하는 ‘캐나다’ 연합 교회의 가르침을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었겠읍니까?

“그래서 나의 아내와 나는 교회와 모든 관계를 끊었읍니다.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인 성서에 대한 수백만의 믿음을 파괴한 그러한 교훈을 우리 아들이 받지 않게 된 것을 천만다행으로 여깁니다!”

영국의 한 치과의도 이러한 말을 하였다:

“「신영어 성서」가 1961년에 발행되었을 때, 나는 그 성서를 통독하였읍니다. 내가 처음으로 놀란 것은 그리스도가 하나님이라는 말이 한 귀절도 없다는 것이었읍니다. 내가 다니던 조합 교회는 항상 그리스도가 하나님이었다고 가르쳤읍니다.

“둘째로 놀란 것은 현 악한 사물의 제도에는 정해진 종말이 있으며, 그 다음에 그리스도의 천년 통치가 온다는 것을 성서가 명백히 시사하고 있다는 것이었읍니다. 교회에서는 이러한 문제에 관하여 전혀 언급이 없었읍니다. 이 일이 있은지 얼마 후, 나의 아내와 나는 여호와의 증인들과 공부하기 시작하였읍니다. 즉시 나는 우리가 현재 배우고 있는 것이 진리라는 것을 알았읍니다. 나는 또한 성서를 참이라고 믿는 사람이 나 외에도 많이 있다는 말을 듣고 적이 안심이 되었읍니다.

“약 1년 동안 증인들과 성서를 공부한 다음, 우리는 ‘한츠 부네마우드’, ‘리치몬드 힐’ 조합 교회 목사와 만날 약속을 하였읍니다. 이야기하는 동안, 이 목사는 자기가 진화론을 믿는다고 말하였읍니다. 그는 또한 예수의 처녀 탄생이나, 성서에 언급된 다른 기적들을 믿지 않는다고 말하였읍니다.

“우리가 이러한 이야기를 하고 있을 때, 전화가 왔읍니다. 신문사로부터 온 전화였읍니다. 그들은 결혼 밖에서의 성관계의 시비에 관해 명확한 언급을 하지 않은 교회위원회 보고서에 관한 목사의 의견을 알고 싶어 하였읍니다. 목사는 가부를 명확히 말하지 않았읍니다. 왜냐 하면 어느 쪽을 지지하든지 반드시 한편의 반대를 당할 것이기 때문이었읍니다.

“어느 종교가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그에 입각한 생활을 하며, 어느 종교가 그렇게 하지 못하는가는 나에게 뚜렷해졌읍니다. 그래서 나는 조합 교회와의 모든 관계를 끊었고, 1968년 5월 11일,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기로 한 나의 헌신을 표상하기 위하여 물의 침례를 받았읍니다.”

교회에는 실로 영적 상태가 결핍되어 있다! 한 ‘캐나다’ 부인도 그 점을 유의하여 이렇게 말한다.

“흔히 나는 생명에 관해 의문을 가졌읍니다. 교회에서는 사후 생명이 있다고 가르치지만 나는 그래도 의심스러웠읍니다. 나는 이곳 ‘캐나다 터론토’에 있는 성 ‘클라레 로마 가톨릭’ 교회 신도였읍니다.

“나의 아버님이 돌아가셨을 때, 나는 나의 아버님이 어디 계신가, 죽음은 어떠한 상태인가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았읍니다. 그후 1967년 1월, 경관이 우리 집에 와서 나의 여섯살 난 딸이 길을 건너다가 ‘트럭’에 치어 사망하였다는 소식을 전해 주었읍니다. 장례식을 마친 다음, 나는 사제에게 내 딸이 어디 있는가 하고 물었읍니다. 그는 ‘어린이들이 들어있는 ‘림보’에 있다.’고 대답하였읍니다. ‘림보’가 무엇인지 좀 더 설명해 달라고 하자, 그는 ‘그 아이는 행복한 상태에 있읍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보지 못할 것입니다’ 하고 대답하였읍니다.

“나는 딸이 왜 죽었느냐고 물어보았읍니다. ‘폴리토’ 신부는 ‘하나님이 그 아이를 데려가셨읍니다’ 하고 대답하였읍니다.

“나는 그런 일이 어떻게 있을 수 있는가 하고 생각하였읍니다. 만약 내 딸이 잠자다가 조용히 죽었다면, 그 말을 믿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트럭’에 치어 죽다니—그러한 일을 하나님이 하신 일로 보기에는 너무나 참혹하였읍니다.

“하루는 여호와의 증인이 우리 집을 방문하였읍니다. 나는 증인에게 나의 딸이 어디 있으며, 의식을 가지고 있는가 하고 질문하였읍니다. 증인은 곧 성서를 펴서 그 대답을 알려 주었읍니다. 그가 사용한 첫 귀절은 전도서 9:5, 10이었는데, 거기서는 죽은 자가 아무 것도 모른다고 알려 주었읍니다. 나는 깜짝 놀랐읍니다. 대단히 간단 명료하여 금방 이해가 되었읍니다. 다음으로 보여 준 귀절은 요한 5:28, 29였는데, 거기서는 내 딸이 부활될 소망을 알려 주었읍니다.

“바로 이것이 내가 찾던 위로의 말이었읍니다! 내 딸이 죽음 가운데 잠자고 있으며, 장래에 부활될 희망이 있다는 것이 이러한 성귀로 확실해졌읍니다. 내가 위로를 필요로 할 때, ‘가톨릭’ 교회는 이러한 위로를 주지 못하였읍니다. 그들은 나를 돕기 위하여 성귀를 한 귀절도 읽어 주지 않았읍니다. 어느 종교가 참 종교인가는 명약관화하게 되었읍니다! 그 이래로 나는 성서를 부지런히 연구하였고, 지금은 다른 사람에게도 하나님의 새 제도에서 얻을 생명의 소망에 관한 위로의 소식을 전해 주고 있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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