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떠한 하나님을 숭배하는가가 중요하다
1. 숭배에 관하여 어떠한 말을 자주 들읍니까? 그리고 종교에 관한 올바른 견해가 왜 중요합니까?
우리는 가끔 강대상이나 신문이나 게시판 혹은 개인에게서 이러한 의견을 들읍니다. 『당신이 숭배하기만 한다면 아무 신이라도 숭배하면 된다.』 『당신이 가고 싶은 교회로 가라.』 혹은 『각자가 하나님을 찾아서 자기가 원하는 방법대로 그를 숭배하라.』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오늘날 현존하는 여러 종교를 갖게 되었는데 이들은 그 종교가 그들을 생명으로 인도하리라고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가 믿는 종교에 생명이 없다면 어떻게 될 것입니까? 그러므로 종교에 관하여 올바른 견해를 가지도록 하십시오.
2. 위에서 말한 의견과 하나님의 아들의 말씀과 어떻게 다릅니까?
2 말을 하나님의 아들의 말씀과 비교해 봅시다. 그는 「사마리아」인의 종교에 관하여 한 부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읍니다. 『여자여 내 말을 믿으라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찌니라.』 (요한 4:21, 24) 진리가 무엇인가에 관하여 예수께서 하늘에 계신 그의 『아버지께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라고 말씀하셨읍니다. (요한 17:17) 그러므로 진리는 사물의 실태와 일치하며 참된 인도자인 하나님의 말씀과 일치하여야 합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와 가장 가까우신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께서는 자기가 아버지의 뜻을 행하기 위하여 자기 자신을 바쳤다고 하였읍니다. (요한 4:34) 이 말씀으로 미루어 볼 때 우리가 다른 신을 섬기거나 그 숭배 방식이 다르면 거기에서 생명을 얻을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읍니다.
무지(無知)가 핑계가 되지 못함
3. 진리에 대한 무지가 핑계가 됩니까? 무지는 무엇으로 인도할 수 있읍니까?
3 예수께서 그의 제자들에게 「바리새」인들에게 하신 말씀 가운데서 무지가 핑계가 될 수 없다는 것을 명백히 말씀하셨읍니다. 『그냥 두어라 저희는 소경이 되어 소경을 인도하는 자로다 만일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면 둘이 다 구덩이에 빠지리라.』 (마태 15:14) 이 무지라는 것이 사람들로 하여금 파멸의 무서운 올무에 빠지게 합니다. 「바울」은 이렇게 말하였읍니다. 『하나님의 지혜를 말하는 것이니 이 지혜는 이 세대의 관원이 하나도 알지 못하였나니 만일 알았더면 영광의 주를 십자가[형주, 신세]에 못박지 아니하였으리라.』 (고린도 전 2:7, 8) 그러므로 역사상 가장 큰 범죄는 무지로 말미암아 그릇 인도된 사람에 의하여 저질러졌읍니다.
4. (ㄱ) 모든 종교가 좋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무엇을 하려고 노력하고 있읍니까? (ㄴ) 이에 대하여 하나님께서는 어떠한 경고를 하십니까?
4 오늘날 세상의 종교들을 관찰하고 모든 종교가 다 좋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꼭 멸하시기로 작정하신 종교를 붙잡고 그것을 살펴 보려고 노력하고 있읍니다. 왜냐 하면 그들이 거짓 종교 세계 제국인 큰 「바벨론」을 붙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에 관하여 『내 백성아 거기서 나와 그의 죄에 참예하지 말고 그의 받을 재앙들을 받지 말라』고 경고하시고 『큰 성 「바벨론」이 이같이 몹시 떨어져 결코 다시 보이지 아니하리로다.』라고 하셨읍니다. (계시 18:4, 21) 이 말이 너무 과한 것 같읍니까? 그렇게 생각하신다면 당신은 매우 조심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당신은 하나님의 명령에 거역하여 당신 자신을 멸망시킬 것입니다. 고대 「바벨론」 성읍이 멸망된 역사가 이에 대하여 명백히 증명해 주는 사실에 유의하십시오.
잘못된 숭배가 「바벨론」을 황폐시키다
5. (ㄱ) 「바벨론」 종교는 숭배자들을 어디로 이끌었읍니까? (ㄴ) 기원전 539년에 「고레스」 에게 무너졌었을 때 「바벨론」은 즉시 완전히 멸망되었읍니까?
5 과거에 「바벨론」보다 더 종교적인 성읍이 없었읍니다. 그 성읍은 그 성읍 신들에게 전적 숭배를 바쳤읍니다. 그런데 그 숭배가 그 성읍을 구하였읍니까? 천만에요. 여호와를 버리고 다른 신들을 섬긴 그 숭배는 드디어 그 성읍을 멸망으로 이끌었읍니다. 얼마나 비참한 멸망이었읍니까! 기원전 539년에 「바벨론」이 무너졌으나 즉시 멸망되지 않고 수세기를 거쳐 심지어 초기 그리스도인 시대까지 이르렀읍니다. 그러나 「바벨론」에 대한 하나님의 명령은 수행되고야 말았읍니다. 기원전 539년에 「바사」인들에 의하여 무너진 후 「바벨론」은 하나님의 백성들에 대한 지배권을 상실하고 멸망으로 기울어지기 시작하였읍니다.
6. 「히브리어 성경」은 어디까지의 역사를 다루었읍니까? (ㄴ) 「히브리어 성경」 마지막 책은 언제 기록되었읍니까? 그리고 「히브리어 성경」은 왜 「바사」 제국이 지배하고 있던 때에 끝났읍니까?
6 그 후 성서는 고대 「바벨론」에 관하여 많이 언급하지 않았읍니다. 「히브리어 성경」이 「바벨론」이 무너진 후의 일을 많이 언급하지 않은 이유는 「유대」나라의 역사를 총독 「느헤미야」까지만 다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는 기원전 443년에 자기 이름이 붙은 느헤미야서를 기록하였읍니다. 「히브리어 성경」의 마지막 책은 「유대」인 「말라기」에 의하여 기록되었읍니다. 말라기서는 「아닥사스다 롱기마누스」왕이 다스리고 있던 시대인 서기전 442년경에 기록되었읍니다. 「히브리어 성경」 기록은 네째 세계 강국인 「바사」 제국 때에 끝납니다. 이것이 또한 매우 이치적입니다. 왜냐 하면 「바사」 제국이 대왕 「고레스」의 통치와 더불어 시작되었으며 「고레스」는 당시 세계 강국인 「바벨론」을 무너뜨리고 여호와의 백성을 해방시켰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고레스」는 약속된 「메시야」 혹은 그리스도를 전영한 예언적 그림입니다. 영감받은 「히브리어 성경」 기록이 기원전 442년에 끝날 때 「바사」 제국은 멸망되지 않고 견고히 서 있었읍니다.
7. (ㄱ) 「바벨론」은 회복을 위하여 어떠한 시도를 했읍니까? (ㄴ) 「다리오」 1세는 어떠한 전통을 깼읍니까? 그 결과는 어떠하였읍니까?
7 「다리오」왕 1세때 (기원전 522년) 「느부갓네살」 3세라는 이름을 가진 「바벨론」의 지방 통치자 (니딘두-벨)는 「바벨론」을 회복시키고자 모반하였읍니다. 「다리오」 1세는 그를 패배시키고 후에 「바벨론」에서 그를 죽였읍니다. 기원전 521년에 자칭 「느부갓네살」 4세라는 「아르메니아」 사람 「아락가」의 지휘 아래 「바벨론」은 또 모반하였으나 「다리오」가 그를 패배시키고 정복자로서 성읍에 물밀듯이 쳐들어가서 성읍을 점령하였읍니다. 그리하여 「다리오」는 「벨」만이 지구상 그 지역을 다스릴 권리를 사람에게 줄 수 있다는 낡은 전통을 깨뜨렸읍니다. 「다리오」는 그러한 거짓된 주장을 인정치 않았읍니다. 이것은 「벨」이나 「마르덕」에 대한 얼마나 큰 타격이었읍니까! 「바사」인이 이 성읍을 취한 이래로는 「고레스」가 행한 바와 같이 그들을 관대하게 대하지 않았습니다. 「헤로도토스 역사」 3권 159장의 기록은 이러합니다.
8. 「바벨론」이 두번째 모반하였다가 패배된 후 「바벨론」에게 어떤 일이 발생하였다고 「헤로도토스」는 알려 줍니까?
8 그리하여 「바벨론」은 두번째 점령되었다. 그 지역의 지배자가 된 「다리오」는 성벽을 파괴하고 대문을 부수었다. 왜냐 하면 「고레스」가 「바벨론」을 점령하였을 때는 성벽을 파괴하지 않고 대문도 부수지 않았기 때문이다.
9, 10. 「브리타니카 백과사전」은 「다리오」가 「바벨론」 성읍을 두번째 점령한 후 「바벨론」에 어떠한 일이 발생하였다고 합니까?
9 그리하여 「예루살렘」이 건설되고 있는 동안에도 「바벨론」은 계속 기울어져가고 있었다는 사실은 「브리타니카 백과사전」(1910년판) 3권 103면 b에도 이렇게 명시되어 있읍니다.
10 「바사」 사람들에 의하여 그 성읍이 점령된 후 성벽이 일부 파괴되었다. 그러나 「에-사길라」라는 「벨」의 큰 전이 아직 수리되고 있었고 그곳은 「바벨론」 애국주의의 중심이 되었었다. 그런데 드디어 「실루기아」의 토대 [기원전 311년 이후]로 말미암아 거민들이 「바벨론」의 새로운 수도로 이동되고 폐허된 옛 성읍은 새로운 정부의 터를 놓는 자들의 채석장이 되고 말았다.
11, 12. 「맥클린톡 및 스트롱의 백과사전」은 「바벨론」에게 최종적으로 발생된 어떠한 사실들을 알려 줍니까?
11 「바벨론」이 어떻게 채석장이 되어 버리고 말았는가에 관하여 우리는 「맥클린톡 및 스트롱의 백과사전」 1권 597면을 살펴 보겠읍니다.
12 「바벨론」의 탑들이 무너졌을 때부터 그 부근에 현재 있는 모든 성읍이 일어났을 뿐 아니라 과거에는 다른 성읍들이 일어났는데 모두 무더기가 되고 말았다. 「알렉산더」 시대부터 적어도 네개의 수도가 그 유물로부터 재건되었다. 즉 「희랍」인들로 말미암은 「실루기아」와 「바대」인들에 의한 「그데시폰」, 「바사」인들에 의한 「알-마이단」과 회교의 왕들로 말미암은 「구-파」가 있었고 또한 소도시와 촌락과 대상들의 여인숙 등 허다했다. 필요한 물건들이 강과 운하를 따라 운반되었다. 그러나 이 모든 성읍이 무더기가 되었다.
「바벨론」은 계속적으로 짓밟히다
13. (ㄱ) 「바벨론」은 어떻게 그가 행한 대로 갚음을 받았읍니까? (ㄴ) 「바사」 다음에 어떤 강국이 왔읍니까? 그리고 「바벨론」과 어떠한 관련이 있었읍니까?
13 「바벨론」이 「예루살렘」을 짓밟고 황폐시켰던 것과 같이 이번에는 「바벨론」자체가 그 후에 다른 강국들에 의하여 짓밟힘으로 점차적으로 황폐되었읍니다. 「다니엘」은 「다니엘」 11:3에다 「바사」가 「마게도니아」 세계 강국에 의하여 함락될 것을 예언하여 『장차 한 능력 있는 왕이 일어나서 큰 권세로 다스리며 임의로 행하리라.』고 하였읍니다. 기원전 331년에 「바벨론」은 「알렉산더」 대왕의 지배 밑에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이 일은 「알렉산더」가 이전 수도 「니느웨」로부터 멀지 않은 「고가멜라」에서 「바사」의 마지막 왕인 「다리오」 3세를 패배시키고 자신이 다섯째 세계 강국의 지배자가 된 후에 있었읍니다. 「고가멜라」에서 승리하자 그는 의기양양하여 그의 군대를 「바벨론」에 주둔시키고 「바사」의 나머지 부분을 정복하고 자동으로 멀리 인도까지 정복해 들어갔읍니다. 그리하여 전에 없었던 큰 나라를 세웠읍니다. 「알렉산더」는 「바벨론」을 떠난지 7년 후에 다시 돌아왔읍니다.
14. 「알렉산더」 대왕은 어떠한 「바벨론」 생각을 갖게 되었으며, 그의 계획은 어떠한 결과에 이르렀읍니까? (난외주) 「알렉산더」는 하나님의 말씀과 어떠한 접촉을 하였읍니까? 그리고 그 결과는 어떠하였읍니까?
14 가장 강대한 통치자도 하나님을 무시할 수 없으며 참된 하나님을 무시하면 어떠한 계획도 좌절된다는 재미있는 실증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알렉산더」 대왕의 경우입니다. 「알렉산더」는 그가 권세와 성공의 절정에 이르렀을 때 하나님의 백성과 얼마의 접촉이 있었고 또 참된 하나님과 그의 명령을 알고 있었을 것임에도 불구하고a 「바벨론」의 마음을 가지게 되었읍니다. 그는 「바벨론」을 그의 수도로 만들 것을 결정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거민이 없는 온전한 황무지가 될 것이라』고 하신 여호와의 예언에 대하여 부지 중에 거역하는 행동을 하였읍니다. (예레미야 50:13) 그는 이 계획을 수행하기 전에 「말라리아」에 걸려 기원전 323년에 「바벨론」에서 죽었읍니다.
15. 「알렉산더」 사망 후 「다니엘」의 예언은 어떻게 성취되었읍니까? 그리고 누가 「바빌로니아」의 통치자가 되었읍니까?
15 「알렉산더」의 사망은 또한 「다니엘」로 말미암은 예언을 참되게 하였읍니다. 「알렉산더」의 제국은 분할되었읍니다. 그 나라는 「알렉산더」와 함께 싸운 그의 장군들 사이에서 분할되었읍니다. 그리고 이 분할은 「바벨론」의 분할이라고 부르게 되었읍니다. 2년 후인 기원전 321년에 「트리파라디수스」에서 두번째 분할이 있었는데 이로 말미암아 「바빌로니아」의 지방 정부는 「셀리우커스 니카터」 장군에게 주어졌읍니다.—다니엘 8:22; 11:4.
16. (ㄱ) 「셀리우커스」는 수도를 세우는 일에 관하여 「알렉산더」와 같은 생각을 하였읍니까? (ㄴ) 「셀리우커스」가 「실루기아」 성읍을 세운 목적은 무엇이었읍니까?
16 「셀리우커스」는 자신이 위협을 느낀 것같이 생각하여 「애굽」으로 도망하였읍니다. 그러나 기원전 316년에 그의 원수들을 패배시킨 후 그는 「바벨론」에 돌아와서 그의 권세를 멀리 「알렉산더」 제국의 동부 전체에 걸쳐 넓혔으며 「야카르데」와 「인더스」강까지 멀리 이르게 되었읍니다. 「알렉산더」의 계획과는 달리 「셀리우커스」는 「바벨론」식이 아니고 「희랍」식으로 기원전 312년에 새로운 수도를 세웠읍니다. 그리하여 이 「실루기아」 성읍은 「바벨론」 북쪽으로 약 200리가 되며 오늘날 「바그다드」 남쪽으로 60리 가량되는 「디그리스」 강변에 위치하였읍니다. 「셀리우커스」는 「바벨론」을 짓밟는 일에 어떠한 역할을 하였읍니까? 그는 『「바벨론」을 없앨 목적』으로 이 새로운 성읍 「실루기아」를 세웠읍니다.
17. 기원전 312년에 「실루기아」 성읍이 세워진 후 「바벨론」은 어떻게 되었읍니까? 그리고 기원전 129년에는 어떻게 되었읍니까?
17 특히 새로운 수도가 「실루기아」에 건설된 때로부터 「바벨론」과 기타 「바벨론」에 있는 성읍들은 한낱 촌락으로 몰락하기 시작하였읍니다. 기원전 2세기에 「바대」왕 「미드라다데」 1세의 정복으로 말미암아 기원전 140년 경에 「바빌로니아」는 「바대」의 속국이 되었읍니다. 기원전 129년에 동부에서 「셀리우커스 니카터」의 후계자들로 말미암은 통치는 종말에 이르고 「바대」 제국이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읍니다.
18. 「바대」 제국은 언제 무너졌읍니까? 그리고 누구에 의하여?
18 다섯째 세계 강국인 「희랍」을 대신하여 「로마」가 강하여짐에 따라 「로마」는 불가불 「바대」인들과 충돌하게 되었읍니다. 그런데 기원 226년에 이르러 비로소 「바대」 제국이 무너졌읍니다. 그러나 이 무너짐은 「로마」인들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고 모반한 「바사」인들로 말미암은 것이었읍니다. 그리고 「바대」 제국은 「바사」의 「사싸니데」 왕조에 의하여 대치되었읍니다.
「바벨론」에서 그리스도교가 전파되다
19. (ㄱ) 「바대」인들은 「유대」인들과 어떠한 관련이 있었읍니까? (ㄴ) 그들은 그리스도교와 어떠한 관련이 있었읍니까?
19 「바대」인들은 「메소보다미아」에다 커다란 「유대」인 식민지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유대」인들과 중요한 관계를 가지고 있었읍니다. 「바대」왕 「아르다바누스」 3세 통치 때 즉 기원 16-42년까지 사이에 무서운 학살이 있어서 「메소보다미아」에서 5만명 이상의 「유대」인을 죽였읍니다. 이 사실이 「유대」인 역사가 「요세퍼스」의 「유대인의 고대 풍습 제도」라는 책 18권 9장 7-9항에 기록되어 있읍니다. 사도행전 2:5-11에 의하면 기원 33년 오순절에 「유대」인들과 새로 개종한 자들이 오순절을 지키기 위하여 「예루살렘」에 모여왔읍니다. 이들은 『「바대」인과 「메대」인과 「엘람」인과 또 「메소보다미아」 . . . 지방에 사는 사람들』이었읍니다. 「바대」 제국에서 온 이 숭배자들은 「베드로」와 기타 그리스도의 사도들이 전하는 것을 들었읍니다. 그리고 그들 중 얼마는 그리스도교로 개종하여 침례를 받았읍니다. 그들이 고향인 「메소보다미아」나 「바대」 제국의 기타 지역으로 돌아갔을 때 그들은 그리스도의 소식을 기뻐 전하였읍니다.
20. 「바벨론」은 언제까지 남아있었읍니까?
20 「바벨론」은 그리스도교 시대까지 얼마 남아 있었읍니다. 「요세퍼스」는 기원전 37년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베들레헴」에서 탄생하실 때까지 통치한 「헤롯」 대왕에 관하여 약간 기록하였읍니다. 「요세퍼스」는 그의 저서인 「유대인의 고대 풍습 제도」 15권 2장 2항에다 이렇게 기록하였읍니다.
21. 「요세퍼스」는 「바벨론」이 언제까지 계속 남아 있었다고 알려 줍니까?
21 그러나 [「바대」인에 의하여 체포된 「유대」인 제사장] 「히르가누스」가 「바대」로 끌려왔을 때 왕 「바라데」는 그를 매우 후대하였다. 그의 가문이 놀라운 것을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를 석방시키고 「유대」인들이 많이 「바벨론」에 거주하게 하였다. 「유대」인들은 그를 대제사장으로 또한 왕으로 받들었고, 멀리 「유브라데」까지 살고 있는 모든 「유대」 백성들도 그렇게 했다.
22. 「헤롯」 대왕은 누구를 대제사장으로 삼았읍니까? (난외주) (ㄱ) 「웨스트민스터 성서 역사 지도」는 「바벨론」이 그리스도인 시대까지 존속한 것을 어떻게 알려 줍니까? (ㄴ) 「벨」전은 적어도 「바벨론」에 언제까지 남아 있었읍니까?
22 「헤롯」왕은 「바대」왕에게 잘 주선하여 「헤롯」이 통치하고 있는 「유다」 땅에 「히르가누스」가 돌아오도록 하였읍니다. 그러나 그는 「히르가누스」를 「유대」의 대제사장으로 세우지 않았읍니다. 4항에서 그이유를 이렇게 말합니다. 『저명한 사람을 하나님의 대제사장으로 만드는 일에 대해 매우 조심스러웠기 때문에 「바벨론」에서 이름나지 않은 제사장을 불러다 대제사장직을 주었는데 그의 이름은 「아나넬루스」였다.』b 후에 「헤롯」왕은 「바벨론」에서 온 「아나넬루스」에서 그직을 뺏어 젊은 제사장 「아리스도불루스」에게 주었읍니다.
23. 기원70년에 「예루살렘」이 「로마」인에 의하여 함락된 후에도 「바벨론」에 정착한 「유대」인들이 번영하였다는 어떠한 증거가 있읍니까?
23 「로마」인들이 기원 70년에 「예루살렘」을 멸망시킨 후 「바벨론」에 정착한 자들이 「팔레스타인」 밖인 각국에서 살고 있는 「유대」인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읍니다. 「바벨론」에 있는 「유대」인 「랍비」들은 「팔레스타인」이나 심지어는 「예루살렘」에 있는 「랍비」들보다 더 존경을 받았읍니다. 특히 「예루살렘」이 함락된 후 「바벨론」에 있는 「유대」인들은 자기들이 「팔레스타인」에 있는 「유대」인들보다 더 순수한 「유대」족이라고 생각하였읍니다. 「바벨론」에 이름난 학교들이 세워졌으며 거기서 「랍비」 문학의 출판이 많았읍니다. 그 결과 두개의 「유대」인 「털무드」가 발전되었는데 하나는 「바벨론」에서, 또 하나는 「예루살렘」 혹은 「팔레스타인」에서 발전되었읍니다.
드디어 「바벨론」이 완전히 멸망되다
24. 기원 386년에 「바벨론」의 상태에 관하여 「유세비우스」는 어떠한 증언을 하였읍니까?
24 「바벨론」의 활동이 이처럼 계속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바벨론」이 황폐되고 거민이 없게 되며 술수가 끊어지리라는 하나님의 말씀은 꼭 성취되어야 하였읍니다. 성서를 「나전」어로 번역한 유명한 번역자인 「유세비우스 제로움」은 기원 386년에 「팔레스타인」으로 가서 일하다가 거기서 죽었읍니다. 그는 「바벨론」에 대한 하나님의 예언의 확실성에 관하여 증언하였읍니다. 즉 그 당시 「바벨론」은 완전히 폐허되고 그 성벽은 공원의 울타리가 되거나 숲의 경계로서 「바사」의 군왕이 사냥할 수 있을 뿐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성벽들도 결국 다 무너져 1811년에 영국의 여행가 「클라우디우스 제이 · 리취」가 그곳에 갔을 때 그 거대한 「바벨론」 성읍의 흔적을 찾아 볼 수 없었읍니다. 「맥클린톡」과 「스트롱」이 만든 백과사전 1권 (1891년판) 596면에는 이러한 말이 있읍니다.
25. 기원전 1811년에 「클라우디우스 제이 · 리취」가 본 것과 같이 「바벨론」의 황폐는 어떠하였읍니까?
25 「바벨론」은 분별할 수 없을 정도로 철저히 멸망되었다. 「리취」는 그 광대한 성벽의 흔적을 발견할 수 없었으며 그 터까지도 논쟁의 대상이 되었다. 그는 말하기를 『그 황폐로 나무라고는 고목 외에는 하나도 자라지 않았다.』고 했다. 이 고목은 그 황폐를 더욱 뚜렷하게 하였다. 초석들이 박힌 채 황폐된 「바벨론」에서는 경작도 할 수 없었다.
26. 오늘날 「바벨론」은 어떤 상태에 놓여 있읍니까? 그리고 한때 거대한 성읍이었던 이 터에는 어떠한 흔적이 있읍니까?
26 오늘날 「바벨론」에는 황폐만이 남아 있읍니다. 그리고 이 폐허를 고고학자들이 1899년 이래로 발굴하고 있읍니다. 오늘날 「바그닷드」에서 「바스라」까지 이르는 철도가 「바빌」이라고 부르는 언덕 밑을 달릴 뿐입니다. 『「바벨론」 정류장, 여객을 태우기 위하여 기차가 여기 정지한다』라고 영어와 「아랍」말로 씌어 있는 나무 간판이 보일 뿐입니다. 거기는 아무도 살지 않읍니다. 성경이 예언한 바와 같이 「아랍」인들이 천막을 칠 곳도 못됩니다.—이사야 13:20.
27. (ㄱ) 당신이 어떠한 하나님을 숭배하는가가 중요하다는 사실에 대하여 「바벨론」은 어떠한 증거가 됩니까? (ㄴ) 「바벨론」의 점차적 멸망은 무엇에 대한 전영이 됩니까? (ㄷ) 오늘날 큰 「바벨론」의 상태는 어떠합니까? 그리고 큰 「바벨론」의 장래는 어떠합니까? (ㄹ) 큰 「바벨론」에 사로잡혀 있는 자들에게 지금 어떠한 기회가 마련되어 있읍니까?
27 「바벨론」은 당신이 어떠한 하나님을 숭배하는가가 중요하다는 사실에 대한 명백한 증거가 됩니다. 아무리 위대하고 능력있는 자라 할지라도 우주의 주권자 되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원리와 명령을 결코 변경시킬 수 없읍니다. 「바벨론」이 마치 맷돌이 바다에 던져져서 자취를 감춘 것 같이 거짓 종교의 세계 제국인 현대적 큰 「바벨론」도 같은 운명에 빠지게 되어있읍니다. 「바벨론」은 그 거짓 종교 교리와 하나님과 그의 말씀에 거역함으로써 많은 사람들로 이 사실을 모르게 하였으며 아직도 많은 사람을 사로잡아 가지고 있읍니다. 기원 1914년에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손에 천국이 하늘에 건설되었읍니다. 1919년에 큰 「바벨론」은 무너졌으며 그 구속도 약화되어 거기서 나오고자 원하는 자들이 풀려 나오고 있읍니다. 그때부터 많은 사람이 「바벨론」의 거짓 종교 제도를 떠났읍니다. 큰 「바벨론」은 하나님의 저주를 받았고 또 멸망될 운명에 처하여 있으므로 누구든지 큰 「바벨론」에 의지하여 그것을 구하고자 하거나 「바벨론」의 어떠한 것을 유지하고자 원하는 자들은 같은 운명에 처하게 될 것입니다. 큰 「바벨론」은 지금 기울어져 가며 곧 완전한 멸망에 이를 것입니다. 속히 참된 하나님 여호와의 숭배로 피난처를 구하며 영원한 생명을 위해 설립된 예수 그리스도의 왕국 통치 밑으로 오십시오.
[각주]
a 「요세퍼스」는 「알렉산더」가 「예루살렘」에 들어가서 「다니엘」의 예언을 본것을 이렇게 말합니다. 『다니엘서가 그에게 보이게 되었을 때 그 책에 「다니엘」이 선언하기를 「희랍」인 중에서 한 사람이 「바사」 제국을 멸망시키리라고 한 것을 보고 그는 자기 자신이 그렇게 할 사람이라는 것을 생각하였다.—「유대인의 고대풍습 제도」 11권 418면 「휘스턴」 번역. 보여준 성귀는 아마 다니엘 7:6; 8:3-8, 20, 21; 11:3이었을 것이다. 「알렉산더」는 매우 기뻐하였다. 그러나 그는 진리를 배우고 참된 하나님을 숭배해야 할 필요성을 알지 못했다.
b 문학박사 「윌리암 휘스턴」이 「희랍」어에서 번역하였고, 문학박사 「사무엘 버-더」가 개정하였음. 「보스톤」 1849년판. (1권)
「바벨론」이 그리스도인 시대까지 존속한 데 관하여 「웨스트민스터 성서 역사 지도」 (1956년판) 89면 (판 130)을 참작하는 것이 매우 흥미있읍니다. 그 지도는 『예수 탄생시의 「로마」 세계』 라는 제목 밑에 「바벨론」 성읍이 「로마」 제국 밖인 「유브라데」강변에 있는 것이 보입니다. 설형문자 교본에 의하면 「바벨론」에 있는 「벨」의 전은 적어도 기원 75년 즉 사도 「베드로」가 거기 있은 후까지 계속 있었읍니다.—베드로 전 5:13.
[139면의 삽화]
Babylon Halt. Trains stop here to pick up passenger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