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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잘 듣는 자가 되라!
  • 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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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69
파69 9/1 389-394면

잘 듣는 자가 되라!

“나를 청종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좋은 것을 먹을 것이며 너희 마음이 기름진 것으로 즐거움을 얻으리라.”—이사야 55:2.

1. 우리가 가지고 있는 기본적인 배우는 통로는 무엇입니까?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지으실 때에 두 귀를 만들어 주심으로써 사물을 배우는 가장 중요한 통로 중의 하나가 되게 하셨읍니다. 우리는 어릴 때에 그 귀를 통하여 말하는 법을 배우고 언어를 이해합니다. 어릴 때에 우리가 사물을 배우는 데 있어서 이 귀가 가장 기본적인 통로입니다. 그 후 평생을 통하여, 부모, 선생, 고용주 등으로부터 구두 교육을 받으면서 지식을 쌓아갑니다. 물론, 배우는 데 있어서 눈도 중요한 기관입니다. 우리가 일생 동안에 배운 지식의 98‘퍼센트’를 이 두 가지 기관 즉 귀와 눈을 통해 얻게 된다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귀가 배우는 통로로서 얼마나 그 역할을 잘 하는가는 우리가 얼마나 잘 듣는가에 달려 있읍니다.

2. 듣는 것이 지식을 쌓아가는 데 왜 영향을 주는지 설명하십시오.

2 잠언 18:15에는 “명철한 자의 마음은 지식을 얻고 지혜로운 자의 귀는 지식을 구하느니라”는 말이 있읍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들의 말을 들을 때에 귀를 통하여 지식을 얻습니다. 이것은 그들이 하는 말에 주의를 기울이고 그것을 심사숙고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것은 정신이 다른 일에 방황하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정신이 그렇게 방황한다면, 설사 귀가 신체적으로는 제대로 작용한다 할지라도 말을 듣지 못하게 됩니다. 말을 듣기 위하여는 귀를 통해 들어오는 소리를 정신이 받아들여야 합니다. 당신의 정신이 다른 일에 몰두해 있을 때에 다른 사람이 당신에게 무엇인가를 이야기합니다. 후에 당신은 그런 말을 들은 일이 전혀 없다고 진실하게 주장하는 경우가 있을 것입니다. 귀는 그 소리를 충실하게 정신에 전달하였으나 귀를 기울이지 않았기 때문에 정신이 듣지 않았던 것입니다.

3. 하나님께서는 오늘날 우리에게 어떠한 방법으로 말씀하시며, 우리는 왜 그의 말씀을 잘 들어야 합니까?

3 우리가 언제나 지혜와 지식을 얻을 수 있는 방대한 원천은 우리의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 자신입니다. “대저 여호와는 지혜를 주시며 지식과 명철을 그 입에서 내신”다고 그의 말씀에 기록되어 있읍니다. (잠언 2:6) 그분께서는 기록된 말씀인 성서를 통하여 오늘날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거기에 기록된 내용을 눈으로 읽든지, 다른 사람이 소리 내어 읽는 것을 귀로 듣든지, 우리는 하나님께서 고대 성서 필자들에게 주신 지식을 얻게 됩니다. 이렇게 하여 우리는 영적으로 자양분을 많이 받게 됩니다. 그러므로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사야 55:2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 데는 정당한 이유가 있는 것입니다. “나를 청종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좋은 것을 먹을 것이며 너희 마음이 기름진 것으로 즐거움을 얻으리라.” 우리의 정신이 하나님께서 그의 영감받은 말씀 가운데서 공급하시는 고무적인 지식과 건전한 것들을 섭취한다면 우리는 영적 건강을 얻을 수 있읍니다. 영양부족에 걸리면 사람이 야위게 되지만 기름진 것은 건강을 증진시킵니다. 그러므로 영적 기름진 것들도 영적 건강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위의 성귀는 여호와의 말씀을 주의 깊이 듣는 사람이 건강하게 되리라는 의미입니다.

4-6. (ㄱ) 왜 ‘사무엘’은 잘 듣는 자의 본이 됩니까? (ㄴ) 그 외에도 잘 들은 사람으로 성서에 어떤 사람들이 있으며, 그들이 잘 들었다는 것이 어떻게 분명합니까?

4 예언자 ‘사무엘’은 잘 들은 사람으로 좋은 본이 됩니다. 그는 여호와께서 말씀하실 때면 언제나 주의를 기울여서 들었읍니다. 소년 시절에 그가 성전에서 자리에 누워있을 때에 여호와께서 그를 부르셨읍니다. 그 때에 ‘사무엘’은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 하고 대답하였읍니다. (사무엘 상 3:10)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는 동안에 그의 정신이, 그날 성전에서 수행할 일 등 다른 일에 방황하지 않았기 때문에 ‘사무엘’은 들은 말을 모두 기억하였다가 대제사장 ‘엘리’에게 보고할 수 있었읍니다. 여호와께서 그에게 말씀하신 바를 그는 주의 깊이 듣고 완전히 섭취하였읍니다. 그는 잘 들은 사람으로서 오늘날 우리에게 좋은 본이 됩니다.

5 당신은 성서 강연 도중 청중석에 앉아 있을 때에 어떻게 하십니까? ‘사무엘’이 했던 바와 같이 주의를 기울여 듣습니까? 그렇지 않으면, 정신이 여러 가지 생각에 방황하다가 욧점들을 놓칩니까? 건성으로 들어서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지식이나 이해를 증가시키지 못합니다. 예수께서 감람산에서 마지막 날에 발생될 일들에 관하여 말씀하셨을 때에 예수의 사도들이 건성으로 들었다고 상상할 수 있읍니까? 그 말을 듣던 제자들이, 그 옆에 있던 새를 보고 벌레를 찾고 있구나 하고 생각하거나 ‘기드론’ 골짜기 넘어로 보이는 성전 마당에 웅성대는 사람들 가운데 자기 친척 아무개가 있을 것이다 하는 등의 일들을 생각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의심할 것 없이 그들의 정신은 예수께서 하시는 말씀에 완전히 집중되어 있었읍니다. 그들은 잘 들음으로써 자신들이 지혜로움을 나타냈읍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친아들로부터 믿음을 고취시키고 생명을 주는 지식을 얻었읍니다.

6 예수의 전도 봉사 기간에 사도들은 전적으로 주의를 기울여 들었기 때문에 수년후까지도 그의 말씀들을 자세히 기억할 수 있었읍니다. 예수께서 죽으신지 8년 후에 ‘마태’는 자세한 내용을 지금 「마태 복음」이라는 책 가운데 기록하였읍니다. 65년 후에 사도 ‘요한’은 지금 「요한 복음」이라는 책 속에 예수께서 말씀하시고 행하신 일들을 자세히 기록하였읍니다. 그들이 들은 바를 기억하도록 하나님의 성령이 도움을 주기는 했지만, 만일 그들이 귀기울여 듣지 않았더라면 자세한 내용들이 그들의 머리 속에 들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성령이 다시 그러한 내용들을 이끌어 내서 기억하도록 해 주지 않았을 것입니다. (요한 14:26) 연사가 하나님의 말씀의 진리를 말할 때에 귀기울여 듣는 습관을 배양하는 것은 오늘날도 사도들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중요합니다.

잘 듣는 습관을 들이라

7. 일반적으로 우리의 듣는 효율은 어느 정도나 되며, 그것을 발전시키기 위하여 어떻게 해야 합니까?

7 우리는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하는 전체 시간의 45‘퍼센트’를 듣는데 보냅니다. 듣는 일이란 우리 생활 가운데서 가장 자주 있는 일 중의 하나인데도 불구하고 보통 듣는 일에 25‘퍼센트’의 효율 밖에 나타내지 않는다고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아마 그 보다 더 낮을 것입니다. 분명히 듣는 능력을 발전시키기 위하여 노력할 만한 가치가 있읍니다. 그것은 우리 생활 가운데서 대단히 중요합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의식적인 노력을 집중해야 합니다. 연설 도중에 당신의 정신이 배회하는 것을 느끼면 즉시 연설로 집중시키십시오. 하나님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지식이 대단히 중요하기 때문에, 그것을 귓전으로 들어넘겨서는 안됩니다.

8. 어떠한 경우에, 귀가 올바로 작용할지라도 연사의 말을 듣지 못할 수 있읍니까?

8 노력을 기울이면, 잘 듣는 습관을 들일 수 있읍니다. 그러나 연설 도중에 아주 관련 없는 잡다한 생각으로 정신이 방황하는 습관이 있다면 그것을 끊는 데는 시간이 걸릴 것입니다. 그러한 정신적 산보(散步)는, 당신의 귀가 올바로 동작하고 있다 하더라도 연사의 말을 전혀 듣지 못하게 만들 수 있읍니다. 산보를 하던 정신이 되돌아와야만 당신의 귀로 들은 말을 정신이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연설 줄거리를 전부 듣지 못하기 때문에 그 연설의 추리 방법이나 논증 방법을 제대로 이해하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정신이 방황하려는 경향을 억제하기 위하여 충분한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 대단히 유익할 것입니다. 일단 듣는 습관을 들여 놓으면, 듣고 있는 내용에 정신을 계속 집중하기가 더 쉽게 될 것입니다.

9. 들은 일에 ‘보통 이상의 주의를 기울’인다는 것은 무슨 의미입니까?

9 히브리서 2:1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읍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들은 일들에 대하여 보통 이상의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읍니다. 그러면 우리가 결코 떠내려가지 않을 것입니다.” (신세) 사도들은 예수의 말씀을 들을 때에 “보통 이상의 주의를 기울”이는 태도를 가졌던 것입니다. 즉 주의 깊이 들었다는 것입니다. 보통 이상의 주의를 기울인다는 것은 건성으로 듣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어제 한 일이나 내일 할 일 등에 정신이 방황하도록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다른 사람이 말하는 동안에 개인 문제를 궁리한다던가 어떤 다른 일을 걱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보통 이상의 주의를 기울인다는 것은 그가 하는 말을 자신의 정신 가운데 받아들여서, 성서 원칙들 혹은 그가 제시한 교훈들을 자신의 생활에 적용시키는 것을 의미합니다. 성서 연설이 중요하고 가치있는 것은 그 연사 때문이 아니라 연사가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설명하는 지식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나온 것은 무엇이든지, 우리가 매일 보통 일에 주의를 기울이는 이상으로, 즉 보통 이상의 주의를 기울일 가치가 있읍니다.

듣는 습관을 발전시키는 방법

10-12. (ㄱ) 잘 듣는 데 있어서 관심은 왜 커다란 요인이 됩니까? (ㄴ) 잘 듣는 사람은 어떠한 선입관을 피합니까?

10 잘 듣는 데 커다란 요인이 되는 것은 관심입니다.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방주의 칫수를 말씀하실 때에 ‘노아’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에 관심을 가지고 주의를 기울이고 들었기 때문에 그것들을 모두 정확하게 파악하였읍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이 연사가 이야기하려는 제목이 무미건조한 것이라고 결론을 내리는 것은 빈약하게 듣는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저지르는 실수입니다. 그러한 생각은 관심을 잃게 하고 정신으로 하여금 다른 생각으로 방황하게 하는 결과를 냅니다. 연설이 끝난 다음에, 연설을 잘 들은 사람이 연사가 제시한 흥미있던 점이나 훌륭한 논증들 가운데서, 잘 듣지 않은 사람이 놓친 점을 이야기하는 수가 있읍니다. 그러면 그제서야 그는 좀 더 주의 깊이 듣지 않은 것을 후회하게 되고, 자기가 놓친 점이 많은 것에 새삼 놀랄 것입니다.

11 잘 듣는 사람은 어떠한 제목이든지 그것이 무미건조하다는 선입관을 갖지 않습니다. 그는, 만일 연사에게 연설할 가치 있는 점들이 없다면 연단에 올라가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연설 가운데서 배울 것을 찾아내려고 귀를 기울입니다. 그렇게 귀를 기울이는 것은, 연설이 끝나기를 바라며 조바심을 하면서 앉아 있는 것보다는 훨씬 더 낫습니다. 그 제목이 흥미가 없을 것이라고 속단하는 대신, 내가 이전에 알지 못하던 사실, 어떤 점을 설명하는 색다른 방법, 그가 사용한 논증 방법 등등 흥미있는 점들을 발견하겠다고 결심하는 것이 좋습니다. 흥미 있는 점들을 발견하기 위하여 노력을 하면 주의를 기울이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12 빈약하게 듣는 사람들의 또 한 가지 잘못은 그 연사가 가치 있는 말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미리 단정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귀를 기울이는 데 있어서 큰 함정이며, 잘 듣는 자들은 이것을 피합니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이 자기가 모르는 것들을 알고 있음과 연사가 연설을 준비할 때에 귀중한 지식을 어느 정도 수집했을 것이라는 점을 인식합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그러한 귀중한 지식을 포착하여 자기 지식에 첨가하기 위하여 귀를 기울여 듣습니다.

13. 연설을 빈약하게 하는 사람은 가치있는 말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단정하는 것이 왜 잘못입니까?

13 아마 연사의 연설 능력이 약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것은 귀를 기울일 가치가 없다고 생각할 이유가 되지 않습니다. 그의 연설 능력이 약하다는 것은 그가 말하는 내용이 무가치하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사도 ‘바울’은 유창한 연사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가 말한 내용들은 밀접히 주의를 기울일 가치가 있었읍니다. ‘바울’은 ‘고린도’ 사람들에게 보낸 둘째 편지에서 자기 연설 능력에 대한 어떤 사람들의 견해를 다음과 같이 표현하였읍니다. “저희 말이 그 편지들은 중하고 힘이 있으나 그 몸으로 대할 때는 약하고 말이 시원치 않다.” (고린도 후 10:10) 어떤 사람들이 그에 대하여 이러한 견해를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연사로서의 그의 약점을 양해하고 그의 말을 잘 들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과 목적에 대한 지식을 크게 증가시켰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연설에 있어서, 정확한 문법, 연결성, 정확한 발음 등은 듣기 쉽게 하는 데 도움이 되기는 하지만, 그것이 연설의 전부는 아닙니다. 추리, 논증, 사실 및 원칙들이 더 중요합니다.

14. 생각하는 속도가 왜 빈약하게 듣는 습관을 가지도록 영향을 주는지 설명하십시오.

14 빈약하게 듣게되는 또 한 가지 요인은 우리가 이야기하는 속도와 생각하는 속도에 커다란 차이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영어를 예로 들어 말한다면, 보통 일분에 125단어를 이야기하는데, 청중에게 연설할 때에는 일분에 100단어 정도로 줄어집니다. 그런데 우리의 정신은 평균 일분에 적어도 400 내지 500단어를 생각하게 되므로 정신이 다른 일을 할 만한 시간이 상당히 있게 됩니다. 이것이 상관 없는 다른 생각을 하도록 유혹합니다. 잘 듣는 사람은 이러한 속도의 차이를 연사의 말을 자기 정신 속에 깊이 넣는 데 이용합니다. 이렇게 하는 데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읍니다.

15, 16. 우리의 듣는 능력을 발전시키기 위하여 빨리 생각하는 그 속도를 어떻게 잘 사용할 수 있읍니까?

15 연사가 현재 말하고 있는 점에서 다음에 말하고자 하는 점들을 예측해 보도록 하십시오. 이러한 방법으로, 빠른 속도로 나아가는 정신을 연사를 앞질러 가는 데 사용할 수 있읍니다. 그래서 예측한 점이 맞았다면, 그 점이 정신 가운데 두번 들어오기 때문에 강화될 것입니다. 반면에, 예측한 점이 맞지 않았다면, 그 두 가지를 비교하며 연사가 왜 그 점을 택하였는가를 생각해 볼 수 있읍니다. 이렇게 하는 것은 우리가 배운 바를 가장 잘 사용하는 것입니다. 바로 비교하고 대조하는 방법입니다.

16 연사가 자기의 욧점을 세워나가기 위하여 사용하는 요소들을 살펴보십시오. 이것은 연설을 평가하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연설을 잠깐 멈추는 동안에는 그가 이제까지 한 말을 빨리 요약해 보고, 어떻게 주제가 강조되었으며 전개되었는가를 살펴 보십시오. 그가 제시한 욧점들을 분석하여 주제와의 관계를 살피십시오. 주제는 바퀴의 축(軸)과 같으며, 그것을 지지하는 모든 욧점들은 마치 바퀴 살대가 축에 붙어 있듯이, 주제에 연결되어 전체 연설을 세워나가게 됩니다. 섭섭하게도 어떤 연사들은 일관성있게 연설을 하지 못하기 때문에 주제를 강조하지 못합니다. 그러한 일이 있을 경우에는 정신이 산보를 하지 않도록 더욱 더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읍니다.

17. 사실들을 듣는 것보다는 원칙들을 듣는 것이 왜 더 좋습니까?

17 들은 바를 오랫 동안 간직하는 사람들은 피상적인 사실만을 듣는 것이 아닙니다. 들은 사실을 그의 논증과 연관시키고 그 사실이 지지하는 욧점들을 명확히 이해할 때에 그 사실들을 잘 기억할 수 있읍니다. 어떤 연결점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고립된 사실들은 얼마 안가서 잊어버립니다. 그러므로 잘 듣는 사람들은 주로 그 사실들이 지지하는 기본 사상을 듣습니다. 그들은 이러한 방법으로 원칙들을 이해하게 되고 그것을 기반으로 전체 연설과 사실들을 연결하고 전체를 이해합니다. 원칙들을 회상하고 그들의 이유를 이해함으로써 그것을 지지하는 사실들을 기억할 수 있읍니다. 그러한 원칙들은 마치 사실들이 매달려 있는 못과 같습니다. 원칙들이 기억에 되살아나면, 보통 거기에 사실들도 딸려 나옵니다.

18. 듣는 능력과 연사의 말을 기억하는 능력을 발전시킬 수 있는 필기 방법은 무엇입니까?

18 필기를 하는 것이 연설 내용을 기억하는데 크게 도움이 됩니다. 종이를 두 장 사용하는 것이 좋습니다. 한 장에는 “원칙들”, 다른 장에는 “사실들”이라고 기록해 놓습니다. 연설이 진행되면, 연사가 제시하는 원칙들을 한 장에 기입하고 다른장에는 그것을 지지하는 사실들을 기입합니다. 대부분의 시간을 듣는 데 바칠 수 있도록 필기를 간략하게 해야 합니다. 잘 듣는 사람은 일반적으로 몇 분 동안을 필기하지 않고 듣고 나서는 들은 바를 간단히 한 문장으로 요약해서 기록합니다. 그 동안에 빨리 생각하는 정신 능력은 연설을 분석 요약하고 앞으로 할 이야기를 예측합니다.

잘 듣는 습관으로부터 오는 유익

19. 잘 듣는 습관을 기름으로써 오게 되는 유익에는 어떠한 것들이 있읍니까?

19 직장에서 잘 듣는 태도를 보이면, 그는 가치 있는 사원이 될 것이며, 구두 지시를 정확히 듣는다고 신임을 얻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호와의 증인들이 매년 개최하는 대회에서나 왕국 회관에서 성서 제목에 대한 연설이 진행될 때에 잘 들음으로써 영적 지식을 얻는다면 훨씬 더 유익합니다. 일반 사람들은 시간 관계상 그러한 연설 내에 들어 있는 모든 내용을 개인적으로 연구하지 못하기 때문에 연설을 잘 들음으로써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지식을 많이 늘릴 수 있읍니다. 그러한 연설에서 듣는 새롭고 고무적인 견해 및 논증들은 자기 믿음을 강화해 주고 성경적 진리에 대한 인식을 깊게 해 줄 것입니다. 훌륭한 교훈은 좋은 행실과 건전한 태도를 유지하도록 도움을 줄 것입니다. 밀접히 주의를 기울임으로써 얻게 되는 유익은 대단히 많습니다.

20. 오늘날의 성서 강연은 무엇과 비교할 수 있으며, 강연의 유익은 무엇입니까?

20 이러한 성서 연설들은, 고대 ‘이스라엘’ 백성들의 거대한 군중이 함께 모여 하나님의 율법에 대한 연설을 듣던 경우와 비교할 수 있읍니다. 그 백성들이 ‘요단’ 강을 건너 약속의 땅에 들어온 직후에 그러한 모임이 있었읍니다. ‘여리고’와 ‘아이’ 두 도시를 함락한 다음에 그들은 ‘에발’ 산과 ‘그리심’ 산 사이의 좁은 골짜기에 모였읍니다. ‘여호수아’는 좋은 지점—아마 그가 제단을 세웠던 ‘에발’ 산 쪽—에 서서 군중에게 하나님의 율법을 읽어 주었읍니다. (여호수아 8:30-35) 골짜기가 좁기 때문에 목소리는 잘 퍼져 나갔을 것입니다. 그들이 들은 율법은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바에 대한 그들의 기억을 새롭게 해 주었고, 그들이 하나님께 의존하여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켜 주었읍니다. 오늘날의 성서 강연도 마찬가지입니다.

21. ‘여호수아’가 모인 백성에게 연설하는 동안에 ‘이스라엘’의 아이들은 어디에 있었을 것이며, 이것은 왜 유익하였읍니까?

21 ‘여호수아’가 말하는 동안, 부모들이 자기 자녀를 이리 저리 뛰어다니도록, 혹은 잡담하거나 모인 군중 사이를 배회하도록 버려두었으리라고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여호수아’가 말한 어떤 점들은 아이들이 이해하기 힘들었겠지만, 그들이 부모들과 함께 서서 밀접한 주의를 기울였음에 틀림없을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존경심을 배웠고 영적 장성을 위한 좋은 기초를 쌓았읍니다. 오늘날이라고 어디 다른 점이 있읍니까?

22. 부모들은 자녀들이 잘 듣는 자가 되도록 어떻게 가르칠 수 있읍니까?

22 어렸을 적부터 자녀들을, 앉아서 연설을 듣고 주의를 기울이도록 가르치는 것이 좋습니다. 그들에게 연설에서 한두 가지 욧점을 기억했다가 연설이 끝난 다음에 부모들에게 그에 관하여 이야기하도록 격려할 수 있읍니다. 사실, 부모들이 그들에게 몇 가지 질문을 하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이렇게 하면, 자녀들은 어렸을 적부터 잘 듣는 습관을 기를 것이며, 그 습관은 그들이 성장하였을 때에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베드로 전 3:15.

23. 이해하기 어려운 점들에 대한 성경 연설은 어떻게 유익을 줍니까?

23 이해하기 어려운 제목에 대한 연설을 들을 때는 자기의 듣는 능력을 시험하기 위한 좋은 기회가 됩니다. 만일 그가 빈약하게 듣는 사람이라면, 그의 정신은 곧 이리 저리 방황하게 될 것입니다. 연설이 끝나면 그는 그 연설 속에 있던 훌륭한 영적 고기를 섭취하지 못하고 떠나게 되며, 따라서 그는 영적으로 성장할 기회를 상실합니다. 반면에 잘 듣는 사람은 보통보다 더 주의를 기울이려고 애쓰며, 원칙들을 포착하고, 지지하는 논증들을 이해하기 위하여 커다란 노력을 기울입니다. 설사 연설 내용 전부를 이해하지는 못한다 할지라도, 그가 이해한 내용들은 자기의 성경 지식을 높이고 자기의 이해력을 넓혀줄 것입니다. 그는 영적 성장이 저해되거나 영적 젖밖에 못 먹는 사람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는 그렇게 하여 자기 믿음의 기초를 강화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깊은 것들을 소화하는 능력을 기를 것입니다.—히브리 5:12-14.

24.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교훈과 훈계를 제시하는 연설들은 어떠한 유익이 있읍니까? 그리고 그러한 마련에 대한 감사를 어떻게 나타낼 수 있읍니까?

24 마치 고대 ‘이스라엘’ 사람들이 장차 처신할 바를 알기 위하여 하나님의 말씀에 들어 있는 교훈과 훈계를 알 필요가 있었던 바와 같이, 장성한 사람이나 비장성한 사람이나 다 그러한 것을 필요로 합니다. “너는 권고를 들으며 훈계받으라 그리하면 네가 필경은 지혜롭게 되리라.” (잠언 19:20) 그러한 지침이 없다면, 우리는 영원한 생명의 목표로부터 이탈시키는 넓은 길로 빠져나가기가 대단히 쉽습니다. (마태 7:13, 14) 그러한 교훈은 왕국 회관이나 여호와의 증인들이 매년 갖는 지역 대회 같은 곳에서 듣게 되는 연설에서 주어집니다. 그런데, 그러한 교훈이 주어질 때에 대회장을 방황하는 사람들은 어떠합니까? 그러한 사람은 잠언 19:20의 교훈을 따르고 있읍니까? 그러한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생명의 길을 똑바로 걷는 법을 배우고 있읍니까? 위험한 함정을 피하는 방법을 배웁니까? 그리고 연설을 끝맺기도 전에 집으로 떠나는 사람은 어떠합니까? 그러한 사람이 몇 분을 더 기다려서 연사의 말을 다 듣는 것이 더 좋지 않겠읍니까? 그렇게 하는 것이 그를 영적으로 교훈하고 강화하기 위하여 고안된 그 마련에 감사를 더 잘 나타내는 것이 아니겠읍니까?

25, 26.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이 잘 듣는 자가 되는 것은 왜 중요합니까?

25 앞으로 이 낡은 사물의 제도가 존속될 짧은 기간에 우리는 강한 믿음이 필요하며, 이 낡은 제도의 사람들과 그의 통치자들에게 훌륭하게 증거할 수 있는 지식이 필요합니다. 그렇게 하기 위하여 우리에게는 대회에서나 왕국 회관에서 개최되는 연설에서 제시되는 성경적 설명과 강력한 논증과 격려적인 말과 잘못을 지적해 주는 충고가 필요합니다. 여호와의 조직은 그러한 마련에 의해 우리의 귀를 통하여 가르치며, 앞으로 지혜로운 길을 택하도록 도와 줍니다. 그러므로 잘 듣는다는 것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듣는 능력은 말하는 능력만큼이나 중요하다는 것을 생각하십시오. 우리가 성경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들어 있는 훌륭한 것들에 대하여 말할 의무가 있는 것과 같이, 그러한 것들을 들을 의무도 있읍니다.

26 잘 듣는 자가 됨으로써 당신은 자신에게 뿐 아니라 당신의 말을 듣는 사람들에게도 자신의 영적 진보를 나타내게 될 것입니다. (디모데 전 4:15, 16) 열심히 들음으로써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주신 귀를 올바로 사용하십시오. 잘 들음으로써 얻은 지식을 통하여 당신은 영적으로 건강해지고 영원한 복지를 누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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