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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랑에서 나오는 친절의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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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랑에서 나오는 친절의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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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67
파67 6/15 267-273면

사랑에서 나오는 친절의 하나님

“오 너희 백성들아,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의 사랑에서 나오는 친절은 미확정적인 때까지이기 때문이다.”—시 107:1, 신세.

1, 2.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을 어떤 분으로 생각하며, 「다윗」은 어떠한 대조되는 말을 하였읍니까?

당신은 하나님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당신은 하나님을 친절하고 은혜롭기는 하지만, 인류의 사건이나 문제에 냉담하신 분으로 생각하십니까? 그렇지 않으면 아마 당신은 하나님을 세계 분쟁에 끼어들어 싸우는 분, 즉 만일 세상 나라들이 소위 『정의』를 위하여 전쟁을 할 경우에는 그 전쟁과 유혈을 축복하는 분으로 생각하거나 심지어는 자신의 이해할 수 없는 목적을 위하여는 사랑하던 사람의 생명도 마음대로 끊어 버리는 그러한 하나님으로 생각하고 있을지 모릅니다.

2 이상과 같은 생각은 다음과 같은 시편 기자 「다윗」의 말과는 거리가 먼 것같읍니다. 『여호와는 선하시고 정직하시니 그러므로 그 도로 죄인을 교훈하시리로다 온유한 자를 공의로 지도하심이여 온유한 자에게 그 도를 가르치시리로다 여호와의 모든 길은 그 언약과 증거를 지키는 자에게 인자 [사랑에서 나오는 친절, 신세]와 진리로다.』—시 25:8-10.

3, 4. 창조주에 대한 우리의 태도는 어떠하여야 하며,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3 「다윗」은 자기의 생명을 노리는 자기 나라 사람을 피하여 망명 생활을 하고 있었읍니다. 그러나 그는 자기의 재난에 대하여 하나님을 비난하지 않고 오히려 이렇게 기도하였읍니다. 『여호와여 주의 도를 내게 보이시고 주의 길을 내게 가르치소서 주의 진리로 나를 지도하시고 교훈하소서 주는 내 구원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종일 주를 바라나이다 여호와여 주의 긍휼하심과 인자하심 [사랑에서 나오는 친절]이 영원부터 있었사오니 주여 이것을 기억하옵소서.』—시 25:4-6.

4 많은 사람들은 그보다 나은 환경 하에서도 창조주를 비난합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왜 자기들의 문제에 직접 개입하시지 않는지 이해하지 못하며, 그 재난이 어디에서 나온 것이건 간에 하나님께 책임을 돌리는 경향이 있읍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점에 대하여 여호와의 말씀이 설명하는 바를 고려하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그는 「다윗」이 선언한 바와 같이 친절과 사랑의 하나님이십니까? 혹은 어떤 교직자들이 주장하는 바와 같이 무자비하고 피에 굶주린 하나님입니까?

5. 「다윗」은 여호와의 말씀에 있는 어떠한 교훈을 현명하게 따랐습니까?

5 「다윗」은 「사울」왕으로부터 억울한 의심을 받아 괴로움을 당하였읍니다. 「사울」왕은 여호와로부터 자기 백성들의 통솔권을 받은 사람이었읍니다. 그러나 「다윗」은 「사울」의 질투심 많은 행동에 대하여 여호와께 원한을 품지 않았으며, 자기가 그 문제를 직접 취급하여 『여호와의 기름부음받은 자』를 쳐 죽이려고 하지 않았읍니다. 그는 다음과 같은 「이스라엘」의 율법을 기억하였읍니다. 『너는 네 형제를 마음으로 미워하지 말며 이웃을 인하여 죄를 당치 않도록 그를 반드시 책선하라 원수를 갚지 말며 동포를 원망하지 말며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 나는 여호와니라.』—레위 19:17, 18.

6. (ㄱ) 「이스라엘」의 여러 가지 전쟁은 무엇을 전영하였으며, 그러나 그것을 어떻게 속단해서는 안됩니까? (ㄴ) 여호와께서는 어떻게 「다윗」을 후대하셨읍니까?

6 후에 「다윗」은 「이스라엘」의 조상 「아브라함」에게 약속된 땅에서 「가나안」 사람들을 몰아내는 전쟁을 지휘하였읍니다. 이 행동은 여호와께서 우리 시대에 자기의 주권에 반역한 자들을 쓸어 버리시고 자기를 사랑하고 섬기는 자들, 곧 『그 언약과 증거를 지키는 자』들에게 유업을 주실 것에 대한 예언적 모형이었읍니다. 그러나 여호와께서 오늘날 어느 한 나라를 위하여 싸우시리라는 성경적 증거는 없읍니다. 그와는 반대로, 「이사야」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 것이며 전쟁을 연습지 않으리라고 예언하였읍니다. 「다윗」은 전쟁을 많이 한 사람이기 때문에 여호와의 숭배를 위한 전을 건축하는 영광을 받지 못하였읍니다. 그렇지만 「다윗」은 그 당시에 여호와의 뜻을 수행하였으며 그러므로 여호와께서는 왕권이 그의 계통에서 떠나지 않을 것을 약속하셨읍니다. (사도 13:36) 이에 대하여 「이사야」는 예언적으로 이렇게 선언하였읍니다. 『너희는 귀를 기울이고 내게 나아와 들으라 그리하면 너희 영혼이 살리라 내가 너희에게 영원한 언약을 세우리니 곧 「다윗」에게 허락한 확실한 은혜[사랑에서 나오는 친절]니라.』 「다윗」이 다음과 같이 선언한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나는 오직 주의 인자하심[사랑에서 나오는 친절]을 의뢰하였사오니 내 마음은 주의 구원을 기뻐하리이다 내가 여호와를 찬송하리니 이는 나를 후대하심이로다.』—이사야 55:3; 시 13:5, 6.

7. 「바울」은 「다윗」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에서 나오는 친절을 어떻게 예수의 때와 연결시켰읍니까?

7 사도 「바울」은 「다윗」과 맺은 언약을 예수 당시의 사건들과 연결시켜 이렇게 설명하였습니다. 『우리도 조상들에게 주신 약속을 너희에게 전파하노니 곧 하나님이 예수를 일으키사 우리 자녀들에게 이 약속을 이루게 하셨다 함이라 시편 둘째 편에 기록한 바와 같이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너를 낳았다 하셨고 또 하나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저를 일으키사 다시 썩음을 당하지 않게 하실 것을 가르쳐 가라사대 내가 「다윗」의 거룩하고 미쁜 은사 [사랑에서 나오는 친절]를 너희에게 주리라 하셨[느니라].』 그러므로 「다윗」에게 하신 약속은 성취되었으며, 「다윗」의 후계자이며 여호와의 독생자이신 예수께서는 정한 때에 여호와의 새로운 사물의 질서의 왕이 되시기 위하여 부활되셨읍니다.—사도 13:32-34.

8. 여호와께서 사랑에서 나오는 친절의 하나님이라는 어떠한 증거들이 있읍니까?

8 시초부터 연속적인 사건들을 보면 인류에 대한 여호와의 친절과 사랑스런 배려가 나타나 있읍니다. 낙원 상태의 땅에서 의로운 사람들을 살게 하려는 여호와의 목적은 좌절되지 않을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사람들을 위한 아름다운 집으로서 지구를 형성하신 때에 사람에게 필요 불가결한 것만을 마련해 놓으신 것이 아니라, 사람들을 즐겁게 하기 위하여 열매맺는 나무와 꽃피는 관목으로 낙원을 가득 채우셨읍니다. 동산의 중앙에는 생명 나무를 심어 놓고 처음 부부가 충성을 입증하여 낙원의 경계를 땅 끝까지 확장시킬 때를 기대하고 계셨읍니다. 그들이 반역하여 그들에게 선고하신 형을 집행하신 후에도 여호와께서는 예언 가운데 과분한 친절을 나타내시어 장래 자기에게 믿음을 나타내는 자들을 대속하실 것을 예언하셨읍니다.

9. 「다윗」은 무엇의 필요를 인정하였으며, 이 전망은 어떻게 마련되었읍니까?

9 어떻게 이와 같은 낙원 상태가 회복될 것입니까? 여호와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얻으리』라고 약속하셨읍니다. 이 「아브라함」의 씨는 대속을 위한 수단을 마련함으로써 축복이 될 것이었읍니다. 「다윗」은 이의 필요성을 인정하여 이렇게 기도하였읍니다. 『여호와여 내 소시의 죄와 허물을 기억지 마시고 주의 인자하심 [사랑에서 나오는 친절]을 따라 나를 기억하시되 주의 선하심을 인하여 하옵소서. 여호와여 나의 죄악이 중대하오니 주의 이름을 인하여 사하소서.』 (창세 22:18; 시 25:7, 11) 「다윗」은 만족할 만한 속죄를 위하여는 동물 희생보다 더 가치있는 것이 필요함을 인정하였으며, 그 가치있는 것을 마련하는 일을 위하여 여호와의 사랑에서 나오는 친절에 의뢰하였읍니다. 「다윗」과 맺으신 여호와의 목적을 성취하는 단계에 있어서 또 하나의 전진이었읍니다. (사무엘 하 7:16) 어떻게 전진이 되었읍니까? 예수에 관하여 「바울」은 이렇게 말하였읍니다. 『「모세」의 율법으로 너희가 의롭다 하심을 얻지 못하던 모든 일에도 이 사람을 힘입어 믿는 자마다 의롭다 하심을 얻는 이것이라.』 이것은 모든 민족을 축복하기 위한 얼마나 커다란 전망을 열어 놓았읍니까! 「다윗」이 언급한 바와 같은 그러한 죄와 과오를 용서하여 주시는 여호와의 과분한 친절에 감사할 일입니다.—사도 13:38, 39.

10. 일반 사람들은 여호와의 마련에 대하여 어떠한 반응을 나타내었으며, 이 사실은 무엇을 나타냅니까?

10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인류는 여호와와 그의 아들이 가르쳐 주신 친절에 대한 교훈을 받아들이지도, 적용하지도 않읍니다. 오히려 세계 전역에 걸쳐서 타국민에 대한 증오와 타종교에 대한 편견과 타인종에 대한 학대와 불친절이 만연되어 있읍니다. 그러한 길을 추구하는 자들은, 창조주의 관점으로 보건대 그들이 어두움 가운데 헤매고 있으며 그 어두움이 그들의 눈을 멀게 하였읍니다. (요한 1서 2:9-11) 친절의 길을 따르는 것은 여호와와 함께 행하는 것, 곧 빛 가운데 행하는 것이 됩니다. 그의 말씀으로부터 나오는 이 빛은 하나님의 자녀들과 「사단」의 길인 불친절, 분열 및 증오의 길을 따르는 자들 사이의 대조되는 점들을 더욱 밝혀줍니다. 『이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들과 마귀의 자녀들이 나타나나니 무릇 의를 행치 아니하는 자나 또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니라 우리가 서로 사랑할찌니 이는 너희가 처음부터 들은 소식이라 「가인」 같이 하지 말라 저는 악한 자에게 속하여 그 아우를 죽였[느니라].』—요한 1서 3:10-12.

11. (ㄱ) 예수께서는 친절에 대하여 어떠한 비유를 말씀하셨읍니까? (ㄴ) 그는 어떻게 자기의 아버지와 같이 동일한 공평함을 보였읍니까?

11 자기의 형제에 대한 이 사랑을 자기의 가족이나 자기의 민족에만 국한된 것으로 이해 하여서는 안됩니다. 예수께서는 『내 모친과 내 형제들은 곧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이 사람들이라.』고 말씀하셨읍니다. (누가 8:21, 난외주) 그러므로 그는 혈연관계나 인종의 구분을 짓지 않으셨읍니다. 그는 자기 아버지께서 모든 종류의 사람들에게 과분한 친절을 나타내셨으며 모든 사람을 공평하게 대하셨다는 것을 알고 계셨읍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을 한 혈통으로 만드시고 자기 아들을 통하여 왕국 통치 하에서 누리게 될 생명의 희망을 모든 사람들에게 동일하게 주셨읍니다. 어느 율법사가 이웃을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는 여호와의 계명을 알고 『내 이웃이 누구오니이까?』하고 물었읍니다. 예수께서는 그의 대답으로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가는 길에서 강도를 만나 매 맞고 거의 죽게 된 어떤 사람에 대하여 말씀 하셨읍니다. 길가던 제사장과 「레위」인이 그를 못본 척해 버렸는데, 어느 「사마리아」 사람이 친절하게 주의를 기울였읍니다. 『네 의견에는 이 세 사람 중에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하고 예수께서 질문하셨읍니다. 분명히 자비로운 행동을 한 사람 곧 자기가 진정한 이웃임을 나타낸 사람이 이웃이었읍니다. 예수께서는 이 행동을 칭찬하시고 질문한 사람에게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고 말씀하셨읍니다.—누가 10:29-37.

12. (ㄱ) 무엇에 대하여 하나님을 비난하여서는 안됩니까? (ㄴ) 성경에서는 이 사실을 어떻게 알려줍니까?

12 많은 사람들이 도움이 절실히 필요한 이웃을 모른 척하고 지나가 버리고 무시할 뿐만 아니라 자기들의 창조주께 반역적으로 행동하기까지 함에도 불구하고 여호와께서는 인류에 대하여 오래참고, 인내와 친절을 보이셨읍니다. (시 107:11-13) 사고가 일어나서 사람이 갑자기 죽는다든가, 조금도 예기치 않은 때에 질병과 전쟁으로 수많은 젊은이와 노인들이 죽는 데 대하여 하나님을 비난하여서는 안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생명을 원하는 자들에게 생명의 길을 열어 주신 분이십니다. 하나님과 그의 아들은 과분한 친절을 나타내시고 권하십니다.—전도 9:11; 히브리 2:14.

13. (ㄱ) 「호세아」의 기록에 의하면 「이스라엘」은 어떠한 상태로 하락되었읍니까? (ㄴ) 만일 백성들이 회개한다면 여호와께서는 자신이 어떠한 하나님이심을 보이실 것이었읍니까?

13 그러나 여러 세기를 통하여 여호와께서 인간에게 사랑을 나타내신 것은 하나님께서 그가 모든 그릇된 행동을 묵과하신다거나 감상적으로 용서하신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그는 「이스라엘」에게 자기 자신을 이러한 말로 묘사하셨읍니다. 『여호와로라 여호와로라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고 인자 [사랑에서 나오는 친절]와 진실이 많은 하나님이로라 인자[사랑에서 나오는 친절]를 천대까지 베풀며 악과 과실과 죄를 용서하나 형벌 받을 자는 결단코 면죄하지 않고 아비의 악을 자여손 삼사대까지 보응하리라.』 (출애굽 34:6, 7) 얼마 후에 「이스라엘」은 형벌을 받기에 합당하게 되었읍니다. 「호세아」는 그 백성이 가지고 있는 사랑에서 나오는 친절은 『아침 구름이나 쉬 없어지는 이슬 같』다고 하였읍니다. 「유다」는 배은망덕하게도 여호와와의 언약을 파기하였읍니다. 자기 하나님의 사랑에서 나오는 친절의 성품을 본받아 행하기는 커녕 『「길르앗」은 행악자의 고을이라 피 발자취가 편만하도다 강도 떼가 사람을 기다림 같이 제사장의 무리가 「세겜」 길에서 살인하니 저희가 사악을 행하였』다고 기록되어 있읍니다. 「이스라엘」은 타락되었읍니다. 그 땅의 상태가 이러하므로 조금 있는 사랑에서 나오는 친절까지도 이슬처럼 이른 아침에 사라져 버렸습니다. 「호세아」가 다음과 같이 호소한 데에는 좋은 이유가 있었읍니다.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 여호와께서는 제사보다 인애를 원하셨고 번제보다는 하나님에 대한 지식의 중요성을 인식하기를 원하셨읍니다. (호세아 6:1-10) 만일 백성들이 회개한다면, 여호와께서는 자신이 노하기를 더디하고 사랑에서 나오는 친절이 풍성하나, 형벌을 면제하지 않는 하나님이심을 나타내실 것이었읍니다.

14. 사도 당시까지 「이스라엘」 백성들의 상태는 어떠하였으며, 여호와께서는 이방인들을 위하여 어떠한 마련을 하셨읍니까?

14 여러 세기 후에 사도 「바울」은 여호와의 균형에 대하여 설명하였읍니다. 즉 그는 친절의 하나님이시면서도 마땅히 받을 만한 자에게는 엄격하시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사야」에게 하신 여호와의 말씀을 인용하였읍니다. 『순종치 아니하고 거스려 말하는 백성에게 내가 종일 내 손을 벌렸노라.』 「엘리야」는 「이스라엘」에 대하여 여호와여 저희가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으며 주의 제단들을 헐어버렸고 나만 남았』나이다 하고 하나님께 호소하였읍니다. 그러나 여호와께서는 자기의 백성을 저버리지 않으셨읍니다. 하나님께서는 「엘리야」 외에도 믿음이 있는 사람이 7,000명이나 있음을 아셨읍니다. 그러므로 그 나라가 종종 실족하였지만 여호와의 은총으로부터 완전히 떨어져 나가지는 않았읍니다. 「엘리야」의 시대에 「바알」 숭배를 거절한 사람들 7,000명과 같이 예수의 전도 봉사기간에도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이 충성을 나타내었읍니다. 「바울」은 이렇게 기록하였읍니다. 『그런즉 이와 같이 이제도 은혜 [과분한 친절, 신세]로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가 있느니라.』 그러나 대다수의 「이스라엘」 사람들은 깊은 잠에 빠진 사람들처럼 행동하여 여호와께서는 과분한 친절로서 그들에게 열어 주신 훌륭한 기회에 대하여 눈을 감아 버리고 귀를 닫아 버렸읍니다. 그들의 실패로 말미암아 예수께서 세우신 새 언약 안으로 들어올 수 있는 길이 이방인 즉 다른 나라 백성들에게 열리게 되었읍니다. 더 이상 「유대」인들이 모든 다른 나라 민족으로부터 선택된 민족으로 구분되지 않고, 이제는 간막이 벽이 허물어져 버렸으며, 다른 사람들에게 언약 백성으로서 여호와의 은총 가운데 들어올 수 있는 길이 열렸읍니다.—로마 10:2–11:11; 베드로 전 2:10.

15. 「바울」은 여호와께서 행하신 일을 어떻게 설명하였으며, 어떠한 경고를 주었읍니까?

15 「바울」은 여호와의 언약 백성을 감람나무 가지로 비유하여 이를 설명하였읍니다. 「이스라엘」은 한 나라로서 열매를 맺지 못하였기 때문에, 영적으로 죽은 가지들은 잘리우고 이방인으로부터 나온 신자들을 상징하는 돌 감람나무의 새로운 가지가 접붙여져 여호와의 풍부하심과 그가 주시는 축복을 받을 수 있게 하셨읍니다. 이것은 접붙임받은 자들의 특별한 행위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고 처음에 기회를 받은 사람들에게 믿음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바울」은 경고하였읍니다. 그는 그들에게 다음과 같은 점을 상기시켰읍니다. 『하나님이 원 가지들도 아끼지 아니하셨은즉 너도 아끼지 아니하시리라 그러므로 하나님의 인자[친절, 신세]와 엄위를 보라 넘어지는 자들에게는 엄위가 있으니 너희가 만일 하나님의 인자[친절]에 거하면 그 인자[친절]가 너희에게 있으리라 그렇지 않으면 너도 찍히는바 되리라.』 (로마 11:21, 22) 여호와의 친절에 거하기 위하여는 믿음과 순종이 필요합니다. 그것은 국적이나 인종에 관계되는 문제가 아닙니다. 「바울」이 말한 바와 같이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차별이 없음이라 한 주께서 모든 사람의 주가 되사 저를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부요하시도다 누구든지 주[여호와, 신세]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로마 10:12, 13; 2:7-11.

16. 어떻게 하여 영원한 생명에 대한 희망이 열리게 되었읍니까?

16 여호와께서는 자기의 과분한 친절로써 생명의 문을 열어 주셨읍니다. 그러나 자기의 아들을 대속물로 주심으로써 균형을 잡으셨읍니다. 그 대속물에 의하여 우리가 「아담」으로부터 유전받은 저주와 사망으로부터 피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바울」은 디도서 3:4-7에서 이 점을 강조하였읍니다. 『우리 구주 하나님의 자비[친절]와 사람 사랑하심을 나타내실 때에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의 행한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좇아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 성령을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풍성히 부어 주사 우리로 저의 은혜[과분한 친절]를 힘입어 의롭다 하심을 얻어 영생의 소망을 따라 후사가 되게 하려하심이라.』 여호와께서는 참으로 사랑에서 나오는 친절의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생명을 받게 된 것은 우리 자신의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고 여호와께서 과분한 친절을 나타내어 대속물을 마련하셨기 때문입니다. 그 대속물은 예수께서 자기의 인간 생명을 희생으로 바침으로써 마련된 것입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과분한 친절]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우리가 다 그의 충만한데서 받으니 은혜[과분한 친절] 위에 은혜[과분한 친절]러라.』 이 점에 있어서 예수께서는 자기 아버지의 친절한 성품을 반영하셨읍니다.—요한 1:14, 16.

17. 어떠한 방법으로 과분한 친절이 왕 노릇하게 되었읍니까?

17 모든 사람들이 죄를 지었기 때문에 영원한 생명의 희망을 갖게 된 것은 각 개인의 행동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님을 명백히 알 수 있읍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 예수의 대속의 희생을 믿어 의롭다고 인정을 받을 수 있는 전망을 허락하셨읍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과분한 친절에 의한 것입니다. (로마 3:23, 24) 그리스도의 때까지 하나님께서 주신 율법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그들의 불완전과 죄많음을 생각하게 하는 것으로서 가치가 있었읍니다. 그러나 예수의 대속은 하나님의 과분한 친절의 은혜를 받을 수 있는 길을 열어 놓았읍니다. 그 때까지는 죄가 사망과 더불어 왕노릇해 왔지만 그 때에 여호와께서는 과분한 친절이 『의로 말미암아 왕노릇하』도록 길을 열어 놓았읍니다. (로마 5:21) 예수께서는 「다윗」에게 허락하신 사랑에서 나오는 친절에 대한 하나님의 언약의 성취로서 모든 민족 축복하기 위하여 인도자와 명령자로 오셨읍니다.—이사야 55:3, 4.

18. 어떤 사람들은 어떻게 하여 하나님의 과분한 친절을 폐하려고 합니까?

18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과 「모세」의 율법 언약 관계 하에 있지 않고 새 언약으로 연합되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영의 인도를 받읍니다. (로마 6:14) 그렇지만 우리가 하나님 보시기에 의로운 입장을 취할 수 있다는 전망은 우리의 행위로 말미암은 것이 아닙니다. 사도 「바울」은 이에 대하여 누구든지 자기의 힘으로는 생명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을 강력히 밝혔읍니다. 『내가 하나님의 은혜[과분한 친절]를 폐하지 아니하노니 만일 의롭게 되는 것이 율법으로 말미암으면 그리스도께서 헛되이 죽으셨느니라.』 (갈라디아 2:21) 사실상 「바울」은 이렇게 계속 설명하였읍니다. 『율법 안에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하는 너희는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고 은혜 [과분한 친절]에서 떨어진 자로다.』—갈라디아 5:4; 로마 11:5, 6.

19. 여호와께서는 오늘날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어떠한 특권을 주셨읍니까?

19 그러나 하늘에서나 땅에서 얻을 영원한 생명에 대한 놀라운 희망을 갖게 된 것이 우리의 힘에 의한 것이 아니고 그리스도의 희생의 공로로 말미암은 것이기는 하지만, 그 사실은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봉사의 임명을 주시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읍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갈라디아」인들에게 『은혜[과분한 친절]로 나를 부르신 이가 그 아들을 이방에 전하기 위하여 그를 내 속에 나타내시기를 기뻐하』셨다는 사실을 상기시켰읍니다. (갈라디아 1:15, 16) 오늘날의 그리스도인들은 기쁜 소식을 전파하라는 이 부름을 받아들임으로써 전도 봉사에 참여하고 또한 여호와의 과분한 친절에 감사를 표할 수 있읍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들로서 남에게 하나님의 친절하신 성품을 반영하여야 합니다. 이렇게 하는 데는 그들에게 생명의 진리를 전하여 주는 것보다 더 좋은 방법이 또 어디 있겠읍니까! 예수께서도 이렇게 하셨으며, 자기의 전도 봉사를 통하여 과분한 친절과 진리를 나누어 주셨읍니다.—요한 1:17, 18.

20. 누가 친절의 참 원천이시며, 그는 어떻게 권고하십니까?

20 여호와께서는 친절의 원천이 되십니다. 나이 많은 사도 「요한」은 이렇게 기록하였읍니다. 『[여호와]여 누가 주의 이름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며 영화롭게 하지 아니하오리이까 오직 주만 거룩[사랑에서 나오는 친절]하시니이다.』 (계시 15:4, 신세, 1950년 판 참조) 하나님과 반대되는 방향으로 간 사람이라 할지라도 만일 그들이 자기들의 행로를 바꾼다면, 하나님과 화목하여 생명의 선물을 받을 기회는 아직도 열려 있읍니다. 예언자 「요엘」이 고집센 「이스라엘」 사람들을 권고한 바와 같읍니다.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올찌어다 그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 [사랑에서 나오는 친절]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나니[라]』—요엘 2:13.

21. 「사단」은 어떠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으며, 그러나 어떻게 함으로써 구원에 이르게 됩니까?

21 반면에 「사단」은 여호와의 친절을 막으려고 기를 쓰고 있읍니다. 그것은 기쁜 소식에 대하여 사람들의 마음을 어둡게 할 기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고린도 후 4:4) 그가 행하는 모든 노력은 하나님이 인류의 문제와 시련을 관계하시지도 않으며, 염려하시지도 않으며, 인간 전쟁에 편을 들며 그러므로 사람들의 고통과 슬픔에 책임이 있다고 하여 창조주께 불명예를 돌리려는 것입니다. (요한 8:44) 그러나 예수께서는 「사단」의 기만과 재난에 최종적 종말을 가져 오기 전에 경고가 주어질 것이며, 사랑에서 나오는 친절의 하나님으로서의 여호와의 입장이 밝혀질 것을 미리 알고 계셨읍니다. 그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 예수께서 다스리는 왕국을 통하여 백성들에게 축복을 내리실 것입니다. 이를 위하여 그는 믿음을 가진 사람들로 전 세계적인 조직을 형성하시어 『이 천국의 기쁜 소식』을 선포하기 위한 조직을 형성하셨읍니다. 현재 이 하나님께서 주신 이 사업에 참여하면 구원에 이르게 됩니다.—로마 10:9-11.

22. 「사단」의 올무에 빠진 자들을 어떠한 운명이 기다리고 있읍니까?

22 「사단」의 조직에 최종적인 파멸의 재난이 임하기 전인 이 짤막한 기간에 많은 사람들이 왕국 소식을 들을 기회를 받았으며 결과적으로 「다윗」과 같이 『여호와여 주의 도를 내게 보이시고 주의 길을 내게 가르치소서.』 하고 기도하게 되었읍니다. (시 25:4) 그들은 여호와께서 자기의 『언약과 증거를 지키는 자들』에게 과분한 친절을 나타내시는 하나님임을 알게 되었읍니다. 그들은 더 이상 「사단」이 놓은 믿음의 결핍이라는 올무에 빠지지 않읍니다. 그들은 현시대의 전쟁으로 인한 만행을 마음에 듣거나 그의 책임을 하나님께 돌리지도 않읍니다. (야고보 4:1, 2) 그러나 전반적인 그리스도교국은 고대 「이스라엘」처럼 뜨거운 태양 아래 아침 이슬처럼 환난 때에는 사라져 버리는, 사랑에서 나오는 친절을 나타내고 있읍니다. 여호와와 그의 말씀과 왕국에 진실한 믿음이 없기 때문에 쉽게 사라져 버립니다. 그들이 여호와께 돌아와서 하나님께 진심으로 마음을 돌리지 않는다면, 그들은 하나님께서 「아마겟돈」 전쟁에서 지상의 악을 일소할 때에, 추수기에 곡식이 베이듯이, 베임을 당할 것입니다. 「이사야」가 예언한 바와 같이 그 때에는 『그들이 나가서 내게 패역한 자들의 시체들을 볼 것』입니다.—이사야 66:24.

23. (ㄱ) 성경은 여호와의 공의를 어떻게 보여줍니까? (ㄴ) 어떻게 심지어 여호와의 엄격하심까지도 친절이 될 것입니까?

23 이처럼 여호와께서는 의로운 심판 때에 친절과 엄격함을 다 보이십니다. 왕국 대사들과 그들의 소식에 반대하는 자들과 하나님의 의로운 목적에 등을 돌리는 자들에게는 그들에게 합당한 엄격함을 보이시고 영원한 생명을 바라보는 믿음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친절을 보이십니다. (누가 20:9-18) 심지어 이 마지막 때에 와서도 여호와께서는 계속 참으시며 어떠한 사람도 멸망되는 것을 원치 않으십니다. (베드로 후 3:9) 각자는 자기의 행로에 의하여 자기가 하나님의 친절을 받을 것인가 혹은 엄격함을 받을 것인가를 결정할 것입니다. 여호와께서는 지상에서 모든 악을 완전히 일소하실 때에 자기를 믿는 모든 사람들에게 친절을 나타내실 것입니다. (히브리 10:26-29) 그러면 이전과는 달리 과분한 친절이 『의로 말미암아 왕노릇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생에 이르게』 할 것입니다.—로마 5:21; 시 107:15.

[269면 삽화]

친절한 ‘사마리아’인

    한국어 워치 타워 출판물 (1952-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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