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의 오심 혹은 예수의 임재—어느 쪽인가?
“무엇이 당신의 임재와 사물의 제도의 종결의 표징이 되겠습니까?”—마태 24:3.
1. 예수의 봉사의 직무에서 질문은 무슨 역할을 하였습니까?
예수께서 능숙하게 사용하신 질문들은 그분의 말씀을 듣고 있던 사람들로 하여금 생각해 보게 만들었으며, 심지어 사물을 새로운 시각에서 고려하게 하였습니다. (마가 12:35-37; 누가 6:9; 9:20; 20:3, 4) 우리는 그분이 또한 질문들에 대답하신 것에 대해서도 감사할 수 있습니다. 그분의 대답들은 우리가 다른 방법으로는 알거나 이해하지 못하였을 진리에 빛을 비춰 줍니다.—마가 7:17-23; 9:11-13; 10:10-12; 12:18-27.
2. 우리는 이제 무슨 질문에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까?
2 마태 24:3에서, 우리는 예수께서 대답해 주신 가장 중요한 질문들 가운데 하나를 발견하게 됩니다. 그 때는 그분의 지상 생애의 끝이 가까웠을 때였는데, 예수께서는 예루살렘의 성전이 파괴되어 유대 제도의 끝을 알리는 표가 될 것임을 방금 경고하셨습니다. 마태의 기록은 이렇게 덧붙입니다. “그분이 올리브 산 위에 앉아 계실 때에, 제자들이 따로 그분에게 가까이 와서 말하였다. ‘우리에게 말씀해 주십시오. 언제 이런 일들이 있겠으며, 무엇이 당신의 임재[“오심”, 「제임스 왕역」]와 사물의 제도의 종결의 표징이 되겠습니까?’”—마태 24:3.
3, 4. 성서 번역판들이 마태 24:3에 나오는 중심 단어를 번역한 방법에 있어서 무슨 중대한 차이점이 있습니까?
3 수많은 성서 독자들은 ‘제자들이 그러한 질문을 한 이유는 무엇이며 예수의 대답은 나에게 어떤 영향을 미쳐야 하는가?’ 하고 궁금하게 생각해 왔습니다. 예수께서는 대답하시는 가운데, 잎이 나와서 여름이 “가까운” 줄을 알리는 것에 관하여 말씀하셨습니다. (마태 24:32, 33) 그 때문에 많은 교회들은 사도들이 예수의 “오심”의 표징, 즉 그분의 돌아오심이 임박하였음을 증명하는 표징을 요청한 것이라고 가르칩니다. 교회들은 그 “오심” 직후에 그분이 그리스도인들을 하늘로 데려가실 것이며 그리고 나서 세상의 종말을 가져오실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당신도 그러한 견해가 옳다고 생각합니까?
4 「신세계역 성경」을 포함한 일부 성서 번역판들은 “오심”이라고 번역하는 대신, “임재”(臨在)라는 단어를 사용합니다. 제자들이 한 질문과 예수께서 하신 대답이 교회들에서 가르치는 것과 다를 수 있습니까? 실제로는 무엇을 질문한 것이었습니까? 그리고 예수께서는 무엇이라고 대답하신 것이었습니까?
그들은 무엇을 질문한 것이었는가?
5, 6. 우리는 마태 24:3에서 우리가 읽어 본 질문을 사도들이 하였을 때 그들이 생각하고 있었던 것에 대하여 무슨 결론을 내릴 수 있습니까?
5 예수께서 성전에 관하여 하신 말씀 때문에, 제자들은 필시 ‘그분의 임재[또는, “오심”]와 사물의 제도[문자적으로, “시대”]의 종결의 표징’을 요청하였을 때, 유대인의 제도에 관하여 생각하고 있었을 것입니다.—「제임스 왕역」의 고린도 첫째 10:11 및 갈라디아 1:4에 나오는 “세상”(world)과 비교.
6 그 당시 사도들은 예수의 가르침에 대해 제한된 이해만 하고 있었습니다. 이전에 그들은 “하느님의 왕국이 즉시 나타날 줄로” 생각한 적이 있었습니다. (누가 19:11; 마태 16:21-23; 마가 10:35-40) 그리고 심지어 올리브 산에서의 대화가 있은 후에도, 그러나 성령으로 기름부음받기 전에, 그들은 예수께서 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국을 회복시키실 것인지 물었습니다.—사도 1:6.
7. 사도들은 왜 예수에게 그분의 장래 역할에 대하여 물었습니까?
7 하지만 사도들은 예수께서 떠나실 것임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분이 얼마 전에 이렇게 말씀하신 적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빛이 여러분 가운데 잠시 더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빛이 있을 동안 걸으십시오.” (요한 12:35; 누가 19:12-27) 따라서 틀림없이 사도들은 ‘예수께서 떠나신다면 우리는 그분의 돌아오심을 어떻게 알아볼 수 있을 것인가?’ 하고 궁금해하였을 것입니다. 그분이 메시아로 나타나셨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분을 알아보지 못하였습니다. 그리고 일 년 이상이 지난 후에도, 메시아가 성취하게 되어 있는 것을 그분이 모두 성취할 것인지에 대한 의문이 남아 있었습니다. (마태 11:2, 3) 따라서 사도들에게는 미래에 대하여 질문할 만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러면 원래의 질문으로 돌아가서, 그들은 그분이 곧 오실 것임을 알려 주는 표징을 요청한 것입니까, 아니면 다른 표징을 요청한 것입니까?
8. 사도들은 필시 무슨 언어로 예수와 이야기하고 있었을 것입니까?
8 당신이 새가 되어서 올리브 산에서 있은 대화를 듣고 있었다고 상상해 보십시오. (비교 전도 10:20) 필시 당신은 예수와 사도들이 히브리어로 말하는 것을 들었을 것입니다. (마가 14:70; 요한 5:2; 19:17, 20; 사도 21:40) 하지만 아마 그들은 그리스어도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마태의 기록—그리스어로
9. 마태에 의한 책의 대부분의 현대 번역판은 무엇에 근거를 두고 있습니까?
9 기원 2세기로 소급하는 자료들은 마태가 자기의 복음서를 처음에는 히브리어로 기록하였음을 암시합니다. 분명히 그는 나중에 그것을 그리스어로 기록하였습니다. 많은 그리스어 사본들은 우리 시대까지 보존되어 그의 복음서를 오늘날의 언어들로 번역하는 데 대한 근거 역할을 해 왔습니다. 마태는 올리브 산에서의 그 대화에 관하여 그리스어로 무엇이라고 기록하였습니까? 제자들이 질문하였고 그에 대하여 예수께서 설명해 주신 “오심” 또는 “임재”에 대하여 마태는 무엇이라고 기록하였습니까?
10. (ㄱ) 마태는 “오다”에 해당하는 무슨 그리스어 단어를 종종 사용하였으며, 그 단어에는 무슨 의미들이 있을 수 있습니까? (ㄴ) 다른 무슨 그리스어 단어가 흥미를 끕니까?
10 마태에 의한 책의 처음 23개 장에서 우리는 “오다”에 해당하는 그리스어 일반 동사를 80회 이상이나 발견하게 되는데, 그 동사는 에르코마이입니다. 그 동사는 종종 가까이 가다 혹은 가까워지다라는 사상을 담고 있는데, 요한 1:47에서 “예수께서는 나다나엘이 자기에게로 오는 것을 보”셨다고 한 것과 같습니다. 에르코마이라는 동사는 용례에 따라 “도착하다”, “가다” 또는 “··· 에 이르다”를 의미할 수 있습니다. (마태 2:8, 11; 8:28; 요한 4:25, 27, 45; 20:4, 8; 사도 8:40; 13:51) 그러나 마태 24:3, 27, 37, 39에서, 마태는 다른 단어를 사용하였는데, 그 단어는 복음서 가운데 다른 어느 구절에도 나오지 않는 파루시아라는 명사입니다. 하느님께서 영감을 주어 성서를 기록하게 하신 점을 생각할 때, 그분은 왜 마태로 하여금 그의 복음서를 그리스어로 기록할 때 이 구절들에서 이 그리스어 단어를 선택하게 하셨습니까? 그 단어의 의미는 무엇이며, 우리는 왜 그것을 알기를 원해야 합니까?
11. (ㄱ) 파루시아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ㄴ) 요세푸스의 기록에 나오는 예들이 어떻게 파루시아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지지합니까? (각주 참조)
11 적절하게도, 파루시아는 “임재”를 의미합니다. 바인의 「신약 용어 해설 사전」(Expository Dictionary of New Testament Words)은 이렇게 말합니다. “파루시아는 ··· 문자적으로 임재로서, ‘함께’를 뜻하는 파라와 ‘있는’을 뜻하는 우시아(‘있다’를 뜻하는 에이미에서 유래)의 합성어이며, 도착과 그 후에 함께 있는 것 모두를 가리킨다. 예를 들어, 한 파피루스 편지에서 어떤 부인은 자기의 재산과 관계된 일을 돌보기 위하여 자기가 어떤 장소에 파루시아할 필요성에 관하여 말한다.” 다른 사전들은 파루시아가 ‘통치자의 방문’을 가리킨다고 설명합니다. 그러므로 그 단어는 단지 도착하는 순간만이 아니라, 도착한 후에 계속 함께 있는 것을 가리킵니다. 흥미롭게도, 사도들과 동시대 사람이었던 유대인 역사가 요세푸스도 파루시아를 그러한 방법으로 사용하였습니다.a
12. 성서 자체는 우리가 파루시아의 의미를 확증하는 데 어떻게 도움이 됩니까?
12 “임재”라는 의미는 분명히 고대 문헌의 지지를 받습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들은 하느님의 말씀이 파루시아를 어떻게 사용하는지에 특히 관심이 있습니다. 그 대답 역시, 임재입니다. 우리는 바울의 편지들에 들어 있는 예들로부터 그 점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그는 빌립보 사람들에게 이렇게 썼습니다. “여러분이 항상 순종해 온 것과 같이, 내가 함께 있을 때만이 아니라 지금 내가 없을 때에도 더욱더 기꺼이 순종하십시오. 그리하여 ··· 여러분 자신의 구원을 계속 이루어 나가십시오.” 바울은 또한 “[자기가] 다시 [그들과] 함께 있음[파루시아]으로써” 그들이 환희에 넘치게 될 것에 관하여 말하였습니다. (빌립보 1:25, 26; 2:12) 다른 번역판들은 “다시 내가 여러분과 함께 있는”(「웨이마우스역」; 「신 국제역」), “내가 다시 여러분과 함께 있게 될 때”(「예루살렘 성서」; 「신 영어 성서」), “내가 한번 더 여러분 가운데 있게 될 때”(「이십 세기 신약」)로 되어 있습니다. 고린도 둘째 10:10, 11에서, 바울은 ‘직접 함께 있는’ 것을 ‘떠나 있는’ 것과 대조하였습니다. 이 예들에서 바울은 자기가 가까이 가는 것이나 도착하는 것에 관하여 말하고 있지 않음이 분명합니다. 그는 그 곳에 있다는 의미로 파루시아를 사용하였습니다.b (비교 고린도 첫째 16:17) 그러면 예수의 파루시아에 관한 언급들은 어떠합니까? 그러한 언급들에는 그분의 “오심”이라는 의미가 들어 있습니까, 아니면 그 이후에 계속되는 임재를 가리킵니까?
13, 14. (ㄱ) 우리는 왜 파루시아가 긴 시간에 걸쳐 있는 것이라고 결론 내려야 합니까? (ㄴ) 예수의 파루시아의 길이에 대하여 무엇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까?
13 바울 시대의 영으로 기름부음받은 그리스도인들은 예수의 파루시아에 관심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바울은 그들에게 ‘이성을 잃고 흔들리지’ 말라고 경고하였습니다. 먼저 “불법의 사람”이 나타나야 하였는데, 불법의 사람은 그리스도교국의 교직자들임이 증명되었습니다. 바울은 “불법한 자의 임재는 사탄의 활동에 따른 것으로서, 온갖 강력한 일과 거짓 표징들[을] ··· 수반”한다고 썼습니다. (데살로니가 둘째 2:2, 3, 9, 10) 분명히, “불법의 사람”의 파루시아 즉 임재는 도착의 순간에 불과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긴 시간에 걸쳐 있게 될 것이었는데, 그 기간 동안에 거짓 표징들이 일어날 것이었습니다. 이 점이 의미 심장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14 그 구절 바로 앞의 이러한 성구를 고려해 봅시다. “불법한 자가 나타날 것인데, 주 예수께서는 그 입의 영으로 그를 제거하시고 자기의 임재를 나타내심으로 그를 없애실 것입니다.” “불법의 사람”의 임재가 어떤 기간에 걸쳐 있을 것이었던 것처럼, 예수의 임재도 얼마 동안 계속될 것이었으며 그 불법한 “멸망의 아들”이 멸망될 때 절정을 이룰 것이었습니다.—데살로니가 둘째 2:8.
히브리어적인 측면
15, 16. (ㄱ) 마태에 의한 책의 많은 히브리어 번역판들에서는 무슨 특정한 단어가 사용되었습니까? (ㄴ) 보는 성경에서 어떻게 사용됩니까?
15 앞서 지적한 대로, 마태는 분명히 자신의 복음서를 처음에는 히브리어로 기록하였습니다. 그러면 그는 마태 24:3, 27, 37, 39에서 무슨 히브리어 단어를 사용하였습니까? 현대 히브리어로 번역된 마태에 의한 책의 번역판들에는, 사도들의 질문과 예수의 대답에 모두 보라는 동사의 변화형이 들어 있습니다. 그 단어를 그대로 사용한다면, 다음과 같이 될 것입니다. “무엇이 당신의 [보]와 사물의 제도의 종결의 표징이 되겠습니까?” “노아의 날처럼, 사람의 아들의 [보]도 그러할 것입니다.” 보는 무엇을 의미합니까?
16 보라는 히브리어 동사는 다양한 의미가 있지만, 기본적으로 “오다”를 의미합니다. 「구약 신학 사전」(Theological Dictionary of the Old Testament)은 이렇게 말합니다. ‘2532회 나오는 보는 히브리어 성경에서 가장 자주 사용되는 동사들 가운데 하나이며, 동작을 표현하는 동사들 가운데 주된 동사이다.’ (창세 7:1, 13; 출애굽 12:25; 28:35; 사무엘 하 19:30; 열왕 하 10:21; 시 65:2; 이사야 1:23; 에스겔 11:16; 다니엘 9:13; 아모스 8:11) 예수와 사도들이 그러한 넓은 범위의 의미를 지닌 단어를 사용하였다면, 그 의미는 논쟁의 여지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와 사도들은 그 단어를 사용하였습니까?
17. (ㄱ) 마태에 의한 책의 현대 히브리어 번역판들이 반드시 예수와 사도들이 실제로 한 말을 그대로 알려 주는 것은 아닐 수 있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ㄴ) 우리는 다른 어느 자료에서 예수와 사도들이 사용했을지 모르는 단어에 대한 실마리를 찾을 수 있으며, 이 자료는 다른 무슨 이유에서 우리의 흥미를 끕니까? (각주 참조)
17 현대 히브리어 번역판들은 번역문이므로, 마태가 히브리어로 기록한 것을 정확히 나타내지 못할 수도 있다는 점을 기억하십시오. 사실은 예수께서 보가 아닌 다른 단어, 즉 파루시아의 의미에 꼭 맞는 단어를 사용하셨을 가능성이 충분히 있습니다. 우리는 조지 하워드 교수가 1995년에 발행한 「히브리어 마태 복음」(Hebrew Gospel of Matthew)이라는 책으로부터 그 점을 알 수 있습니다. 그 책은 셈-토브 벤 이삭 이븐 샤프루트라는 유대인 의사가 쓴, 그리스도교에 대해 반론을 제기한 14세기의 한 논문에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그 논문은 마태의 복음서의 히브리어 본문을 제시하였습니다. 그 본문은 셈-토브 시대의 라틴어나 그리스어로부터 번역된 것이 아니라 매우 오래 된 것이며 원래부터 히브리어로 쓰여진 것이라는 증거가 있습니다.c 따라서 그 본문은 우리가 올리브 산에서의 대화에 관하여 더 잘 알게 해줄 것입니다.
18. 셈-토브는 무슨 흥미있는 히브리어 단어를 사용하며, 그 단어는 무엇을 의미합니까?
18 마태 24:3, 27, 39에서, 셈-토브의 마태에 의한 책의 본문은 보라는 동사를 사용하지 않습니다. 그 대신에 그 본문은 그와 관련이 있는 비아라는 명사를 사용합니다. 그 명사는 히브리어 성경에서 에스겔 8:5에만 나오는데, 그 구절에서 그 명사는 “입구”를 의미합니다. (「신세」 참조) 그 구절에서 비아는 오는 행동을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건물의 시작을 가리킵니다. 우리가 건물로 들어서는 통로나 문지방에 있을 때, 우리는 그 건물 안에 있는 것입니다. 또한 사해 두루마리 가운데 들어 있는 비성서 종교 문서들도 종종 제사장 직무의 등장이나 시작과 관련하여 비아를 사용합니다. (참조 역대 상 24:3-19; 누가 1:5, 8, 23) 1986년에 발행된 고대 시리아어(또는 아람어) 「페시타」의 히브리어 번역판은 마태 24:3, 27, 37, 39에서 비아를 사용합니다. 그러므로 고대에는 비아라는 명사가, 성서에서 사용된 보라는 동사와는 다소 다른 의미를 지니고 있었을지 모른다는 증거가 있습니다. 이 점이 흥미를 끄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19. 예수와 사도들이 비아를 사용하였다면, 우리는 무슨 결론을 내릴 수 있습니까?
19 사도들은 자기들의 질문에서 그리고 예수께서는 자신의 대답에서, 비아라는 이 명사를 사용했을지 모릅니다. 사도들이 단지 미래에 있을 예수의 도착이라는 개념만을 염두에 두었다 하더라도, 그리스도께서는 그들이 생각하고 있는 것 이상을 포함시키기 위하여 비아를 사용하셨을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새로운 직무를 시작하기 위한 자신의 도착을 지적하신 것일 수 있으며, 그분의 도착은 그분의 새로운 역할의 시작점이 될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마태가 뒤이어 사용한 파루시아의 의미와 일치할 것이었습니다. 이해할 수 있듯이, 비아를 그러한 용도로 사용하는 것은, 여호와의 증인이 오랫동안 가르쳐 온 점, 즉 예수께서 알려 주신 복합 “표징”은 그분이 와 계시다는 것을 겉으로 나타내게 되어 있었다는 점을 분명히 지지합니다.
그분의 임재의 절정을 기다림
20, 21. 우리는 노아의 날에 대한 예수의 설명으로부터 무엇을 배울 수 있습니까?
20 예수의 임재에 대한 우리의 연구는 우리의 생활과 우리의 기대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쳐야 합니다. 예수께서는 추종자들에게 계속 깨어 살피라고 강력히 권하셨습니다. 그분은 비록 대부분의 사람들이 유의하지 않을 것이지만 자신의 임재를 식별할 수 있게 하는 표징을 다음과 같이 알려 주셨습니다. “노아의 날처럼, 사람의 아들의 임재도 그러할 것입니다. 홍수 전의 그 날들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은 먹고 마시고 장가가고 시집가고 하였습니다. 그러다가 홍수가 닥쳐 그들을 모두 쓸어 버릴 때까지 그들은 유의하지 않았습니다. 사람의 아들의 임재도 그러할 것입니다.”—마태 24:37-39.
21 노아의 날 기간에, 그 세대에 속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들의 일상적인 일만을 계속하였습니다. 예수께서는 “사람의 아들의 임재” 때도 그와 같을 것이라고 예언하셨습니다. 노아의 주변에 살던 사람들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였을지 모릅니다. 알고 있는 바와 같이, 그들의 생각과는 정반대의 일이 일어났습니다. 상당 기간 계속되던 그 날은 절정에 이르렀으며, “홍수가 닥쳐 그들을 모두 쓸어 버”렸습니다. 누가도 그와 비슷한 기록을 제시하는데, 그 기록에서 예수께서는 “노아의 날”을 “사람의 아들의 날”에 비하셨습니다. 예수께서는 이렇게 교훈하셨습니다. “사람의 아들이 나타나는 그 날에도 그와 같을 것입니다.”—누가 17:26-30.
22. 우리는 왜 마태 24장에 나오는 예수의 예언에 특히 관심을 가져야 합니까?
22 이 모든 점들은 우리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는데, 우리는 예수께서 예언하신 사건들—전쟁, 지진, 역병, 식량 부족, 예수의 제자들을 박해하는 일—을 식별할 수 있는 때에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마태 24:7-9; 누가 21:10-12) 대다수의 사람들이 그러한 상태를 정상적인 역사의 일부로 여기지만, 그러한 상태가 역사를 뒤바꾼 전쟁 즉 의미 심장하게도 제1차 세계 대전이라고 이름 붙여진 전쟁 이래로 뚜렷이 존재해 왔습니다. 그렇지만 깨어 살핀 사람들이 무화과나무의 잎이 나는 일로부터 여름이 가까운 줄을 알았던 것처럼, 참 그리스도인들은 이 중대한 사건들의 의미를 깨닫습니다. 예수께서는 “이와 같이, 여러분도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 것을 보거든, 하느님의 왕국이 가까운 줄을 아십시오”라고 권고하셨습니다.—누가 21:31.
23. 마태 24장에 있는 예수의 말씀은 누구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으며,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23 예수께서는 올리브 산에서의 대답의 많은 부분을 추종자들에게 직접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은 끝이 오기 전에 좋은 소식을 온 땅에 전파하는 생명 구조 활동에 참여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황폐케 하는 혐오스러운 것이 거룩한 장소에 서 있는 것”을 분별할 수 있는 사람들일 것입니다. 그들은 큰 환난이 오기 전에 “도피”함으로써 반응을 나타내는 사람들일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부가된 다음과 같은 말씀으로 인해 특히 영향을 받는 사람들일 것입니다. “그 날들이 단축되지 않는다면, 아무 육체도 구원받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택함받은 자들 때문에 그 날들이 단축될 것입니다.” (마태 24:9, 14-22) 그러면 정신이 번쩍나게 하는 이 말씀의 의미는 정확히 무엇이며, 이 말씀이 우리가 지금 더 많은 행복과 확신과 열심을 갖게 하는 근거가 된다고 말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마태 24:22에 관한 다음 연구에서 이 질문들에 대한 답을 얻게 될 것입니다.
[각주]
a 요세푸스의 기록에 나오는 예들: 시나이 산에서 번개와 천둥이 “하느님께서 그 곳에 임재[파루시아]하셨음을 분명하게 하였다.” 장막 안에서의 기적적인 현시는 “하느님의 임재[파루시아]를 증명하였다.” 엘리사의 종에게 그를 둘러싸고 있는 전차들을 보여 주심으로, 하느님께서는 “자신의 권능과 임재[파루시아]를 자신의 종에게 나타내”셨다. 로마인 관리 페트로니우스가 유대인들을 진정시키려고 하였을 때, 요세푸스는 ‘하느님께서 [비를 내리심으로] 자신의 임재[파루시아]를 페트로니우스에게 분명히 나타내셨다’고 주장하였다. 요세푸스는 파루시아를 단지 가까이 가는 것이나 도착의 순간에 적용하지 않았다. 그 단어는 계속되는, 심지어 보이지 않는, 임재를 의미하였다. (출애굽 20:18-21; 25:22; 레위 16:2; 열왕 하 6:15-17)—비교 「유대 고대사」(Antiquities of the Jews) 3권 5장 2항[80]; 8장 5항[203]; 9권 4장 3항[55]; 18권 8장 6항[284].
b 「영어와 그리스어 신약 비평 사전 및 컨코던스」(A Critical Lexicon and Concordance to the English and Greek New Testament)에서, E. W. 벌링어는 파루시아가 ‘참석해 있거나 참석하게 되는 것이므로 임재, 도착을 [의미하며], 온 후에 영구적으로 거한다는 사상을 포함하는 오심’을 의미한다고 지적한다.
c 한 가지 증거는 그 본문이 “이름”의 히브리어 표현을, 온전한 형태 또는 단축형으로 19회 담고 있다는 사실이다. 하워드 교수는 이렇게 기술한다. “하느님의 이름을 유대인 반론가가 인용한 그리스도인 문서에서 읽게 되는 것은 주목할 만한 일이다. 만일 이 문서가 그리스어나 라틴어로 된 그리스도인 문서를 히브리어로 번역한 것이었다면, 사람들은 그 본문 가운데서 함부로 입에 담아서는 안 될 하느님의 이름의 상징어인 YHWH가 아니라, 아도나이[주]를 발견하게 될 것이라고 예상하였을 것이다. ··· 그가 함부로 입에 담아서는 안 될 그 이름을 포함시킨 것은 설명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이러한 증거는 셈-토브가 가지고 있던 마태에 의한 책의 사본에 하느님의 이름이 이미 본문 가운데 들어 있었으며, 아마도 그는 그것을 없애 버리는 죄를 범하는 위험을 무릅쓰기보다는 그것을 보존한 것임을 강력하게 시사한다.” 「신세계역 성경—참조주」(영문)는 그리스도인 그리스어 성경에 하느님의 이름을 사용하는 데 대한 지지 자료로서 셈-토브의 마태에 의한 책(J2)을 사용한다.
어떻게 대답하시겠습니까?
◻ 성서 번역판들이 마태 24:3을 번역하는 방법들 간의 차이점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 파루시아의 의미는 무엇이며, 이 점이 중요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 마태 24:3에서 그리스어와 히브리어로 무슨 가능한 상응점이 존재합니까?
◻ 우리는 마태 24장을 이해하는 일에서 때에 관한 무슨 중요한 점을 알 필요가 있습니까?
[10면 삽화]
올리브 산, 예루살렘이 내려다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