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왕국으로 도피하라!
1. ‘히브리’인에게 보낸 ‘바울’의 편지에서 피하는 일과 관련하여 어떤 점을 볼 수 있읍니까?
사도 ‘바울’은 ‘히브리’인에게 보낸 편지에서 피하는 일과 관련하여 상당히 중요한 것들을 말하였읍니다. 그가 다룬 것은 두 가지 면인데, 지켜야 할 일과 해서는 안될 일입니다. 자기의 논증을 뒷받침하기 위하여 그는 그 당시의 독자들 즉 그리스도인들이 된 ‘유대’인들이 매우 잘 알고 있는 ‘히브리’어 성경에서 자주 인용하였읍니다.
2. ‘바울’은 하나님의 아들을 어떻게 천사들과 비교하였으며, 이것은 어떠한 결론으로 인도합니까?
2 히브리서 1장에서, ‘바울’은 천사들보다 우월한 하나님의 아들의 위치를 강조합니다. 그런 다음에 사도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므로 모든 들은 것을 우리[그리스도인들]가 더욱 간절히 삼갈찌니[보통 이상의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읍니다. 신세] 혹 흘러 떠내려 갈까 염려하노라. 천사들로 하신 말씀이 견고하게 되[었거든] ··· 우리가 이 같은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면 어찌 피하리요? 이 구원은 처음에 주[예수 그리스도]로 말씀하신 바[니라.]”—히브리 2:1-4.
3. (ㄱ) 그리스도 예수를 통한 구원의 희망은 다른 어떤 희망보다 더 좋으며, 어떤 면으로 그러합니까? (ㄴ) 이 “더 좋은 희망”에는 무엇이 수반됩니까? (ㄷ) 우리의 희망이 천적이든 지적이든 어떻게 할 필요가 있읍니까?
3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주신 구원의 희망은 ‘시내’ 산에서 “천사들로 말미암”은 율법을 통해 제공된 것보다 더 좋고 더 큽니다. (갈라디아 3:19) 그 이유는 그것이 “더 좋은 약속으로 세우신 더 좋은 언약”과 (“더 좋은 희망”을 주는 “단번”에 드린) 훨씬 더 좋은 희생과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 더욱 월등한 대제사직에 근거해 있기 때문입니다. (히브리 7:15-25; 8:6; 9:23-28) 하지만 이 “더 좋은 희망”에는 더 큰 책임이 수반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흘러 떠내려”갈 수도 있는 어떠한 일도 소홀히 하지 않기 위하여 밀접한 주의를 기울이고 깨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여기에 천적 구원이 언급되어 있지만 비슷한 책임이 하나님의 왕국하에 지적 구원의 희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도 적용됩니다.
4. 떠내려 간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며, 그리스도인들에게 어떻게 적용됩니까?
4 흘러 떠내려가는 데는 얼마의 노력이 필요합니까? 아무런 노력도 필요치 않습니다. 강에서는 우리가 ‘보우트’에 타고 있든지 않든지 간에 물의 흐름에 따라 그저 아래 쪽으로 떠내려갑니다. 참된 생명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떠내려가기 시작하면, 그 영향이 어떠한 것이든지 즉 외부로부터나 내부의 유전받은 경향으로부터든지 우리로 하여금 떠내려가게 합니다. 우리는 영적으로 가치있는 것에 대한 인식을 상실하기 시작합니다. 이것은 점차적으로 발전하게 됨으로 경계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더는 “참된 생명을 취”하고 있지 않으며 완전히 생명을 잃을 위험에 처하게 될 것입니다. (디모데 전 6:19) ‘바울’이 지적한 바와 같이, 만일 우리가 이러한 부주의한 태도와 행로를 그대로 버려둔다면 어떻게 마지막의 비참한 결과를 피할 수 있겠읍니까?
5. ‘히브리’ 그리스도인에게 보낸 ‘바울’의 그 후의 말은 어떤 위험한 마음 상태를 경계하게 합니까?
5 ‘히브리’ 그리스도인들에게 보낸 사도 ‘바울’의 그 후의 말은 더욱 큰 위험한 길을 경계하게 합니다. 그의 편지 내용은 이러합니다. “형제들아, 너희가 삼가 혹 너희 중에 누가 믿지 아니하는 악심을 품고 살아 계신 하나님에게서 떨어질까 염려할 것이요 오직 오늘이라 일컫는 동안에 매일 피차 권면하여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의 유혹으로 강퍅케 됨을 면하라.”—히브리 3:12, 13.
6. (ㄱ) 사람으로부터 “떨어”져 나간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ㄴ) “살아 계신 하나님에게서 떨어”져 나가는 데는 어떠한 원인이 있으며 그것을 어떻게 피할 수 있읍니까?
6 흘러 떠내려가기 시작하는 데는 아무런 노력이 필요치 않지만 누구인가로부터 “떨어”져 나가는 데는 일정한 태도를 취하는 것이 포함되어 있읍니다. 우리가 여전히 어떤 사람의 은혜를 얻기 위하여 그를 대하고 있을지 모르지만 뒷걸음질 침으로써 그로부터 멀어지거나 물러서기 시작할 수 있읍니다. 어떤 사람이 “살아 계신 하나님에게서 떨어”져 나가기 시작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 대답은 바로 믿음의 결핍입니다. 문맥이 알려 준 바와 같이, ‘바울’은 부족한 지식이나 잘못된 이해로부터 생긴 약한 믿음에 대해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렇지 않고 그는 “너희 마음을 강퍅케 하지 말라”는 경고를 인용합니다. 바로 육적 ‘이스라엘’인들이 광야에서 “사십년 동안에 [여호와]의 행사”를 보았고 시종일관 기적적인 공급과 보호를 즐겨 왔지만 그렇게 했읍니다. (히브리 3:7-11) 그러므로 오늘날 참된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죄의 유혹으로 강퍅케” 되어 뒤로 물러가지 않도록 계속 서로 돕고 격려해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믿음을 살아 있게 보존하기 위하여 서로 권면하여야 합니다. 어떻게? 믿음의 행함으로써 입니다. 기억하십시오. ‘아브라함’은 심한 시험하에서도 믿음으로 순종을 행동으로 나타내어 ‘여호와의 벗’이라 칭함을 받았읍니다. 오늘날 우리는 ‘여호와의 증인’으로서 “우리가 시작할 때에 확실한 것을 끝까지 견고히 잡으면” 승리를 거두게 될 것입니다.—히브리 3:13, 14; 야고보 2:21-26.
7. ‘히브리’인에게 보낸 편지의 끝부분에 가서 ‘바울’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어진 책임이 육적 ‘이스라엘’인들에게 지워진 책임보다 더 크다는 것을 어떻게 지적합니까?
7 ‘히브리’인들에게 보낸 편지 끝부분에 가서 ‘바울’은 히브리서 2:1-4에서 행한 똑같은 취지의 말을 합니다. 그는 고대의 육적 ‘이스라엘’인들과 비교하여 더 큰 책임이 그리스도인들에게 놓여져 있음을 지적합니다. 하지만 그는 더 강한 표현을 사용하여 이렇게 말합니다. “땅에서 경고하신 자를 거역한 저희가 피하지 못하였거든 하물며 하늘로 좇아 경고하신 자를 배반(외면, 신세)하는 우리일까 보냐.”—히브리 12:25.
8, 9. (ㄱ) 사람을 외면하는 일에는 무엇이 관련되어 있으며, 영적인 일에 있어서, 이것은 어떠한 결과에 이르게 할 수 있읍니까? (ㄴ) 우리는 어떻게 그리고 왜 이 경고를 명심해야 합니까? (ㄷ) 우리가 하나님의 징계를 받아들일 때 그 결과는 어떠합니까?
8 사람을 외면한다는 것은 그 사람에게 고의적으로 등을 대는 것을 의미하며 흔히 거절하는 것을 시사합니다. 육적 ‘이스라엘’인들이 한 민족으로서 바로 ‘말라기’ 시대까지 이런 태도와 행로를 취하였읍니다. “너희 열조의 날로부터 너희가 나의 규례를 떠나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말라기 3:7) 만일 기름부음받은 그리스도인 즉 영적 ‘이스라엘’인이 점차적으로 이러한 나쁜 단계를 취한다면 그 결과는 어떠할 것입니까? ‘바울’이 다음과 같이 말한 사람들 가운데 빠지게 될 큰 위험이 있읍니다. “한번 비침을 얻고 ···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케 할 수 없[느니라.]” (히브리 6:4-6) 물론 오직 여호와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만이 그가 다시 회개케 할 수 없을 지경에까지 이르렀는가를 결정하실 수 있읍니다.
9 우리는 이 경고를 명심해야 합니다. 믿음의 상실은 자신이 모든 것을 당연히 받을 것으로 생각하고 냉담한 영을 나타냄으로 시작할 수 있으며 거의 감지할 수 없을 정도로 떠내려갑니다. 하나의 거짓된 발걸음이나 태도는 쉽게 또 다른 그런 것으로 옮기며 우리가 아주 멀리 떨어질 때까지 계속되어 돌이킬 수 없을 정도까지 떨어져 나갔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 정도에 이르기 전에 여호와께서는 틀림없이 우리에게 어떤 징계를 베풀 것입니다. 그 점을 ‘바울’은 같은 이 편지에서 말하고 있으며 우리는 그 충고를 현명하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바울’은 그 ‘히브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이렇게 썼읍니다. “아들에게 권하는 것같이 너희에게 권면하신 말씀을 잊었도다. 일렀으되, 내 아들아 [여호와]의 징계하심을 경히 여기지 말며 그에게 꾸지람을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라. [여호와]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의 받으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니라 하였으니 ··· 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달한 자에게는 의의 평강한 열매를 맺[느니라.]”—히브리 12:5-11.
10. 우리는 왜 우리의 영적 형제들이나 심지어 우리 자신에게도 부정적이거나 소극적인 견해를 가져서는 안됩니까?
10 이상의 점으로부터 우리는 ‘바울’이 자기의 영적 형제들에게 부정적이고 소극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다고 결론지어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자기 자신이나 회중의 다른 사람들을 그런 식으로 바라보아서도 안됩니다. 이 사도는 그 ‘히브리’ 그리스도인들에게 그들이 “듣는 것이 둔”하고 “젖이나 먹고 단단한 식물을 못 먹을 자”들이라고 말한 다음에—또 회개할 수 없을 정도로 타락한 사람들에 대하여 경고한 다음에—이렇게 말합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이같이 말하나 너희에게는 이보다 나은 것과 구원에 가까운 것을 확신하노라.” ‘바울’은 그런 다음에 “믿음과 오래 참음으로 말미암아 약속들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을 본받는 자”가 되라고 훌륭한 격려를 줍니다.—히브리 5:11, 12; 6:4-6, 9-12.
‘바벨론’으로부터 피하라
11. ‘다니엘’은 어느 예언에 하나님의 백성이 구원될 일을 영감받아 말하였읍니까?
11 피하는 일에 있어서는 어떠한 경우이든지 그 주 요인이 위협적인 장소나 상황으로부터 피하고 긴급성을 가지고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그렇게 행동해야 할 필요가 있읍니까? 실로 그러합니다. 지금 그리스도인들이 처해 있는 위급한 상황과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는 것은 예언자 ‘다니엘’이 영감을 받아 기록한 이와 같은 말입니다. “그 때에 네 민족을 호위하는 대군 ‘미가엘’이 일어날 것이요 또 환난이 있으리니 이는 개국 이래로 그 때까지 없던 환난일 것이며 그 때에 네 백성 중 무릇 책에 기록된 모든 자가 구원을 얻을 것이라.” (다니엘 12:1) 그렇습니다. ‘다니엘’의 백성—실제 하나님의 백성—은 구원될 것입니다. 얼마나 훌륭한 보장입니까!
12. (ㄱ) 예수께서는 언제 ‘다니엘’의 예언을 언급하셨읍니까? (ㄴ) ‘미가엘’은 언제, 누구를 위해 일어서서 권능을 행사해 오셨읍니까?
12 우리 시대 즉 “마지막 때”의 대규모 성취를 지적하여 예수께서는 마태 복음 24장에 기록된 그의 의미심장한 예언을 말씀하셨을 때 그 말을 언급하셨읍니다. 그분의 말씀은 이러합니다. “그 때에 큰 환난이 있겠음이라. 창세로부터 지금까지 이런 환난이 없었고 또 후에도 없으리라.” (다니엘 12:4; 마태 24:21) 기원 1914년 이래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늘의 대군 ‘미가엘’로서 일해 오셨으며 일어서서 오늘날의 하나님의 백성을 위하여 권능을 행사해 오셨읍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백성은 누구입니까? 육적 ‘이스라엘’인들이 아니고 “법 조문에 의한 것이 아니라 영에 의하여 마음에” 할례를 받은 영적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입니다.—로마 2:29, 새번역.
13. 언제부터 영적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은 큰 ‘바벨론’으로부터 피하라는 부름을 받아 왔으며, 그 전의 그들의 상태는 어떠하였읍니까?
13 하지만 특히 기원 1919년 이래, 이 충실하고 정화된 남은 자들은 다음과 같은 부름에 청종하였읍니다. “이제 너희는 북방 땅에서 도망할찌니라. ··· ‘바벨론’ 성에 거하는 ‘시온’아 이제 너는 피할찌니라.” (스가랴 2:6, 7; 예레미야 51:45) 그 해 전, 제 1차 세계 대전중 이 남은 자들은 거짓 종교 세계 제국인 큰 ‘바벨론’에 속박되어 있었읍니다.
14. (ㄱ) “책에 기록”된 자들은 누구입니까? (ㄴ) 멸망을 피할 다른 사람들이 있읍니까? 만일 그렇다면 이들은 누구입니까?
14 ‘다니엘’이 말한 바와 같이 이 남은 자 모두가 “책에 기록”되어 있읍니다. 그들은 “하늘에 기록된 장자들의 총회[회중, 신세]”를 형성합니다. (히브리 12:23; 또한 말라기 3:16 참조.) 악인들이 멸망될 때 피할 이 사람들 외에 “큰 무리”가 있읍니다. 이 사람들은 영적 ‘이스라엘’이 아니라 비유적으로 말하여 “이방인”들입니다. 그러나 이들 역시 “여호와의 이름을 사랑”하며 그분의 충성스런 종들이 되었읍니다. 이들의 전망은 어떠합니까? 여호와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십니다. “내가 그를 나의 성산으로 인도하여 기도하는 내 집에서 그들을 기쁘게 할 것이[라.]” 이들 “큰 무리”는 그분의 전에서 하나님께 거룩한 봉사를 드립니다. 이들은 “큰 환난”을 살아 남아 “생명수 샘”으로 인도됩니다.—이사야 56:6, 7; 계시 7:9-17.
15. 큰 ‘바벨론’으로부터 도피하라는 어떠한 마지막 경고가 주어지고 있읍니까?
15 전 항의 예증을 확증하기 위하여 오늘날의 하나님의 백성을 위해 기록된 성서의 마지막 예언서를 더욱 살펴보십시다. 이 책은 거짓 종교 제국인 큰 ‘바벨론’에 관해 다음과 같은 말로 마지막 경고를 해줍니다. “내 백성아, 거기서 나와 그의 죄에 참예하지 말고 그의 받을 재앙들을 받지 말라. 그 죄는 하늘에 사무쳤으며 하나님은 그의 불의한 일을 기억하신지라. ··· 하루 동안에 그 재앙들이 이르리니 ··· 그가 또한 불에 살라지리니 그를 심판하신 주 하나님은 강하신 자이심이니라.”—계시 18:4-8.
16. (ㄱ) 큰 ‘바벨론’의 멸망으로부터 피할 수 있는 시간이 아직도 있다고 말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ㄴ) 당신은 어떻게 하나님께서 “내 백성”이라고 부르시는 사람으로 간주될 수 있읍니까?
16 아직도 피할 시간이 남아 있읍니다. 도피하라는 경고가 강력하고 명확하게 외쳐지고 있읍니다. 그것은 긴급한 소식이며, ‘여호와의 증인’에 의해 선포되고 있읍니다. 이번의 경고는 단순한 집이 불에 타는 경우가 아닙니다. 그렇지 않고 전체 “성”이 화염에 싸일 것입니다. 일단 불이 붙기 시작한다면 그 때는 도피하기가 이미 늦을 것입니다. 마음으로부터 ‘바벨론’인이 된 사람들은 이 경고에 응하지 않으며 또한 응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진심으로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며 그리스도 예수께서 통치하시는 왕국에 충성을 나타내기를 원하는 다른 사람들에게는 아직 기회가 있읍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아직도 하나님께서 “내 백성”이라고 부르시는 사람들 가운데 합당하게 낄 수 있음을 행동으로 나타낼 기회를 가지고 있읍니다. 그들은 “다른 양”이 되도록 초대를 받고 있으며 ‘한 목자 아래 한 무리’를 이룰 것입니다. (요한 10:16) 다행히도 당신 역시 마음으로부터 우러나오는 여호와께 대한 봉사와 그분의 왕국에 대한 충성으로써 하나님의 백성으로 간주될 수 있읍니다.
하나님의 성—‘시온’으로 도피하라
17. 여호와께서는 피할 자들을 위하여 어떤 마련을 하셨읍니까?
17 앞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크게 위험한 장소나 상황으로부터 피하는 일도 중요하지만 또한 안전한 장소를 발견하고 그 곳에 머무는 문제도 중요합니다. “피할 길을 주시는” 이 위대한 분께서는 이 점도 돌보아 오셨읍니까? 그분은 자기 백성이 불로 곧 멸망되려 하는 “성”으로부터 피하라고 경고하시고 광야에서 방황하게 버려 두셨읍니까? 그분의 말씀에 있는 대답을 살펴보십시오. “누구든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반드시 안전을 얻게 될 것이다. 이는 여호와가 말한 바와 같이 ‘시온’ 산과 ‘예루살렘’에 피한 자들이 있을 것이며, 생존자 중에 여호와가 부르는 자들이 있을 것이다.”—요엘 2:32, 신세.
18. 고대의 ‘이스라엘’ 수도는 오늘날 무엇을 상징합니까?
18 그러므로 성서는 두 가지 성(城)에 관하여 알려 줍니다. 즉 하나는 도피해야 할 성이고 다른 하나는 다른 많은 사람들과 함께 피난처를 발견할 수 있는 성입니다. 흔히 ‘시온’이라고도 하고 ‘예루살렘’이라고 하는 ‘이스라엘’의 고대 수도는 “하늘의 ‘예루살렘’”을 상징하며 예수께서 마태 복음 24:45-47에서 말씀하신 “충성되고 지혜있는 종” 반열의 남은 자로 지상에서 대표된 하나님의 하늘 왕국을 상징합니다. (히브리 12:22) 여호와께서는 고대의 많은 충실한 종들에게 영감을 주어 그분의 왕국으로 도피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격려와 인도의 말씀을 하게 하셨읍니다.
19, 20. ‘이사야’는 영감을 받아 (ㄱ) 이사야 2:2-4에서, 또 (ㄴ) 이사야 26:1-4에서, 어떠한 인도와 격려의 말을 하였읍니까?
19 ‘이사야’는 이들 충실한 종들 중의 하나이며 가장 즐거운 때를 이러한 말로 예언하였읍니다. “많은 백성이 가며 이르기를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산에 오르[자.] ··· 그가 그 도로 우리에게 가르치실 것이라. 우리가 그 길로 행하리라 하리니 이는 율법이 ‘시온’에서부터 나올 것이요 여호와의 말씀이 ‘예루살렘’에서부터 나올 것임이니라.” 그들은 그 율법과 말씀에 의하여 평화스럽게 사는 방법을 배울 것이며 “다시는 전쟁을 연습지” 않을 것입니다.—이사야 2:2-4, 또한 스바냐 2:3 참조.
20 ‘이사야’는 후에 그의 예언이 어떻게 성취될 것인가에 대하여 영감을 받아 자세히 말하였읍니다. “그 날에 ‘유다’ 땅에서 이 노래를 부르리라. 우리에게 견고한 성읍이 있음이여 여호와께서 구원으로 성과 곽을 삼으시리로다. 너희는 문들을 열고 신(信)을 지키는 의로운 나라로 들어오게 할찌어다. 주께서 심지가 견고한 자를 평강에 평강으로 지키시리니 이는 그가 주를 의뢰함이니이다. 너희는 여호와를 영원히 의뢰하라. 주 여호와는 영원한 반석이심이로다.”—이사야 26:1-4.
21. 영적 낙원이 이사야 61:4-11에 어떻게 매혹적으로 묘사되어 있읍니까?
21 ‘이사야’는 그의 예언 마지막 부분에 가서 그의 환상을 ‘시온’에 속한 온 땅으로 확장시켜, 회복된 영적 낙원을 빛나는 말로 묘사하였읍니다. 피한 모든 자들은 이 영적 낙원에서 ‘오래 황폐하였던 곳을 다시 쌓는 일을’ 즐겁게 행할 것입니다. 영적 ‘이스라엘’인들이 이 일에 솔선수범할 뿐만 아니라 “외인은 서서 너희 양떼를 칠 것이요 이방 사람은 너희 농부와 포도원지기가 될 것”입니다. 이 예언은 ‘간신히 피할 길’이 아니라 완전한 구출과 해방을 큰 소리로 말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는 여호와의 기름부음받은 충실한 “종”의 남은 자들과 함께 기쁘게 다음과 같은 찬양의 표현에 참여할 수 있읍니다. “내가 여호와로 인하여 크게 기뻐하며 내 영혼이 나의 하나님으로 인하여 즐거워하리[라.]”—이사야 61:4-11.
22. (ㄱ) 개인적 차원에서, 피할 수 있는 어떠한 마련이 있읍니까? (ㄴ) 이 혜택을 얻기 위하여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22 지금까지 우리가 고려한 점들이 하나님의 백성 전체로 볼 때 참되다는 것에 동의할지 모르지만 나 자신에게는 어떻게 적용되는가 하고 궁금히 여길지 모릅니다. 당신은 하나나 그 이상의 개인적 문제로부터 피해야 할 필요가 있읍니까? 그렇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겠읍니까? 인간적 견지에서, 인생이란 한 평생, 순간의 여행에 불과하다는 옛 격언이 참됩니다. 죄와 사망으로부터 피할 길은 없읍니까? 흥미있게도 죄와 사망은 똑같이 왕노릇해 왔다고 묘사되고 있으나 둘 다 패배할 것입니다. (로마 5:14; 6:12) 사도 ‘바울’은 동료 그리스도인들에게 편지하면서 어떻게 피할 길이 열렸는가, 즉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救贖)으로 말미암”았다고 설명하였읍니다.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은 화목 제물로 세우셨”기 때문입니다. (로마 3:24, 25) 그렇습니다. 그 속죄의 희생에 믿음을 둠으로써 우리는 하나님의 은총을 입을 수 있읍니다. 아직도 불완전하기 때문에 우리는 날마다 우리 죄를 용서해 달라고 간청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죄짓는 경향이 우리 생활을 지배케 할 필요가 없으며, 그렇게 해서도 안됩니다. ‘바울’은 이렇게 편지하였읍니다. “너희는 죄로 너희 죽을 몸에 왕노릇하지 못하게 하[라.] ··· 죄가 너희를 주관치 못하리[라.]” 이 점에서 우리를 돕기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자기의 성령은 물론 자기의 말씀과 충실한 종들을 통하여 도움을 마련하셨읍니다.—로마 6:12-14; 8:11; 야고보 5:14, 15.
23. 우리 앞에는 어떠한 웅장한 전망이 놓여 있으며, 누구의 통치 아래 그러합니까?
23 또한 이 “처신하기 어려운 위험한 때”를 지나 ‘사단’의 “사물의 제도”가 완전히 끝날 때 참으로 영광스런 전망이 우리 앞에 열릴 것입니다. (디모데 후 3:1, 신세; 고린도 후 4:4, 신세) 죄와 사망이 더는 왕노릇하지 못할 것입니다. 이제 완전하고 지속적인 자유 가운데로 피하는 일이 마치게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공동 후사들이 하늘에서 상을 받을 때 “피조물[인류]도 썩어짐의 종노릇한 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 예수께서 “모든 원수를 그 발 아래 둘 때까지 불가불 왕노릇하시리니 맨 나중에 멸망받을 원수는 사망”일 것입니다. 충성스럽게 피한 모든 자들 즉 하나님의 왕국으로 도피한 자들에게는 놀라운 즐거움이 놓여 있읍니다. 모든 찬양과 감사는 “피할 길을 주시는 분”, 위대하신 여호와께 바쳐질 것입니다.—로마 8:19-21; 고린도 전 15:25, 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