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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61 9/15 345-350면
  • 그리스도인의 예의를 나타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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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리스도인의 예의를 나타냄
  • 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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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의와 설명
  • 그리스도인 전도에 있어서
  • 그리스도인 회중에서
  • 가정과 기타 다른 장소에서
  • 필요한 지식과 지혜
  • 절제로 나타나는 능력
  • 공의와 사랑
  • “좋은 소식에 합당한 방식으로 행동하시오”
    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89
  • 예의 없는 세상에서 그리스도인 예의를 배양하는 일
    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89
  • 야외 봉사에서의 좋은 예의는 하나님께 영예가 된다
    우리의 왕국 봉사—1984
  • 왜 예의를 갖추어야 하는가?
    깨어라!—19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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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61
파61 9/15 345-350면

그리스도인의 예의를 나타냄

“우리가 이 직책이 훼방을 받지 않게 하려고 무엇에든지 아무에게도 거리끼지 않게 하고 오직 모든 일에 하나님의 일군으로 자천하여오래 참음과 자비함과 성령의 감화와 거짓이 없는 사랑과 진리의 말씀과 하나님의 능력 안에 있어 의의 병기로 좌우하고.”—고린도 후 6:3-7.

1, 2. 현대의 예의에 대하여 어떠한 불평이 떠돌고 있읍니까?

예의 있는 그리스도인을 보기 매우 힘듭니다. 심지어는 기독교국에서까지 그러합니다. 어떠한 면에서나 남을 생각하여 주거나 고려하여 주는 것이 부족합니다. 사람들은 너무 바쁘기 때문에 『미안합니다.』 혹은 『감사합니다』라는 말조차 생각하지 않습니다. 사실상 사람들이 이러한 예의를 전혀 생각지 않기 때문에 미국 동부에서는 통행세를 지불하는 도로가 처음 열릴 때마다 커다란 교통 혼란을 일으키곤 합니다.

2 금년 1월 「뉴욕 타임스」 잡지에는 「뉴욕」 지하 철도에서 출퇴근 시간에 『예의가 없으므로 발생하는 희비극』이라는 기사가 게재된 일이 있읍니다. 1년 전에는 「뉴욕」을 『예의 없는 도시』라는 기사로써 「뉴욕」을 좋지 않게 묘사한 일이 있었읍니다. 예의가 없는 곳은 「뉴욕」 뿐이 아닙니다. 이 기사는 전 세계 도처에서 예의가 점점 무너져 가고 있다는 것을 지적하였읍니다.

3. 이러한 악한 행실이 있을 것이 예언되었다고 어떻게 말할 수 있읍니까?

3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는 예의가 나빠지리라는 것을 미리 예언하였읍니다. 즉 「말세에는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자긍하며 교만하며 훼방하며 참소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 아니하며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자들이 있으리라」고 하였읍니다. 과연 이러한 것들이 예의를 없게 만드는 요소가 됩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주위에 있는 악한 행실을 배우지 않도록 경계하여야 합니다.—디모데 후 3:1-5.

정의와 설명

4, 5. 예의에 대한 정의는 무엇입니까? 예의를 갖추는 것이 왜 중요합니까?

4 예의라는 것은 무엇입니까? 예의에 대한 정의는 습관적 행동, 처신, 품행이며 평소에 다른 사람들과 접촉하는 방법입니다. (좋은) 예의와 비슷한 말로서는 품행의 단정, 정중, 침착, 염려, 친절, 얌전 등이 있읍니다. 좋은 예의는 『사소한 일에 있어서의 덕행』이라고도 말할 수 있읍니다. 좋은 예의는 다른 사람을 위하여 다소의 희생을 요하는 것입니다. 좋은 예의는 서로의 관계를 부드럽게 하여주며 오해는 풀게 해주고 선의를 갖게 합니다. 그 근본적 원리는 사랑이며 남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 목적은 남을 편안하게 만드는 것이며, 쓸데 없는 불쾌감을 남에게 주지 않도록 하는 것입니다.

5 그리스도인들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하나님의 성령으로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하고 깨끗한 숭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이러한 근본적이며 중대한 문제에 비하여 예의를 갖추는 것이 그렇게 중대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매우 중대합니다. 우리가 예의를 갖추지 못하므로 실패하는 수가 있기 때문에 모든 선한 그리스도인들은 예의를 갖추도록 노력하여야 합니다.

6. 좋은 예의는 무엇과 비교할 수 있읍니까?

6 좋은 예의는 「고발트」나 「몰리부덴」 혹은 붕소(硼素)와 같은 희금속과도 비교할 수 있읍니다. 이러한 희금속은 식물이나 동물이나 사람의 건강에 대하여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그것은 또 양념이나 소금과도 비교할 수 있읍니다. 이러한 것이 없이는 주부가 훌륭한 요리를 만들어 내지 못합니다. 좋은 예의는 또 기름이나 「그리이스」와도 비교할 수 있읍니다. 그것으로 기계가 윤활하게 돌아갈 수 있읍니다. 그리고 「타이어」나 방석에 넣는 공기와도 같습니다. 공기때문에 자동차의 자리가 푹신푹신하여 딱딱한 여행을 부드럽게 하여 줍니다. 많은 사람이 옷차림에는 큰 관심을 두나 그들의 예의에는 통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외모보다도 예의가 더 중요합니다.

7, 8. (ㄱ) 사람들의 예의에 관하여 어떻게 평할 수 있읍니까? (ㄴ) 그리스도인들은 언제 좋은 예의가 필요합니까? 그리고 그 이유는?

7 그리스도인 아닌 사람들도 좋은 예의를 많이 강조하고 있읍니다. 그러나 대개 이 사람들은 성의와 동기에 대하여는 거의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그들에게는 예의라는 것이 다만 허식에 지나지 않습니다. 어떠한 소득이 있기 때문에 그렇게 할 뿐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의 예의는 하나님과 의와 이웃에 대한 사랑에 토대를 두었읍니다. 그러한 그리스도인 예의는 오로지 『거짓이 없는 사랑』을 토대로 하고 있기 때문에 『흠』이 없을 것입니다.—고린도 후 6:6.

8 그리스도인의 좋은 예의는 언제 필요합니까? 다만 특별한 경우에만 필요할가요? 좋은 인상을 주려고 할때나 남을 감화시키려고 할때만 필요할 것입니까? 천만에요! 이러한 원리는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할때는 언제나 적용됩니다. 그러므로 좋은 예의는 가정에서나, 여행할 때에나, 일터에서나, 그리스도인 회중에서나, 전도할 때나, 항상 필요합니다.—고린도 전 10:31.

그리스도인 전도에 있어서

9. 그리스도인은 외모를 어떻게 갖추어야 합니까?

9 그리스도인은 항상 『그리스도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여야 합니다. 그러면 그리스도인이 집집을 방문할 때 요구되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들이 어떤 집의 문을 두드릴 때 말하자면 그들은 그 집에 대하여 손님격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은 예의를 갖추어서 남의 앞에 나타나야 합니다. 환경이 허락하는한 깨끗이 단정하게 옷차림을 할 것이며 구두를 닦고, 머리를 빗고 옷을 다려서 입어야 합니다. 이런 일은 여자들 측에서는 잘못되는 일이 적으나 남자들 측에서 소홀히 하기 쉽습니다. 그렇다고 하여 지나치게 옷을 잘 입는 것도 삼가야 합니다. 옷차림이 지나치면 쓸데없는 주의를 끌게 되며 그것 역시 그리스도인으로서 예의답지 못한 것입니다.—빌립보 1:27.

10, 11. 어떻게 인사하는 것이 효과적입니까? 상대방을 쓸데없이 기분 나쁘게 하지 않기 위하여 요구되는 것이 무엇입니까?

10 또 그리스도인의 예의에서 필요한 것은 성실하고 친절한 미소와 인사입니다. 「아브라함」은 『그 땅 거민 「헷」족속을 향하여 몸을 굽』혔읍니다. 이것은 당시에 있어서 좋은 예의였읍니다. 예수께서 70명의 복음 전도자들을 내어 보내실 때 『이 집이 평안할찌어다』 라고 각 집에서 인사를 하라고 일러주셨읍니다. 친절한 서론이 중요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예수께서 그러한 교훈을 주시지 않았을 것입니다.—창세 23: 7, 12; 누가 10:5.

11 그리스도인의 예의 가운데서 또한 조심해야 할 것은 그가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쓸데없이 상대방을 기분 나쁘게 하여 하나님의 천국 복음에 대하여 귀를 막게 하는 일이 없도록 주의하고 관찰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전도할 때 「유대」교인임을 표시하는 「메주자」가 문간에 붙어있는 것을 보면 그는 집주인의 목에 십자가를 걸고 있는 사람과 다르게 대해야 할 것입니다. 동시에 그는 소위 『문화인』 이라고 하는 사람에게는 상전에게 하듯하고 낮은 사람이라고 반말을 하는 일이 있어서도 안됩니다.

12. 말하는 방법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태도는 어떠하여야 합니까?

12 상대방에게 호의를 갖게 하기 위하여 그리스도인은 말하는 방법에 조심하여야 합니다. 상대방이 알아듣기 쉽게 말하지 못한다면 그 그리스도인은 예의에 좀 부족한 점이 있다고 볼수 있읍니다. 즉 너무 독단적으로 얘기한다거나, 거칠게 한다거나 혹은 거만하게 얘기하는 폐단도 있을 법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베드로 전 3:15에 있는 말을 잘 기억하여야 합니다. 거기에는 우리의 소망의 이유를 묻는 자에게 말할 준비를 갖추고 있을뿐 아니라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라』고 말하였읍니다. 그것이 가장 합당한 예의입니다. 우리가 명심하여야 할 것은 집주인을 대화 가운데로 이끄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리스도인들은 소극적이 되어야 합니까? 그런것이 아니라 친절하고 요령있는 질문으로써 상대방으로 자신의 생각을 말하게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13, 14. 그리스도인들은 어떠한 경우에 어떻게 그리스도인다운 예의를 지켜야 합니까?

13 바쁜 거리에서 그리스도인이 복음을 전할 때의 예의는 어떠하여야 합니까? 그들은 요령있고 친절하여야 하며 떠들석하지 말고 강요하지 말며 통행을 방해하지 않도록 하여야 합니다. 그리고 흥미를 가진 사람들을 방문할 때는 손님같이 행하여 그리스도인 다운 예의를 보여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자기를 반가이 맞아준데 대하여 공손한 태도로 감사하여야 합니다. 그 친절을 이용하여 상대방에 폐를 끼치지 않도록 각별히 주의하여야 합니다.

14 주인이 무엇을 대접하여야 한다는 의무감으로써 「차」같은 것을 제공할 때는 어떻게 하여야 합니까? 만일 이런 일을 계속한다면 그것은 주인에게 짐이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것을 경솔히 받아들이기 전에 사양의 뜻을 표시하여야 합니다. 그렇게 하므로 대접을 하려고 하는 사람으로 하여금 그것이 다만 형식인 것이 아니라 진심으로 대접하기를 원한다는 것을 표시할 기회를 갖게 할 것입니다. 예수께서 좋은 본을 보여주신 일이 있읍니다. 예수께서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를 위로하시며 같이 가시다가 날이 저물어 저녁 식사를 함께 나누자고 할 때 『예수는 더 가려하는 것 같이 하시니 저희가 강권하』였읍니다. 물론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성경을 설명하여 주시고자 하여 머무를 것을 원하셨으나 사양하셨읍니다.—누가 24:28-32.

그리스도인 회중에서

15, 16. 회중 집회 장소에서 그리스도인이 지켜야 할 예의는 무엇입니까?

15 회중의 숭배의 장소에서의 그리스도인들이 지켜야할 예의는 어떠한 것입니까? 집회 시간에 늦게 오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올바른 예의라고 할 수 없읍니다. 늦게 오는 사람은 연사와 청중을 방해합니다. 자녀를 가진 어머니들은 다른 사람을 고려하여 뒤에 앉은 것이 좋을 것이며 만일 아이가 울더라도 속히 자리를 떠나서 집회에 지장을 주는 일을 최소한도로 제한할 것입니다. 그런 때는 물론 안내자도 협조할 것입니다.

16 그리스도인들이 삼가야 할 것은 연사가 청중의 주의를 집중시킬려고 할 때 졸거나 속삭이거나 다른 책을 뒤적거리는 것들입니다. 그리고 늦게 오는 사람들을 돌아다 보는 일이나 과자를 먹거나 「껌」을 씹는 일도 마땅히 삼가야 합니다. 해 아래서 하는 모든 일에는 반드시 목적이 있는 것입니다. 연사가 회중에게 말할 때는 그 연사와 또 그 내용을 존중하는 의미에서 100「퍼센트」 주의를 기울여야 할 때입니다.—전도 3:1; 고린도 전 11:22.

17. 누구에 대하여 특별한 관심을 두어야 하며 그리고 어떠한 방법으로?

17 처음으로 참석하는 손님을 대접하는 것도 그리스도인의 예의의 하나입니다. 새로 참석한 이들 손님을 잘 접대함으로써 어색한 감을 주지 않도록 하여야 합니다. 모든 면에서 그를 도와줌으로써 그날 공부에서 충분한 이익을 얻도록 힘써야 합니다. 그리고 노인과 어린이들을 소홀히 여겨서는 안될 것입니다. 『노인의 얼굴을 공경하』라는 원칙은 아직도 적용됩니다. 또한 부유한 자나 가난한 자를 똑같이 대우하여야 합니다.—레위 19:32, 야고보 2:1-9.

18. 어떻게 하는 것이 「여호와의 상은 경멸히 여길 것이라」고 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까?

18 그리스도인들이 숭배를 위하여 모이는 곳은 어디든지 즉 이웃 사람과 성경 공부를 위하여 개인 가정에서 모이든지 흑은 국제적 성경 대회를 위하여 거대한 광장에서 모이든지 그리스도인들은 예의를 지켜 남을 먼저 생각하고 남을 위해 주어야 합니다. 사람들이 너무 많다고 하여 예의를 지키지 않고 소홀히 하는 것은 『여호와의 상은 . . . 경멸히 여길 것이라』고 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말라기 1:12.

가정과 기타 다른 장소에서

19-21. 그리스도인 가족에서 지켜야 할 예의에는 어떠한 것들이 있읍니까?

19 우리 가정에서 지킬 그리스도인의 예의는 어떠합니까? 우리가 가족의 성원으로서 가까이 살며 매일 서로 보기 때문에 타락된 인간 본성에서 그리스도인의 예의를 소홀히 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결코 그래서는 안됩니다. 도리여 우리가 함께 살고 또 불완전함을 참아야 할 사람들에 대하여 각별히 친절과 염려를 나타내고 또 위하여 주어야 합니다. 우리의 목소리를 부드럽게 하며 따뜻하게 하는 것이 사소한 일 같으나 가족에게 많은 행복을 주고 행복을 얻을 수 있게 만듭니다.

20 결혼한 사도 「베드로」는 남편들에게 권하는 말로 『지식을 따라 너희 아내와 동거하』라고 하였으며 『저는 더 연약한 그릇』이라고 하였읍니다. 그리스도인이 지킬 예의 가운데 분명히 이것이 포함되어야 합니다. 그 반면에 사도 「바울」은 아내된 자들에게 권하여 남편을 「경외하며」 그에게 순종하라고 하였읍니다. 아내가 남편과 충돌하며 공중 앞에서 남편을 비판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예의 없는 몰상식한 사람이라고 볼 수 있읍니다.—베드로 전 3:7; 에베소 5:33.

21 식사를 위하여 모였을 때는 어떻게 하여야 합니까? 물론 우리는 아름다운 예의를 다 배워가지고 있지 않으나 남을 염려하여 줄 수 있읍니다. 다른 사람이 조용히 공부하거나 잘려고 할 때 측음기나 「라디오」 혹은 「텔레비죤」를 틀어 놓은 일이 없으신지요? 우리가 일하고 있을 때나 여행할 때나 혹은 쉴때나 다른 사람에 대한 이러한 원칙은 항상 적용됩니다.

22, 23. 어린 그리스도인들이 지켜야 할 예의는 무엇입니까? 그리고 왜 그들은 예의에 특별한 관심을 가져야 합니까?

22 그리고 어린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으로서 지켜야 할 예의는 무엇입니까? 어린 여러분은 여러분이 지켜야 할 처소를 잘 알고 있는지요? 그리고 여러분이 진리를 듣고 배우기 위하여 회중 집회 장소에 오게 된데 대하여 감사의 뜻을 나타내는지요? 그리스도인의 예의가 없는 사람들은 여호와 하나님께 대하여 경의를 나타내지 못할 뿐만 아니라 그의 말씀과 그의 회중과 그들의 양친을 포함한 연장자들에 대하여 경의를 표시할 줄 모릅니다. 그리고 집회 시간에 밖에서 시끄럽게 뛰어다니는 아이들도 있읍니다. 그런 사람은 틀림없이 그러한 나쁜 습관을 매일 접촉하는 국민학교 학생들의 좋치 못한 행실에서 배웠을 것입니다. 국민학교 학생들 중에는 동무들이 행하는 나쁜 습관을 자기의 악한 행실에 대한 구실로 삼고 있읍니다. 그들의 악한 본을 따지 마십시요. 여러분은 그들이 「아마겟돈」에서 멸망될 것임을 알고 있으며 한편 여러분은 「아마겟돈」을 통과하여 신 세계로 살아넘어갈 것을 원하고 있지 않습니까?—고린도 전 15:33.

23 어린 여러분에게도 역시 집에서 그리스도인의 예의를 행하여야 합니다. 여러분은 항상 부모의 말씀을 잘 듣고 잘 순종합니까? 마땅히 그렇게 하여야 합니다. 여러분은 또한 부모를 공경하며 공손한 태도로 부모님께 대합니까? 그리고 시키는 말을 잘 들으시는지요? 부모님이 여러분을 위하여 수고하시는 것을 감사하고 있읍니까? 그리고 하나님께서 마련하신 지위를 인식하십니까? 어린 여러분들이여 주위에서 보고 듣는 것이 매우 나쁜 본들이기 때문에 특히 여러분의 예의에 조심하지 않으면 안됩니다.—에베소 6:1-3.

필요한 지식과 지혜

24, 25. (ㄱ) 그리스도인이 예의를 지키는데 있어서 지식은 어떻게 도움이 됩니까? (ㄴ) 그리고 지혜는 어떻게 도움이 됩니까?

24 그리스도인으로서 좋은 예의를 가지기 위하여 필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우리는 일상 생활에서 지혜와 능력과 공의와 사랑의 네 가지 중요한 속성을 잘 적용시켜야 합니다. 먼저 지혜의 중요성을 깨달으십시요. 지혜 가운데서도 지식은 가장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읍니다. 예의는 나라나 민족에 따라서 큰 차이가 있읍니다. 그러므로 낯설은 지방에 갈것 같으면 그 지방 풍속을 배워서 그리스도인 원칙에 벗어나지 않는다면 그것을 따라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하였읍니다. 『여러 사람에게 내가 여러 모양이 된 것은 아무쪼록 몇몇 사람들을 구원코자 함이니 내가 복음을 위하여 모든 것을 행함은 복음에 참예하고자 함이라.』—고린도 전 9:22, 23.

25 『지혜로운 자의 혀는 양약 같으니라』고 하나님의 말씀에 기록되어 있읍니다. 이 말은 우리가 무엇을 말하며 무엇을 행할 것인가와 언제 그리고 어떻게 말하고 행할 것인가를 알고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지혜로운 자의 마음은 그 입을 슬기롭게 하고 또 그 입술에 지식을 더 하느니라.』 특히 우리가 전도할 때에 지혜를 사용할 것 같으면 『그 입의 대답으로 말미암아 기쁨을 얻』게 됩니다. 과연 『경우에 합당한 말은 아로새긴 은쟁반에 금사과』입니다. 『모으는 자』는 「기록된 정확한 진리의 말씀」만을 구한 것이 아니라 『아름다운 말』도 구하였읍니다.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변하』라는 사도 「바울」의 말 가운데는 정확한 지식과 요령있게 행하라는 말이 포함되어 있읍니다.—잠언 12:18; 16:23; 15:23; 25:11; 전도 12:10; 디모데 후 2:15; 잠언 15:2.

절제로 나타나는 능력

26-28. (ㄱ) 절제로 나타나는 능력의 속성은 그리스도인 예의에서 어떠한 역할을 합니까? (ㄴ) 다른 사람에 대하여 어떠한 결과를 가져옵니까?

26 그리스도인이 올바른 예의를 지키기 위하여는 네가지 속성의 하나인 능력을 잘 사용하여야 합니다. 그 능력은 절제로서 나타납니다. 『노하기를 더디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 타락된 인간성은 다른 사람의 실수에 대하여 참지 못하고 절제가 부족하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참을성이 없는 사람은 곧 목소리를 높이며 괴상한 소리를 내어 남을 불안하게 만듭니다. 이런 것도 역시 예의가 없는 사람의 소행입니다. 그리고 상을 찌푸리는 것도 자기의 격분함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그런 경우에는 『참는 마음이 교만한 마음보다 나으니, 급한 마음으로 노를 발하지 말라. 노는 우매자의 품에 머무름이니라』는 말을 기억할 것입니다. 우리는 절제하고 노를 참고 항상 명랑한 마음을 소유함으로 좋은 그리스도인의 예의를 나타낼 것입니다. 『우리가 이 직책이 훼방을 받지 않게 하려고 . . . 오래 참음과 자비함과 성령의 감화와 . . . 하나님의 능력 안에』서 모든 일에 그리스도인으로서 자천하여야 합니다.—잠언 16:32; 전도 7:8, 9; 고린도 후 6:3-7.

27 「다투지 아니 하고 모든 사람을 대하여 온유하며 가르치기를 잘 하」라는 교훈에 따르기 위하여 우리는 절제의 힘을 가져야 합니다. 이성 없는 사람들에게 온유함을 나타낸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가 홈이 없는 참다운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하여서는 그러한 노력을 할만한 가치가 있읍니다. 『유순한 대답은 분노를 쉬게 한다』고 하였읍니다. 그리고 지혜로운 대답도 그와 같은 역할을 합니다. 그러한 예로서 불평하는 「에브라임」사람들에 대하여「기드온」의 지혜로운 대답이 있읍니다. 그 기록이 사사기 8:1-3에 있읍니다.—디모데 후 2:24, 25; 잠언 15:1.

28 그리스도인의 예의는 좋은 결과를 가져옵니다. 『오래 참으면 [성내기를 더디하면] 관원이 그 말을 용납하나니 부드러운 혀는 뼈를 꺾느니라.』 사실상 절제력이 약하면 그 만큼 예의가 없읍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절제력을 사용하므로 좋은 예의를 나타내도록 힘써야 합니다. 『또 우리 주의 오래 참으심이 구원이』 되는 것과 같이 그리스도인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참는 것을 나타냄으로 구원에 이를 수 있을 것입니다.—잠언 25:15; 베드로 후 3:15.

공의와 사랑

29. 공의에 대한 깊은 관심이 왜 그리스도인 예의에서 중요한 역할을 합니까?

29 공의에 대한 깊은 관심도 그리스도인 예의에 매우 필요합니다. 어떻게 그러합니까? 예수께서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고 말씀하시지 않았읍니까? 물론 그렇게 말씀하셨읍니다. 그러므로 공정한 입장에서 공의를 지킨다는 것은 비슷한 환경 밑에서 자기가 대접을 받았으면 하는 것을 남에게 대접하여 주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인이 예의를 지키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자기 집을 찾아온 사람이 생각 없이 행하거나 무례히 행하거나 집의 물건을 조심없이 다룬다면 당신은 좋아하겠읍니까? 그가 좋은 뜻을 품고 있었다든가 좋은 동기를 가졌다든가 하는 것이 그리스도인 예의를 잊어버리게 하는 변명이 되지 못합니다.—누가 6:31.

30, 31. (ㄱ) 그리스도인의 예의에 있어서 무엇보다도 필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그 이유는? (ㄴ) 이에 관하여 사도 「바울」은 어떠한 본을 세웠읍니까?

30 그리스도인 예의에 있어서 무엇 보다도 필요한 것은 사랑의 성품입니다. 사랑은 신중히 생각하게 하며 고려하게 하며, 따뜻하고 친절하고 기쁘게 하여 줍니다. 이 모든 것은 그리스도인 예의의 바탕이 됩니다. 사랑은 남을 생각하게 하고 다른 사람의 견해와 흥미와 이해관계를 잘 판단하도록 만들기 때문에 특히 생각 없이 빠지는 유혹을 피하게 만들어 줍니다. 그리스도인들은 그들의 마음을 깨끗이 간직하여 하나님을 무사적으로 섬기려고 할뿐만 아니라, 그 깨끗한 동기를 가장 효과적인 방법으로 즉 사랑으로 표현하려고 노력합니다. 사랑은 행동에 있어서 두 극단을 피합니다. 즉 위선적 아첨이나 지혜롭지 못한 행동이나 몰염치한 행동을 피합니다. 사랑은 달콤한 말이나 야합하는 일을 금하게 할 것이며, 『불을 명하여 하늘로 좇아 내려 저희를 [반대 자들을] 멸하라 하기를』 원치 아니할 것입니다.—이사야 30:10; 누가 9:54.

31 사도 「바울」은 이러한 두 극단을 피하는 일에 좋은 본을 보여 주었읍니다. 「데살로니가」에 있는 그리스도인에게 보낸 편지 가운데서 그는 『너희도 알거니와 우리가 아무 때에도 아첨의 말이나 탐심의 탈을 쓰지 아니』하였다고 말하였읍니다. 이러한 일은 세상사에 있어서는 매우 흔한 것입니다. 아첨하는 말이나 행동을 많이 하는 것은 그만큼 탐심이 많기 때문입이다. 사도 「바울」은 그와 반대로 『오직 우리가 너희 가운데서 유순한 자 되어 유모가 자기 자녀를 기름과 같이 하였』다고 말하였읍니다.—데살로니가 전 2:5, 7.

32. 사랑은 왜 그리스도인의 예의에 있어서 불가피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옵니까?

32 그리스도인 전도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사랑 때문에 그렇게 하고 있기 때문에 그들은 어떠한 환경 밑에서 어떠한 일을 하며 어떠한 말을 하는 것이 가장 좋은가를 사랑으로 분별할 수 있게 하여야 합니다. 사랑은 가장 선한 일을 하게 만들며 남의 기분을 상하게 만들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을 조심성 있게 만듭니다. 사랑은 『진리와 함께 기뻐』하는 한편 때로는 어리석은 진리에 대하여 지혜롭지 못하고 퉁명스럽게 대답하는 대신 애매하게 여유를 둔 회피적인 대답을 하게 하는 일도 있을 것입니다. 사랑은 그리스도인 예의에 있어서 필수적인 조건입니다.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 . .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치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 . . 모든 것을 참으며 . . .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고린도 전 13:4-7.

33. 신 세계 사회의 그리스도인 예의에 관하여 외인으로부터 어떠한 증거를 받고 있읍니까?

33 그리스도인 예의가 중요하다는데 관하여는 의심할 여지가 없읍니다. 그들이 여호와의 증인의 신 세계 사회를 위하여 얻은 좋은 평판은 널리 알려지게 되었읍니다. 그 중에서도 대표적인 것은 미국의 한 상원 의원이 미국 국회 보고에서 다소 긴 낭독을 한 일입니다. 욧점은 여호와의 증인의 예의가 『이 세상에서 볼 수 없는 것』이라는 말이었읍니다. 그리고 「뉴욕 헤랄드—트리뷴」지 보도원 한 사람은 이렇게 말하였읍니다. 『그들은 깨끗하게 차리고 좋은 예의를 가지고 있으며 연령 여하를 막론하고 모든 사람들에게 친절을 베풀어 준다. 그들이 남을 대할 때 취하는 태도가 매우 아름답기 때문에 더럽고 냉냉한 이 도시 사람들의 예의 없는 것을 볼 때 스스로 얼굴이 붉어진다.

34. 그리스도인 예의의 가치에 관하여 결론으로서 어떻게 말할 수 있읍니까?

34 그리스도인의 예의가 보잘 것 없이 사소하게 보일지 모르나 매우 중요합니다. 『우리가 이 직책이 훼방을 받지 않게 하려고 무엇에든지 아무에게도 거리끼지 않게 하』여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이러한 행동으로써 『외인에게서도 선한 증거를 얻』을뿐 아니라 가정이나 그리스도인 회중에서 좋은 관계를 맺게 하며 서로 북돋으며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을 높일 것입니다.—고린도 후 6:3-7; 디모데 전 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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