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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때를 이해하는 것은 참 숭배자들에게 도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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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때를 이해하는 것은 참 숭배자들에게 도움이 된다
  • 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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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68
파68 8/1 344-349면

때를 이해하는 것은 참 숭배자들에게 도움이 된다

1. 우리의 일상 생활에서 때, 즉 시간을 이해하는 것이 도움이 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우리는 일상 생활에서 흔히 지금이 몇시인가, 무엇을 할 때인가를 알아야 할 경우가 있읍니다. 아침에 일어날 때인가? 일하러 갈 때인가? 식사할 때인가? 집회에 참석하기 위하여 준비할 때인가? 잠잘 때인가? 등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 대부분은 매일 매일 한가지 일에서 다른 일로 옮기기 위하여 때를 정할 필요가 있읍니다. 성서가 전도서 3장 1절에서 “천하 범사가 기한이 있고 모든 목적이 이룰 때가 있다”고 말한 바와 같습니다. 만일 우리가 때를 잘 알고 있지 않다면, 우리의 생활은 금방 무질서하게 될 것이며, 시간을 너무 많이 낭비하여 생산적인 활동, 즉 우리의 육적 영적 생활을 유지시켜 나갈 수 있는 활동에 충분한 시간을 바치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2. 여호와의 목적과 관련하여 때를 이해하는 것은 어떻게 격려가 됩니까?

2 우리의 생활을 적절하게 조절할 필요성 외에도, 이 땅과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여러 가지 목적은 때의 요소를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때에 관계되는 문제를 이해하는 것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커다란 격려의 원천이 됩니다. 여호와께서는 참 숭배자들에게 도움을 주기 위하여 성서에 예언된 몇 가지 사건에 때의 요소를 계시하여 주셨읍니다. 그러한 종류의 계시가 참 숭배자들에게 고무가 된다는 사실을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읍니다.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마태 11:25.

이해함으로 격려를 받음

3. 어떠한 유의할 만한 일들이 유다와 예루살렘의 황폐 기간에 관련되어 있었읍니까?

3 예언에 관한 때를 이해함으로써 격려를 받은 한가지 예는 유다와 예루살렘이 70년 동안 황폐되어 있었던 때에 있었읍니다. 유대인들은 배도한 죄로 그 당시 세계 강국인 바벨론에 사로잡혀 가 있었읍니다. 예언자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성령에 감동하여 이 70년 기간을 예언하였읍니다. 유다와 예루살렘과 그리고 다른 이웃 나라에 대하여 예레미야는 이러한 예언을 하였던 것입니다. “이 온 땅이 황무하여 놀램이 될 것이며 이 나라들은 칠십년 동안 바벨론 왕을 섬기리라.” (예레미야 25:11) 그러나 이 황폐 외에 예레미야를 통한 여호와의 말씀은 다른 것, 곧 이 기간이 지난 다음에 회복이 있을 것도 예언하였읍니다.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바벨론에서 칠십년이 차면 내가 너희를 권고하고 나의 선한 말을 너희에게 실행하여 너희를 이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예레미야 29:10.

4, 5. 이 ‘때’에 대한 지식이 유대인들에게 어떻게 격려가 되었읍니까?

4 여호와의 말씀대로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가는 일이 있게 되었읍니다. 유다 땅은 황폐되었읍니다. 여러 해가 흘렀읍니다. 이윽고 68년 후 메대와 바사 연합군은, 부주의하게 열어 놓은 성문으로 밀려 들어와 자기의 힘을 과신하고 있던 바벨론을 함락시켰읍니다. 미처 싸워 볼 겨를도 없이 바벨론은 함락되었읍니다. 이렇게 하여 장기간의 포위로 인한 황폐를 겪지 않고 성내의 유대인들은 생명을 보존하였읍니다. 이 장기간의 바벨론 포로 생활을 겪은 이들 유대인들 중 한 사람은 하나님의 충실한 숭배자인 다니엘이었읍니다. 이제 그는 바벨론을 지배하게 된 메대 바사 제국의 왕, 메대 사람 다리오의 지배하에 들어왔읍니다.—다니엘 5:31.

5 다니엘은 예레미야의 예언을 알고 있었읍니다. 그는 또한 때를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것을 정확히 측정하고 계산할 수 있었읍니다. 계산한 결과 어떠하였읍니까? 다니엘서 9장 1절과 2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메대 족속 아하수에로의 아들 다리오가 갈대아 나라 왕으로 세움을 입던 원년 곧 그 통치 원년에 나 다니엘이 서책으로 말미암아 여호와의 말씀이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임하여 고하신 그 연수를 깨달았나니 곧 예루살렘의 황무함이 칠십년 만에 마치리라 하신 것이니라.” 그들의 포로 생활 기간이 거의 다 찼으며, 예언된 석방과 회복의 때가 가까웠다는 것을 다니엘과 다른 유대인들이 깨달았을 때에 그들이 받은 격려가 얼마나 컸었겠읍니까!

6, 7. “이방인의 때”를 이해한 것이 어떻게 참 숭배자들에게 도움이 되었읍니까?

6 여호와의 목적이 성취되는 때를 깨달아 알게 되어 격려를 받은 또 다른 예는 예수께서 “사물의 제도의 결말”에 대하여 언급하신 ‘때’의 기간입니다. 누가 21장 24절에 기록된 대로 예수께서는 “예루살렘은 이방인의 때가 차기까지 이방인들에게 밟히리라”고 말씀하셨읍니다. 이 “이방인의 때”가 무엇인가를 이해하고 그 ‘때’의 길이를 측정하고 계산할 수만 있다면, 지상에 있는 하나님의 종들은 하나님의 왕국이 언제 하늘에 설립되게 되어 있었는가를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 왕국 설립의 시기는 “이방인의 때”의 끝과 “마지막 때”의 시작과도 같은 때가 될 것입니다.—다니엘 11:27, 40; 마태 24:3, 신세; 디모데 후 3:1.

7 이 ‘때’의 기간은 2,520년간임이 밝혀졌읍니다. 그 기간은 기원전 607년에 예루살렘이 멸망될 때에 시작되었읍니다. 그 기간은 1914년에 끝났읍니다. 지상에 있는 하나님의 백성들은 어떠한 일이 발생될 것인가는 자세히 알지 못하지만 그 때가 오기 전에 그 연대를 계산할 수 있었읍니다. 그러나 여호와께서 때를 사용하시는 방법을 이해함으로써 지상에 있는 하나님의 숭배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예언된 “마지막 때”가 진실로 시작되었다는 것을 깨달았읍니다. 그리고 “마지막 때”가 시작되었다는 사실은 하나님의 왕국이 그리스도의 지휘하에 하늘에 설립되었다는 것을 의미하였읍니다. 이 모든 사실은 이 위급한 때에 특히 참 숭배자들이 박해를 당하고 있을 때에 커다란 격려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마지막 때”가 시작된 이래, 그리고 “이방인의 때”가 끝난 이래, 기원 1967년 가을까지 53년이 흘렀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 그와 같이 때를 아는 것은 오늘날의 참 숭배자들에게도 커다란 격려가 되지 않습니까! 이 사실은 이 악한 사물의 제도의 끝이 조금밖에 남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신 바와 같이 끝은 1914년에 “마지막 때”의 시작을 목격한 같은 세대 내에 일어날 것이기 때문입니다.—마태 24:34.

올바른 때

8. 때를 이해하는 것이 어떤 다른 면으로도 가치있읍니까?

8 때를 이해하는 것은 다른 면으로도 가치가 있읍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무엇을 할 것인가뿐만 아니라 그 일을 언제 할 것인가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종들은 분명히 올바른 때에 올바른 일을 하고자 원합니다. 우리는 올바른 때에 행동을 취할 수 있지만, 그것이 그릇된 행동이라면 아무 소용이 없읍니다. 또한 보통 때라면 올바른 일이라고 생각되는 어떤 행동을 취하였어도 그릇된 때에 그 행동을 취한다면, 아무 소용이 없읍니다. 사람이 하루 평균 여덟 시간을 자야 한다는 점에는 아무도 반대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가 마땅히 일을 해야 할 시간에 그 여덟 시간을 사용한다면 어떠합니까? 물론 그렇다면, 그것은 올바르지 않습니다. 가족적인 휴식과 오락을 위해서 시간을 사용하는 것이 건설적일 수 있읍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 집회에 참석해야 할 저녁 시간에 그렇게 한다면, 올바르지 않습니다.

9. 이스라엘은 올바른 때에 무슨 그릇된 행동을 하였읍니까?

9 이스라엘 민족이 애굽에서 나왔을 때에 여호와께서는 그의 백성들에게 그들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인 가나안 땅을 소유하게 되리라고 말씀하셨읍니다. (출애굽 3:15-17) 그러나 그 땅을 정탐한 다음에 사람들은 소수를 제외하고는 그 땅의 주민들을 두려워하여 거기에 들어가기를 거절하였읍니다. 그들은 불평을 하면서 애굽으로 되돌아가고자 하였읍니다. 특히 그들이 여호와께서 자기들과 함께 하신다는 증거를 직접 보았으므로 그때는 약속의 땅에 들어갈 올바른 때였읍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릇된 행동을 하였읍니다. 그들은 들어가고자 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 때문에 여호와께서는 반역적인 세대가 소수를 제외하고는 다 죽을 때까지 40년 동안 광야에서 방황하리라고 선언하셨읍니다. 약속의 땅에 들어갈 사람들은 새로운 세대였읍니다.—민수 13:31-33; 14:1-4, 28-34.

10. 왜 사울 왕의 기도는 응답되지 않았읍니까?

10 보통의 경우라면 올바른 행동으로 간주될 만한 행동을 그릇된 때에 취한 한 가지 예는 사울 왕이 블레셋 사람들을 두려워하였을 때에 있었읍니다. 사무엘 상 28장 6절에 보면, ‘사울이 여호와께 물었다’고 하였으니 다른 경우라면 올바른 일로 간주되었을 일을 사울이 하였읍니다. 그러나 그는 그릇된 때에 여호와께 물었던 것입니다! 그 때는 이미 사울이 하나님의 계명을 범하여 여호와께서 그의 영을 사울로부터 거두워 버리신 뒤였읍니다. (사무엘 상 16:14) 그의 마음이 완고하게 변하여 명백히 표현된 하나님의 명령을 범하기 오래 전에 기도로 그러한 일을 물었어야 했었읍니다. 그가 기도로 하나님께 향한 것은 그릇된 때 즉 너무 늦은 때였기 때문에 아무런 가치가 없었읍니다. 사무엘 상 28장 6절에서 말한 바와 같이 “여호와께서 꿈으로도, 우림으로도, 선지자로도 그에게 대답지 아니”하셨읍니다.

11. 참 숭배자들은 어떻게 여호와를 기쁘시게 합니까?

11 그러므로 오늘날 하나님의 종들인 참 숭배자들은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을 연구하여 하늘의 아버지께서 자기들에게 무엇을 하기를 원하시며, 그것을 언제 행하기를 원하시는가를 이해하고 그 표현된 뜻에 일치되게 행동을 취한다면 그들은 여호와를 기쁘시게 할 수 있고 그의 축복을 받을 수 있읍니다. 그렇게 하려면 점진적으로 밝혀지는 여호와의 뜻과 발전하는 그의 보이는 조직과 보조를 맞추고, 이 사물의 제도의 끝이 오기 전 남은 기간에 그의 활동에 협력해야 합니다.

때의 성질

12. (ㄱ) 우리가 때에 대하여 알 수 있는 몇 가지 점은 어떠한 것들입니까? (ㄴ) 우리가 알 수 없는 것은 무엇입니까?

12 시간에 대하여 이해하면 그리스도인들에게 여러 가지 면으로 도움이 되기 때문에 그에 대하여 알 수 있는 것들을 조사해 봅시다. 고려할 수 있는 몇 가지 중요한 점들은 (1) 그것이 어떻게 움직이는가, (2) 그것을 측정하는 방법, (3) 그것을 계산하는 방법입니다. 그러나 때에 대하여 우리가 알지 못하며 알 수 없는 것이 있읍니까? 그렇습니다. 우리는 때가 어디서 시작하였으며, 영원을 통하여 어디로 가는지를 모릅니다. 현재로서는 여호와만이 그것을 알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에 대하여 염려할 필요는 없읍니다. 그것을 이해하려는 것은 마치 개미가 인간의 시작과 인간을 지상에 두신 하나님의 목적을 이해하려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한 지식은 그 작은 곤충의 인식 범위를 훨씬 초월한 문제입니다.

13. 때는 어느 방향으로 움직입니까?

13 우리가 때에 대하여 알 수 있는 것들 중 한 가지는 그것이 어떻게 움직이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단지 한 방향 즉 앞으로만 움직입니다. 그것은 일방 통행로를 달리는 자동차와 같습니다. 그것은 끊임없이 한 방향으로만 움직이며, 아무 피조물도 그 움직임을 되돌릴 수 없읍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결코 과거로 소급할 수 없읍니다. 우리는 시간적으로 뒤로 돌아가서 현재의 일이 전혀 발생되지 않은 것처럼 현재를 없앨 수는 없읍니다. 오로지 시간은 앞으로만 나아가며, 우리는 언제나 현재에만 살고 있고 과거에는 살지 않습니다. 우리는 지금부터 일분 후 혹은 일년 후의 미래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으며, 우리는 언제나 현재에서 미래로 전진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읍니다. 그러나 우리는 절대로 뒤로 돌아갈 수는 없읍니다.

14, 15. 여호와께서는 어떠한 때의 측정법을 마련하셨읍니까?

14 시간의 다른 한 가지 성질은 그것이 흐르는 겉보기 속도, 즉 때가 현재에서 미래로 얼마나 빨리 흐르는가 하는 것입니다. 이 흐르는 속도를 측정할 수 있읍니다. 실로 여호와께서는 인간에게 때의 측정법에 대한 지식이 필요하다는 것을 아셨읍니다. 특히 하나님의 목적은 때의 요소를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더욱 그렇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사람에게 이 때를 측정할 수 있는 능력, 곧 하등 동물에게는 없는 능력을 부여하셨읍니다. 여호와께서는 또한 인간이 때를 정확하게 측정할 수 있도록 수단을 마련해 주셨읍니다. 창세기 1:14은 다음과 같습니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하늘의 궁창에 광명이 있어 주야를 나뉘게 하라 또 그 광명으로 하여 징조와 사시와 일자(날)와 연한이 이루라.” 그러므로 여호와께서는 사람이 때를 측정할 수 있도록 해 놓으셨읍니다. 지구가 해를 한 바퀴 돌면 1태양년이 지나갑니다. 그렇게 도는 동안에 우리는 사시(四時)를 한번씩 겪게 됩니다. 그리고 지구가 지축을 한 바퀴 완전히 돌 때에 하루(한날)가 지나갑니다.

15 성서 신명기 5:13, 14에는 또 다른 때의 측정법을 말하고 있읍니다.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제 칠일은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이니라].” 이것은 일곱 날로 이루어진 하나의 주기를 말하고 있는데 이 일곱 날씩 만들어진 주기를 우리는 지금도 사용하고 있읍니다. 그러나 그 이전에도 노아는 일곱 날씩의 주기와 30일로 이루어진 달을 사용하였다고 기록되어 있읍니다.—창세 7:4, 11, 24; 8:4.

16. 성서에서 날이라는 단어를 각각 다른 의미로 사용한 세 가지 예를 말하십시오.

16 성서에 사용된 날이라고 하는 한 가지 때의 구분을 이해하기 위하여는 그 내용의 문맥을 이해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성경에 사용된 예를 보면, 날(히브리어 욤, 희랍어 히메라)이라는 단어에 여러 가지 의미가 들어있기 때문에 구별할 필요가 생기는 것입니다. 이 단어가 사용된 한 가지 방법이 창세기 1:5에 나오는데, 그 귀절은 하나님이 “빛을 낮(날, day)이라 칭”하셨다고 말합니다. 여기서의 낮은 다른 곳에서 날이라고 번역된 단어이며, 햇빛이 있는 기간인 약 12시간을 의미합니다. 요한 20:19에서는 날이라는 단어를 다른 방법으로 사용하였는데 이번에는 24시간의 기간을 의미합니다. 즉 “그 날 곧 그 주간의 첫날 저녁에”라고 말한 경우입니다. (새번역) 날이란 단어의 세번째 용례는 어떤 유명한 사람이 살았던 기간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이사야 1:1에서 그러한 한 가지 예를 볼 수 있읍니다. “유다 왕 웃시야와 요담과 아하스와 히스기야 시대(날들, days)에 아모스의 아들 이사야가 유다와 예루살렘에 대하여 본 이상이라.”

17. 성서에서는 그 외에 어떠한 의미로 날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였읍니까?

17 날이라는 단어는 더 긴 기간을 뜻할 수도 있읍니다. 베드로 후서 3:8에는 “주께는 하루(한 날)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한 날) 같”다고 되어 있읍니다. 이 단어로 그 보다 더 긴 기간도 의미할 수가 있읍니다. 출애굽기 20:11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읍니다. “이는 엿새(여섯 날들)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제 칠일(일곱째 날)에 쉬었음이라.” 이것은 창조한 때의 기간을 의미하는데 그 일곱째 날을 기준하여 판단한다면, 그 각각의 날은 7천 년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성서 단어 날의 의미에는 그 보다 더 기다란 기간도 들어갈 수 있읍니다. 창조의 날들 전부를 함께 포함시켜서 날이라고 한 예가 있읍니다. 창세기 2:4은 이러합니다. “이것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땅과 하늘을 만드신 날에, 그들이 창조되던 때에 하늘들과 땅의 역사이다.” (신세) 그러므로 이러한 의미로 사용되었을 때에 이 단어는 분명히 각 창조의 날보다 훨씬 긴 기간을 의미합니다.

때의 기간을 계산함

18, 19. 때를 계산하는 데 도움이 되는 어떠한 것이 있읍니까?

18 사람이 시간을 여러 가지 길이로 구분하는 방법을 안 다음에, 오랜 기간을 걸쳐서 그것을 계산할 필요성이 있게 되어 달력이 생겼읍니다. 그러한 한 가지 달력으로 유대력이 있고, 또 하나로 기원전 46년에 줄리우스 씨저에 의하여 소개된 줄리우스력이 있읍니다. 또 하나는 기원 1582년에 교황 그레고리 13세가 소개한 그레고리력이 있읍니다. 이 달력은 줄리우스력보다 더 정확하기 때문에 현재 대부분의 나라에서 이것을 사용하고 있읍니다.

19 때의 오랜 기간을 계산하기 위하여는 “절대 일자”라는 것이 대단히 귀중합니다. 이러한 일자는 성서에 기록되어 있는 실제 사건의 날자로서 세속 역사에 의하여 믿을 만하다고 증명된 날자입니다. 이러한 특수한 날자를 기준으로 해서 믿을 만한 성서의 연대를 사용하여 많은 다른 성서 내의 사건들이 언제 발생하였었는가를 확정할 수 있읍니다.

20. 「히브리어 성경」 가운데 있는 일자들을 어떻게 계산합니까?

20 「히브리어 성경」 가운데 있는 일자들을 계산하기 위하여는 기원전 539년 10월 5, 6일이라는 절대 일자가 꼭 필요합니다. 이것은 메대와 바사인들이 바벨론을 함락시킨 해이며, 그 해는 세속 역사에도 확정적으로 알려져 있읍니다. 벨사살 왕의 아버지이며 섭정자인 나보니더스 왕의 기록이 발견됨으로써 그 연대는 세속 역사에도 분명히 확정되었읍니다. 이 귀중한 점토판의 문서는 바벨론이 그레고리력으로 기원전 539년 10월 5, 6일에 함락되었음을 알려 줍니다. 이 일자로부터 「히브리어 성경」에 나오는 다른 모든 일자들을 계산할 수 있읍니다.

21. (ㄱ) 우리는 예루살렘이 기원전 607년에 무너졌음을 어떻게 압니까? (ㄴ) “이방인의 때”를 계산하는 데 있어서 무슨 문제가 생깁니까?

21 때의 오랜 기간의 계산으로 한 가지 중요한 것은 전술한 “이방인의 때”의 계산입니다. 에스겔의 예언(에스겔 21:25-27)에 의하면, 예루살렘에서 통치하던 모형적 하나님의 왕국이 바벨론에 의하여 엎드러졌을 때에 그 기간이 시작되었읍니다. 언제 그러한 일이 일어났읍니까? 세속 역사가들은 바벨론 자체가 기원전 539년 우리가 사용하는 달력으로 10월 초에 무너졌다는 사실에 동의합니다. 2년 후 즉 기원전 537년에 유대인들이 본국으로 돌아옴으로써 예루살렘이 황폐되는 70년의 기간이 끝났읍니다. 기원전 537년부터 70년을 뒤로 거슬러 올라가면 기원전 607년에 이르게 됩니다. 그러므로 예루살렘은 기원전 607년 10월 초에 황폐되었읍니다. “이방인의 때”가 시작된 것입니다. 그 기간은 하나님의 왕국이 설립되고 “마지막 때”가 시작됨과 동시에 끝났읍니다. 이 이방인의 때의 기간은 많은 성서 연구생들이 이미 알고 있는 바와 같이 2,520년입니다. 그 사실은 다니엘 4:16, 17, 31, 32, 그리고 계시록 11:2, 3, 그리고 에스겔 4:6을 살펴 보아 알 수 있읍니다. 그러면 그것을 어떻게 계산해야 합니까? 만일 607년에 단순히 1914년을 더하면, 2,520년이 아니라 2,521년이 나오게 됩니다.

22. 기원전 607년 10월부터 기원전 1년 말까지 기간이 얼마나 됩니까?

22 그것을 정확하게 계산하는 한 가지 방법은 다음과 같습니다. 기원전 607년 10월 1일부터 시작하여 그 해 말까지 계산하면 3개월이 됩니다. 그렇게 되면, 기원전 606년 1월 1일이 됩니다. (기원전의 햇수는 그리스도의 때에 가까와 올수록 숫자가 더 적어진다) 거기에 만 606년을 더하면 기원전 1년 말이 됩니다. 그러면 이때까지 606년 3개월이 됩니다.

23. 통용기원의 시작부터 1914년 10월까지는 얼마의 기간이 됩니까? 이 계산에서 총계는 얼마나 됩니까?

23 그 다음에는 무슨 해가 오게 됩니까? 기원전 1년 다음에는 무슨 해가 옵니까? 영(0)년이 왔읍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희랍, 로마인들을 포함한 고대인들은 영(0)이란 개념을 가지지 않았읍니다. 여러분이 학교에서 로마 숫자를 배울 때에 영을 표시하는 숫자를 배웠읍니까? 그렇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 이유는 그들이 그러한 숫자를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영이라는 숫자는 기원 150년 경에 인도인들이 발명하여 수세기 후에 아랍인들에 의해 유럽 사람들에게 소개되었읍니다. 그러므로 기원전 1년 후에는 영년이 아니라, 통용기원 원년 즉 기원 1년이 됩니다. 그 해의 시작 때부터 기원 1913년의 말까지는 만 1913년이 됩니다. 그 다음 1914년 1월부터 10월까지는 9개월이 됩니다. 1913년 9개월에 통용기원 전 기간인 606년 3개월을 더하면, 기원전 607년 10월 1일부터 기원 1914년 10월 1일까지가 만 2,520년의 기간이 됩니다. 이 기간이 예수께서 말씀하신 “이방인의 때”입니다. 이 계산이 정확하다는 사실은 예수께서 예언하신 여러 가지 보이는 사건들 즉 1914년 이래 이루어지고 있는 여러 가지 사건들에 의하여 확증되었읍니다. 그러한 계산이 약간 어렵기는 하지만 그리스도인들이 그것을 아는 것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그것을 알게 되면, 하나님의 왕국이 언제 하늘에 설립되었으며, 현 악한 사물의 제도가 언제 그의 “마지막 때”에 돌입하였는지를 결정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24. 예수의 전도 봉사일자는 어떻게 계산합니까?

24 예수의 지상 전도 봉사 기간에 있었던 여러 가지 사건들의 일자를 계산하는 데는 기원 14년 8월 19일이라는 절대 일자가 대단히 중요합니다. 그 날 아구스도 가이사(아우구스투스 씨저)가 죽고 디베료 가이사(티베리우스 씨저)가 로마 황제로 계승하였읍니다. 다음에 누가 3장의 내용을 보십시오. “디베료 가이사가 위에 있은지 열 다섯 해[에] . . . 하나님의 말씀이 빈 들에서 사가랴의 아들 요한에게 임한지라 요한이 요단 강 부근 각처에 와서 죄사함을 얻게 하는 회개의 [침례]를 전파하니[라].” 디베료 가이사의 제 15년은 기원 29년 8월 말경에 끝났읍니다. 예수보다 6개월 위인 요한은 그해 봄에 전도를 시작하였읍니다. 그 보다 6개월 후 기원 29년 가을에 예수께서는 침례를 받으시고 전도 봉사를 시작하셨읍니다.

25.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 들어 있는 때의 요소를 신뢰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25 그리스도인들에게 크게 중요한 한 가지 사실은 성서가 인간 창조시까지, 오히려 그 이전까지 전 기간을 정확하게 알려 주는 유일한 기록이라는 사실입니다. 그것을 알려 주는 다른 문헌은 하나도 없읍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리스도인들은 시간적 요소를 내포하고 있는 성서 예언의 모든 문제에 커다란 확신을 가질 수 있읍니다. 여호와는 위대한 시간 엄수자이십니다. 그는 모든 목적에 대하여 확정된 때를 정하고 계십니다. 그가 새로운 사물의 제도를 약속하실 때에 우리는 그러한 예언들이 정확히 제 때에 틀림없이 이루어질 것을 믿을 수 있읍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참 숭배자들은 세상 문제에 대하여 염려를 하지 않습니다. 왜냐 하면, 그들은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자기들을 의의 길로 인도하시며 하나님께서 자기들에게 무엇을 기대할 것이며, 언제 기대할 것인가를 미리 알려 주신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모스 3:7에서는 “주 여호와께서는 자기의 비밀을 그 종 선지자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고는 결코 행하심이 없으시리라”고 말합니다.

    한국어 워치 타워 출판물 (1952-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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