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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95 6/1 11-16면
  • “모든 위로의 하느님”에게서 위안을 받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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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모든 위로의 하느님”에게서 위안을 받음
  • 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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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95
파95 6/1 11-16면

“모든 위로의 하느님”에게서 위안을 받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느님 아버지, 부드러운 자비의 아버지, 모든 위로의 하느님은 찬송받으시기를 빕니다. 그분은 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해 주십니다.”—고린도 둘째 1:3, 4.

1, 2. 슬퍼하는 사람들에게는 어떤 유의 위로가 필요합니까?

슬퍼하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은, 진부한 혹은 상투적인 말이 아니라 진정한 위로입니다. 우리 모두는 ‘시간이 약’이라는 말을 들어 왔지만, 가족을 잃은 초기 단계에 슬픔에 잠긴 어떤 사람이 그러한 생각으로 위로를 받겠습니까? 그리스도인들은 하느님께서 부활을 약속하신 사실을 알고 있지만, 그 사실이 갑작스러운 상실감으로 초래된 깊은 마음의 상처와 충격을 막아 주지는 못합니다. 그리고 확실히, 자녀를 잃었을 경우 다른 살아 있는 자녀들이 그 귀중한 죽은 자녀를 대신하지는 못합니다.

2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을 때, 우리는 진정한 위로, 하느님의 약속에 확고한 근거를 둔 위로를 통해 큰 도움을 받습니다. 우리에게는 또한 감정 이입이 필요합니다. 르완다 사람들에게, 특히 그 극악한 인종 대살육에서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여호와의 증인의 수백 가족들의 경우에 분명히 그러하였습니다. 슬퍼하는 사람들은 모두 누구에게서 위로를 얻을 수 있습니까?

여호와—위로의 하느님

3. 여호와께서는 위로하는 면에서 어떻게 모범을 세워 놓으셨습니까?

3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를 위로하는 면에서 모범을 세워 놓으셨습니다. 그분은 우리에게 영원한 위로와 희망을 주시기 위하여 자기의 유일하게 태어난 아들인 그리스도 예수를 땅으로 보내셨습니다. 예수께서는 이렇게 가르치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매우 사랑하시어 자기의 유일하게 태어난 아들을 주셨습니다. 그것은 그에게 믿음을 나타내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입니다.” (요한 3:16) 그분은 또한 추종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영혼을 내주는 것, 이보다 더 큰 사랑을 가진 사람은 없습니다.” (요한 15:13) 또 다른 때에 예수께서는 “사람의 아들[은]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고 또 자기 영혼을 많은 사람들과 교환하는 대속물로 주려고 온 것입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태 20:28) 그리고 바울은 “우리가 아직 죄인이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느님께서는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추천하십니다”라고 언명하였습니다. (로마 5:8) 이러한 그리고 이 외의 여러 성구들을 통해, 우리는 하느님과 그리스도 예수의 사랑을 깨닫습니다.

4. 사도 바울은 왜 특히 여호와께 빚을 진 사람이었습니까?

4 사도 바울은 특히 여호와의 과분한 친절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영적으로 죽은 상태에서 구출되었는데, 그리스도의 추종자들의 격렬한 박해자였다가 그 자신이 박해받는 그리스도인이 된 사람이었습니다. (에베소 2:1-5) 그는 자기가 한 경험을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사도들 중에 가장 작은 자요, 사도라고 불리기에 적합하지 않은 자입니다. 내가 하느님의 회중을 박해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나는 하느님의 과분한 친절로 지금의 내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나에 대한 그분의 과분한 친절은 헛되지 않음이 증명되었습니다. 나는 그들 모두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내가 아니라 나와 함께 있는 하느님의 과분한 친절입니다.”—고린도 첫째 15:9, 10.

5. 바울은 하느님으로부터 오는 위로에 관해 무엇이라고 썼습니까?

5 그렇기 때문에 적절하게도, 바울은 이렇게 썼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느님 아버지, 부드러운 자비의 아버지, 모든 위로의 하느님은 찬송받으시기를 빕니다. 그분은 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해 주십니다. 그리하여 우리 자신이 하느님께 위로받는 그 위로를 통해 우리도 어떠한 환난 중에 있는 사람이든지 위로할 수 있게 하십니다. 그리스도를 위한 고난이 우리 안에 충만한 것과 같이, 우리가 받는 위로 또한 그리스도를 통하여 충만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환난 중에 있는 것도 여러분의 위로와 구원을 위한 것이요, 우리가 위로받고 있는 것도 여러분의 위로를 위한 것입니다. 그 위로가 작용하여 우리가 겪는 것과 같은 고난을 여러분도 인내하게 해 줍니다. 따라서 여러분에 대한 우리의 희망은 흔들리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고난에 참여하는 자인 것과 같이, 위로에도 참여하리라는 것을 우리가 알기 때문입니다.”—고린도 둘째 1:3-7.

6. “위로”로 번역된 그리스어 단어에는 무슨 뜻이 내포되어 있습니까?

6 실로 기운을 북돋워 주는 말씀입니다! 여기에서 “위로”로 번역된 그리스어 단어는 “자기 곁으로 부름”과 관련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것은 어떤 사람이 극심한 시험을 받고 있을 때 그 사람을 격려하기 위해 옆에 서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어 신약의 언어학적 열쇠」[A Linguistic Key to the Greek New Testament]) 한 성서학자는 이렇게 기술하였습니다. “그 단어는 ·⁠·⁠· 언제나 마음을 포근하게 해주는 동정심 이상의 훨씬 더 많은 것을 의미한다. ·⁠·⁠· 그리스도인 위로는 용기를 갖게 해주는 위로, 생활상의 온갖 어려움에 잘 대처하게 해주는 위로이다.” 그 단어에는 또한 확실한 약속과 희망에 근거한 위로의 말, 다시 말해서 죽은 사람들의 부활에 대한 위로의 말도 포함됩니다.

예수와 바울—동정심 많은 위로자들

7. 바울은 그리스도인 형제들을 어떻게 위로하였습니까?

7 바울은 위로하는 면에서 참으로 훌륭한 모범이었습니다! 그는 데살로니가에 있는 형제들에게 이렇게 쓸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여러분 가운데서, 젖 먹이는 어머니가 자기 자녀를 소중히 여길 때와 같이, 부드럽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여러분에 대한 부드러운 애정을 가지고 여러분에게 하느님의 좋은 소식뿐 아니라 우리 자신의 영혼까지도 주기를 크게 기뻐하였습니다. 여러분이 우리에게 사랑하는 사람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도 잘 알다시피, 우리는 이와 일치하게 아버지가 자기 자녀에게 하듯, 여러분 각자에게 계속 권고하고 위안하고 증언하였습니다.” 바로 인자하고 잘 돌보는 부모처럼, 우리 모두는 어려운 때에 처한 다른 사람들에게 우리의 따뜻함과 이해심을 나누어 줄 수 있습니다.—데살로니가 첫째 2:7, 8, 11.

8. 예수의 가르침은 왜 슬퍼하는 사람들에게 위로가 됩니까?

8 바울이 그러한 염려와 친절을 나타낸 것은, 단지 그에게 위대한 모범이 되시는 분인 예수를 본받은 것일 뿐이었습니다. 예수께서 모든 사람에게 권유하신, 마태 11:28-30에 기록된 이러한 동정심 많은 초대를 기억하십시오. “수고하며 짐을 진 여러분, 모두 내게로 오십시오. 내가 여러분에게 새 힘을 주겠습니다.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서 배우십시오. 나는 기질이 온화하고 마음이 겸손합니다. 여러분은 자기 영혼에 새 힘을 얻을 것입니다. 나의 멍에는 친절하고 나의 짐은 가볍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의 가르침은 희망과 약속—부활의 약속—을 제시하기 때문에 새 힘을 줍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사람들에게 「사랑하는 사람이 사망했을 때」 팜플렛을 남겨 놓을 때 그들에게 제시하는 것도 바로 이 희망과 약속입니다. 이 희망은 우리 모두에게 도움이 될 수 있으며, 우리가 오랫동안 슬퍼해 왔다 하더라도 그러합니다.

슬퍼하는 사람들을 위로하는 방법

9. 우리는 슬퍼하는 사람들에 대해 왜 참을성을 나타내지 못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됩니까?

9 슬픔은 사랑하는 사람의 사망 직후의 특정 기간에만 느끼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사람들은 평생 슬픔의 부담을 안고 사는데, 특히 자녀를 잃은 부모들의 경우 그러합니다. 스페인의 한 충실한 그리스도인 부부는 1963년에 11세 된 아들을 잃었는데, 뇌막염에 희생된 것입니다. 지금까지도, 이 부부는 아들 파키토에 대해 이야기할 때면 여전히 눈물을 흘립니다. 매년 그 날이 되거나 사진이나 쓰던 물건을 보면 슬픈 추억이 되살아 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참을성을 나타내지 못하거나 슬퍼하는 사람들이 이제는 상실감에서 회복되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일이 결코 있어서는 안 됩니다. 한 의학 전문지는 이렇게 인정합니다. “우울증과 감정적 동요는 여러 해 계속될 수 있다.” 그러므로 몸에 입은 상처가 평생 갈 수 있듯이, 많은 경우 감정적 상처도 그럴 수 있음을 기억하십시오.

10. 우리는 슬퍼하는 사람들을 돕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합니까?

10 그리스도인 회중 내의 슬퍼하는 사람들을 위로하기 위하여 우리가 할 수 있는 실제적인 일에는 어떤 것들이 있습니까? 우리는 위로를 필요로 하는 형제나 자매에게 아주 진지하게 “내가 도와 드릴 수 있는 일이 있으면 알려 주세요” 하고 말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유가족이 실제로 우리를 불러서 “나를 도와 줄 일이 생각났어요”라고 말하는 경우가 얼마나 있겠습니까? 확실히, 유가족을 위로하려면 우리가 적절하게 솔선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유익이 되는 어떤 일을 할 수 있습니까? 여기에 몇 가지 실용적인 제안이 있습니다.

11. 우리가 잘 듣는 것이 어떻게 다른 사람들에게 위로가 될 수 있습니까?

11 잘 듣는 일: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도움이 되는 일 중의 하나는, 잘 들음으로써 유가족의 고통을 함께 나누는 것입니다. “괜찮으시다면, 이번 일에 대해 이야기 좀 해주시겠습니까?” 하고 물어 보십시오. 이야기할 것인지 하지 않을 것인지는 본인이 결정하게 하십시오. 한 그리스도인 형제는 아버지가 사망했을 때의 일을 이렇게 회상합니다. “사람들이 일어난 일에 관하여 물은 다음 실제로 잘 들어 준 것이 정말로 도움이 되었습니다.” 야고보가 교훈한 바와 같이, 듣기는 신속히 하십시오. (야고보 1:19) 그러므로 참을성과 동정심을 나타내며 잘 들어 주십시오. 성서는 로마 12:15에서 “우는 사람들과 함께 우십시오”라고 권합니다. 예수께서 마르다와 마리아와 함께 우셨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요한 11:35.

12. 우리는 애통하는 사람들에게 어떤 유의 안심시키는 말을 할 수 있습니까?

12 안심시키는 일: 유가족은 처음에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이 더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죄책감을 느낄지 모른다는 점을 기억하십시오. 그로서는 필시 최선을 다한 것(또는 무엇이든지 당신이 알고 있는 그 밖의 사실이면서 긍정적인 일을 한 것)이라고 안심시키십시오. 그가 느끼는 감정이 전혀 이상한 것이 아니라고 안심시키십시오. 당신이 알고 있는 사람들 중에 그와 같은 상실감에서 성공적으로 회복한 사람에 대하여 이야기해 주십시오. 다시 말해서, 민감하고 동정심을 나타내십시오. 우리의 친절한 도움은 매우 큰 힘이 될 수 있습니다! 솔로몬은 “경우에 합당한 말은 아로새긴 은쟁반에 금사과”라고 썼습니다.—잠언 16:24; 25:11; 데살로니가 첫째 5:11, 14.

13. 우리가 가까이 있어 준다면, 그것이 어떻게 도움이 될 수 있습니까?

13 가까이 있어 주는 일: 많은 친구와 친족이 와 있는 처음 며칠 동안만이 아니라 필요하다면 다른 사람들이 정상적인 일과로 돌아간 지 여러 달이 지나서도 가까이 있어 주십시오. 슬픔이 지속되는 기간은 사람마다 크게 다를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가 나타내는 관심과 동정심은, 어느 때든 어려울 때에 큰 힘이 될 수 있습니다. “어떤 친구는 형제보다 친밀”하다고 성서는 말합니다. 그러므로 “어려울 때의 친구가 정말 친구이다”라는 격언은 우리가 실천에 옮겨야 할 자명한 말입니다.—잠언 18:24; 비교 사도 28:15.

14. 우리는 유가족을 위로하기 위하여 무엇에 관해 이야기할 수 있습니까?

14 고인의 좋은 특성들에 관해 이야기하는 일: 그러한 일은 적절한 때에 베풀 수 있는 또 한 가지 크게 도움이 되는 것입니다. 당신이 그 사람에 관해 기억하는 긍정적인 일화를 함께 나누십시오. 그 사람의 이름을 사용하기를 꺼리지 마십시오. 마치 사랑하는 사별한 사람이 결코 존재하지 않았거나 실존 인물이 아니었던 것처럼 행동하지 마십시오. 하버드 의과 대학에서 발행한 한 출판물에 나오는 이러한 말을 아는 것은 위로가 됩니다. “유가족이 마침내 슬픔에 압도되지 않으면서 고인에 대해 생각할 수 있을 때 일종의 회복이 이루어진다. ·⁠·⁠· 새로운 현실을 인정하고 현실에 적응하게 될 때, 슬픔은 점차 소중한 추억이 된다.” “소중한 추억”—사랑하는 사람과 보냈던 그 귀중한 순간들을 회상하는 것은 참으로 위로가 됩니다! 몇 년 전에 아버지와 사별한 한 증인은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나에게 있어서 특별한 추억은, 아버지가 진리를 연구하기 시작한 직후부터 아버지와 함께 성서를 읽은 일입니다. 또 다른 추억은 강둑에 누워 내 문제들에 대해 의논한 일입니다. 나는 삼사 년에 한 번씩만 아버지를 보았으며, 그래서 그러한 기회가 소중했습니다.”

15. 어떻게 솔선하여 도울 수 있습니까?

15 필요한 때 솔선하는 일: 어떤 사람은 다른 사람보다 슬픔을 더 잘 극복합니다. 그러므로 상황에 따라 도움이 되는 실제적인 단계를 취하십시오. 슬픔에 잠겼던 한 그리스도인 여자는 이렇게 회상하였습니다. “여러 사람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으면 알려 주세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한 그리스도인 자매는 묻지 않았습니다. 그 자매는 곧바로 침실로 들어가서 침구를 걷어 내더니 더러워진 시트를 세탁해 주었습니다. 또 다른 자매는 물통과 청소 도구를 가져와 남편이 토해서 더러워진 양탄자를 북북 문질러 닦아 주었습니다. 이들은 진정한 친구들이었으며, 나는 결코 그들을 잊지 못할 것입니다.” 분명히 도울 필요가 있으면 솔선하십시오—아마 음식을 준비하거나 청소를 돕거나 심부름을 해줄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우리는 유가족이 혼자 있기를 원할 때는 언제나 방해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바울의 이러한 말을 마음속 깊이 새겨야 합니다. “따라서 여러분은 하느님의 택함받은 거룩하고 사랑받는 사람들로서, 동정심 어린 부드러운 애정, 친절, 자기를 낮춘 정신, 온화, 오래 참음을 입으십시오.” 친절과 참을성과 사랑은 결코 무위로 돌아가지 않습니다.—골로새 3:12; 고린도 첫째 13:4-8.

16. 왜 편지나 카드가 위로가 될 수 있습니까?

16 편지를 쓰거나 위로 카드를 보내는 일: 흔히 조의를 표하는 편지나 아름다운 문상 카드의 가치를 대수롭지 않게 여깁니다. 그러한 편지나 카드에는 어떤 좋은 점이 있습니까? 몇 번이고 되풀이하여 읽을 수 있다는 점입니다. 그러한 편지 내용이 길 필요는 없지만, 우리의 동정심이 나타나 있어야 합니다. 편지 내용은 설교조의 것이 아니면서 영적인 성격을 띤 것이어야 합니다. 단지 “우리는 당신을 도울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라는 요지의 말이면 위안이 될 수 있습니다.

17. 기도가 어떻게 위로를 받게 할 수 있습니까?

17 함께 기도하는 일: 유가족이 된 동료 그리스도인들과 함께 또는 그들을 위해 기도하는 일의 가치를 과소 평가하지 마십시오. 성서는 야고보 5:16에서 “의로운 사람의 간구는 ·⁠·⁠· 많은 힘이 있”다고 알려 줍니다. 예를 들어, 슬퍼하는 사람들은 우리가 자기들을 위해 하는 기도를 들을 때, 죄책감과 같은 부정적인 감정을 해소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우리가 약해지고 사기가 꺾인 순간에, 사탄은 우리를 자기의 “간계” 즉 “간교한 행위”로 약화시키려 합니다. 그 때는 우리에게 위로와 기도의 지원이 필요한 때입니다. 바울이 이렇게 언명한 바와 같습니다. “모든 형태의 기도와 간구로 모든 경우에 영 안에서 계속 기도하십시오. 그렇게 하기 위하여 한결같이 깨어 있고, 모든 거룩한 자들을 위하여 간구하십시오.”—에베소 6:11, 18, 「왕국 행간역」; 비교 야고보 5:13-15.

피해야 할 일

18, 19. 우리는 대화 가운데서 어떻게 재치를 발휘할 수 있습니까?

18 어떤 사람이 슬퍼하고 있을 때, 하지 않아야 할 말이나 행동도 있습니다. 잠언 12:18은 이렇게 경고합니다. “혹은 칼로 찌름 같이 함부로 말하거니와 지혜로운 자의 혀는 양약 같으니라.” 때때로 우리는 미처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재치를 발휘하지 못하는 일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는 “심정이 어떤지 알아요”라고 말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정말로 심정이 어떤지 압니까? 우리가 그와 똑같은 상실감을 겪어 보았습니까? 그런 경험을 할 때에도, 사람마다 반응을 나타내는 방식이 다릅니다. 우리의 반응은 슬픔에 잠긴 그 사람의 반응과 똑같지 않았을지 모릅니다. “정말 안 됐습니다. 나의 ·⁠·⁠· 가 얼마 전에 죽었을 때 저도 비슷한 상실감을 겪었지요”라고 말하는 편이 더 신중함을 나타내는 것일 수 있습니다.

19 고인이 부활될 것인지의 여부에 관해 이야기하기를 피하는 것도 신중함을 나타내는 것이 될 것입니다. 일부 형제 자매들은 죽은 믿지 않는 배우자의 장래 가능성에 대한 판단하는 말 때문에 마음에 깊은 상처를 받았습니다. 우리는 누가 부활되고 누가 부활되지 않을 것인지를 판단하는 재판관이 아닙니다. 마음을 보시는 여호와께서 우리 중 어느 누구보다도 훨씬 더 자비로우실 것이라는 사실에 우리는 안심할 수 있습니다.—시 86:15; 누가 6:35-37.

위로가 되는 성구들

20, 21. 유가족에게 위안이 될 수 있는 어떤 성구들이 있습니까?

20 적절한 때에 베풀 수 있는 가장 큰 도움이 되는 것 중 한 가지는, 죽은 사람들에 대한 여호와의 약속을 함께 고려하는 것입니다. 유가족이 이미 증인이든 우리가 봉사에서 만난 사람이든 간에, 이러한 성경적 생각은 도움이 될 것입니다. 도움이 되는 성구들 중에는 어떤 것이 있습니까? 우리는 여호와께서 모든 위로의 하느님이심을 압니다. 그분은 “너희를 위로하는 자는 나여늘 나여늘”이라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또한 “어미가 자식을 위로함 같이 내가 너희를 위로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이사야 51:12; 66:13.

21 시편 필자는 “이 말씀은 나의 곤란 중에 위로라 주의 말씀이 나를 살리셨음이니이다 여호와여 주의 옛 규례를 내가 기억하고 스스로 위로하였나이다 구하오니 주의 종에게 하신 말씀대로 주의 인자하심이 나의 위안[“위로”]이 되게 하[소서].” 이 구절에서 “위로”라는 단어가 반복적으로 사용된 점에 유의하십시오. 그렇습니다. 우리는 고난의 때에 여호와의 말씀을 찾아봄으로써 우리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 위한 참다운 위로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위로는 형제들의 사랑 및 동정심과 더불어, 우리가 상실감을 극복하고 우리의 생활을 다시 그리스도인 봉사의 직무의 기쁨을 주는 활동으로 채우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시 119:50, 52, 76, 「신세」 참조.

22. 무슨 전망이 우리 앞에 놓여 있습니까?

22 우리는 또한 고난에 처한 다른 사람들을 돕는 데 바쁜 생활을 함으로 우리 자신의 슬픔을 어느 정도 극복할 수 있습니다. 위로를 필요로 하는 다른 사람들에게 주의를 기울일 때, 우리 역시 영적인 의미에서 주는 참 행복을 얻습니다. (사도 20:35) 부활의 날에 대한 환상을 그들과 함께 나누도록 합시다. 그 날에는 이전의 모든 나라에 속한 사람들이, 한 세대씩 차례로, 죽은 자로부터 돌아오는 잃었던 사랑하는 사람들을 신세계로 맞이하며 환영할 것입니다. 참으로 놀라운 전망입니다! 그 때 우리는 여호와께서 참으로 “비천한 사람들을 위로하시는” 하느님이심을 기억하면서 참으로 기쁨의 눈물을 흘릴 것입니다!—고린도 둘째 7:6.

기억하십니까?

◻ 여호와는 어떻게 “모든 위로의 하느님”이십니까?

◻ 예수와 바울은 어떻게 슬퍼하는 사람들을 위로하였습니까?

◻ 우리가 슬퍼하는 사람들을 위로하기 위해 할 수 있는 일들 몇 가지는 무엇입니까?

◻ 우리는 유가족을 대할 때 무엇을 피해야 합니까?

◻ 상실감을 겪을 때 위로가 되는, 당신이 좋아하는 성구들은 무엇입니까?

[15면 삽화]

재치있게 솔선하여 슬퍼하는 사람들을 도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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