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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즐거운 마음으로 여호와를 섬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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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즐거운 마음으로 여호와를 섬기라
  • 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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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는 그것을 발견할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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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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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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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연구용)—2018
  • 기쁨
    성경 통찰, 제1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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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83
파83 2/15 7-11면

즐거운 마음으로 여호와를 섬기라

“기쁨으로 여호와를 섬기며 노래하면서 그 앞에 나아갈찌어다.”—시 100:2.

1, 2. 인생에 대한 어떤 대조적인 견해가 여기에 인용되어 있읍니까?

“나는 인생을 난잡하게 살아왔어요. 그리고 변화시키기엔 너무 늦은 걸요 ·⁠·⁠· 혼자 걸으면서 나의 인생을 회고해 보면 살아온 방식이 불만스럽기만 합니다.” 이 말은 한때 여배우로서 명성을 떨쳐 외견상 행복을 느낄 만한 좋은 이유가 있었던 어느 연로한 부인의 말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말은 참으로 즐거운 마음으로부터 나온 말이 아님이 분명합니다.

2 이와는 대조적으로, 37년 이상이나 마비증세로 투병 생활을 해온 한 남자를 고려해 보십시오. 표면상 그러한 사람에게는 즐거워할 이유가 거의 없읍니다. 그런데도, 그는 행복에 관해 이야기하며, 자기는 “인생을 진정으로 보람있고 뜻깊은 것이 되게 하”는 것을 찾았다고 말하였읍니다.

3. (ㄱ) 어떠한 개인적인 경험이 우리로 하여금 진정한 즐거움을 누릴 수 있는 사람이 있는지에 대하여 의아해 하게 합니까? (ㄴ) 즐거움을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읍니까?

3 우리들 중 대다수가 질병으로 장기적이고도 고통스러운 투병 생활을 견뎌야 했던 것은 아닙니다. 또한 연예인으로서 세계적으로 명성을 떨쳐온 것도 아닙니다. 아마 우리는 일상 생활의 염려와 고난을 직면해야 하는 평범한 사람들일지 모릅니다. 우리의 경험은 “여인에게서 난 사람은 사는 날이 적고 괴로움이 가득하”다는 것을 증명합니다. 그리고 의문의 여지없이 우리는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한다는 데 동의합니다. (욥 14:1; 로마 8:22) 그러므로, 지상에 사는 사람 가운데 진정한 즐거움 곧 “좋고 만족스러운 일로 인한 벅찬 기쁨이나 행복의 감정”을 가질 수 있는 사람이 있는지에 대해 의아해 하는 것도 당연한 일입니다. 당신의 생각은 어떠합니까? 즐거움이란 과연 도달할 수 있는 것입니까?

우리는 그것을 발견할 수 있는가?

4. 진정한 즐거움을 경험하고 있는 수많은 자들 가운데 누가 있읍니까?

4 즐거움을 누리는 자들이 분명히 많이 있읍니다. 하늘의 의로운 천사들은 즐거움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수행’하고 있읍니다. (시 103:20) 그들은 항상 진정한 즐거움을 가지고 여호와 하나님을 섬겨 왔읍니다. 사실상 땅의 기초를 놓을 때 이들 “아침 별들이 즐겁게 함께 소리쳤”읍니다! (욥 38:4-7, 신세) 예수의 탄생을 발표한 충실한 천사는 즐거운 사명을 수행하고 있었음에 틀림없읍니다. 왜냐하면, 그는 “크게 즐거워할 좋은 소식”을 선포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누가 2:8-14, 신세.

5. 즐거움에 관한 하나님의 독생자의 경험은 어떠하였읍니까?

5 그러나, “하나님의 독생자”에 대하여는 어떠합니까? (요한 3:18) 인간 예수 그리스도가 되시기 전에 그는 하늘에서 여호와의 “우두머리 일군”으로 계셨읍니다. 그 봉사는 즐거운 것이었읍니까? 참으로 그러하였읍니다. 왜냐하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 날마다 그[여호와] 기뻐하신 바가 되었으며 항상 그 앞에서 즐거워하였[느니라.]” (잠언 8:22-31) 인간으로 지상에 계시는 동안,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뜻을 수행하시는 데서 즐거움을 얻으셨읍니다. (시 40:6-8; 히브리 10:5-10) 더우기,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형주]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읍니다. (히브리 12:2) 머지않아 지상에 하나님의 심판을 집행하실 “행복하시고 유일하신 유력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현재 진정 즐거운 마음으로 여호와를 섬기고 계십니다.—디모데 전 6:13-16, 신세; 데살로니가 후 1:6-10.

6. 오늘날 우리는 어디에서 즐거움을 발견할 수 있읍니까?

6 그러면 당신도 오늘날 즐거움을 발견할 수 있읍니까? 그렇습니다, 앞서 언급된 병고에 시달린 그 사람은 그 점을 이러한 말로 지적하였읍니다. “나는 최대의 행복이 하나님을 섬기는 데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읍니다. 이것이야말로 진정 인생을 보람있고 뜻깊은 것이 되게 합니다. 마비증 환자가 되는 것이 나에게서 창조주를 섬기는 특권과 축복을 앗아가지는 못하였읍니다.” 진정한 즐거움은 온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께 헌신한 사람들 가운데서 발견할 수 있읍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들은 “행복하신 하나님”으로부터 온 “좋은 소식” 곧 “하늘 왕국”의 통치 아래 웅대한 축복 속에서 끝없는 생명을 즐길 것이라는 가슴설레이는 소식을 선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마태 24:14; 디모데 전 1:11; 마태 5:3, 신세) 그러므로, 그들은 “기쁨으로 여호와를 섬기며 노래하면서 그 앞에 나아갈” 이유를 가지고 있읍니다.—시 100:2.

7, 8. (ㄱ) 여호와께 헌신한 사람들은 그들의 즐거움에도 불구하고 왜 항상 근심이 없는 것은 아닙니까? (ㄴ) 생활상의 고난들이 여호와의 백성을 압도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7 이것은 하나님께 헌신한 사람들에게 항상 아무런 근심도 없을 것이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불완전한 인간 사회에서 여호와의 백성은 종종 얼마의 슬픔을 겪습니다. (로마 5:12) 예를 들어, ‘에서’가 ‘헷’ 족속의 여자들을 아내로 삼았을 때, “그들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그의 부모들인] ‘이삭’과 ‘리브가’의 마음의 근심이 되었”읍니다. (창세 26:34, 35) 더우기, ‘사단’ 마귀는 공공연한 박해와 간접적인 “교활한 행동”으로 그리스도인들이 누리는 여호와 하나님과의 귀중한 관계를 파괴하려고 애쓰고 있읍니다. (에베소 6:11, 희랍어 성서 왕국 행간 번역) 따라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인생을 살아가면서 얼마의 고난을 예상할 수 있읍니다. 그러나, 그러한 난관들이 여호와의 백성을 압도하지는 못합니다. 그들은 ‘성경에서 안위’를 끌어내며 확신을 가지고 영의 열매인 즐거움을 배양하는 일에 하나님의 영과 도움을 기도로 구합니다. (로마 15:4; 누가 11:13; 갈라디아 5:22, 23) 인생의 시련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인들은 “성령의 기쁨”을 누릴 수 있읍니다. (데살로니가 전 1:6) 특히, 여호와로부터 받는 축복이 그 즐거움에 기여합니다.

8 여호와께서 주시는 축복은 실로 풍성합니다. (잠언 10:22) 그러나, 당신은 그리스도인으로서, 당신이 받은 축복들을 헤아려 보았읍니까? 그러한 것들은 당신으로 “여호와를 기뻐하”게 할 것입니다. (시 32:11) 우리의 축복 가운데 단 몇 가지만 고려해 보더라도, 우리에게는 여호와를 즐거운 마음으로 섬겨야 할 충분한 이유가 있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

비할 데 없이 즐거운 특권

9. 여호와를 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며, 이것은 즐거움과 어떠한 관련이 있읍니까?

9 여호와를 알고 섬기는 것은 비할 바 없는 축복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언자 ‘예레미야’를 통하여 이렇게 말씀하셨읍니다. “자랑하는 자는 이것으로 자랑할찌니 곧 명철하여 나를 아는 것과 나 여호와는 인애와 공평과 정직을 땅에 행하는 자인줄 깨닫는 것이라.” (예레미야 9:24) 당연한 일이지만, 하나님의 이름을 알고 있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여호와를 안다는 것은 그분의 특성, 행동, 태도 및 목적에 대하여 아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것은 그분에게 순종하며, 그분의 권위를 인정하고 복종하는 것을 뜻합니다. (요한 1서 5:3) 성경을 진지하게 연구하고 자기 아버지와 온전한 조화를 이루시는 하나님의 아들의 언행을 묵상함으로써 하나님과 친밀한 개인적 관계를 세워나갈 수 있읍니다. (요한 1:18; 14:9-11) 그와 같이 여호와를 알고 있는 사람들은 참으로 즐거워하고 있읍니다. 사실상, “하나님이 그 기뻐하시는 자에게는 지혜와 지식과 희락을 주”십니다.—전도 2:26.

10. 인간의 생명을 가장 중요하고 만족스럽게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입니까?

10 ‘여호와의 증인’들이 즐기는 또 하나의 축복으로 참 하나님께 “거룩한 봉사”를 드리는 더없이 귀중한 특권이 있읍니다. 자기의 생명을 그보다 더 중요하고 더 만족스러운 방법으로 사용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읍니다. 과연, (침례자 ‘요한’의 부친이었던) ‘사가랴’는 평생에 “그분께 충성과 의로 두려움없이 거룩한 봉사를 드리는 특권”을 그의 백성에게 부여하신 데 대하여 여호와를 송축하는 가운데 그 점을 잘 표현하였읍니다.—누가 1:67-79, 신세; 로마 12:1; 계시 7:9, 13-15 비교.

11. 즐거움을 주는 무슨 특권이 하나님께 “거룩한 봉사”를 드리는 것과 연관되어 있읍니까?

11 여호와의 증인들로서 그분의 이름을 지니고 있는 특권은 하나님께 “거룩한 봉사”를 드리는 특권과 연관되어 있읍니다. (이사야 43:10-12) 그것은 분명히 ‘예레미야’가 다음과 같이 말한 것처럼, 즐거움의 촉진제가 되어야 합니다.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시여, 나는 주의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자라 ·⁠·⁠· 주의 말씀은 내게 기쁨과 즐거움이[옵니다.]”—예레미야 15:16.

12. 우리가 낙담하고 있다면, 무슨 대조점들에 관해 숙고함으로써 생기를 되찾을 수 있읍니까?

12 당신이 하나님의 종이면서도 가끔 낙담하는 일이 있다면, 얼마의 대조점들을 간단히 숙고함으로써 생기를 되찾을 수 있읍니다. 예를 들어, 우리는 악한 천사들을 하나님의 불리한 심판을 받도록 “영원한 결박으로 흑암에 가두셨”다는 것을 생각하는 반면에, 여호와를 섬기고 있는 의로운 천사들은 전부 더욱 더 즐거워하고 있음을 생각할 수 있읍니다. (유다 6) 그리고 예수의 즐거운 상태와 영원한 멸망을 당할 운명에 있는 ‘사단’ 마귀의 상태는 얼마나 큰 대조를 이룹니까! (계시 20:10, 14) 또한, 여호와의 인자하신 보살핌과 축복은 확실히 “의인과 악인이며 하나님을 섬기는 자와 섬기지 아니하는 자를 분별”하기 쉽게 만듭니다. (말라기 3:17, 18) 그러나, 여호와를 즐거운 마음으로 섬겨야 할 건전한 이유를 제공하는 또 다른 축복들을 고려해 보십시오.

참다운 자유와 영적인 빛

13, 14. 종교적으로 말하여, 여호와의 종들은 무슨 참다운 자유와 영적 빛을 즐기고 있읍니까?

13 큰 ‘바벨론’ 곧 거짓 종교 세계 제국으로부터의 해방은 즐거움을 촉진시키는 또 다른 축복임이 분명합니다. 진실한 그리스도인들은 ‘그의 죄에 참여하여 그가 받을 재앙을 받지’ 않게 될 것에 대하여 기뻐합니다. (계시 18:2, 4) 이에 부가하여, 여호와의 종들은 두려움과 거짓 종교 교리로부터 자유케 된 것을 기뻐합니다. 예수께서는 “진리를 알찌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고 말씀하신 바 있읍니다. (요한 8:32) 그러한 참다운 자유는 영적 암흑에 처해 있는 사람들의 속박된 상태를 고려해 볼 때 더욱 더 귀중하게 느껴집니다.

14 예를 들어, 거짓 종교를 믿는 수많은 사람들과는 달리, 여호와의 숭배자들은 말하지도 보지도 듣지도 못하며, 냄새 맡거나 걷지도 못하는 우상 앞에 경배하거나 기도하지 않습니다. (시 115:4-8) 또한, 영적으로 해방되어 계몽받은 그리스도인들은 수많은 지상 거민들과는 달리 죽은 자들을 두려워하지도 않습니다. 사람이 불멸의 영혼을 가지고 있다는 거짓 종교의 가르침은 죽은 자들이 되돌아와서 살아있는 사람들을 붙어 다니거나 괴롭힐 수 있다는 그러한 두려움을 자아내게 하고 있읍니다. 하지만, 하나님으로부터 온 영적 빛은 그러한 두려움을 없애주었읍니다. 왜냐하면, 참 그리스도인들은 죽은 자들이 “아무 것도 모”른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전도 9:5, 10) 하나님의 기억 속에 있는 죽어 있는 사랑하는 사람들이 부활을 경험하게 될 것을 알게 된 것은 참으로 훨씬 더 유익하였읍니다! (요한 5:28, 29; 사도 24:15) 여호와의 헌신한 증인들은 그들이 연합하여 섬기는 천적 아버지께서 그분의 성령을 통하여 그들에게 “하나님의 깊은 것”을 밝혀 주신 것에 대하여 확실히 기뻐할 수 있읍니다. (고린도 전 2:10) 그렇습니다, 그분은 자기 백성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영적 빛과 진리를 부여하셨읍니다.—시 43:3.

다른 사람들을 돕는 즐거움

15, 16. (ㄱ) 예수의 초기 제자들이 ‘그들의 빛을 비취게’ 하였을 때 그 결과는 어떠하였읍니까? (ㄴ)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은 제자를 삼는 일에서 무엇을 경험하고 있읍니까?

15 영적 빛을 반영하는 것 역시 하나의 축복입니다. 예수께서는 그의 추종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읍니다. “너희는 세상에 빛이라. ·⁠·⁠·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마태 5:14-16) 초기의 제자들이 말과 행동으로 ‘그들의 빛을 비취게’ 함에 따라 그 결과는 어떠하였읍니까? 다른 사람들에게 유익이 되었지만, 또한 그러한 활동은 그리스도의 추종자들 자신에게도 즐거움을 가져다 주었읍니다. (누가 10:1, 17-20; 사도 8:4-8) 확실히 그들 제자를 삼는 자들은 즐거운 마음으로 여호와를 섬기고 있었읍니다.—마태 28:19, 20.

16 오늘날도 그리스도인들은 왕국 소식을 선포하는 일에서 동일한 즐거움을 경험하고 있읍니다. 이것은 그들이 하나님의 진리에 대한 지식을 얻도록 도움을 베풀고 있는 사람들과 관련하여 특별히 참됩니다. 그러한 즐거움을 경험한 사람으로 사도 ‘바울’이 있읍니다. 그는 자기가 도움을 베풀었던 ‘빌립보’인들이 자신의 “기쁨이요 면류관”이라고 하였기 때문입니다. (빌립보 4:1) 자기가 ‘데살로니가’에서 도움을 베풀었던 사람들에 관하여 그 사도는 이렇게 기술하였읍니다. “우리의 소망이나 기쁨이나 자랑의 면류관이 무엇이냐? 그의 강림하실 때 우리 주 예수 앞에 너희가 아니냐? 너희는 우리의 영광이요 기쁨이니라.” (데살로니가 전 2:19, 20) 그렇습니다, ‘바울’도 오늘날의 그리스도인들과 똑같이 자기가 영적으로 도와주었던 사람들에게서 즐거움을 발견하였읍니다. 당신도 여호와의 봉사에 진력함으로써 그러한 즐거움을 맛보고 있읍니까?

17. 일부 지역에서의 한정된 결과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여호와의 증인’들은 그들의 제자를 삼는 사업에서 즐거움을 얻고 있읍니까?

17 오늘날 일부 지역에서의 증거는 한정된 결과밖에 산출하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여호와의 증인’들은 그들의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찬양을 드리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데서 즐거움을 얻고 있읍니다. 그것은 어떤 집주인들이 그들의 집을 찾아온 ‘증인’들을 달갑게 여기지 않을지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여호와의 종들은 이 때문에 낙심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여호와를 섬기는 일이야말로 인간이 지상에서 누릴 수 있는 최상의 특권임을 인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박해도 즐거움을 가져다 준다

18. 박해를 받을지라도 그리스도인들은 왜 즐거워할 수 있읍니까?

18 그리스도인들은 종종 박해를 당할지라도 즐거운 마음으로 여호와를 섬깁니다. 예수께서는 그를 위하여 박해를 받는 자들은 행복하다고 선언하셨으며, 사도 ‘베드로’는 이렇게 진술하였읍니다.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예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 너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욕을 받으면 복 있는 자로다.”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베드로’는 “영광의 영 곧 하나님의 영이 너희 위”에 있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베드로 전 4:13, 14; 마태 5:11, 12) 그리스도인 신분 때문에 박해를 받는 것은 축복으로 보이지 않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그러한 고통을 겪고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영과 승인의 증거를 가지고 있는 것이며, 확실히 즐거움을 촉진시키게 될 것입니다.

19. ‘나찌’ 박해의 한 희생자는 어떻게 자신을 피력하였읍니까?

19 하나님의 성령과 여호와께서 주시는 힘을 받음으로써 박해받는 그리스도인들은 극한 상황하에서도 즐거움을 유지할 수 있읍니다. (빌립보 4:13) 여러 해 전에 ‘나찌’ 집단 수용소에서 부당하게 사형을 선고받은 어느 젊은 ‘증인’은 자기 부모에게 이렇게 편지하였읍니다. “이미 자정이 넘은 시각입니다. 저에게는 아직 생각을 바꿀 기회가 남아 있읍니다. 그러나, 제가 우리 주를 부인하고 나서도 현 세상에서 또다시 행복할 수가 있겠읍니까? 절대로 행복할 수 없읍니다! 하지만, 부모님께서는 제가 행복하고 평화로운 가운데서 이 세상을 떠난다는 사실을 확신하실 줄 압니다.” 그렇습니다, 박해받는 그리스도인들도 분명히 즐거운 마음으로 여호와를 섬기고 있읍니다.

즐거워할 만한 다른 이유들

20. 동료 신자들과의 교제는 즐거움에 어떠한 영향을 줍니까?

20 박해에도 불구하고, ‘여호와의 증인’들은 그들의 동료 신자들과의 교제에서 진정한 즐거움을 맛보고 있읍니다. 참으로 큰 축복입니다! 부정직, 거짓말 및 악행으로 가득찬 세상에서 “새 성품”으로 옷입은 정직하고 진실하고 곧은 벗들을 두고 있다는 사실은 얼마나 좋은 일입니까! (골로새 3:8-11, 신세) 그리고 또한 자기 자신의 행동이 여호와의 마음을 기쁘시게 한다는 사실을 아는 데서 오는 깊은 만족이 있읍니다.—잠언 27:11.

21. 참 숭배를 즐거이 증진시킬 수 있는 일부 방법들은 무엇입니까?

21 그리스도인 집회 장소를 신축하고 유지하며 지원하는 일에 참여함으로써 참 숭배를 즐거이 증진시키는 것 역시 하나의 축복입니다. (출애굽 36:1-7; 열왕 하 12:4-15) 분명히 그러한 노력은 마음에 즐거움을 가져다 줍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부여하신 증거하는 사업에서 여호와의 백성들과 협력하고 그들과 정기적으로 집회를 갖는 일의 축복과 즐거움을 온전히 헤아릴 수 있는 사람이 그 누구이겠읍니까?—시 122:1; 고린도 전 3:5-9.

22. 충실하게 경건한 행실을 유지함으로 오게 되는 결과는 무엇입니까?

22 충실하게 경건한 행실을 유지하는 것 역시 풍부한 축복 곧 구원의 전망 및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새로운 사물의 제도에서의 즐거운 장래의 전망을 갖도록 해 줍니다. (베드로 후 3:11-13) 희망에 넘친 여호와의 종들과 ‘세상에서 소망도 없고 하나님도 없는 사람들’ 사이에는 참으로 현격한 차이가 있읍니다! (에베소 2:11, 12) 확실히, 오늘날 여호와의 백성들은 ‘다윗’과 함께 이렇게 말할 수 있읍니다. “나는 오직 주의 인자하심을 의뢰하였사오니 내 마음은 주의 구원을 기뻐하리이다.” (시 13:5) 실로, 그리스도인들이 자신들이 받고 있는 축복을 헤아려 본다면 여호와를 즐거운 마음으로 섬길 많은 이유를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계속 ‘기쁨으로 여호와를 섬기라’

23. 점증하는 압력이 우리의 생각을 지배하도록 허용할 것이 아니라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합니까?

23 ‘여호와의 증인’들이 현재 많은 축복을 즐기고 있지만, 그들도 현 낡은 사물의 제도의 점증하는 압력으로부터 벗어날 수는 없읍니다. 그들은 직장에서, 학교에서 그리고 그 외의 장소에서 그러한 압력에 담대하게 직면하지 않으면 안 되며 그러한 요인들로 인하여 낙심할 수도 있읍니다. 그러나, 이러한 불유쾌한 일들이 우리 생각을 지배하며 늘 우리 마음을 산란케 하도록 방치할 것이 아니라 우리의 생각을 긍정적이고 건설적인 일에 돌리는 것이 지혜로운 일입니다. 그렇습니다, 낙담하거나 슬퍼하는 대신 “선한 일에 열심”을 내며 여호와의 종으로서 누리는 우리의 축복들에 대하여 생각해 보도록 합시다. (디도 2:14) 그러면, 우리는 마치 항상 연회를 갖는 것처럼 즐거워하게 될 것입니다. 잠언 15:15에서 이렇게 말한 바와 같습니다. “고난받는 자는 그 날이 다 험악하나 마음이 즐거운 자는 항상 잔치하느니라.”

24. (ㄱ) 우리의 생활은 어떻게 가치있는 목적을 갖게 될 수 있읍니까? (ㄴ) 적절하게도 어떠한 질문이 생깁니까?

24 분명히 많은 사람들은 자기들의 생활상의 처지에 만족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순종하며 꾸준히 그분에 대한 봉사를 열심히 수행한다면 우리의 생활에는 가치있는 목적이 있게 될 것입니다. 더우기, 여호와의 도움으로 생활상의 문제와 압력을 성공적으로 대처해 나갈 수 있게 됩니다. 그러므로, 힘을 내어 즐거운 마음으로 여호와를 섬기면서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시는 축복들을 계속 소중히 여기도록 합시다. (시 100:2) 그러나, 여호와의 숭배에서 계속 즐거움을 누리기 위하여는 무엇이 요구됩니까?

당신은 다음의 점들을 기억하는가?

◻ 여호와의 백성들이 생활상의 고난으로 압도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 여호와를 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며, 이것은 즐거움과 어떠한 관련이 있는가?

◻ 제자를 삼는 일은 즐거움과 무슨 관계가 있는가?

◻ 우리는 어떻게 즐거운 마음으로 참 숭배를 증진시킬 수 있는가?

[10면 삽입]

여호와로부터 오는 영적 빛을 즐기고 있는 사람들은 죽은 자들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은 하나님의 기억 속에 있는 사람들이 부활될 것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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