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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너의 처음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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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너의 처음 사랑”
  • 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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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84
파84 2/15 15-19면

“너의 처음 사랑”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고 회개하[라.]”—계시 2:4, 5.

1, 2. (ㄱ) 예수께서는 ‘에베소’ 회중에 어떤 내용의 교훈을 보내셨읍니까? (ㄴ) 그러한 내용은 어떤 반응을 일으켰을 수 있읍니까?

당신은 다년간 충실한 봉사를 해온 여호와의 증인입니까? 만일 그렇다면, 당신이 매우 존경하는 어떤 사람이 당신에게 위와 같이 말할 때 당신은 어떻게 느끼겠읍니까? 당신은 그 말에 분개할 것입니까? 혹은 그가 실수를 한 것이며 나에게는 적용되지 않는 말이라고 생각할 것입니까?

2 그런데, 거의 1,900년 전에 소‘아시아’의 ‘에베소’에 있는 회중 혹은 ‘에클레시아’가 그런 말을 들었는데, 그것도 다름아닌 부활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 회중에 보낸 소식에 들어 있었읍니다. 그분의 말씀은 틀림없이 그들에게 충격을 주었을 것입니다. ‘에베소’의 그 그리스도인들은 예수의 이름으로 인내해 왔으며 40년 이상이나 배교자들의 영향을 저항해 왔던 것입니다. (사도 18:18, 19; 에베소 1:1, 2) 예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읍니다. “내가 네 행위와 수고와 네 인내를 알고 또 악한 자들을 용납지 아니한 것과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 거짓된 것을 네가 드러낸 것[을 아노라.]” (계시 2:2) 흔히 말하듯이, 그들은 여전히 “진리 안에” 있었읍니다. 그러면 문제가 된 것은 무엇이었읍니까?

3. ‘에베소’의 그리스도인들의 문제는 무엇이었읍니까?

3 그들은 ‘그들이 한때 가졌던 사랑’을 상실한 것입니다. 그들의 봉사가 더는 처음과 같은, 여호와께 대한 그리스도인 사랑의 동일한 열정을 가지고 하는 것이 아니었읍니다. 그 결과, 그들의 활동은 느슨하여 졌읍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이렇게 경고하셨읍니다. “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계시 2:5.

4. ‘에베소’인들의 경험으로부터 우리는 어떤 경고를 이끌어 낼 수 있읍니까?

4 바로 여기에 오늘날의 여호와의 종들을 위한 경고가 있읍니다. 분명히 활동적인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오랜 경험을 가진 사람들까지도 열정이 식을 수 있읍니다. 겉으로는 여전히 강해 보일지 모르지만, 속으로는 한때 여호와께 대해 가졌던 깊은 사랑을 상실해 버렸을지 모릅니다. ‘고린도’인들에게 보내는 한 편지에서, ‘바울’은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 경고하였읍니다. (고린도 전 10:12) 이 점에서 우리에게 도움이 되도록 이제 ‘에베소’인들이 어떻게 사랑을 갖게 되었고 그 사랑을 유지하도록 어떻게 도움을 받았는지 살펴보도록 합시다.

‘에베소’의 그리스도교

5, 6. 좋은 소식이 어떻게 그리고 언제 ‘에베소’에 전파되었읍니까?

5 통용 기원 제 1세기에, ‘에베소’ 시는 부유하고 북적거리는 대도시였으며 번창하는 이교 여신 ‘아데미’ (혹은 ‘다이아나’) 숭배의 중심지였읍니다. 예수께서 여호와의 메시야라는 가르침이 그곳에 처음으로 알려진 것은 아무리 늦어도 ‘바울’이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부부와 함께 ‘고린도’로부터 도착한 때인 기원 52년의 일일 것입니다. ‘바울’ 자신은 머물러 있을 수 없었지만, ‘아굴라’와 ‘브리스길라’는 그곳에 머물렀읍니다. 탁월한 연사인 ‘아볼로’가 그곳에서 예수에 관해 “자세히” 가르치기 시작하였을 때, 이 그리스도인 부부는 그가 가졌던 침례에 관한 잘못된 이해를 바로잡도록 도와 주었읍니다. ‘아볼로’는 계속해서 그 1세기 회중의 열렬한 봉사자로 일하였읍니다.—사도 18:24-28.

6 몇달 후에, ‘바울’이 ‘에베소’에 돌아와 보니, 그곳에는 ‘요한’의 침례만 받은 약 12명의 제자들로 이루어진 한 집단이 있었읍니다. 그들은 ‘바울’의 말에 응하여 다시 침례를 받았읍니다. 그 다음, ‘바울’은 석달 동안 회당에서 전파하였읍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유대’인들이 반응을 보이지 않자, ‘바울’과 새로운 제자들은 ‘두란노’ 서원으로 가서 거기에서 매일 강론하였읍니다.—사도 19:8-10.

7, 8. 어떤 주목할 만한 사건들이 ‘에베소’ 회중의 초기 발전의 특징을 이루었읍니까?

7 이제 ‘에베소’에 상쾌한 시기가 도래하였읍니다. 여호와께서는 ‘바울’을 통해 병고치는 능하신 일을 행하셨읍니다. 사람들은 단지 그의 옷에 닿기만해도 병이 나았으며, 그가 전파하는 말씀은 전 지역에 널리 퍼졌읍니다. (사도 19:11-17) 그 당시에 쓴 한 편지에서, ‘바울’은 ‘에게’ 해 건너편의 ‘고린도’ 회중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였읍니다. “오순절까지는 이곳 ‘에페소’에 머물러 있겠읍니다. 여기에는 나를 적대하는 사람들이 많기는 하지만 내가 큰 일을 할 수 있는 문이 활짝 열려 있읍니다.”—고린도 전 16:8, 9, 공동 번역.

8 ‘바울’은 ‘에베소’에 2년 이상 머물렀읍니다. 많은 사람들이 여호와께서 믿음을 실천하는 자들이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도록 자기의 독생자를 보내주신 일로 나타내신 비상한 사랑에 관해 배웠읍니다. 그들은 진리를 받아들였으며, 그들이 여호와와 그분의 아들에게 표현한 사랑은 강한 것이었읍니다. 이전에 마술을 행하던 자들이 “그 책을 모아 가지고 와서 모든 사람 앞에서 불사르니 그 책 값을 계산한즉 은 오만이나 되”었읍니다. “이와 같이 주의 말씀이 힘이 있어 흥왕하여 세력을 얻”었읍니다. (사도 19:19, 20) 그것은 얼마나 엄청난 증거였겠읍니까!

9. 새로운 회중의 사랑의 강도가 어떻게 시험을 받았읍니까?

9 오래지 않아, ‘에베소’인들의 사랑의 강도는 시험을 받았읍니다. ‘에베소’에서, 많은 은장색들은 ‘아데미’의 은제 사당 기물을 만드는 좋은 벌이를 하고 있었읍니다. 어린 그리스도인 회중이 그들의 생계에 위협이 된다고 여기고 그들 중 하나인 ‘데메드리오’는 동료 은장색들에게 열변을 토하며 폭동을 선동하였읍니다. 서기장이 폭도들을 진정시킬 때까지 그리스도인들의 생명은 위험에 처하였읍니다. (사도 19:23-41) ‘바울’이 ‘‘에베소’에서 맹수로 더불어 싸운 일’을 언급한 것을 보면, 아마 성서에 기록되지 않은 그와 비슷한 시험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고린도 전 15:32) 그렇지만, ‘에베소’인들이 가졌던 여호와께 대한 열렬한 사랑이 그들을 인내하도록 도왔읍니다.

10. ‘바울’은 나중에 ‘에베소’ 장로들을 격려하기 위해 어떻게 노력하였읍니까?

10 결국, ‘바울’은 ‘에베소’를 떠났읍니다. 그러나 기원 56년에 ‘예루살렘’으로 가던 중에, 그는 ‘에베소’에서 겨우 48‘킬로미터’ 떨어진 ‘밀레도’에 들렀읍니다. 그래서 그는 ‘에베소’ 장로들의 모임을 소집하여 그들에게 자신의 본을 따르고 그들의 보호 아래 있는 하나님의 양떼를 보살필 것을 권고하였읍니다. 그는 특히 그들에게 그들 가운데서 나타나 제자들을 미혹할 “흉악한 이리”들을 경계하라고 경고하였읍니다. 그는 또한 그가 다시는 그들을 대면하여 보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도 밝혔읍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다 크게 울며 ‘바울’의 목을 안고 입을 맞추”었읍니다.—사도 20:17-38.

11. ‘바울’은 ‘로마’에 있으면서 ‘에베소’인들에 관해 무슨 소식을 들었읍니까?

11 ‘바울’은 ‘예루살렘’에 당도하여 체포되었으며 결국 죄수로서 ‘로마’로 이송되었읍니다. 거기에서, 그의 생각은 다시 ‘에베소’ 형제들에게 기울어졌으며, 그는 성서에 “에베소서”란 제목 아래 나오는 편지를 썼읍니다. ‘에베소’의 그리스도인들의 여호와와 그분의 아들에 대한 사랑은, ‘바울’이 그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한 것으로 보아 그 당시에도 여전히 강하였읍니다. “주 예수 안에서 너희 믿음과 모든 성도를 향한 사랑을 나도 듣고 너희를 인하여 감사하기를 마지 아니하[노라.]”—에베소 1:15-17.

12. ‘바울’은 ‘에베소’인들이 ‘그들의 처음 사랑’을 보존하도록 돕기 위해 ‘로마’로부터 무슨 교훈의 편지를 써 보냈읍니까?

12 편지 가운데서, ‘바울’은 그들의 사랑이 계속 살아 있도록 돕기 위한 훌륭한 충고를 하였읍니다. 그는 그들에게 악한 시대에 살고 있으며, 따라서 다른 일들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일을 밀어내지 못하도록 “절호한 시간을 사”야 한다는 점을 상기시켰읍니다. (에베소 5:15-17, 신세) ‘바울’은 또한 ‘에베소’인들에게 그들의 진짜 적은 그들을 적대하려고 하는 인간들이 아님을 상기시켰읍니다. 오히려, 그는 “우리의 씨름은 ·⁠·⁠·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고 말하였읍니다. 그러므로, 그는 그들에게 영적 갑옷을 입고 기도로 하나님과의 밀접한 교제를 유지하라고 강력히 권고하였읍니다.—에베소 6:11-18.

13. ‘디모데’는 어떻게 ‘에베소’인들을 도울 수 있었읍니까?

13 ‘바울’이 ‘에베소’인들에게 편지를 쓴 것은 통용 기원 60 혹은 61년 경의 일이었읍니다. (에베소 1:1) 그후 오래지 않아 ‘디모데’는 ‘에베소’를 방문하였으며, 거기에 있는 동안 그는 ‘바울’로부터 우리가 「디모데 전서」라고 부르는 편지를 받았읍니다. 그 편지에서 ‘바울’은 이 연소자에게 ‘에베소’에 계속 머물러 있으면서 “어떤 사람들을 명하여 다른 교훈을 가르치지 말며 신화와 끝없는 족보에 착념치 말게 하”라고 권하였읍니다. (디모데 전 1:3, 4) 의심의 여지 없이 ‘디모데’가 그 도시에 있는 것은 대부분의 ‘에베소’ 그리스도인들이 그들을 둘러싼 악한 영향력에도 불구하고 여호와께 대한 열정적인 사랑을 보존하는 데 도움이 되었읍니다.

14. (ㄱ) 여호와께서는 ‘에베소’인들을 어떻게 강화시키셨읍니까? (ㄴ)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읍니까?

14 기원 65년 경에, ‘바울’은 ‘디모데’에게 그의 두번째 편지를 썼읍니다. 그 편지에서 그는 그가 또 다른 사자인 ‘두기고’를 ‘에베소’로 보냈다고 언급하였읍니다. (디모데 후 4:12) 그것이 예수께서 「계시록」에 기록된 소식을 보내시기까지 ‘에베소’에 관해 읽을 수 있는 마지막 내용입니다. ‘에베소’의 그리스도인들은 사도 ‘바울’이 전파 활동으로 맺은 열매입니다. 그들은 그 후에 ‘디모데’와 같은 탁월한 그리스도인들의 방문으로부터 유익을 받았으며, 성령의 감동을 받은 편지를 통해 교훈을 받았고 ‘하나의 몸’에 속하게 되었읍니다. (에베소 4:4) 그러나 그들은 ‘그들의 처음 사랑’을 상실하였읍니다.

단호한 충고가 필요했다

15, 16. (ㄱ) 일부 사람들이 ‘에베소’인들의 처음 사랑의 열정을 얼마간 상실한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할지 모르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ㄴ) 예수께서도 그렇게 생각하셨읍니까?

15 어떤 사람들은 ‘에베소’인들의 사랑의 열정이 식어진 것을 어느 정도 이해할 만한 일이라고 볼지 모릅니다. 어쨌든, 예수께서 ‘요한’을 통해 소식을 전했을 때 ‘에베소’에는 40년 이상 회중이 있어 왔읍니다. 틀림없이, ‘아굴라’와 ‘브리스길라’의 훌륭한 본이나 ‘아볼로’의 격려적인 전파 활동을 개인적으로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았을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죽은 지는 이미 30년이나 되었읍니다. ‘예루살렘’이 멸망되고 25년이 흘렀읍니다. 그러므로 ‘에베소’의 그리스도인들이 안정을 취하고, 긴급성과 열심을 상실한 것은 당연한 일로 생각될지 모릅니다.

16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러한 경향을 용납하지 않으셨읍니다. ‘에베소’인들 만큼 오래 혹은 그보다 더 오랫동안 그리스도인 생활을 해온 다른 사람들은 그들의 “처음 사랑”을 상실하지 않았읍니다. ‘에베소’인들에게 보내는 예수의 소식을 기록한 사도 ‘요한’은 ‘바울’이 ‘에베소’에 좋은 소식을 가지고 갔을 때 그리스도의 추종자가 된 지 이미 20년 이상 되었었읍니다. 더우기, ‘빌라델비아’ 회중 성원들은 ‘그들의 처음 사랑’을 상실하지 않았다는 강력한 증거를 제시하였읍니다.—계시 3:7-11.

17. ‘에베소’의 그리스도인들에게 보내는 예수의 충고는 무엇이었읍니까?

17 그러므로, 예수께서 그 ‘에베소’인들에게 만일 그들이 회개하지 않고 그들의 사랑을 다시 불붙이지 않는다면 그들 또한 형통치 못할 것이라고 단호하게 말씀하셨을 때, 그것은 불합리한 것이 아니었읍니다. 그분은 “회개치 아니하면 ·⁠·⁠·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고 말씀하셨읍니다. (계시 2:5) 이것은 위협이라기보다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지혜롭게 행동하여 특권을 상실하지 않도록 강권하는 사랑에 찬 경고였읍니다.

“처음 사랑”을 상실한 이유

18, 19. (ㄱ) ‘이스라엘’ 백성은 ‘애굽’에서 해방될 때 어떤 열심을 가졌읍니까? (ㄴ) 왜 그들은 그러한 열심을 상실하였읍니까?

18 사람들이 여호와에 대한 그들의 초기 사랑과 그분의 뜻을 수행하는 일에 대한 열심을 상실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성서는 ‘에베소’인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려 주지 않습니다. 그러나 성서에는 그와 비슷한 일을 알려 주는 다른 예들이 있읍니다. ‘모세’의 인도로 ‘애굽’에서 나온 ‘이스라엘’ 백성을 생각해 보십시오. ‘바로’와 그의 군대를 홍해에서 멸망시킴으로 절정에 달한 여호와의 능하신 일을 목격한 후에, 하나님의 구출받은 백성은 크게 열광하였읍니다. “여호와여, 신 중에 주와 같은 자 누구니이까?”라고 그들은 뛸듯이 기뻐하며 노래하였읍니다. (출애굽 15:11; 시 136:1, 15) 나중에, 여호와께서 그들과 언약을 맺으실 때 그들은 이구 동성으로 “여호와의 모든 말씀을 우리가 준행하리이다”라고 다짐하였읍니다.—출애굽 24:7.

19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의 감정은 급변하였읍니다. 일시적인 물의 부족, 다양하지 못한 식단, ‘가나안’ 사람들에 대한 두려움 및 기타 문제들은 그들로 하여금 여호와의 능하신 행위와 그분이 그들과 맺으신 언약을 잊어버리게 하였읍니다. 심지어, 이제 ‘애굽’에서 안전하게 멀리 떨어진 곳에 있게 된 그들에게는 종살이하던 나라인 그곳이 매력적인 곳으로 보이기까지 하였읍니다! 그들은 ‘애굽’인들의 가혹한 학대는 잊어버리고 그들이 한때 그곳에서 먹었던 ‘생선과 외, 수박, 부추, 파 및 마늘’만을 생각하였읍니다.—민수 11:5.

20, 21. (ㄱ) ‘고레스’ 시대의 ‘유대’인들은 어떤 흥분을 자아내는 소식을 들었으며, 그 소식은 어떤 영향을 미쳤읍니까? (ㄴ) 그들의 열정을 시들게 한 것은 무엇이었읍니까?

20 또한, 기원전 537년에 ‘바벨론’의 포로 생활로부터 돌아온 ‘유대’인들을 생각해 보십시오. 다음과 같은 ‘고레스’의 선언을 들었을 때 그들이 얼마나 흥분하였겠는지 상상해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 나를 명하사 ‘유다 예루살렘’에 전을 건축하라 하셨나니 ·⁠·⁠· 너희 중에 무릇 그 백성된 자는 다 ‘유다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서 거기 있는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전을 건축하라. 너희 하나님이 함께 하시기를 원하노라.” (에스라 1:2, 3) 수십만명이 호응하였으며, 마침내 새로운 전의 기초가 놓일 때 그 기쁨은 대단하였읍니다.—에스라 2:64; 3:10-13.

21 그러나, 그 열정은 곧 시들었읍니다. 이웃의 적들은 반대하였고 책략을 써서 성전 건축 사업을 중지시키는 공식 명령을 내리게 하였읍니다. (에스라 4장) ‘유대’인들은 자신들을 위해 좋은 집을 짓기 시작하였읍니다. (학개 1:4) 물론, 그들은 여전히 그들 자신을 ‘유대’교 실천자들로 생각하였읍니다. 그들은 그들의 믿음을 포기하지 않았었읍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들이 초기에 가졌던 여호와와 참 숭배의 권익에 대한 열렬한 사랑을 상실하였읍니다. 의심의 여지 없이, 그들은 자기들이 하고 있는 일에 있어서 균형을 잡고 있다고, 혹은 이치적이 되고 있다고 생각하였읍니다. 그러나 여호와께서는 그렇게 보시지 않았읍니다. 그분은 예언자 ‘학개’와 ‘스가랴’를 보내사 그들의 열심을 불러 일으키셨으며, 여호와의 전 건축을 마치도록 그들을 격려하셨읍니다.—에스라 5:1, 2.

22, 23. (ㄱ) 무엇 때문에 오늘날의 그리스도인들이 처음 사랑을 상실하게 될 수 있읍니까? (ㄴ) 우리가 고려하게 될 어떤 질문들이 남아 있읍니까?

22 비슷한 일이 우리 시대의 그리스도인들에게 발생할 수 있읍니다. 비그리스도교 세상에서의 매일매일의 생계 문제는 그들의 즐거움이 희미한 것이 되게 할 수 있읍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진리가 더는 신선하고 흥미를 자아내는 것이 아닌 것 같이 될 수 있읍니다. 심지어 세월이 흘러 세상이 어떠했는지를 잊어버리면서 어떤 그리스도인은 세상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소위 자유 즉 무책임성을 동경하는 마음으로 바라보는 일도 일어날 수 있읍니다. (에베소 2:11, 12) 혹은 그리스도인들이 그들 주위 사람들의 태도로 약해질 수 있읍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봉사를 보다 편하게 하고 다소 느슨해 지는 것이 더 이치적이라는 생각을 발전시킬 수 있읍니다.—예레미야 17:9.

23 그와 같은 일이 ‘에베소’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일어난 것이 분명하였지만, 예수께서는 분명히 그들이 회복될 수 있다고 생각하셨읍니다. 사실, 사도 ‘바울’을 통해 그들은 이미 많은 교훈을 받았었으며, 만일 적용하였다면 그들은 ‘그들의 처음 사랑’을 회복하도록 도움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 가치 있는 교훈이란 무엇이었읍니까? 그리고 그 교훈은 오늘날 우리가 “처음 사랑”을 지키도록 도움이 될 것입니까? 우리는 다음 기사에서 그 점을 토론할 것입니다.

기억할 수 있읍니까?

◻ ‘에베소’ 회중에는 무슨 문제가 있었읍니까?

◻ 여호와께서는 그들에게 무슨 도움을 베푸셨읍니까?

◻ 왜 ‘모세’ 시대의 ‘이스라엘’ 백성은 그들의 열심을 상실하였읍니까?

◻ ‘에스라’ 시대의 ‘이스라엘’ 백성은 무엇 때문에 그들의 열정을 상실하게 되었읍니까?

◻ 무엇이 우리로 ‘우리의 처음 사랑’을 상실하도록 인도할 수 있읍니까?

[17면 삽화]

아마 물질적인 이유로, ‘에베소’ 회중 성원들은 그들의 처음 사랑을 버린 것 같다

[18면 삽화]

‘학개’는 ‘유대’인들에게 ‘하나님의 전이 황무하거늘 너희가 이 때에 판벽한 집에 거하는 것이 가하냐?’라고 질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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