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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정의 미덕
  • 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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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69
파69 11/15 507-508면

동정의 미덕

생활의 즐거움을 배가시켜 주는 것들 가운데는 아름다움이 있읍니다. 아름다움에는 여러가지 종류가 있읍니다. 아름다운 풍경이나 소리와 같이 감각에 호소하는 아름다움이 있읍니다. 또한 아름다운 문학 작품과 같이 지성에 호소하는 아름다움도 있읍니다. 그러나 인생에게 가장 아름다운 것의 한 가지는 도덕적으로 아름다운 사람입니다.

도덕적으로 아름답다고요? 그렇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우리의 양심과 우리의 이상에 호소하는 아름다움입니다. 비이기적이고 자기 희생적인 행동은 실로 아름답습니다. 그 중에서도 특히 동정을 표시하는 일은 아름다운 일입니다.

동정은 어떠한 면으로 아름답습니까? 「옥스포드 사전」에 의하면, 동정이란 “타인의 고통이나 재난을 불쌍히 여기고 그를 구제해 주려고 할 때 가지는 감정 혹은 정서”입니다. 다른 말로 바꾸면, 동정이란 실제로 혹은 영적으로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나 용서를 바라는 사람들을 도와 주는 것입니다.

현대 사회에서는 이러한 동정을 찾아 보기가 힘듭니다. 예를 들면 「뉴욕 타임즈」지는 1969년 3월 18일자 제1면에 “청년을 묶어 불태워 죽인 혐의로 19명 체포”라는 기사를 실었읍니다. ‘오토바이’ ‘갱’단이 다른 ‘갱’단의 두목을 죽였던 것입니다. 또한 4월 2일자 동지에서는 한 남자가 1년 반 된 유아를 목욕탕에 매달아 놓고 혁대로 마구 때렸다고 보도하였는데, 그 유아는 그 남자와 동거하는 여자의 딸이었읍니다. 유아를 매단 끈을 끊자 유아는 바닥에 뚝 떨어져서 팔이 부러졌는데, 그런 상태로 이틀이나 방치해 두었읍니다. 동정심이 없는 사람은 하나님께 대한 믿음도 없는 사람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왜냐 하면 동정이란 하나님의 성품 중 한 가지이기 때문입니다. 성서도 이 사실을 누차 강조합니다. 천사가 ‘롯’한테 급히 와서 멸망당할 ‘소돔’과 ‘고모라’에서 피난하라고 일러 준 것은 “여호와의 인자” 혹은 동정 때문이었읍니다. (창세 19:16, 17)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나라에 동정을 나타내셨읍니다. 한 기록에 의하면 이러합니다. “그 열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백성과 그 거하시는 곳을 아끼사[동정하여, 신세] 부지런히 그 사자들을 그 백성에게 보내어 이르셨[느니라.]” 그리고 오늘날 하나님을 충실히 섬기는 자들에게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사람이 자기를 섬기는 아들을 아낌[동정함, 신세] 같이 내가 그들을 아끼[동정하, 신세]리[라.]”—역대 하 36:15; 말라기 3:17.

여호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동정을 표시할 필요성과 가치를 인식하셨읍니다. 그는 말과 행동으로 이것을 표시하셨읍니다. 그는 탕자의 비유를 통하여 동정심이 많은 아버지와 동정심을 보이지 못한 형을 대조시키셨읍니다. 그는 또한 강도를 만나 매맞고 길에서 반쯤 죽어 있던 사람에게 동정을 표시한 선한 ‘사마리아’인과 동정을 표시하지 않고 피해자를 지나쳐 간 제사장 및 ‘레위’인과를 대조시키셨읍니다.—누가 10:30-33; 15:20, 27-32.

그리고 예수께서는 자신이 가르치신 것을 실천하셨읍니다. 사실 그의 전체 지상 전도 봉사는 영적으로나 실제적으로 궁핍하고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동정을 표하는 일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따라서 이러한 기록이 있읍니다. “무리를 보시고 민망히 여기시니[동정하시니, 신세] 이는 저희가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유리함이라.” 그들은 영적 도움을 필요로 하였고 그는 그들을 가르치심으로 그 도움을 주셨읍니다. 또한 그는 그들의 신체적 필요에 대해서도 여러 번 동정을 나타내시어, 병자를 고치셨고, 많은 사람을 먹이셨고, 심지어는 죽은 자를 다시 일으켜 주시기까지 하셨읍니다.—마태 9:36; 11:28-30; 14:14; 15:32; 20:34; 마가 1:41; 누가 7:13.

당신은 어떠한 방법으로 동정을 표시할 수 있읍니까? 한 가지 방법은 불행을 당한 사람을 도와주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얼마 전 한 젊은 여인이 ‘브루클린’ 번화가에서 미끄러져 넘어졌읍니다. 그는 일어나려고 애썼지만 아무도 도와 주지 않았읍니다. 마침내 한 그리스도인 부부가 와서 “우리가 부축해 드리지요” 하고 말하였읍니다. 그는 “정말 혼자서는 못 일어나겠어요. 감사합니다” 하고 대답하였읍니다. 그 부부가 부축하여 일으켜 보니 그 여자의 한 팔이 부상당하였읍니다. 팔목까지 삐었읍니다. 혼자서 일어나지 못한 것도 무리가 아니었읍니다!

동정을 표시할 수 있는 또 한 가지 방법은 용서하는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거액의 부채를 탕감받은 종이 동료 종이 빚진 소액의 부채를 탕감해 주지 않은 비유를 통하여 이 점을 강조하셨읍니다. 그 용서해 주지 않은 종은 자기의 부채를 전부 갚을 때까지 감옥에 갇히게 되었읍니다. 이 원칙을 적용하시어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읍니다. “너희가 각각 중심으로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내 천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 사도 ‘바울’도 이 비유와 일치한 충고를 하였읍니다. “서로 인자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마태 18:23-35; 에베소 4:32.

그리스도인 전도인들은 동정을 표시할 수 있는 독특한 기회를 가지고 있는데, 그것은 의에 굶주리고 목마른 사람에게 하나님의 왕국의 기쁜 소식을 전해 주는 기회입니다. 예수가 지상 전도 봉사를 하셨을 당시와 마찬가지로 오늘날에도 많은 사람들은 목자 없는 양과 같습니다.—마태 24:14.

동정을 표시하는데 도움이 되는 것들은 무엇입니까? 여러 가지 성품이 있읍니다. 한 가지는 겸손입니다. 겸손한 사람은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에 대해 우월감을 느끼지 않을 것입니다. 또 하나의 성품은 지족입니다. 지족하는 사람은 너무 바빠서 도움을 못 주는 경우가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또한 갑정이입도 필요합니다. 자신을 남의 처지에 놓고 생각해 보는 사람은 동정심을 표할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가장 중요한 성품은 사랑입니다. 예수께서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에서 보여 주셨듯이 이웃에 대한 비이기적 사랑이 필요합니다. 이 경우에 사도 ‘요한’의 다음과 같은 말이 적절할 것입니다. “누가 이 세상 재물을 가지고 형제의 궁핍함을 보고도 도와 줄 마음[동정심, 신세]을 막으면 하나님의 사랑이 어찌 그 속에 거할까 보냐?”—요한 1서 3:17.

그렇습니다. 비이기적이고 원칙에 입각한 사랑을 가질 때 당신은 동정이라는 미덕을 표시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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