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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참 숭배에 있어서 하나님의 이름의 위치
  • 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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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리스도교국에 미친 영향
  • 하나님의 이름은 무엇인가?
  • 고대 ‘이스라엘’의 숭배에 있어서의 위치
  • 하나님의 이름의 사용을 피하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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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70
파70 2/15 75-78면

참 숭배에 있어서 하나님의 이름의 위치

하나님의 이름을 가치없이 사용하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어떻게 우리는 그 이름을 합당하게 사용할 수 있는가?

‘이스라엘’의 ‘텔 아비브’에 사는 한 ‘유대’인 중년 부인은 자기의 집을 방문한 여호와의 증인 한 사람에게 이렇게 언성을 높여 말하였다. “당신은 그리스도교국에 속한 사람이지요. ‘유대’인들에게는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 금지되어 있으니까요.” 일반적으로 하나님의 고유한 이름은 ‘유대’인들의 귀에 설다.

사실 예외없이 ‘유대’인들은 그들의 ‘미쉬나’에 표현된 관점을 받아들였다. ‘미쉬나’는 이렇게 선언한다. “그리고 이러한 자들은 오는 세상에 참여하지 못한다. 즉 죽은 자의 부할이 없다고 말하는 자와 ··· 율법이 하늘에서 내려오지 않았다고 말하는 자 ··· 또한 본래의 글자로 된 이름을 부르는 자.”—산헤드린 10:1, ‘허버트 댄비’역, ‘옥스포드’ 대학 출판부, 1933년판.

그러면 ‘유대’인들에게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 엄금되어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1968년 10월 18일자 「텍사스 가톨릭 헤럴드」지는 다음과 같이 논평한다. “‘유대’인들은 보통 ‘야훼’가 ‘이스라엘’ 하나님의 고유한 이름이라고 간주하지만 일종의 미신적 공포심에서 그 이름을 부르지 않는다. 그러므로 그들의 거룩한 서적에 그 이름이 나올 때는 ‘아도나이’라고 읽는다.”

그리스도교국에 미친 영향

‘유대’인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이름을 사용하지 못하게 한 이 미신적인 공포심은 그리스도교국에도 영향을 주었다. 그리스도교국의 교회 내에서 하나님의 이름에 찬양을 돌리는 것을 들어보기란 쉽지 않다. 사실 그리스도교국의 많은 성서 번역자들은 그들의 성서 번역판에서 하나님의 이름을 빼버리고 그 자리를 “주” 또는 “하나님”으로 대치하였다.

그러나 1901년의 「미 표준역」(영문)은 주목할 만한 예외이다. 그 신문은 이렇게 말한다. “[「영어 개역」] 부록에 처음에 제안되었던 변경—‘하나님’과 ‘주’(작은 대문자로 GOD과 LORD)를 ‘여호와’로 대치하는 변경—은 삭제된 말이 귀에 익고 친숙하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로부터 환영받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개역자들은 심사숙고한 끝에 하나님의 이름이 너무나 신성해서 감히 부를 수 없는 것으로 생각한 ‘유대’인들의 미신이 더 이상 구약의 영문 번역판 혹은 기타 번역판을 지배하게 해서는 안된다는 데 일치를 보았다. ··· 여러 가지 거룩한 일들과 연관된 이 고유한 이름을 이제 제자리라고 확신할 만한 성경 제자리에 회복시켜 놓았다.”

이와 같이 「미 표준역」은 하나님의 이름이 너무나 신성하여 부를 수 없다는 ‘유대’인들의 미신에 영향을 받지 않았다. 다른 성서 현대 번역판들도 성서에 원래 사용된 대로 하나님의 이름을 수천번이나 사용하였다.

하나님의 이름은 무엇인가?

‘히브리’어로 된 성경에 하나님의 이름은 ‘테트라그람마톤’이라는 ‘히브리’어 네 글자로 나타나 있다. 이 ‘히브리’어 네 글자는 영어의 네 글자 YHWH(혹은 YHVH 혹은 JHVH)에 해당한다. 이 하나님의 이름의 정확한 발음은 지금 알 수 없지만, 사람들은 오랫 동안 “여호와”라고 발음해 왔다. 그리하여 「가톨릭 백과 사전」(영문) 1910년판 제8권 329면은 “여호와, 구약에 나오는 하나님의 고유한 이름”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19세기에 와서 성서 학자들은 “야훼”라는 발음을 더 좋아하게 되었다. 이것이 그 이름의 원 ‘히브리’어 발음에 더 가깝다는데 대체로 의견의 일치를 본 것이다. 그러나 대다수의 사람들은 지금 ‘히브리’어를 쓰지 않는다. 다른 언어를 사용한다. 그러므로 예를 들어서 한국어로는 하나님의 이름의 한국어식 발음인 “여호와”를 사용하는 것이 적절하다. 다른 언어로는 하나님의 이름이 다르게 발음되지만 대개 비슷하다.

고대 ‘이스라엘’의 숭배에 있어서의 위치

고대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백성들 간에는 실로 하나님의 이름이 존귀한 위치를 차지하였다. 백성들은 그들의 숭배에서 그리고 성경을 읽을 때, 일상 대화에서, 그리고 다른 나라와 접촉할 때에도 하나님의 이름을 사용하였다. 그리하여 그들은 여호와를 숭배하는 백성으로 널리 알려졌었다.

이 때문에 참 하나님께서는 기뻐하셨다. 그 분께서는 ‘이스라엘’을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라고 묘사함으로 승인의 뜻을 표시하셨다. (역대 하 7:14) ‘이스라엘’ 백성들은 ‘주’를 숭배하는 백성으로 불려지지 않고 항상 여호와라는 이름과 관련되어 있었다. 사실상 성경은 ‘이스라엘’과 “당신 이름을 부르지 않는 나라들”과를 대조한다.—성영 78:6, 천주교역[시 79:6]; 예레미야 10:25.

여호와께서는 그 분의 “이름이 온 천하에 전파되”는 것을 원하셨다. (출애굽 9:16) 그 분의 백성들을 위한 그 분의 행적은 바로 이러한 결과를 가져 왔다. 예를 들어 하나님께서 거만한 애굽인들과 그들의 군사력을 분쇄하셨을 때 그 소식은 널리 퍼졌다. 여러 해 후에 멀리 ‘여리고’ 성에 사는 ‘라합’이라는 여인은 이렇게 말하였다. “너희가 애굽에서 나올 때에 여호와께서 너희 앞에서 홍해 물을 마르게 하신 일[을] ··· 우리가 들었음이라 ··· 너희 하나님 여호와는 상천하지에 하나님이시니라.” ‘라합’이 단순히 ‘하나님’과 같은 칭호만 사용하지 않고 하나님의 독특한 이름도 사용한 것에 유의하라.—여호수아 2:10, 11.

‘이스라엘’ 나라는 하나님의 이름을 선포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어 있었다. 여호와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나의 증인이요 나는 하나님이니라.” (이사야 43:12) 그렇다. 그들은 여호와의 증인으로서 봉사하게 되어 있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의 이름 여호와가 참 숭배에서 항상 탁월한 위치를 차지하도록 의도하셨다. 그분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는 나의 영원한 이름이요 대대로 기억할 나의 표호니라.”—출애굽 3:15.

하나님의 이름의 사용을 피하는 일

그러면 왜 후에 ‘유대’ 나라는 이 웅대한 이름을 사용하지 않고 여러 가지 일반적인 표현과 칭호로 대치하였는가? 이러한 습성이 언제 시작되었는가?

그것은 기원전 607년에 ‘이스라엘’이 ‘바벨론’에 유배되어 간 때에 시작되었다. 또한 후에 ‘바벨론’의 영향을 받은 ‘헬레니즘’으로 인하여 기원전 3세기와 2세기에 ‘유대인’들에게 이러한 관습이 생겼다. 신들의 고유한 이름을 회피하는 것은 분명히 성서의 권고와 정반대되는 일이다. 여호와의 숭배자들은 ‘그의 이름을 부르라’, ‘그의 이름을 사랑하라’, ‘그의 이름을 존중히 생각하라’는 권고를 받고 있다.—이사야 12:4; 시 69:36; 말라기 3:16.

특히 ‘유대’인들 가운데서 ‘사두개’인들의 교파는 소위 ‘국제적인 사고’와 ‘진보적인 태도’에 영향을 받아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일반적인 칭호를 사용할 것을 역설하였다. 그리하여 ‘이스라엘’ 나라는 그들의 하나님의 웅대한 이름 여호와를 사용하지 않게 되었다.

그 이름을 어느 정도로 피하고 있는지 유의해 보라. 성경 외에도, 때때로 ‘히브리’ 글자는 숫자로 사용된다. 예를 들면 ‘히브리’어 ‘알파벳’의 다섯번째 글자(헤)는 숫자상으로 다섯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고, 열번째 글자(요드)는 열을 대표한다. 그러면 15라는 숫자를 쓰려면 ‘요드-헤’라고 쓰는가? 아니다. 성서의 장절도 그렇게 쓰지 않는다. 왜냐 하면 이것은 하나님의 이름의 처음 두 글자를 포함하기 때문이다. 그 대신 15라는 숫자는 언제나 ‘테스-와우’ 즉 9 더하기 6이라고 쓴다. 그렇다, 이 정도로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이름을 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나님의 이름을 가치없이 사용하는 일

하나님의 이름을 피하는 것을 그럴듯하게 변명하기 위한 노력으로 그 이름은 너무나 거룩해서 부를 수 없다느니, 그렇게 피해야만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게 즉 “가치없는 방식으로” 사용하는 일이 없게 된다느니 하고 사람들은 이유를 내세워 왔다. (출애굽 20:7, 신세 참조) 이것이 하나님의 이름을 사용하지 말아야 되는 타당한 이유가 되는가! 하나님의 이름을 가치없이 사용하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하나님의 이름을 가치없는 방법으로 사용한 뚜렷한 본은 애굽의 강력한 왕 ‘바로’이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자기 앞에 나타난 ‘모세’와 ‘아론’에게 그는 냉소하면서 이렇게 대답하였다. “여호와가 누구관대 내가 그 말을 듣[겠느냐] ··· 나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노라.]” 그의 말과 행동은 여호와 하나님과 그의 영광스런 이름에 대한 철저한 불경을 선포하는 것이었다.—출애굽 5:2.

또 다른 본으로 ‘앗수르’ 왕 ‘산헤립’의 대변자 ‘랍사게’가 있다. 그는 유대인들의 사기를 꺾기 위하여 ‘유대’인들의 면전에서 여호와를 얕잡음으로 여호와라는 이름을 가치없이 사용하였다. 그는 이렇게 말하였다. “‘히스기야’가 너희를 면려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를 건지시리라 하여도 듣지 말라 열국의 모든 신 중에 누가 그 땅을 내 손에서 건졌기에 여호와가 ‘예루살렘’을 내 손에서 능히 건지겠느냐”—열왕 하 18:32, 35.

그러므로 하나님의 이름을 손상시키고 더럽히는 방식으로 말한다면, 그리고 하나님의 이름을 내세우며 모독적이고 저주하고 얕잡는 언사를 쓴다면 그것은 그 이름을 가치없는 방식으로 사용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이름을 모독적으로 사용하는 것은 ‘이스라엘’의 율법하에서 처벌의 대상이 되는 범죄였다. 성서는 이렇게 말한다. “그 ‘이스라엘’ 여인의 아들이 여호와의 이름을 훼방하며 저주하므로 ··· 여호와의 이름를 훼방하면 그를 반드시 죽일찌니[라.]” (레위 24:11-16) 하나님의 이름을 가치 없이 사용하는 범죄는 단순히 그 이름을 부르는 것이 아니라 훼방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이름에 직접 훼방하는 말을 하지 않고도 하나님의 이름을 가치없게 사용할 수 있다. 어떻게?

여호와의 이름으로 식별되는 사람이 그가 대표하는 하나님을 불명예스럽게 하는 행위에 가담한다면 그렇게 하는 것이 된다. ‘이스라엘’ 나라는 여호와께 큰 모욕이 되는 행동에 끌려들어가서 하나님의 이름을 무가치하게 사용하였다. 이러한 이유로 여호와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스라엘’ 족속이 들어간 그 열국에서 더럽힌 내 거룩한 이름을 내가 아꼈노라.” (에스겔 36:21) 따라서 여호와의 위대한 이름을 지니고 있는 사람은 그 이름에 수치나 불명예가 돌아가지 않는 처신을 해야 할 무거운 책임이 있다.

하나님의 이름을 가치있는 방법으로 사용하는 일

“여호와는 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자를 죄없다 하지 아니하”실 것이다. 그러므로 그의 이름을 가치있게 사용하는 사람들을 축복하시리라는 것이 당연한 귀결이다. (출애굽 20:7) 그러면 어떻게 우리는 하나님의 이름을 가치있게 사용할 수 있는가?

그렇게 할 수 있는 방법은 그 분께 대한 사적인 기도에서 여호와의 이름을 사랑에 넘치는 방법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여호와의 숭배자가 이렇게 할 때 훨씬 더 친밀한 관계가 된다! 과거에 하나님의 종들은 그와 같이 하나님의 이름을 사용하였다. 예로써 성전 봉헌식 때에 ‘솔로몬’의 기도를 읽어 보라. (열왕 상 8:23-25) ‘갈멜’ 산에서 ‘바알’ 숭배자들과 대결할 때의 ‘엘리야’의 기도를 고려해 보라. (열왕 상 18:36, 37) ‘예루살렘’이 ‘앗수로’의 공격을 당하였을 때 ‘히스기야’가 여호와께 부르짖은 말에 유의해 보라. (열왕 하 19:15-19) 비슷하게 ‘여호사밧’이 하나님의 도움을 간청한 것에 주의를 돌려 보라. (역대 하 20:6-12) 이들 여호와의 종들은 기도 가운데서 하나님의 이름을 아주 충분히 그리고 자주 언급하였으며 하나님께서는 그 기도를 받아 주시고 응답하셨다! 오늘날 우리가 기도 가운데서 하나님의 이름을 사용하는 것은 마찬가지로 중요하다.

우리는 또한 성경을 읽을 때 그리고 하나님의 이름이 나오는 관련된 재료를 읽을 때 하나님의 이름을 가치있게 사용할 수 있다. 그러한 문맥에서 하나님의 이름 여호와를 큰 소리로 읽는 것은 ‘하나님의 이름을 가치없게 사용’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 이름을 읽지 않는 것이 하나님의 이름을 불명예스럽게 하는 것이다.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여러 언어의 성서 번역자들은 “하나님”이나 “주”라는 칭호를 더 좋아하여 그들의 번역판에서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을 삭제하여 버렸다. 하나님의 이름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이름을 “여호와” 혹은 “야훼” 혹은 원 ‘히브리’어 네 글자에 상당하는 말로 충실하게 보존하고 있는 성경 번역판을 읽는 것을 더 좋아할 것이다.

읽을 때 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 대화할 때에도 하나님의 이름을 가치있게 사용할 수 있다. 동료 신자들과 대화할 때에 여호와의 이름을 계속 사용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고 합당한 일이다. 모두 그 이름과 그 이름을 대표하는 것을 존중하고 사랑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에 부가하여 여호와를 대표하는 그리스도인 증인들은 인류 세상 앞에서 그의 말씀 가운데 계시된 하나님의 목적을 설명하면서 하나님의 이름을 사용한다. 다른 사람들의 귀에 하나님의 이름과 목적을 들려 주는 것이야말로 하나님을 가장 영광스럽게 하는 방법으로 그의 이름을 사용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이름을 경멸하는 사람들에게 형벌이 있을 것과는 정반대로 숭배에서 여호와의 이름을 합당한 위치에 두는 사람들은 웅대한 보증을 받고 있다. 그러한 사람들은 ‘아마겟돈’을 통과하여 하나님의 보호를 받게 될 것이다. 그 하나님의 전쟁에서 하나님의 이름을 모독한 자들과 더럽힌 자들이 이 땅에서 제거될 것이다. 여호와께서는 이렇게 선언하신다. “저가 나를 사랑한즉 내가 저를 건지리라 저가 내 이름을 안즉 내가 저를 높이리라.”—시 91:14.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 ··· 온 세계의 지존자”를 찬양하고 섬길 얼마나 훌륭한 자극제인가! 하나님의 의로운 새 제도에 멀지 않아 들어가게 될 전망을 가지고 장차 ‘아마겟돈’을 통과할 사람들은 오늘날 그들의 결심을 확언할 수 있다. “왕이신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를 높이고 영원히 주의 이름을 송축하리이다.”—시 83:18; 145:1,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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