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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지막 때”—그것은 당신에게 무엇을 의미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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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지막 때”—그것은 당신에게 무엇을 의미하는가?
  • 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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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67
파67 9/15 411-414면

“마지막 때”—그것은 당신에게 무엇을 의미하는가?

당신은 틀림없이 『마지막 때』(혹은, 『말세』)라는 말을 들어보았을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서에 그 표현이 사용되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그 표현에 익숙하여 있다. 그러나 그 말에는 불길한 의미와 멸망의 전조가 내포되어 있기 때문에 대화의 제목으로서는 흔히 환영을 받지 못한다. 심지어 어떠한 사람들은 그런 것이 있겠느냐고 비웃으며 『마지막 때』에 대한 성서 주제가 나오면 마음의 문을 닫아 버린다. 그러나 많은 것들이 마지막을 당하며 최후를 겪는다는 것은 사실이다.

예를 들면 사람들은 자기 인생의 마지막 때에 또는 자기 인생에 있어서의 어떠한 사건의 최후에 돌입한다. 만일 큰 도서관에 가서 도서 「카드」를 살펴 본다면 『「찰스」 2세의 최후』, 『「메리 안트와네트」의 최후』, 『「그랜트」 장군의 최후』, 『「아브라함 링컨」의 최후』, 『「힛틀러』의 최후』 등등의 서적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사람이 인생의 『마지막 때』를 경험한다는 사실은 아무도 의심하지 않을 것이다!

다른 것들도 역시 그들의 마지막 때를 겪는다. 그러므로 어떤 도서관에 가면, 『「세바스토폴」의 최후』, 『「폼페이」의 최후』 및 『「허큘라늄」의 최후』라는 책들도 볼 수 있다. 2차 대전 중 흑해 연안의 「세바스토폴」의 경우와 같이, 전쟁이 정상적인 도시의 종말을 가져 오기도 한다. 혹은 기원 79년에 「베스비우스」 화산이 「폼페이」와 「허큘라늄」을 매몰시켜 버린 바와 같이 화산 폭발로 말미암아 도시가 없어지고 거기에 사는 사람이 전멸당할 수도 있다.

사람이나 도시들만이 아니라 전 민족이나 제국도 그들의 마지막 때를 경험하였다. 몇 세기 전만 하더라도 강대한 「인디안」 민족이 미국 서부 평야를 배회하며 단순한 유목 생활을 영위하였다. 그러나 백인들이 서부로 이주함에 따라 이제는 이미 사라져 버렸다. 「로버트 엠 · 우틀리」는 최근에 발행한 그의 저서 「「수」 족의 최후」에서 한때 강성하였던 이 「인디안」 종족의 종말을 가져 온 최후의 전쟁과 사건들을 설명하였다.

옛 정부나 정치 제도가 종말을 당하고 얼마 후에 새로운 것으로 대치된 예는 결코 드물지 않다. 이 점은 『「프랑스」 군주국의 최후』라는 책에 명시되었다. 『1788년 8월 옛[프랑스] 정권은 종말을 당하고 신 정권이 시작되었다.』고 그 저자는 기술하였다. 좀더 최근에 나온 서적 「영령 인도의 최후」에서의 영국 통치의 마지막을 설명하였다. 그리고 작년에 출판되어 유명해진 책인 「최후의 100일간」이라는 책은 「나치」 독일의 마지막 때를 기술하였다.

이 말에 대한 오해

『마지막 때』라는 말은 분명히 보편적인 화제이다. 성서에 『마지막 때』에 대한 말이 있기 때문에 그 말을 비웃는 것은 분명히 잘못이다. 그러나 그 표현은 여러 가지 의미를 지닐 수 있기 때문에 잘 모르는 사람이나 그릇되게 알고 있는 사람들이 그릇된 결론을 내려 오해를 하기 쉽다.

예를 들면, 「리차드 닉슨의 최후」라는 책명을 보고 어떤 사람들은 그 사람이 죽은 것으로 생각할지도 모르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 이 경우에 있어서는 일반적인 경우와 달리 『최후』라는 말이 그 사람 생애의 최후를 의미하지 않고 생애에 있어서의 한 사건의 최후를 의미한다. 「세바스토폴」과 「폼페이」를 또 다른 예로 들 수 있을 것이다. 그 두 도시가 다 『마지막 때』를 겪었지만 그 결과는 크게 다르다. 「폼페이」 도시와 그 도시에 남아 있던 사람은 전멸되었으며, 「폼페이」는 1,900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황폐된 채 그대로 있다. 반면에 『세바스토폴』은 크게 파괴되었었지만 재건되어 현재는 인구 100,000이 넘는 번화한 도시이다.

그러므로 사실을 잘 모르는 사람들은 『마지막 때』라는 표현의 의미를 오해하기 쉽다. 성서에서 이 용어를 사용한 방법도 역시 마찬가지이다. 많은 사람들은 성서에서 말한 『마지막 때』에 관하여 전적으로 그릇된 인상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그 점에 대하여 올바로 아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다. 『마지막 때』란 무엇인가? 무엇의 『마지막 때』인가? 그것을 피할 수 있는가? 그것을 두렵게 생각할 것인가? 그것이 당신에게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마지막 때』란 무엇인가?

디모데 후서 3장 1절에서는 『네가 이것을 알라 말세[마지막 때, 신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리니』라고 하였다. 또한 베드로 후서 3장 3, 4절에서도 이렇게 말하였다. 『먼저 이것을 알찌니 말세[마지막 때, 신세]에 기롱하는 자들이 와서 자기의 정욕을 좇아 행하며 기롱하여 가로되 주의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뇨 조상들이 잔 후로부터 만물이 처음 창조할 때와 같이 그냥 있다 하니.』

여기 성서에서 말하는 『마지막 때』는 중요한 때임이 분명하다. 그때의 특색은 보통 때와는 다른 고통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성서에서는 『마지막 때』를 당면하였다는 증거를 보면서도 사람들은 그것을 믿지 않을 것을 알려 준다. 믿기는 커녕 그들은 「하나님의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냐? 우리 시대에는 오지 않을 것이다. 과거와 같이 모든 것이 그대로 계속된다.」하고 조롱할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마지막 때』에 대하여 말씀하셨다. 예수께서 지상에 계실 때에 그의 제자들이 그에게 조용히 접근하여 이러한 질문을 하였다. 『우리에게 이르소서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있겠사오며 또 주의 임하심과 세상 끝에는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이까?』 (마태 24:3) 현대 번역에서는 이 질문의 뒷 부분을 이렇게 좀 더 정확하게 번역하였다. 『무엇이 당신의 임재와 사물의 제도의 결말의 징조가 될 것입니까?』(신세) 예수께서는 이 질문에 대한 답변에서 자기의 두번째 임재와 『사물의 제도의 결말』 즉 『세상 끝』이 한 기간이 될 것을 알려 주셨다. 이 기간은 성서에서 『마지막 때』라고 한 그때와 상응한다.

무엇의 마지막 때인가?

이처럼 성서에서 말한 『마지막 때』와 『말세』 혹은 『세상 끝』과 관련이 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마지막 때』를 실제 하늘과 땅의 종말을 뜻하는 것으로 믿고 있다. 그 사람들은 지구와 천체에 어떻게 하여 불이 붙어 이 모든 것이 완전히 타서 재가 될 것이라고 믿는다. 성서에서 『마지막 때』에 관하여 『이제 하늘과 땅은 그 동일한 말씀으로 불사르기 위하여 간수하신바 되어 경건치 아니한 사람들의 심판과 멸망의 날까지 보존하여 두신 것이니라.』고 한 점으로 보아 성서가 그러한 주장을 지지한다고 사람들은 말한다. (베드로 후 3:3-7) 그렇게 믿고 있는 사람들이 『마지막 때』를 불길한 달갑지 않은 제목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자, 그렇다면 『마지막 때』라는 말은 이 지구의 마지막을 의미하는가? 『세상 끝』이라는 말은 실제 하늘과 땅의 끝을 의미하는가? 하나님께서 사람이 거하도록 만드신 후에 『좋았더라.』라고 말씀하신, 이 아름다운 혹성을 악한 사람들의 고집 때문에 완전히 태워 재로 만든다는 것은 분명히 이치적이 아니다. (창세1:31) 이것은 이치적이 아닐 뿐더러 성경적인 해석도 아니다.

이 점에 대하여 하나님의 말씀에서 설명하는 바를 보라. 『여호와는 하늘을 창조하신 하나님이시며 땅도 조성하시고 견고케 하시되 헛되이 창조치 아니하시고 사람으로 거하게 지으신 자시니라.』 (이사야 45:18) 하나님께서는 이 땅을 헛되이 아무런 목적 없이 창조하신 것이 아니고 의로운 사람들이 그 위에 살며 즐기도록 창조하셨다.

이러한 하나님의 목적은 반드시 수행되고야 말 것이라는 사실이 성서에 『의인이 땅을 차지함이여 거기 영영히 거하리로다.』라는 말로 분명히 표현되어 있다. (시 37:29) 그렇다, 의로운 사람들이 지상에 영원히 거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성서는 하나님께서 『땅의 기초를 두사 영원히 요동치 않게 하셨』다고 말하였다. 그러므로 『마지막 때』라는 말은 이 지구의 마지막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이 지구와 아름다운 별들은 성서에서 약속하는 바와 같이 영원히 존재할 것이다.—시 104:5; 전도 1:4.

그러므로 베드로 후서 3장에서 『마지막 때』의 절정에 가서 『불사르기 위하여 간수하신 바 되』었다고 한 『하늘과 땅』은 현상계의 하늘과 땅이 아님이 분명하다. (베드로 후 3:7) 그 점은 동일한 장의 앞절에서 설명되었다. 거기서는 『물의 넘침으로 멸망』당한 옛 세상을 설명하고 있다. 「노아」 때의 홍수로 멸망된 것은 분명히 실제 지구가 아니었다. 그러므로 사물의 제도의 결말에 실제적인 지구가 멸망되지는 않을 것이다. 『마지막 때』의 종말 곧 하나님의 심판 때에 악한 사람들이 일소될 것이다. 즉 『경건치 아니한 사람들의 심판과 멸망』이 있을 것이다.

이상의 사실은 『마지막 때』라는 표현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무엇의 마지막인지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그것은 물질 세계의 마지막이 아니라 하나님께 순응하기를 거부하는 모든 인간 조직으로 형성된 현 악한 사물의 제도의 마지막이다. 그렇다. 하나님의 왕국에 대항하는 지상의 모든 인간 정부들이 멸망될 것이다. 『하늘의 하나님이 한 나라를 세우시리니 이것은 영원히 망하지도 아니할 것이요 . . . 이 모든 나라를 쳐서 멸하고 영원히 설 것이라.』고 성서는 설명해 준다.—다니엘 2:44.

경고를 들으라!

그러나 언제 이 일이 발생할 것인가? 우리는 현재 이 세상 사물의 제도의 『마지막 때』에 살고 있는가? 사실 그렇다! 성서 예언의 성취로 나타나는 모든 증거는 그러한 결론을 지지한다. 도시들과 나라들과 심지어 제국들까지도 과거에 종말을 당한 바와 같이 모든 민족과 나라들이 일시에 그들의 마지막 때를 당한 때에 우리는 살고 있다! 아마 믿어지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사실이다! 확정적인 증거들이 있다.

근년에 여호와 하나님의 그리스도인 증인들은 때는 다 되어 가며, 이 『마지막 때』가 「노아」 때의 세계적인 홍수에 비할 만한 커다란 멸망과 함께 곧 끝을 맺게 될 것을 경고하였다. 많은 사람들이 비웃기는 하지만, 마지막 때에 『기롱하는 자들이 와서』 기롱할 것을 성서에서 예언하였음을 기억하라. 사람들이 생명을 구하는 경고를 무시하는 것이 일반적으로 되어 버렸다.

예를 들면, 기원 79년에 「베스비우스」 화산이 경고를 발했을 때에 「폼페이」시에 살던 대다수의 사람들은 그 경고를 듣지 않았다. 산이 처음 폭발하였을 때에 소수의 사람들은 그 도시를 떠났지만, 한 역사가는 이렇게 설명하였다. 『많은 「폼페이」 시민들 특히 부호들은 집과 재산을 포기하지 않고 그 재난이 지나가 버릴 것을 바라면시 은신처를 찾았다. 그러한 결정으로 그들은 생명을 지불하였다.』 그들은 일이 올바로 되어 가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으면서도 도망하지 않았다. 얼마나 어리석은가! 오늘날 우리는 그와 비슷한 잘못을 저지르지 말고 종말이 다가온다는 경고를 들어야 한다. 그러나 어떠한 행동을 취해야 하는가?

현재 긴급한 행동

분명히, 『마지막 때』를 피할 수는 없다. 왜냐 하면, 마지막 때가 이미 당도하였으며, 그의 징조로서 예언된 모든 재난과 고통과 도덕적 타락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경건치 아니한 사람들의 심판과 멸망의 날』이 급히 다가오고 있다! (베드로 후 3:7) 그러나 그것을 두려움과 공포로 생각하여야 할 것인가? 『마지막 때』라는 말을 달갑지 않은 제목이라고 생각하여 그것이 우리에게 무엇을 의미할 것인가를 고려하지 말아야 할 것인가? 결코 그렇지 않다!

하나님의 심판은 『경건치 아니한 사람들』에게만 불리한 영향을 준다는 것을 기억하라. 하나님의 법에 순응하기를 거부한 자들만이 멸망당할 것이다. 반면에 의를 사랑하고 하나님의 왕국이 지상에서 악을 일소하기를 고대하는 자들에게는 『마지막 때』가 실로 즐거워할 때이다. 참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왕국이 임박하였고 악한 사물의 제도로부터의 구원이 목전에 다가왔기 때문에 즐거워할 것이다. (누가 21:28-32) 이 제도가 완전히 멸망될 때에 생존하는 축복을 받는 사람들에 끼이기 위하여는 적극적인 행동이 필요하다.

무엇보다도 먼저 「노아」와 그의 가족이 한 것처럼, 당신은 하나님과 동행하며 하나님의 길을 사랑한다는 것을 증명하지 않으면 안된다. 홍수 이전 시대에 하나님께서는 살릴 사람과 멸할 사람을 구분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오늘날도 마찬가지의 일을 하고 계신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심판관으로 임명되셨다. 그런데 성서에서는 그가 양 같은 사람은 은혜받을 오른쪽으로, 염소같은 사람은 저주받을 왼쪽으로 구분하고 계심을 설명하였다. (마태 25:31-46) 당신은 『양』과 『염소』 중 무엇이 되겠는가?

당신은 하나님의 전도인들에 의하여 전해지는 하나님의 소식을 어떻게 취급하는가에 따라 이것을 결정한다. 양과 같은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그의 말씀 가운데 주신 교훈을 듣고 그것에 따르며 하나님의 의로운 원칙에 일치하게 생활을 조정한다. 이러한 행동은 자기 자신만이 아니라 자기 가족에게도 유익을 준다. 「폼페이」가 멸망되기 전에 부모들이 경고를 들은 것은 어린 자녀의 생명까지 보존하는 결과를 낸 것과 같이 이 사물의 제도의 마지막에 있어서도 당신의 행동은 당신의 자녀가 하나님의 봉사를 하여 하나님의 은혜와 축북을 받을 것이냐 그렇지 못할 것이냐에 직접적인 관계가 있다.

그러므로 『마지막 때』가 신속히 지나가고 있는 이 때에 실로 적극적인 행동이 긴급하다. 그것은 당신이 즐거워할 만한 때가 될 수 있다. 왜냐 하면, 이것은 당신의 생명의 마지막 때가 될 필요가 없고 생애에 있어서 어떠한 사건의 마지막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 당신은 이 사물의 제도의 종말을 살아 남아서 하나님의 의로운 새 질서에서 영원히 살 수 있는 웅대한 전망을 가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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