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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부—호교론자들은 삼위일체 교리를 가르쳤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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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부—호교론자들은 삼위일체 교리를 가르쳤는가?
  • 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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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92
파92 4/1 24-30면

초기 교회는 하나님이 삼위일체라고 가르쳤는가?

제3부—호교론자들은 삼위일체 교리를 가르쳤는가?

1991년 11월 1일 호와 1992년 2월 1일 호에서, 「파수대」는 예수와 그분의 제자들도 그리고 기원 1세기 말과 2세기 초의 사도 교부들도 삼위일체 교리를 가르치지 않았음을 증명하였다. 2세기 후반의 교회 지도자들은 그 교리를 가르쳤는가?

통용 기원 2세기 중엽부터 말까지, 오늘날 호교론자라고 불리는 교회 지도자들이 출현하였다. 그들은 당시의 로마 사회에 만연해 있던 적대적인 철학에 대항하여 자신들이 알고 있는 그리스도교를 변호하기 위해 저술하였다. 그들의 저술물은 사도 교부들의 저술 활동이 끝나갈 무렵과 그 후에 나왔다.

그리스어로 저술한 호교론자들 가운데는 순교자 유스티누스, 타티아누스, 아테나고라스, 테오필루스,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스가 있었다. 테르툴리아누스는 라틴어로 저술한 호교론자였다. 그들은 현대 그리스도교국의 삼위일체—한 하나님 안에 동등한 세 위(아버지, 아들, 성령)가 있으며, 세 위가 각각 참 하나님이지만 세 하나님이 아니라 한 하나님이 있다는 교리—를 가르쳤는가?

‘아들은 종속되어 있다’

H. R. 보어 박사는 저서 「초기 교회 약사」(A Short History of the Early Church)에서 호교론자들의 가르침의 취지에 관해 이렇게 논평하였다.

“[순교자] 유스티누스는 창세 전에 하나님께서 홀로 계셨으며 아들이 없었다고 가르쳤다. ·⁠·⁠· 하나님께서는 세상을 창조하고자 하셨을 때, ·⁠·⁠· 자신을 대신하여 세상을 창조하도록 또 다른 신성한 존재를 낳으셨다. 이 신성한 존재는 ·⁠·⁠· 태어나셨기 때문에 아들이라 불렸으며, 하나님의 이성 혹은 정신에서 나왔기 때문에 로고스라 불렸다. ·⁠·⁠·

“이와 같이 유스티누스와 그 밖의 호교론자들은 아들이 피조물이라고 가르쳤다. 아들은 고등한 피조물, 세상을 창조할 정도로 강력한 피조물이지만, 그래도 피조물이다. 신학에서 아들과 아버지의 관계가 이러하다는 견해를 종속론이라고 한다. 아들은 종속되어 있는 분, 즉 부차적이고 아버지께 의존하며 아버지에 의해 존재하게 된 분이다. 호교론자들은 종속론자들이었다.”1

마르틴 베르너 박사는 「그리스도교 교의의 형성」(The Formation of Christian Dogma)이라는 책에서, 아들과 하나님의 관계에 대한 초기의 이해에 관해 이렇게 말한다.

“그 관계는 논의의 여지 없이 ‘종속’의 관계인 것으로, 즉 그리스도가 하나님께 종속되어 있다는 의미로 이해되었다. 신약 어디에서나 하나님 곧 아버지에 대한 예수의 관계가 고려될 때마다, ·⁠·⁠· 그것은 종속의 관계로 단정적으로 표현되거나 묘사된다. 그리고 공관 복음서의 기록에 따르면 신약에 나오는 가장 결정적인 종속론자는 예수 자신이었다. ·⁠·⁠· 이 원래의 입장은 확고하고 명백한 것이어서 오랫동안 유지될 수 있었다. ‘니케아 공의회 이전의 뛰어난 신학자들은 모두 로고스가 하나님께 종속되어 있는 것으로 묘사하였다.’”2

그와 일치하게, R. P. C. 핸슨은 「하나님에 대한 그리스도교 교리 탐구」(The Search for the Christian Doctrine of God)에서 이렇게 기술한다.

“[4세기에] 아리우스 논쟁이 일어나기 전에는 동방 교회나 서방 교회 어느 쪽에도, 어떤 의미에서든 아들이 아버지에게 종속된다고 생각하지 않는 신학자가 아무도 없었다.”3

앨번 램슨 박사는 「초기 삼세기의 교회」(The Church of the First Three Centuries)에서 니케아 공의회(기원 325년) 이전의 교회 권위자들의 가르침에 관해 이러한 증언을 덧붙인다.

“니케아 공의회 이전의 교부들은 일률적인 것은 아니라 해도 일반적으로 아들의 낮음을 주장하였다. ·⁠·⁠· 교부들이 아들을 아버지와 구별된 존재로 여겼다는 사실은 그들이 아들의 낮음을 솔직하게 주장하는 것으로 보아 분명히 알 수 있다. ·⁠·⁠· 그들은 아들을 구별되고 종속된 분으로 여겼다.”4

마찬가지로, 로버트 M. 그랜트는 「다신과 유일신」(Gods and the One God)이라는 책에서 호교론자들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호교론자들의 그리스도론은 신약의 그리스도론과 마찬가지로 본질적으로 종속론이다. 아들은 언제나 아버지께 종속되어 있으며, 아버지는 구약에 나오는 유일한 하나님이다. ·⁠·⁠· 그러므로 우리가 이 초기 저술가들 가운데서 발견하게 되는 것은 삼위일체 교리가 아니다. ·⁠·⁠· 니케아 공의회 전에, 그리스도교 신학은 거의 예외 없이 종속론이었다.”5

그리스도교국의 삼위일체는 아들이 영원성, 능력, 지위, 지혜 면에서 하나님 아버지와 동등하다는 가르침이다. 그러나 호교론자들은 아들이 하나님 아버지와 동등하지 않다고 말하였다. 그들은 아들을 종속된 분으로 여겼다. 그것은 삼위일체 가르침이 아니다.

1세기의 가르침을 반영함

호교론자들과 그 밖의 초기 교부들은 1세기 그리스도인들이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에 대해 가르친 바를 크게 반영하였다. 이 점이 「그리스도교 교의의 형성」 책에 어떻게 표현되어 있는지 유의하기 바란다.

“원시 그리스도교 시대에는, 후에 교회에서 격렬한 분쟁을 불러일으킨 삼위일체 문제나 논쟁이 어떤 식으로도 전혀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틀림없이 그 이유는 원시 그리스도교에 있어서 그리스도가 ·⁠·⁠· 하늘 높은 천사 세계에 속한 존재였다는 사실에 있었다. 그분은 시대의 마지막 때에 ·⁠·⁠· 하나님의 왕국을 가져오는 일을 위해 하나님께서 창조하시고 선택하신 분이었다.”6

더 나아가 초기 교부들의 가르침에 관하여, 「국제 표준 성서 백과 사전」(The International Standard Bible Encyclopedia)은 이렇게 시인한다.

“교회의 초기 사고 방식으로는 하나님 아버지를 언급할 때 먼저 그분을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로가 아니라 만물의 근원으로 이해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아버지는 말하자면 월등히 우월한 하나님이다. 시작이 없고 불멸이고 불변이고 형언할 수 없고 볼 수 없으며 창조되지 않은 분이라는 묘사는 그분께 속한 것이다. 무로부터 창조의 질료 자체를 포함하여 만물을 만드신 분은 그분이다. ·⁠·⁠·

“이것은 아버지만이 틀림없는 하나님이며 아들과 성령은 단지 부차적인 존재임을 시사하는 것으로 보일 것이다. 초기의 많은 진술은 그 점을 지지하는 것 같다.”7

이 백과 사전은 뒤이어 그러한 사실을 경시하면서 삼위일체 교리가 그 초기에 받아들여졌다고 주장하지만, 사실들은 그 주장이 잘못된 것임을 나타낸다. 유명한 가톨릭 신학자 존 헨리 뉴먼 추기경의 말을 고려해 보자.

“우리 주를 대상으로 하는 온전한 교리 체계가 원시 교회에서 일관성 있고 일률적으로 받아들여졌다고 하자. ·⁠·⁠· 그러나 가톨릭의 삼위일체 교리는 분명히 그렇지 않다. 무슨 의미로 원시 [교회 권위자들]의 일치된 견해가 그 교리를 지지한다고 말할 수 있는지 이해할 수 없다. ·⁠·⁠·

“그 초기 신경들은 ·⁠·⁠· [삼위일체]를 전혀 언급하지 않는다. 그 신경들이 셋을 언급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 교리에 신비스런 점이 있다거나, 셋이 하나라거나, 셋이 동등하고 영원하며 모두 창조되지 않았고 모두 전능하며 모두 이해할 수 없는 존재라는 말은 언급되어 있지 않으며, 그 신경에서 결코 이끌어 낼 수 없다.”8

순교자 유스티누스의 가르침

최초의 호교론자들 중에 순교자 유스티누스가 있었는데, 그는 기원 110년경부터 165년경까지 살았다. 현존하는 그의 저술물 중 어디에도 한 하나님 안에 동등한 세 위가 있다는 언급이 없다.

예를 들어, 「공동번역」에 따르면, 잠언 8:22-30은 인간 이전의 예수에 관해 이렇게 말한다. “야훼께서 만물을 지으시려던 한 처음에 모든 것에 앞서 나를 지으셨다. ·⁠·⁠· 깊은 바다가 생기기 전에 ·⁠·⁠· 나는 이미 태어났다. ·⁠·⁠· 언덕이 생겨 나기 전에 나는 이미 태어났다. ·⁠·⁠· 나는 [하느님께] 붙어 다니며 조수 노릇을 했다.” 유스티누스는 이 구절들을 논하면서 「트리폰과의 대화」(Dialogue With Trypho)에서 이렇게 말한다.

“성경은 만물이 창조되기 전에 이 아들이 아버지에 의해 태어났음을 언명하며, 태어나는 것이 낳는 것과 수적으로 구별된다는 것은 누구나 인정할 것이다.”9

아들이 하나님으로부터 태어나셨으므로, 유스티누스는 아들과 관련하여 “하나님”이라는 표현을 실제로 사용한다. 그는 「제1 호교론」(First Apology)에서 이렇게 말한다. “우주의 아버지께는 아들이 있습니다. 처음 출생된 하나님의 말씀이신 아들 역시 하나님입니다.”10 성서도 하나님의 아들을 가리켜 “하나님”이라는 칭호를 사용한다. 이사야 9:6(「신세」)에서 그분은 “능하신 하나님”이라고 불린다. 그러나 성서에서는 천사, 인간, 거짓 신, 그리고 사단도 “신”이라고 불린다. (천사: 시 8:5, 난외주 참조; 비교 히브리 2:6, 7. 인간: 시 82:6. 거짓 신: 출애굽 12:12; 고린도 전 8:5. 사단: 고린도 후 4:4.) 히브리어 성경에서, “하나님”에 해당하는 단어 엘은 단지 “능한 자” 혹은 “강한 자”를 의미한다. 희랍어 성경에서 그에 해당하는 단어는 테오스이다.

더욱이, 이사야 9:6에서 사용된 히브리어 용어는 아들과 하나님 사이의 명확한 구별을 보여 준다. 그 구절에서 아들은 “전능하신 하나님”이 아니라, “능하신 하나님” 즉 엘 기보르라고 불린다. “전능하신 하나님”이라는 용어는 히브리어로 엘 샤다이로서 여호와 하나님께만 적용된다.

그러나 유스티누스가 아들을 가리켜 “하나님”이라고 부르기는 했지만, 아들이 동등한 세 위 중 하나이며 세 위가 각각 하나님이되 한 하나님만을 이룬다고 말한 적은 없음에 유의하자. 오히려 그는 「트리폰과의 대화」에서 이렇게 말한다.

“만물을 만드신 분[전능하신 하나님]께 복종하는 또 하나의 하나님이자 주 되시는 분[인간 이전의 예수]이 ·⁠·⁠· 계시다. 그분[아들]은 또한 천사라고도 불린다. 그분[아들]은 만물을 만드신 분—다른 어느 하나님보다도 높으신 분—이 사람들에게 선포하고자 하시는 것을 모두 선포하시기 때문이다. ·⁠·⁠·

“[아들]은 만물을 만드신 분과는 구별된다—뜻에 있어서가 아니라 수적으로 [구별된다.]”11

유스티누스의 「제1 호교론」 제6장에는 흥미 있는 대목이 나오는데, 거기서 그는 그리스도인이 무신론자라고 주장한 이교도의 비난에 대해 변호한다. 그는 이렇게 기술한다.

“그분[하나님]과 아들(그분으로부터 나오셨고 우리에게 이러한 것들을 가르치신 분, 그리고 그분을 따르고 그분과 닮은 모습으로 만들어진 그 밖의 수많은 선한 천사들) 그리고 예언의 영을 우리는 숭배하고 받들어 섬깁니다.”12

이 문구를 번역한 베른하르트 로제는 이렇게 논평한다. “그와 같이 열거한 내용 중에서 천사를 그리스도인의 공경과 숭배의 대상으로 언급하는 것이 부족하기나 한 것처럼, 유스티누스는 성령을 언급하기 전에 천사를 먼저 언급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13—또한 「그리스도교 교리 발전론」(An Essay on the Development of Christian Doctrine) 참조.14

그러므로 순교자 유스티누스는 그리스도인 숭배의 대상이 누구여야 하는가 하는 문제에 있어서는 순수한 성서 교리로부터 벗어난 듯하지만, 천사를 아버지와 동등한 존재로 간주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아들을 아버지와 동등한 분으로 여기지 않았음이 분명하다. 유스티누스에 관한 것으로서, 램슨의 「초기 삼세기의 교회」에 나오는 말을 또다시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유스티누스는 아들을 하나님과 구별되고 하나님보다 낮은 분으로 여겼다. 세 히포스타시스 곧 위격 중 하나를 구성한다는 현대적 의미로 구별되는 것이 아니라 ·⁠·⁠· 본질과 본성 면에서 구별된다. 아들은 실재하는 별개의 존재이고, 하나님으로부터 분리되어 있고, 모든 능력과 칭호를 하나님으로부터 받았고, 하나님 아랫자리에 있으며, 모든 일에서 하나님의 뜻에 복종한다. 아버지가 지존하시며 아들은 종속되어 있다. 아버지가 능력의 근원이며 아들은 받아들이는 자다. 아버지가 뜻을 발하며, 아들은 아버지의 봉사자 혹은 도구로서 그 뜻을 집행한다. 그분들은 수적으로는 둘이지만 뜻에 있어서는 하나로 일치해 있다. 아버지의 뜻이 언제나 아들을 지배한다.”15

그뿐 아니라, 유스티누스는 어디서도 성령이 아버지나 아들과 동등한 하나의 위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정직하게 말하자면 어떤 의미로도 유스티누스가 현대 그리스도교국의 삼위일체를 가르쳤다고 할 수 없다.

클레멘스의 가르침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스(기원 150년경부터 215년경)도 아들을 “하나님”이라고 부른다. 그는 아들을 “창조자”—성서에서 예수를 가리켜 사용한 적이 결코 없는 용어—라고 부르기까지 한다. 그는 아들이 모든 면에서 전능하신 창조주와 동등하다는 뜻으로 말한 것인가? 그렇지 않다. 클레멘스는 분명히 요한 복음 1:3을 언급한 것인데, 그 구절은 아들에 관해서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다고 알려 준다.16 하나님께서는 창조 활동에서 아들을 대행자로 사용하셨다.—골로새 1:15-17.

클레멘스는 지존하신 하나님을 “우리 주 예수의 하나님이며 아버지이신 분”17이라고 부르며, “주는 창조주의 아들”18이라고 말한다. 그는 또한 이렇게 말한다. “만물의 하나님은 선하시고 공의로우신 유일한 창조주이며 아들은 아버지 안에 [있다.]”19 이와 같이 그는 아들의 하나님이 아들보다 높음을 기술하였다.

클레멘스는 하나님을 “영원한 생명의 유일한 첫 수여자”로 언급하며, “아들은 그분[하나님]으로부터 그것을 받아서 우리에게 주신다”고 말한다.20 분명히 영원한 생명의 원수여자는, 말하자면 그것을 전해 주는 자보다 우월하다. 따라서 클레멘스는 하나님이 “첫째이며 가장 높은 분”이라고 말한다.21 더욱이 그는 아들이 “홀로 전능하신 그분께 가장 가까우”며 “아버지의 뜻과 일치하게 모든 일을 명”한다고 말한다.22 거듭거듭 클레멘스는 전능하신 하나님이 아들보다 우월하심을 설명한다.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스에 관하여, 「초기 삼세기의 교회」에서 이러한 글을 읽을 수 있다.

“우리는 클레멘스의 글에서 아들이 낮음을 명료하게 주장하는 문구들을 많이 인용할 수 있다. ·⁠·⁠·

“누구든 클레멘스의 글을 대충이라도 읽고서 그가 아들을 아버지와 수적으로 동일한—하나의—존재로 여겼다고 잠시나마 상상할 수 있다면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우리가 보기에, 아들의 의존적이며 낮은 본성이 모든 곳에서 식별된다. 클레멘스는 하나님과 아들을 수적으로 구별된 분으로, 다시 말해서 두 분—한 분은 지존하시고 다른 한 분은 종속되신 분—이라고 믿었다.”23

더욱이 거듭 말할 수 있는 사실은, 클레멘스가 때때로 예수에 대한 성서의 가르침을 넘어서는 것처럼 보이기는 하지만, 한 하나님 안에 동등한 세 위로 이루어진 삼위일체에 관해 언급한 곳은 전혀 없다는 점이다. 유스티누스 시대와 클레멘스 시대 사이에 살았던 호교론자들, 이를테면 타티아누스, 테오필루스, 아테나고라스 등도 비슷한 견해를 가지고 있었다. 램슨에 의하면 그들은 “유스티누스와 마찬가지로 삼위일체론자들이 결코 아니었다. 즉 그들은 구분되지 않고 서로 동등한 셋을 믿은 것이 아니라, 그러한 신앙과 전적으로 조화될 수 없는 교리를 가르쳤다.”24

테르툴리아누스의 신학

테르툴리아누스(기원 160년경부터 230년경)는 트리니타스라는 라틴어 단어를 처음으로 사용한 사람이었다. 헨리 채드윅이 지적한 바와 같이, 테르툴리아누스는 하나님은 ‘세 위로 이루어진 한 실체’라고 주장하였다.25 그러나 이것은 그가 함께 동등하고 영원한 세 위를 염두에 두었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삼위일체 교리를 위해 힘쓰던 후기 필자들이 그의 사상을 토대로 삼았다.

아버지, 아들, 성령에 관한 테르툴리아누스의 개념은 그리스도교국의 삼위일체와는 거리가 먼 것이었다. 그는 종속론자였기 때문이다. 그는 아들을 아버지께 종속된 분으로 보았다. 「헤르모게네스에 대한 반박」(Against Hermogenes)에서 그는 이렇게 기술하였다.

“우리는 태어나거나 창조되지 않은 분이 하나님 한 분 외에 또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 하나님의 아들 곧 홀로 처음 태어난 말씀보다 더 오래 되고, 그래서 사실상 더 귀한 분이 아버지 외에 어찌 또 있을 수 있겠는가? ·⁠·⁠· 만든 자가 없는데도 존재하시는 분[하나님]께서 지은 이를 통해 존재하게 된 분[아들]보다 지위가 훨씬 더 높으실 것이다.”26

그는 또한 「프락세아스에 대한 반박」(Against Praxeas)에서, 아들이 전능하신 하나님과 다르며 그분께 종속되어 있음을 이러한 말로 설명한다.

“아버지는 온전한 실체이지만, 아들은 파생된 분이며 온전한 것의 일부다. 아들이 친히 ‘아버지는 나보다 크’다고 인정하는 바와 같다. ·⁠·⁠· 그러므로 아버지는 아들과 구별되는 분으로서, 아들보다 크시다. 낳는 자와 태어나는 자가 서로 다르고, 보내는 자와 보냄을 받는 자도 서로 다르며, 만드는 자와 사물을 만드는 데 사용되는 자도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27

테르툴리아누스는 더 나아가 「헤르모게네스에 대한 반박」에서 아들이 한 인격체로 존재하지 않은 때가 있었음을 설명함으로써, 아들을 하나님과 같은 의미에서 영원한 존재로 여기지 않음을 밝혔다.28 뉴먼 추기경은 이렇게 말하였다. “테르툴리아누스는 우리 주의 영원한 출생 교리에 대한 이단[비정통 교리를 믿는 사람]으로 간주되어야 한다.”29 테르툴리아누스에 관하여, 램슨은 이렇게 언명한다.

“테르툴리아누스가 생각한 바와 같이, 이 이성(理性) 즉 그리스인들이 로고스라고 부른 것이 후에 말씀 곧 아들로 바뀌었는데, 그 아들은 아버지만의 속성인 영원으로부터 존재해 온 실재이다. 그러나 테르툴리아누스는 아들의 지위가 아버지께 종속되어 있다고 생각했다. ·⁠·⁠·

“현재 일반적으로 인정받는 삼위일체에 대한 설명에 따라 판단해 볼 때, 테르툴리아누스를 [이단이라는] 단죄에서 구하려는 시도는 수포로 돌아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는 한순간도 시험에 합격할 수 없을 것이다.”30

결코 삼위일체가 아님

호교론자들의 글을 모두 읽어 보면, 그들이 어떤 면에서는 성서의 가르침에서 빗나갔지만, 그들 중 누구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이 영원성, 능력, 지위, 지혜에 있어서 동등하다고 가르치지 않았음을 알게 될 것이다.

이레나이우스, 히폴리투스, 오리게네스, 키프리아누스, 노바티아누스와 같은 제2세기와 제3세기의 다른 필자들도 그러하였다. 일부 사람들은 아버지와 아들을 어떤 면에서는 동등시하게 되었지만 다른 면에서는 아들을 하나님 아버지께 종속된 분으로 여겼다. 그리고 그들 중 누구도 성령이 아버지나 아들과 동등하다고는 추측조차 하지 않았다. 예를 들어, 오리게네스(기원 185년경부터 254년경)는 하나님의 아들이 “모든 창조물 중 처음 나신 분”이며 성경은 “그분을 모든 창조물 중 가장 오래 된 분으로 알려 준다”고 말한다.31

이러한 초기 교회 권위자들의 글을 객관적으로 읽어보면 그리스도교국의 삼위일체 교리가 그 시대에 존재하지 않았음을 알게 된다. 「초기 삼세기의 교회」에서 이렇게 말하는 바와 같다.

“현대의 널리 보급된 삼위일체 교리는 ·⁠·⁠· 유스티누스의 글로부터 아무런 뒷받침도 이끌어 내지 못한다. 이 말은 니케아 공의회 이전의 모든 교부에게, 다시 말해서, 그리스도의 탄생 후 삼세기 동안의 모든 그리스도인 필자들에게 확대 적용될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이 아버지와 아들과 예언의 영 혹은 성령에 대해 말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동등하다거나, 수적으로 하나의 본질이라거나, 하나 속의 셋이라거나, 현재 삼위일체론자들이 인정하는 어떤 의미로도 말하지 않는다. 사실은 오히려 정반대다. 이 교부들이 설명한 삼위일체 교리는 현대의 교리와는 본질적으로 달랐다. 우리는 이것을 인간의 견해에 관한 역사상의 어떤 사실만큼이나 신빙성 있는 사실로 확언한다.”32

사실상 테르툴리아누스 이전에는 삼위일체가 언급되지도 않았다. 그리고 테르툴리아누스의 “이단” 삼위일체는 오늘날의 삼위일체 신앙과는 큰 차이가 있었다. 그러면 어떻게 삼위일체 교리가 오늘날 이해되는 바대로 발전하게 되었는가? 기원 325년에 니케아 공의회에서 그렇게 되었는가? 우리는 「파수대」의 앞으로 나올 호에 실릴 이 연재 기사 제4부에서 그러한 질문을 살펴볼 것이다.

참조 문헌:

1. A Short History of the Early Church, by Harry R. Boer, 1976, page 110.

2. The Formation of Christian Dogma, by Martin Werner, 1957, page 125.

3. The Search for the Christian Doctrine of God, by R. P. C. Hanson, 1988, page 64.

4. The Church of the First Three Centuries, by Alvan Lamson, 1869, pages 70-1.

5. Gods and the One God, by Robert M. Grant, 1986, pages 109, 156, 160.

6. The Formation of Christian Dogma, pages 122, 125.

7. The International Standard Bible Encyclopedia, 1982, Volume 2, page 513.

8. An Essay on the Development of Christian Doctrine, by John Henry Cardinal Newman, Sixth Edition, 1989, pages 14-18.

9. The Ante-Nicene Fathers, edited by Alexander Roberts and James Donaldson, American Reprint of the Edinburgh Edition, 1885, Volume I, page 264.

10. Ibid., page 184.

11. The Ante-Nicene Fathers, Volume 1, page 223.

12. Ibid., page 164.

13. A Short History of Christian Doctrine, by Bernhard Lohse, translated from the German by F. Ernest Stoeffler, 1963, second paperback printing, 1980, page 43.

14. An Essay on the Development of Christian Doctrine, page 20.

15. The Church of the First Three Centuries, pages 73-4, 76.

16. The Ante-Nicene Fathers, Volume II, page 234.

17. Ibid., page 227.

18. Ibid., page 228.

19. Ibid.

20. Ibid., page 593.

21. Ibid.

22. Ibid., page 524.

23. The Church of the First Three Centuries, pages 124-5.

24. Ibid., page 95.

25. The Early Church, by Henry Chadwick, 1980 printing, page 89.

26. The Ante-Nicene Fathers, Volume III, page 487.

27. Ibid., pages 603-4.

28. Ibid., page 478.

29. An Essay on the Development of Christian Doctrine, pages 19, 20.

30. The Church of the First Three Centuries, pages 108-9.

31. The Ante-Nicene Fathers, Volume IV, page 560.

32. The Church of the First Three Centuries, pages 75-6.

[27면 삽화]

클레멘스

[자료 제공]

Historical Pictures Service

[28면 삽화]

테르툴리아누스

[자료 제공]

Historical Pictures Servi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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