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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왜 자독 행위를 피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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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왜 자독 행위를 피해야 하는가?
  • 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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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72
파72 9/1 403-406면

왜 자독 행위를 피해야 하는가?

청소년들이 알고 싶어 하는 유익한 사실들

사람들이 자신을 남용하는 방법에는 과식하는 것, 잠을 충분히 자지 않는 것 등 여러 가지가 있읍니다. 그러나 “자독”이라는 말은 (사전에 의하면) 수음 즉 자기의 성적 기관을 남용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은 자칫 잘못하면 빠져 들어가기 쉬운 행동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습관을 버리기는 쉽지가 않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젊은 남자만이 아니라 젊은 여자도 빠져 들어갈 수 있읍니다. 이 습관에 대하여 우리는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합니까? 그것은 과연 “자독”(自瀆)이라는 말대로 “자기 모독”이 됩니까?

먼저 우리는 무엇을 우리의 지침으로 받아들일 것인가 하는 문제를 결정할 필요가 있읍니다. 우리는 대부분의 의사들의 설명에 의지할 것입니까? 신체적인 견지로 보아서 가끔 하는 수음은 해가 없다고 그들은 주장합니다. 대부분의 정신병 학자들이 말하는 바와 같이, 그들은 당사자가 정신적 혹은 감정적 병을 유발시키는 죄의식을 느낄 때에만 그것이 해로우며, 그 죄의식은 나아가서 신체적 장애를 일으킨다고 그들은 말합니다. 그러므로 많은 사람들은 그 행위를 용납합니다.

물론, 의사들과 정신병 학자들은 불완전한 인간으로서 잘못 알 수도 있읍니다. 그런 예로, “감정의 제어는 장수하게 한다”라는 제목의 잡지 기사에 정신병학자 ‘리차드 니이스’ 박사의 다음과 같은 말이 인용되어 있었읍니다. “과거 60여년 동안 대부분의 사람들이 억제를 하지 않고 자신을 표현하는 것이 올바른 길이라고 생각해 왔다. ··· 오늘날의 심리학자들은 이 점의 타당성을 의심하고 있다. 지금에 와서는 감정이 자유자제로 발동하도록 해두는 것보다는 합리적으로 제어하는 방법을 가르치는 것이 보다 건설적이라고 믿고 있다.”—‘캘리포니아 롱비치’ 「인디펜던트 프레스 텔레그람」지, 1969년 3월 12일자.

그러므로 인간의 견해는 완전한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청소년들이 받을 수 있는 교훈으로서, 잘못이나 그릇됨이 전혀 없는 교훈의 원천이 있읍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만일 우리가 “장수” 정도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총 가운데 누릴 영원한 생명을 원한다면, 우리는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의 충고보다는 하나님의 지혜와 충고를 따라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서 그리고 우리의 행복을 위해서, 인간으로서는 도무지 할 수 없는 일을 해 주실 수 있읍니다.

그러면, 참으로 문제가 되는 것은, 수음의 결과가 신체적으로 얼마나 해가 되느냐 하는 것이 아니라 영적 해를 받는 것을 피할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행위에 빠진 사람으로서 창조주 앞에 죄의식을 느끼지 않는 사람이 있을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수음”이나 “자독”이라는 단어가 성서에 나오지 않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골로새 3:5(새번역)에 나오는 사도 ‘바울’의 영감받은 교훈으로부터 우리는 무엇을 배울 수 있읍니까? 하나님의 은총을 상실하지 않으려고 하는 사람들에게 그는 이렇게 말하였읍니다. “땅에 속한 지체들, 곧 음행과 부정과 욕정과 악한 정욕과 탐욕을 죽여버리시오. [즉 자극하지 마시오].” 수음은 음행과는 달라서 남자나 여자가 자기 혼자서 할 수 있는 행위입니다. 그렇다고 그것이 부정한 것이 아닙니까? 아니면 그것은 단순히 “욕정”에 빠져들어가는 것 또는 그것에 지배되는 것입니까?

그리고 그 사도는 또한 “그들 자신을 방탕에 내맡겨 탐욕을 부리며 온갖 더러운 일을 하고 있”는 자들에 대하여 기술하였읍니다. (에베소 4:19, 새번역) ‘바울’은 우리가 앞에서 인용한 ‘골로새’인들에게 보낸 편지에서나 방금 인용한 귀절에서나 “탐욕”을 말하고 있읍니다. 사실상 수음은 바람직하지 않은 이 성품을 나타내는 것이 아닙니까? 하나님께서는 성욕을 만족시킬 수 있는 유일한 마련으로 결혼이라는 것을 주셨읍니다. 그러나 수음을 하는 사람은 사실상 대가를 지불하지도 않고 그의 만족감을 얻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의 대가는 결혼 생활에 수반되는 책임과 의무를 지는 것입니다. 이와 관련하여, 그 사도는 “욕정으로 불타는” 사람들에게, 수음이라는 부자연스런 방법으로 감정을 해소시키라고 하지 않고 결혼이라는 하나님의 마련을 통하여 해소시키라고 충고하였읍니다.—고린도 전 7:2, 9, 새번역.

사실, 수음은 장래 결혼 생활상의 행복을 해칠 수도 있읍니다. 어떤 사람이 수음을 통하여 자신의 욕정을 만족시키는 습관에 젖어 있다면, 이것은 오직 자기의 쾌감이나 만족감만을 생각하는 습관을 만들게 됩니다. 그러나 결혼 생활에 있어서는 특히 남자에게 있어서는 상대방의 쾌감이나 만족감에 관심을 나타낼 필요가 있읍니다. 그렇지 않는다면, 결혼 관계는 악화되고 고민과 실망을 느끼게 됩니다. 남편들이 자기 자신의 만족감을 생각하고 아내들의 필요를 무시하는 바로 이 점이 결혼 생활에 있어서 가장 큰 문제거리입니다. 의심할 것 없이 그러한 생각은 결혼 전의 수음 습관에서 자란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이 너무 어려서 결혼을 권고할 만한 나이가 되지 못하였다면 어떻게 합니까? 결혼을 연기하는 동안 수음을 하는 것이 음행이나 동성애 등 더 심각한 하나님의 법을 범하지 않도록 하는 보호책이 되지 않습니까? 그렇게 생각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것이 건전한 논리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수음은 건전한 양심과 올바른 것에 대한 사랑을 약화시킵니다. 그런데, 건전한 양심과 올바른 것에 대한 사랑이 이 점에 대하여 가장 큰 보호자입니다. 빈약하게 성욕에 굴복하여 수음을 하게 된다면, 음행하거나 동성애를 하도록 유혹하는 입장에 처하게 될 때에 저항할 수 있는 힘이 나오지 않을 것입니다. 그와는 반대로 그 행동은 그릇된 생각과 그릇된 욕망을 자라게 할 것입니다.

마약 중독과 같이, 수음도, 어떠한 형태의 것이든 압력이나 긴장을 당할 때마다 그것을 행하게 되는 습관이 될 수 있으며, 그것 때문에 그러한 긴장을 일으키는 문제를 직면하고 극복할 수 있는 힘이나 의지가 약해져버릴 수 있읍니다. 그러므로 그것은 악순환을 일으켜 결국 본인이 그 행동의 노예가 되어버립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가 우리의 몸을 제어해야지 우리의 몸이 우리를 제어하도록 해서는 안된다고 알려 줍니다.—데살로니가 전 4:4, 5.

자제력으로 극복함

말할 것도 없이, 자신이 생각하는 바에 따라 자신이 느끼는 방법이나 자신이 하는 일이 크게 영향을 받습니다. 그러므로 당신은 참으로 무엇을 원합니까? 당신은 대부분의 시간을 성욕으로 혼란되어 있고, 경우에 따라서는 수음 습관에 빠져들어 가며, 이미 걸려든 그 습관에서 빠져 나올 수 없기를 바랍니까? 그러기를 원한다면, 당신이 성적 문제에 대하여 생각하기만 하면 됩니다. 그러나 그러한 성적 충동이, 인생을 즐기는 일이나 참으로 가치있는 일을 성취하는 데 방해가 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면, 자제력을 행사하여 자신의 생각을 다른 문제로 돌리면 됩니다.

성적으로 자극하는 내용이 들어 있는 그림이나, 읽을 거리 혹은 다른 것들이 당신 앞에 나타난다면 허약하게 그것에 말려들지 마십시오. 만일 당신이 그러한 것을 생각하거나 그러한 내용의 대화를 한다면, 감정이 교란되고 자신에게 압력이 가중되는 형태로 그에 대한 대가를 치르게 될 것입니다. 그것은 그러한 것을 오랫 동안 보고 있을수록, 또는 오랫 동안 이야기할수록, 마음에 더욱 깊이 스며들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당신을 행동하도록 하는 면에 있어서는 마음이 주된 요인입니다.

그러나 보통 환경하에서도 정욕이 자라는 것을 느낀다면 어떻게 할 것입니까? 그것을 어떻게 해소할 수 있읍니까? 자독 행위로써가 아니라 정신과 마음과 신체를 다른 일에 돌림으로써 그렇게 해야 합니다. 어떤 일을 하거나 운동을 하거나 놀이를 하거나 산보를 하는 것도 좋습니다. 당신이 존경하는 어떤 사람과 이야기를 하거나 필요하다면 그러한 사람에게 전화를 할 수도 있읍니다. 성서를 설명하는 책을 낭독—소리를 내어—하는 것도 가장 훌륭한 도움 중의 하나입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방법으로 당신의 문제를 기도로 하늘에 계신 아버지, 여호와 하나님께 가지고 가십시오.

또한 성적 압력을 제거 또는 경감시키는 데 도움이 되는 것으로 간단하고 이치적인 여러 가지 다른 것들이 있읍니다. 당신의 옷이 불필요하게 성기를 자극하지 않는가 보십시오. 잠자리에 들기 전에 읽은 책이나 이야기한 내용이 당신을 진정시키는 내용이어야 하며 그와 반대여서는 안됩니다. 또한 이 시간에 먹는 음식물도 그렇습니다. 잠 잘 때에도 등을 대고 똑바로 눕거나 엎드려 눕는 것보다는 옆으로 눕는 것이 도움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특히 중요한 것은 남성이나 여성으로서의 위생을 잘 지키는 것입니다. 청결하지 않으면 성기가 자극을 받게 되고 그곳으로 자신의 관심이 쏠리게 됩니다. 부모에게 그러한 위생에 대하여 알아보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청결하게 하기 위하여는 성기에 손을 댈 필요가 있읍니다. 그렇게 되면 그것을 잘못 다루도록 하는 유혹을 받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당신의 동기—성적 유혹을 피하고자 하는 목적—가 올바르기 때문에 오히려 그러한 기관에 대하여 보다 더 건전한 견해를 갖는 데 도움이 되며, 그것을 적절하게 볼 줄 알게 되고, 그 기관이 당신을 압도하거나 당신의 전 생애를 지배하게 되어 있는 것이 아님을 인식하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만일 당신이 현재 자독 행위를 멀리하려고 투쟁하고 있다면, 당신이 이런 문제를 처음으로 당한 사람이거나 당신만이 이런 문제를 당한 것이 아님을 기억해야 합니다. 다른 사람들은 이겨냈읍니다. 그러므로 당신도 그렇게 할 수 있읍니다. 그리하여 하나님 앞에 올바른 신분을 가지는 축복과 깨끗한 양심을 가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러 이 문제 때문에 당신을 고립시키지 마십시오. 그 사람들이 건전한 사람들이라면, 다른 사람들과 함께 있는 것이 자신에게 보호가 될 것입니다. 만일 한 방에서 혼자 잠을 잘 때 밤에 이러한 방향으로 특별한 압력을 받는 것같이 느낀다면 보호책으로 식구 중 다른 사람과 함께 방을 사용하도록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정욕에 압도되려는 유혹에 빠져들어가지 않으려고 하기 때문에 더러는 밤에 잠을 자지 못하는 경우도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할 것입니까? 아마 이튿날 저녁에는 피곤해서 금방 잠이 들어버릴 것입니다.

당신이 수음하는 습관을 버리기 위하여 고된 투쟁을 하고 있다 하더라도 여호와 하나님과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신을 포기해버렸다고 생각지 마십시오. 만일 당신이 그것을 극복하기 위하여 진지하게 노력한다면, 그분들은 친절하고도 참을성있게 당신을 도와 필요한 힘을 줄 것이며, 당신에게 승리를 가져다 줄 것입니다.—빌립보 4:6,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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