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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76 8/1 344-349면
  • 우리의 믿음의 시험받은 질—찬양과 영예의 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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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의 믿음의 시험받은 질—찬양과 영예의 원인
  • 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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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76
파76 8/1 344-349면

우리의 믿음의 시험받은 질—찬양과 영예의 원인

“너희가 이제 여러가지 시험을 인하여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수 없었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도다. 너희 믿음의 시련[시험받은 질, 신세]이 ···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존귀를 얻게 하려 함이라.”—베드로 전 1:6, 7.

1. 여호와의 숭배자들이 직면한 박해의 역사적 예를 드십시오.

인류 역사상 어느 때에나 믿음의 사람들은 그들을 싫어하는 사람들로부터 시험과 고통과 박해를 받았읍니다. ‘아벨’도 그러하였읍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그의 희생의 제물은 기뻐하시고 형 ‘가인’의 제물은 기뻐하지 않으셨기 때문에 ‘가인’에게 죽임을 당하였읍니다. ‘유대’인 예언자 ‘예레미야’도 그러하였읍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충실히 선포하였기 때문에 진흙 구덩이에 던져졌읍니다. 그리스도교의 창설자 예수도 그러하였읍니다. 그분은 종교적 위선을 폭로하고 그의 아버지의 뜻을 기꺼이 수행하셨기 때문이었읍니다.

2. 「히브리서」는 충실한 사람들의 시련을 어떻게 묘사합니까?

2 그러한 박해받은 많은 사람들 즉 과거의 남녀들의 시련과 믿음의 기록이 우리를 위하여 히브리 11장에 기록되어 있읍니다. 이들 하나님의 종들이 고문을 당하고 조롱당하고 괴로움을 당하고 차꼬에 채이고 투옥되고 돌에 맞거나 칼에 죽임을 당하면서도 그들의 믿음을 유지하는 데에는 참으로 담대함이 필요하였을 것입니다! 예수의 제자 ‘바울’이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치 못하”였다고 논평한바와 같습니다. 그리고 그들 모두는 확고한 믿음 곧 “보증된 기대”(신세)를 가졌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들을 위하여 “더 좋은 것을 예비”하셨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읍니다. (히브리 11:1, 2, 38, 40) 그들은 그러한 확신을 가지고 바로 무엇을 바라보면서 기꺼이 모든 시련을 인내하였읍니까?

3. 그들은 확신을 가지고 무엇을 바라보았읍니까?

3 이들 충실한 남녀들은 바로 천국, “진동치 못할 나라”, 하나님의 의의 왕국에 확신을 두었읍니다. ‘바울’은 당시의 ‘히브리’인 신자들에게 율법이 수여되던 때의 ‘시내’ 산에서의 여호와 하나님의 위엄의 두려운 전시를 상기시켜 주었읍니다. 그러나 그는 훨씬 더 웅대한 일 즉 단지 ‘이스라엘’만이 아니라 온 땅을 다스릴 천국의 설립이 도래할 것이라고 설명하였읍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진동치 못할 나라를 받았은즉 은혜를 받자 이로 말미암아 경건함과 두려움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섬길 찌니[라.]”—히브리 12:18-28.

그리스도인 증인들에 대한 미움

4.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어떠한 학대를 받았읍니까?

4 희랍어에서 유래한 “순교자”라는 영어 단어(martyr)가 문자적으로 “증인”을 의미하는 것은 적절합니다. 왜냐 하면 많은 순교자들은 믿음을 버리기보다 박해를, 심지어는 순교를 인내한 초기 그리스도인 증인들이었기 때문입니다. ‘바울’ 자신이 그 문제에 관련되어 있었으며, 그는 후에 이렇게 증언하였읍니다. “내가 주 [예수] 믿는 사람들을 가두고 또 회당에서 때리고 또 주의 증인 ‘스데반’의 피를 흘릴 적에 내가 곁에 서서 찬성하고 그 죽이는 사람들의 옷을 지[켰나이다.]”—사도 22:19, 20.

5. 충실성을 나타낸 몇 사람의 예를 드십시오.

5 또 다른 초기 그리스도인 순교자는 열두 사도 중 ‘헤롯 아그립바’ 1세에 의하여 칼에 처형되어 순교한 최초의 사도 ‘야고보’ 곧 ‘요한’의 형제였읍니다. (사도 12:1, 2) 그리고 여호와께서 개입하시지 않으셨다면, ‘베드로’도 ‘헤롯’에게 죽임을 당하였을 것입니다. (사도 12:11) 또한 사도 ‘바울’을 죽이려는 노력이 여러 차례에 걸쳐 있었읍니다. (사도 22:22) 제1세기 말에 연로한 사도 ‘요한’은 충실하게 죽은 또 다른 그리스도인 곧 “내 충성된 증인 ‘안디바’”에 관하여 썼읍니다.—계시 2:13.

6. (ㄱ) 예수께서는 그의 반대자들에게 무엇이라고 말씀하셨읍니까? (ㄴ) 그들은 왜 그들의 반대에 대하여 변명할 수 없었읍니까?

6 예수의 초기 제자들에게 왜 그렇게도 많은 반대가 있었읍니까? 백성의 지도자들은 왜 그와 같이 사람들을 유도하여 ‘스데반’을 사형시키려고 거짓 증언을 하게 하였읍니까? 예수께서는 그의 종교적 반대자들 얼마에게 이렇게 직접적으로 말씀하셨읍니다.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을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저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였음이니라.]” (요한 8:44) 그러므로 그들은 예수의 가르침에 대한 혹은 ‘스데반’의 증언의 정확성에 대한 진리를 알지 못하였읍니다. 그들은 오순절에 하나님의 영이 부어진 것에 대한 ‘베드로’의 증언을 확실히 알았고 이들 그리스도인들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두드러지게 한 방언의 선물을 보았거나 들었읍니다. 그 때에 “삼천” 명이 침례를 받았고 그 후에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소식을 받아 들였읍니다. 그러나 “도”를 추종하는 사람들에 대한 종교적 증오는 불같이 타올랐읍니다. (사도 2:41; 6:7; 9:2) 분명히 대제사장은 그들을 단죄하는 예수의 말씀을 잘 기억하였을 것입니다. (마태 23장) 그러므로 이들 초기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그들의 반대는 그들이 하나님의 영의 작용을 반대한다는 것을 뚜렷이 해주었읍니다.

‘사울’이 제자가 되다

7. ‘바울’이 그리스도인이 되기 전의 배경은 어떠하였읍니까?

7 그러나 모두가 그러한 반응을 보인 것은 아닙니다. ‘사울’(‘로마’식 이름은 ‘바울’)은 생활을 크게 변화시킨 사람이었읍니다. (사도 13:9) 그는 율법 언약 아래에서 ‘바리새’인의 견해에 따라 자랐지만 ‘유대’교 신앙에서의 그의 존경받는 지위를 버리고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받은 박해를 그도 받았읍니다. (빌립보 3:5, 6) 그는 이러한 변화의 결과를 잘 알았지만 그는 옳은 것이 무엇인지를 알았을 때에 주저하지 않았읍니다. 그 때는 그리스도인 회중에 대한 커다란 박해의 때였읍니다. ‘사울’ 자신이 초기 그리스도인들을 몹시 반대하여 집집마다 들어가서 남자나 여자나 다 끌어내어 감옥에 보냈읍니다. (사도 8:1-3) 사실, 그의 생애를 크게 변화시킨 사건이 일어난 때는, 그가 남녀를 막론하고 그리스도교를 믿는다고 공언하는 사람들을 만나는대로 잡아 ‘예루살렘’으로 연행해오라는 대제사장의 서한을 가지고 ‘다메섹’으로 가는 도중이었읍니다.—사도 9:1, 2.

8. ‘바울’(혹은 ‘사울’)은 진리를 배우는 데 어떠한 경험을 하였으며, 그는 어떠한 반응을 나타냈읍니까?

8 갑자기 하늘로부터의 빛을 받고 그는 감짝 놀랐읍니다. “그는 땅에 엎드러졌읍니다. 그리고 ‘사울아, 사울아, 네가 왜 나를 핍박하느냐?’ 하는 소리를 들었읍니다. 그래서 그가 ‘주님, 누구십니까?’ 하고 물었읍니다. 그러자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다’ [하는 대답이 들려왔읍니다.]” 빛 때문에 눈이 먼채로 그는 ‘다메섹’으로 인도되었읍니다. 삼일 후에 ‘아나니아’라는 제자가 그에게 인도되어 그를 도왔읍니다. ‘아나니아’는 이것이 주의 뜻임을 확신하고 그에게 이렇게 말하였읍니다. “형제 ‘사울’이여, 그대가 오는 도중에 그대에게 나타나셨던 주 예수께서 나를 보내셨소. 그것은 그대를 다시 볼 수 있게 하시고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시려는 것이요.” 당신이라면 그러한 사건에 어떠한 반응을 나타냈겠읍니까? 그것이 박해와 고난을 의미할 것이고 가족에게 배척받을 것을 의미할 것을 알기 때문에 변화하는 것을 어렵게 생각하였겠읍니까? ‘사울’은 그가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에 대하여 아무런 의문도 갖지 않았음이 분명합니다. 이렇게 기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곧 여러 회당에서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전파했읍니다.”—사도 9:3-5, 17, 20, 새번역.

믿음의 본

9. (ㄱ) ‘사울’의 경험은 현대 그리스도인들에게 어떻게 격려가 됩니까? (ㄴ) 그는 그리스도에 관하여 전파하기 시작할 때에 ‘다메섹’에서 어떻게 가까스로 도피하였읍니까?

9 우리가 그의 믿음의 본과, 시련하에서의 ‘사울’의 인내와 여호와께서 그에게 베푸신 인도와 보호를 고려함에 따라, 우리는 현 세대의 참 그리스도인들이 직면하는 시련을 극복하도록 격려를 받게 됩니다. ‘사울’은 당시의 다른 그리스도인들과 마찬가지로 반대를 직면할 것을 알면서도, 주께서 ‘아나니아’에게 이렇게 말씀하신 사실에도 불구하고 돌아서지 않았읍니다. “내 이름을 위하여 그가 얼마나 고난을 받아야 할 것인가를 내가 그에게 보여주려고 한다.” ‘다메섹’에서 제자들과 함께 며칠을 보낸 다음에 ‘사울’은 열심히 전파하기 시작하였읍니다. 그 결과, 오래지 않아 ‘유대’인들이 그를 죽일 음모를 꾸몄고 그를 해치기 위하여 밤낮 지키기 시작하였읍니다. 그러나 여호와께서는 이 “택한 그릇”이 그렇게 쉽게 없어지게 허락치 않으실 것입니다. (사도 9:15, 16, 새번역) 그 음모는 ‘사울’에게 알려지게 되었고 그의 제자들은 그가 올무에서 피하도록 도와주어, 성벽의 통로로 바구니에 실려 내려 탈출하게 하였읍니다. 이것은 한때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하던 이 사람의 전파사업의 아슬아슬한 생애의 시초에 불과하였읍니다.

10. ‘엘루마’와 관련한 ‘사울’의 경험은 악귀의 반대를 어떻게 알려 주었읍니까?

10 ‘사울’과 ‘바나바’는 ‘유대’인들에게와 비‘유대’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일을 수행하도록 성령에 의하여 특별히 선택되었읍니다. 그들은 그들의 첫째 선교 여행에서 지방 총독 ‘서기오 바울’과 함께 있던 거짓 예언자이자 요술장이로 묘사된 사람을 만났읍니다. ‘엘루마’라는 그 요술장이가 ‘사울’과 ‘바나바’를 반대하고 지방 총독이 그들의 소식을 듣지 못하게 하려 하였을 때에, ‘사울’(이제 ‘바울’이라고 불리우는)은 성령으로 가득하여 이렇게 질문하였읍니다. “주[여호와]의 바른 길을 굽게하는 일을 그치지 않겠느냐?” 즉시 그 요술장이는 임시 맹인이 되었읍니다. 그 결과 놀란 지방 총독은 그가 보고 들은 것에 대한 믿음을 나타냈읍니다.—사도 13:6-12.

11. (ㄱ) ‘바울’과 ‘바나바’는 왜 그리고 어떠한 성경적 근거로 ‘안디옥’과 ‘이고니온’에서 이방인들에게 전파하였읍니까? (ㄴ) 그들은 이들 도시에서 쫓겨난 후에 어떻게 하였읍니까?

11 ‘바울’과 ‘바나바’는 ‘비시디아’의 ‘안디옥’으로 가서 거기에서 그 도시 사람들에게 담대히 증거하였읍니다. 그들이 예수의 부활에 대하여 전파하자 ‘유대’인들은 격노하였으며 그때 두 사람은 이방 사람들에게 그들의 주의를 환기시켜 다음과 같은 ‘이사야’의 예언을 지적하였읍니다. “내가 너를 세워 이방 사람들에게 비치는 빛이 되게하여 땅 끝까지 구원하게 하리라.” (사도 13:47) 그리고 의로운 기질을 가진 이방인들이 이에 대하여 기뻐하기 시작하였을 때에 ‘유대’인들은 그 도시에서 ‘바울’과 ‘바나바’를 몰아냈읍니다. 그러나 그들은 기쁨과 성령으로 가득하여 그들의 길을 계속 갔읍니다. 그들은 다음 정류지인 ‘이고니온’에서 비슷한 경험을 하였읍니다. 그들이 전파한 결과로 허다한 ‘유대’인들과 희랍인들이 신자가 되었지만 그 소식을 받아들이지 않은 사람들은 그들이 폭행을 하려는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을 선동하였기 때문에, 그들은 좋은 소식 전파를 계속하기 위하여 다른 곳으로 피해야 하였읍니다.

12, 13. (ㄱ) ‘루스드라’에서 ‘바울’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었읍니까? (ㄴ) ‘바울’은 여호와께 대한 신뢰를 어떻게 나타냈읍니까?

12 ‘루스드라’에서 ‘바울’이 날 때부터 절름발이인 사람을 고치자, 사람들은 두 사람이 신이라고 생각하였읍니다. 그들은 ‘바나바’를 ‘쓰스’ 즉 ‘제우스’라고 불렀고 ‘바울’은 그가 주로 말하였기 때문에 ‘허메’ 즉 ‘헤르메스’라고 불렀읍니다. 그러나 ‘바울’과 ‘바나바’는 그들을 제지하고 “여러분, 어찌하여 이런 일을 합니까? 우리도 여러분과 같은 인간입니다. 우리가 복음을 가지고 와서 여러분에게 전하는 [것입니다]” 하고 말하였읍니다. (사도 14:15, 새번역) 그 때쯤 아직 ‘바울’을 추적하던 ‘안디옥’과 ‘이고니온’의 유대인들이 도착하여 ‘바울’을 찾아 돌로 치고 그를 성밖으로 끌어내었으며, 그가 죽은 줄로 알았읍니다. 그러나 여호와의 과분한 친절에 의하여 ‘바울’은 이 시련을 생존하였으며, 이튿날 그는 ‘바나바’와 함께 ‘더베’로 향하여 떠났고, 거기에서 계속 전파하였고 많은 제자들을 삼았읍니다.

13 아마 당신은 ‘나라면 그 모든 일을 당한 후에는 죽임을 당하기 전에 포기할 것이다’ 하고 생각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렇지 않았읍니다. 사실, 사도행전 14:21에 있는 기록은 ‘바울’과 ‘바나바’가 이전에 그토록 심한 반대를 받았던 ‘루스드라’와 ‘이고니온’과 ‘안디옥’으로 돌아왔다! 고 알려 줍니다. 그들이 제자들을 힘주고 격려하기를 원하였기 때문이었읍니다. 그들은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반드시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합니다” 하고 그들에게 상기시켜 주었읍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회중을 세워주는 일을 계속하였으며 여호와의 신자들이 된 사람들을 계속 힘주었읍니다.—사도 14:22, 새번역.

동료 신자들이 논쟁을 일으키다

14. 일부 사람들은 어떠한 이론을 전개하였으며, 그것은 어떻게 해결되었읍니까?

14 불행하게도, 때때로 문제를 일으킨 사람들은 반대자들만이 아니었읍니다. 심지어 동료 신자들도 논쟁을 일으켰읍니다. 예를 들면 이방인들도 ‘모세’의 관습에 따라 할례를 받지 않으면 구원을 받지 못한다고 주장하는 자들이 있었읍니다. (사도 15:1, 2) 그 문제에 대한 상당한 의견 차이가 있은 후에, ‘바울’과 ‘바나바’와 다른 사람들이 그 문제를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과 장로들에게 맡겼읍니다. 그들의 증언과 ‘베드로’ 및 기타 사람들의 증언을 들은 후에, 어떠한 결정이 내려졌읍니까? 우상으로 더럽혀진 것과 음행과 피를 멀리하는 꼭 필요한 것을 제외하고는,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이방인들을 괴롭히지 않기로 결정하였읍니다.—사도 15:12-20.

15. ‘바울’은 무슨 일 때문에 ‘베드로’를 시정하였읍니까?

15 ‘바울’은 진리를 옹호하는 굳은 입장을 취하였읍니다. 그는 ‘예루살렘’으로 가는 자기의 여행에 대하여 논하면서, “거짓 형제[가] ··· 가만히 들어”왔을 때에 “우리가 일시라도 복종치 아니하였으니 이는 복음의 진리로 너희 가운데 항상 있게 하려 함이라”고 말하였읍니다. ‘안디옥’에서 심지어 ‘베드로’도, 방문 중인 일부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의 기분을 상하게 하지 않으려고 이방인 형제들과 함께 먹거나 교제하지 않음으로 가면적인 행동을 하였을 때에, ‘바울’은 그를 “면책하였”읍니다. 그는 ‘갈라디아’인들에게 이렇게 설명하였읍니다. “내가 하나님의 은혜를 폐하지 아니하노니 만일 의롭게 되는 것이 율법으로 말미암으면 그리스도께서 헛되이 죽으셨느니라.” (갈라디아 2:4, 5, 11, 21) 이 일로 도움을 받아 ‘갈라디아’인들은 그리스도인들이 ‘모세’의 율법의 행위에 순응함으로써가 아니라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으로 의롭다고 선언된다는 것을 이해하였읍니다. 그 율법 언약은 제거되었으며, 이제 새 언약이 작용하게 되었읍니다. 일부 사람들은 이것을 이해하는 데 더디었으나, ‘바울’은 그들이 인간적인 이론을 내세우는 데 대하여 실망하지 않았읍니다.

‘바울’은 반대를 받아도 실망하지 않았다

16. ‘빌립보’에서의 ‘바울’과 ‘바나바’의 시련은 어떻게 축복이 되었읍니까?

16 ‘바울’은 둘째 선교 여행중 ‘빌립보’에서 ‘루디아’라는 장사하는 여자에게 진리를 전하는 기쁨을 누렸읍니다. 그 여자는 ‘바울’이 말하는 것을 마음으로 받아 들였으며 이들 형제들을 후대하였읍니다. 이곳 ‘빌립보’에서 ‘바울’은 또한 문제에 부딪쳤는데, 이번에는 점술 능력을 가진 여종의 주인들 때문이었읍니다. 날마다 그 여종은 “이 사람들은 지극히 높은 하나님의 종으로 구원의 길을 너희에게 전하고 있다”고 외쳤읍니다. (사도 16:17) 마침내 ‘바울’은 그것에 지쳐 예수의 이름으로 악귀들에게 여종을 떠나라고 명하였읍니다. 그 여종의 예언에 힘입어 이익을 본 주인들은 그 여종이 이 초자연적 능력을 상실한 것을 보고 ‘바울’과 ‘실라’를 치안관들 앞에 세우고 때리고 투옥하게 하였읍니다. 먼저 구타당하고 다음에 투옥되는 이 일은 많은 사람들을 실망시키기에 충분하였을 것이지만, ‘바울’과 ‘실라’의 경우는 그렇지 않았읍니다. 기록을 보면 밤중에 그들이 기도하고 노래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을 때에 갑자기 지진이 일어나서 옥문이 열리고 죄수들이 풀려났읍니다. ‘바울’은 도망하려하지 않고 머물러서, 막 자살하려는 간수를 안심시키고 그 기회를 이용하여 그와 그의 가족에게 여호와의 말씀을 전하였읍니다. 그 결과 그들은 바로 그날 밤에 침례를 받았읍니다.

17. ‘바울’은 자기의 시련을 어떻게 보았으며, 그는 어떠한 태도를 유지하였읍니까?

17 어떠한 일을 당하여도 ‘바울’은 실망하지 않았읍니다. 그는 올바른 태도를 유지하였읍니다. 그가 ‘고린도’ 형제들에게 이렇게 편지한 바와 같습니다. “또 수고하여 친히 손으로 일을 하며 투옥을 당한즉 축복하고 핍박을 당한즉 참고 비방을 당한즉 권면하[였노라.]” (고린도 전 4:12, 13) 그는 예수의 이러한 말씀이 참됨을 알 수 있었읍니다. “종이 주인보다 더 크지 못하다 ··· 사람들이 나를 핍박하였은즉 너희도 핍박할터이[니라.]” (요한 15:20) ‘바울’은 좋은 소식 때문에 시련을 당하는 것을 특권으로 여겼읍니다.—빌립보 1:27-30.

18. 은장이는 어떻게 ‘바울’의 전파를 반대하였으며, 그러나 마침내 무슨 일이 일어났읍니까?

18 ‘바울’은 세째 선교 여행에서 다시 반대에 부딪쳤는데, 이번에는 종교적 신당을 만드는 직공의 반대를 받았읍니다. ‘아데미’ 신당을 만들어 돈을 벌던 은장이 ‘데메드리오’는 사람들에게 ‘바울’은 손으로 만든 신은 신이 아니라고 가르치며 따라서 멀지 않아 신당 만드는 업이 쇠퇴할 것이라고 경고하였읍니다. 그 때문에 그 도시에 큰 혼란이 일어났으며 그 도시의 서기장이 가까스로 사람들을 진정시켰고 사람들을 흩어지게 하였읍니다. (사도 19:23-41) 그렇습니다. ‘바울’은 생명이 위협을 받았으며 그의 믿음은 재삼재사 시험을 받았읍니다.—고린도 후 4:7-12; 6:3-10; 11:23-27.

19. ‘바울’은 어떠한 경고를 받았으며, 그러나 왜 그는 죽음의 전망을 알고도 물러서지 않았읍니까?

19 마침내, ‘바울’이 ‘가이사랴’에 있을 때에, 예언자 ‘아가보’는 그에게 그가 ‘예루살렘’에서 결박되어 이방 사람들의 손에 넘겨질 것이라고 경고하였읍니다. ‘바울’은 어떻게 할 것입니까? 그는 다른 곳으로 도망할 것입니까? 아닙니다. 그는 이렇게 말하였읍니다. “나는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결박받을 뿐 아니라 ‘예루살렘’에서 죽을 것도 각오하였노라.” (사도 21:10-13) 그는 자기에게 무슨 일이 발생한다 할지라도, 자기가 받은 봉사의 임명에 충실하였고 “모든 사람의 피에 대하여 내가 깨끗”하다고 느꼈읍니다.—사도 20:26.

20. ‘바울’은 누구에게 증거하는 특권을 누렸으며, 그는 자기가 감금되어 있는 기간을 어떻게 사용하였읍니까?

20 예언된 바와 같이, ‘바울’은 ‘예루살렘’ 성전에서 거짓 고발을 받고 밖으로 끌려 나왔읍니다. ‘로마’의 군 사령관이 신속히 중재하였기 때문에 겨우 죽음을 모면하였읍니다. 그 후 ‘바울’은 ‘산헤드린’이라고 불리우는 ‘유대’인 최고 법원 앞에서 변호하는 특권을 가졌읍니다. 그러나 여기에서도 또한, 그가 말한 소식을 둘러싸고 의견 충돌이 있었읍니다. 그날 밤 천사가 그 옆에 서서 그에게 담대함을 가지라고 말하였읍니다. 그가 ‘예루살렘’에서 철저한 증거를 행한 것 같이 ‘로마’에서도 증거할 것이라고 알려 주었읍니다. (사도 23:11) 그 후 ‘바울’의 사건을 ‘펠릭스’ 총독이 청취하였고 다음에 그의 계승자인 ‘보르기오 베스도’가, 그리고 마지막으로 ‘아그립바’ 2세가 청취한 다음, 그는 ‘로마’로 호송되었읍니다. 그는 이년간 연금되어 있으면서 자기를 찾아오는 모든 사람에게 전파하였읍니다. 그는 ‘네로’ 황제로부터 무죄선고를 받고 석방되었음이 분명합니다.—디모데 후 4:16, 17.

21, 22. (ㄱ) ‘바울’이 두번째 투옥된 결과로 죽음을 기대하였다는 어떠한 증거가 있읍니까? (ㄴ) ‘바울’은 왜 그러한 강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읍니까?

21 그러나, ‘로마’에서 ‘바울’은 기원 65년경에 다시 투옥되었읍니다. 바로 이 동안에, 그는 ‘디모데’에게 둘째 편지를 썼고 자기의 죽음이 가까왔음을 암시하였읍니다. (디모데 후 4:6-8) 아마도 그는 기원 66년에 ‘네로’의 손에 순교당한 것 같습니다.

22 ‘바울’의 믿음의 시험받은 질에 대하여는 의문의 여지가 없읍니다. 그는 믿음을 가질 만한 좋은 이유가 있었읍니다. 그는 기적에 의한 방법으로 불리움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재삼재사 그가 행하도록 특권을 받은 일에 그리고 그를 위한 천사의 중재에 하나님의 영이 작용하는 것을 보았읍니다. 그러나 그는 악귀와 인간들로부터의 강렬한 증오에도 불구하고, 믿음은 흔들리지 않았고 그가 불리움을 받은 일로부터 빗나가지 않았읍니다. 그는 주께 그리고 부활의 희망에 확신을 두었읍니다.—고린도 전 15:14, 21, 22.

23. ‘바울’이 자기의 생활 행로를 부끄러워하지 않았음을 우리는 어떻게 알 수 있읍니까?

23 ‘바울’은 자기의 생활 행로를 부끄러워하지 않았읍니다. 그가 ‘아그립바’ 왕에게 이렇게 말한 바와 같습니다. “당신 뿐 아니라 오늘 내 말을 듣는 모든 사람도 다 이렇게 결박한 것 외에는 나와 같이 되기를 하나님께 원하노이다.” (사도 26:28, 29; 로마 1:16) 그는 그가 인내한 시련에도 불구하고 다른 사람들이 동일한 행로를 따르도록 격려하였읍니다. 그는 ‘고린도’에 있는 형제들에게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것 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 되라”고 기술하였읍니다. (고린도 전 11:1) 그는 일부러 고통을 찾아다닌 사람은 아니었으며 개인의 영광을 얻기 위하여 고난 혹은 순교에 자신을 맡긴 사람도 아니었읍니다. 그러나 그는 진리를 위하여 굳건한 입장을 취하였읍니다. 그가 ‘데살로니가’인들에게 편지하였을 때에 그는 좋은 소식이 말만이 아니라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 된 것이니 ··· 너희는 많은 환난 가운데서 성령의 기쁨으로 도를 받아 우리 주를 본받은 자가 되었”음을 기뻐하였읍니다.—데살로니가 전 1:5, 6.

24. 우리가 ‘바울’과 같은 믿음을 전시할 때에 우리에게 어떠한 축복이 옵니까?

24 ‘바울’이 당한 것과 같은 모든 시련을 당할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모두는 그와 같은 믿음을 전시할 수 있읍니다. 우리는 그가 ‘히브리’인들에게 다음과 같은 격려의 말을 한 것을 기억할 수 있읍니다. “우리는 뒤로 물러가 침륜에 빠질 자가 아니요 오직 영혼을 구원함에 이르는 믿음을 가진 자니라.” (히브리 10:38, 39) 우리의 믿음의 시험받은 질이 인내를 이루는 것을 알고 그가 그리스도 예수를 본받는 자 된 것 같이 우리는 ‘바울’을 본받는 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임하는 시련에도 불구하고, 충실히 인내함으로써 우리의 경우에도 우리의 믿음의 시험받은 질이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할 것을 알고 있읍니다.—베드로 전 1:5-7, 9; 야고보 1:2, 3.

[346면 삽화]

‘다소’의 ‘사울’은 “하늘에서 보이신 것을 거스리지 아니하”고 예수의 제자가 되어 믿음과 인내의 본이 되었다.—사도 2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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