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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휘일체어’ 그늘 속의 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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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휘일체어’ 그늘 속의 생활
  • 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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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84
파84 11/1 22-24면

‘휘일체어’ 그늘 속의 생활

“유감스러운 일이지만 서른 살도 되기 전에 ‘휘일체어’에 매인 생활을 하게 되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하게 되었군요.”

나는 정말 믿을 수 없었다. “보세요! 난 아흔 살이 아니라 열 아홉 살이란 말이어요!” 불쑥 대꾸했다.

“어쩔 도리가 없어요.” 조용한 대답이었다. “받아들여야 해요. 세상에는 서른 살인데도 걷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 중 한 사람이 될거예요.”

정형 외과 의사의 냉정한 말은 선천적인 척추 상태로 인해 마침내 내가 영영 불구가 될 것임을 최초로 알려 준 것이었다. 도저히 믿을 수 없었던 나는 자전거에 뛰어 올라 재빨리 달아났다.

시간을 최대로 활용함

그때는 내가 이곳 영국에서 이년간 ‘파이오니아’로 전 시간 봉사에 참여해 온 때였다. 그 기간은 얼마나 행복한 때였던가! 내 마음은 계속하기로 작정돼 있었지만, 의사의 말이 계속 귓전을 두드렸다. 과연 그렇게 될까? 나는 이렇게 혼잣말을 한 것을 기억한다. “그렇게 되든 안 되든, 그때가 실제로 오기 전에 그만 둘 이유야 없지 않은가?” 나는 ‘파이오니아’를 계속하기로 했다.

다음 십년간 등뼈 상태가 악화돼 가는 것이 점차 분명해 졌다. 내가 전 시간 전파 활동을 계속할 수 있었던 것은 주로 ‘파이오니아’ 동료인 ‘엘사’의 격려와 신체적 도움 때문이었다. 우리는 수백 ‘킬로미터’를 자전거로 달려 바닷가 마을에서 증거했고, 아름다운 시골로 여행했는가 하면, 교외 지역에서도 봉사했다. 결국에는 ‘런던’ 도심부에서 집중적으로 활동했다. 다가오는 지상 낙원의 놀라운 약속에 관한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는 일에 우리의 시간 모두를 바칠 수 있다는 것에서 우리가 느낀 자유와 만족감은 얼마나 깊었던가!

여러 번 수술을 하기 위한 입원 기간 때문에 내 활동에 약간 공백이 있기는 했지만, 나는 ‘파이오니아’를 계속할 수 있었다. 다리 보조 지팡이를 사용하다가 마침내 목발을 사용해야 했다. ‘파이오니아’ 봉사의 마지막 이년 동안에는 이렇게 해서 돌아다녔다. 사람들은 참으로 친절했다. 한 ‘택시’ 운전사는 나를 유심히 보고는 호출 연락이 없는 사이에 무료로 태워주곤 했다. 나를 볼 때면 언제든지, 쉬도록 집을 제공해 주는 사람들도 많았다.

그러던 중 의사의 말이 고통스럽게 실증됐다. 등뼈가 갑자기 허물어진 것이다. 병원에서 오랜 기간을, 그 다음 ‘깁스’를 하고 여러 달을 더 보낸 후 나는 ‘휘일체어’ 생활을 하게 되었다. “언제고 아침에 일어나 이 모든 것이 현실이 아님을 알게 되는 날이 오겠지” 하며 스스로를 달래곤 했다. 어쩐지 그 날까지만 기다리면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신체 장해자 생활로의 조정

처음에는 걸핏하면 화를 냈다. 극도로 다른 사람들의 배려와 도움을 필요로 했으면서도, 그것을 받아들여야 함에 대해 부끄러움을 느꼈고 좌절감을 느끼기까지 하였다. 마치 아무런 도움이 베풀어지지 않은 듯 화를 내기도 했다. 갑자기 그렇게 남을 의지해야 되게 될 때 어떤 기분인지는 아마 비슷한 경험을 해본 사람만이 온전히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밖의 사람들에게 나타낸 미소는 끝없는 슬픔과 무용지물이라는 내 느낌을 가리기 위한 것에 불과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스스로 노력했고, 이런 부정적인 최악의 감정에서 헤어날 수 있었다. 돌이켜 보면, 전환점은 한 동료 ‘증인’이 「리빙 바이블」에서 고린도 후서 12:8-10을 읽어 준 때였다. 그 일부는 이렇다. “자신의 힘과 능력을 자랑하기보다는 그리스도의 힘의 살아있는 실례가 되기를 나는 기뻐합니다.” 내게 사도 ‘바울’의 이 말을 읽어 준 ‘증인’은 자신도 사고로 심하게 다친 적이 있는 사람이었는데, 그의 경우에 그 점이 참되었음을 나는 볼 수 있었다.

나는 여호와 하나님께 자기 중심적이 되는 것이 아니라 그분과 다른 사람들에게 항상 쓸모있는 사람이 되는 데 도움이 될, 내가 여전히 할 수 있는 어떤 건설적인 것을 알려 달라고 간구했다. 나의 전체 생활이 바뀌었다.

다른 사람들을 돕는 즐거움

주의를 살펴본 나는 제약에 눌려 좋아하는 것을 자유스럽게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음을 알게 되었다. 예를 들어 여자들에게는 돌봐야 할 대가족이 있고, 남자들은 하루 종일 단조로운 일에 매여 있는가 하면, 연로하여 더는 많은 것을 성취할 힘이 없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에 관해 생각하게 되었고, 그들이 어떻게 극복하는지 유심히 살펴보기 시작했다.

얼마 후 나는 이런 요청을 받았다. “집에 찾아올 수 있는 여자와의 성서 연구를 사회하고 싶지 않나요?” 얼마나 격려적이었던가! 그 여자는 내가 이런 식으로 사회해 온 여러 명 가운데 첫 사람이 되었다. 신체 상태가 이렇게 되었지만, 제자를 삼는 일에 바친 여러 해의 경험을 사용하는 능력에 있어서는 달라진 것이 없음을 알게 된 것은 즐거운 일이었다.

제자를 삼는 일에 참여하기 위한 새로운 방법을 나는 꾸준히 물색했다. 처음에는 주로 편지를 씀으로써 그렇게 했다. 호별 방문 증거하러 들어가기 어려운 한 ‘플랫’식 연립 주택이 내가 임명받은 구역이다. 편지를 쓸 때 나는 각 집에 각기 다른 가족이 산다고 상상하여, 각 가족마다 다른 성경적 제공을 사용하려고 한다. 이런 식으로 나는 하나님의 말씀의 공개적 봉사에 실제로 참여하고 있는 듯이 자신을 머리 속에 그려 보면서 정신이 계속 활동하게 한다.

마침내 나는 마지막 장애물을 극복하여, 다시 호별 방문 복음 전파에도 참여하기로 결정했다. 그렇게 한 것이 정말 기쁘다. 믿음을 입으로 선포하는 것 만큼 믿음을 강화시켜 주는 것은 없다. 이제 회중 안의 친구들이 정기적으로 나와 ‘휘일체어’를 차에 태워주기 때문에, 때때로 보조 ‘파이오니아’ 봉사도 할 수 있게 되었다.

내가 마지막으로 자전거를 탄 지도 어언간 육 년이 흘렀다. 과거의 자유스런 활동이며 그토록 즐거움을 주던 신선한 공기며 바쁜 생활이 그리워지는 때도 있다. 그러나 긍정적 측면도 있다. ‘파이오니아’ 봉사를 한 활동적인 생활로 인해 자유스럽게 움직일 수 있는 햇수가 예측된 10년에서 15년 이상으로 연장되었기 때문이다.

과거 몇 년간 나는 혼자 살고 있다. 그러나 ‘엘사’와 그 남편은 나를 가족처럼 대해 준다. 그의 자녀들은 내 자녀처럼 사랑스럽기만 하다.

또한 나는 이전에는 없던 재산을 얻었음을 자신에게 상기시키고 있다. 이 중 가장 큰 것은 시간이다. 나는 항상 듣는 귀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귀기울일 여가가 있다. 나는 문제를 겪는 사람들에게 동정심을 보이는 면에서 발전해 왔다. 무엇보다도 여호와 하나님과의 밀접한 관계가 점점 자라가고 있다. 그분은 인생을 있는 그대로 즐기도록 나를 사랑스럽게 가르치셨고 그분을 계속 섬기도록 내게 힘과 목적을 베풀어 오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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