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생명과 사망중 어느 것을 취하려는가?
“내가 오늘날 천지를 불러서 너희게 증거를 삼노라 내가 생명과 사망과 복과 저주를 내 앞에 두었은 즉 너와 네 자손이 살기 위하여 생명을 택하고 네 하느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 말슴을 순종하며 또 그에게 복종하라 그는 네 생명이 되리니.”―신명기 30:19, 20, 미현대역.
1. 온전한 정신을 가진 사람이 살기 원한다는 것은 무엇으로서 알수 있는가?
여호와 하느님은 사람이 살도록 창조하셨다. 왜 호흡을 하고 있는가? 살기 위하여 호흡할 것이며 살기 위하여 얼마의 물을 마시며 또한 살기 위하여 오늘도 얼마의 음식을 먹을 것이다. 같은 이유로서 모든 사람은 오늘 밤도 잠을 잘 것이다. 수면을 취하는 것도 더 생기있는 삶을 얻기 위함인것이며 아침에 이러나면 일터로 나가 일을 싫어 할지라도 살기 위하여서는 일을 하지 않을수 없다. 사는 것은 어렵고 죽는것은 쉽다. 죽으면 아무 일도 하지 않을것이다. 아무 일도 행하지 않는 것보다 더쉬운 일은 없다. (전도서 9:5, 10) 아모리 게으른뱅이라도 죽지 않을길은 다 마련할 것이다. 왜냐하면 온전한 정신을 가진 사람은 누구나 다 살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2. 이 세상 어떠한 실정이 인간에게 공포를 가져 오는가?
2 호흡하며 마시며 먹으며 잠자며 일하면서 여러분은 어떠한 생명을 취하고 있는가? 좀 생각하여 보라. 민족적 분렬을 보라. 어떤 민족은 더 우월하다 하며 좀 낮다고 생각하는 민족을 억누르며 다만 얼굴 색이 다르다 하여 불법과 폭행과 전쟁까지 이르키고 있다. 그것은 마치 힌 꽃이 빨강이나 노란 꽃을 보고 비웃는 것과 같으며 힌 새나 동물이 다른 생갈 있는 새나 동물을 없샐려는 것과 같이 어리석은 일이다. 정치계를 보라. 그들은 서로 분쟁을 이르키는 당파로 분렬 되였으며 그 내부는 부패될 대로 부패 되었다. 경제상태를 보라. 소수의 재벌이 더 부하기 위하여 많은 가난한 백성을 억누르며 더 저축하기 위하여 전쟁을 이르킨다. 많은사람을 죽이며 불구자로 만드러 내는 군국주의를 보라. 모든 인간을 분렬시켜 서로 싸우게 하여 핍박하고 심지어 전쟁까지 이르키는 거짓 종교도 경시 할수 없다.
3. 큰 도시나 기타 처처에 사는 사람들의 생활 상태는 어떠한가?
3 또한 이 세상의 수치스러운 방면을 잊어서는 안된다. 큰 도시마다 구석 구석 놓여있는 빈민굴을 보라. 그곳에는 궁핍과 불결한 질병으로 차 있으며 사람들은 아무런 히망도 없이 어둠 침침한 굴속에 누어있다. 얼굴은 병에 마르고 옷은 다 떠러졌다. 또한 음주와 아편 중독자들을 보라. 그들은 사회를 좀 먹으며 또한 사회는 그들을 지지하여 주고 있다. 또한 홍등의 거리 그 곳에는 타락한 음녀들이 살고 있다. 그곳은 부패한 남자들의 음욕의 소굴이며 기진 무서운 병이 전염되고 있다. 또한 병원을 보라. 침대 위에는 고통으로 신음하는 환자와 온전한 정신을 잃은 실성한 사람들로 가득차 있다. 기타 세상을 대체로 볼때 그 타락한 도덕과 일반인의 범죄와 소년 범죄 가정 파란 이혼 배신행위 개인이나 사회사업에 있어서의 불충실함은 말할 여지도 없다. 모든 인간위에 구름같이 덮여 있는 공포와 혼란을 보라. 수천만의 얼굴에는 절망과 낙심만이 그려 있다.
4. 욥은 인생을 어떻게 잘 표현 하였는가? 그러나 사람은 무엇을 원하는가?
4 이처럼 비참한 생활의 연속일 지라도 사람들은 살기를 원한다. 그들은 고통중에서도 역시 살기를 원하며 불구자가 되어도 살기를 원하며 소경이 되어도 죽기는 싫어한다. 귀먹어리와 벙어리도 살기를 원하며 늙어 꼬부라저 무덤을 향하여 가는 사람도 죽기를 무서워 한다. 이 세상 생활을 욥은 잘 말하였다. “녀인에게서 난 사람은 사는 날이 적고 괴로움이 가득하며 그 발생함이 꽃과 같어서 쇠하여지고 그림자 같이 신속하여서 머믈지 아니하거늘.” (욥기 14:1, 2) 넓은 들에서 비행기가 머리 위로 나르며 그 그림자가 땅으로 지나가는 것을 본일이 있는가? 그때에 그 그림자를 잡으려는 것도 그것을 정지 시키려는 것도 얼마나 무익한 일인가? 그와 마찬가지로 생명이 시작한 때로 부터 사라져버리는 이 그림자 같은 존재를 잡으려는 것도 무익한 일이다. 그자신이나 의사나 그의 약품과 요법도 마치 달아나는 비행기의 그림자를 잡으려는 것과 같은 것이다. 이 현세의 존재는 피었다가 한 때가 지나면 다시 시들어 말러 죽어 버리는 꽃과 같다.
5. 우리는 지금 어떠한 생명을 취할수 있는가?
5 그러나 우리가 지금 택할려는 생명은 그와는 다른것이다. 그 생명은 봄이 지나면 져버리는 꽃과 같은것도 아니며 여름이 지나면 말러 버리는 초목 같지도 않은 것이다. 그 생명은 이 세상적 범죄나 전쟁 기근 온역 사망으로 말매암은 고통이나 고민 실망등이 없으며 그 날은 길며 그날들은 환란이 없는 날이며 말할수 없는 기쁨의 날인 것이다. 그 생명이야 말로 여호와 하느님께서 최초에 인간에게 주실려고 하였든 생명이다. 그것은 어떠한 것인가? 천당에서 운해 위에 누어 즐기며 공간에 떠 다니며 영원히 거문고를 타는 것인가? 아니다. 그것은 게으른 뱅이가 상상하고 있는 천당의 생명과 같은 헛되고 무익한 존재가 아니다. 우리가 지금 택할려고 하는 생명이 어떠한 것인가를 자세히 알기 위하여 하느님 말씀을 찾어 인간 창조의 목적을 알어 보기로 하자.
인간에 대한 여호와의 목적
6. 여호와께서 최초에 인간에게 주실려고 하신 생명은 어떠한 생명 이었는가?
6 창세기 2장 15절에는 “여호와 하느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 동산에 두사 그것을 일구어 가꾸게 하셨나니라.”(미현대역) 사람을 게으름 뱅이로 창조하시지 않고 완전한 에덴에서도 일을 하도록 창조하셨다. 남자와 여자를 만들고 다음과 같은 명령을 주셨다.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즉이는 모든 생물을 다사리라 하시니라.” (창세기 1:28) 그리하여 그 가족이 늘어 감에 따러 에덴은 너무 협잡하게 되어 그 동산은 점점 늘리게 되며 에덴의 각종 아름다운 초목의 씨를 새로운 땅에 심어 가꾸게 되였을 것이다. 하느님의 동산이 온 땅에 이르러 에덴으로 변할때까지 사람들은 땅을 정복하며 가꾸게 되였을 것이다. 또한 동물까지도 사람을 잘 따르며 동물에 대한 인간의 지배는 사랑과 상호 의뢰함으로서 행하여 지며 결코 맹수조련사와 같이 동물 앞에 의자를 내밀고 날카로운 채찍으로 훈련시킨다 던지 또는 현대 니므롯의 하는 바와 같이 총으로 동물을 사냥하며 혹은 동물원의 철창에 감금하게 하는 것이 아니였다.
7. 그때에 음식으로 주신것은 무엇이었는가?
7 그러한 인간통치 밑에서는 동물들이 매일 살기 위하여 설로 잡어 먹어야 할 필요도 없었다. 창세기 1장 29, 30절에는 “보라 내가 온 지면에 씨 맺는 모든 채소와 씨 갖인 열매 맺는 모든 나무를 너희게 주노니 너희 식물이 되리라 또 땅의 모든 즘생과 공중의 모든 새와 생명이 있어 (영혼이 있어, 루더함 역) 땅에 기는 모든것에는 내가 모든 푸른 풀을 식물을 주노라” 하셨다. (미현대역) 인간이 반항하기 전에는 에덴에 있는 모든 동물은 초식하는 동물들이었다. 우리는 여호와께서 그와 다르게 목적하셨다는 이유를 발견 할수 없다.
8. 아담과 해와는 어떠한 길을 밟아 고통과 사망을 취하였는가?
8 여호와 하느님께서 최초에 인간을 창조하여 땅위에 두신 목적은 그것이였다. 땅은 결코 시험에 동원된 사람들이 하늘로 뛰어 올라가는 발판으로 만드시지 않었다. 사망의 면역성을 얻어 하느님과 같이 높이 될려는 히망은 뱀을 통하여 사탄 악마로부터 온것이다. 그러한 일이 하느님께 불순종 함으로 올수 있다고 하였다. 그 간교한 꾀임과 아담과 해와가 그 간계에 빠진 기록이 창세기 3장 1-6절에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그 결과는 사탄이 약속한바와 같지 않었다. 책임이 더 중한 남자에게 여호와께서 말씀 하신바 “네가 네 안해의 말을 듣고 내가 너다려 먹지 말라는 나무 실과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인하여 저주를 받고 너는 종신토록 수고 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땅이 네게 가서 덤불과 엉겅퀴를 낼것이라 너의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네가 얼골에 땀이 흘러야 실물을 먹고 필경은 흙으로 돌아갈이니 그 속에서 네가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도라갈 것이니라 하시니라.”―창세기 3:17-19.
9. 아담의 저주는 그 자신과 온 땅에 어떠한 결과를 가져 왔는가?
9 사람이 결코 죽지 않으리라는 사탄의 약속에 반대로 아담은 창조되기 전 상태로 도라갔다. 그전 상태는 불멸의 영혼이 아니라 흙이였다는 것을 알라. 아담은 창조되기 전에나 살어 있었을 동안이나 또한 죽은 후에도 불멸의 영혼을 가지지 않었다는 것은 확실하나 거짓 종교가들이 말하는 바와 같이 인간이 불멸의 영혼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사탄이 해와를 꾀여 네가 결코 죽지 않으리라는 거짖말에 근거를 둔것이다. 하느님의 말씀은 그와 정반대이다. (에스겔 18:4) 그리하여 이 땅은 낙원으로 변하지 못하고 저주를 받어 많은 가시 덤불과 엉겅퀴가 나게 되였으며 사람은 이마에 땀이 흐르도록 심한 노동을 하여야만 저주 받은 땅으로 부터 나는 소산으로 겨우 생명을 유지하게 되었다. 그 얻은 식물도 하느님의 동산의 아름다운 음식이 아니라 야생하는 채소를 씹어야 할 운명에 빠지게 된것이다.
하나의 저주는 제거되고 하나는 남겨둠
10. 홍수가 지난후 어떠한 변화가 왔는가?
10 그때부터 16세기가 지난후 여호와 하느님께서는 노아와 그 가족 외에는 지구상에 있는 전 인류를 홍수로 멸망 시키실 것을 결정하셨다. 그 이유는?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극도로 심하여지고 그 마음의 생각이 강팍하고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하여 질 뿐이 였기 때문이다. 홍수가 지난후 노아와 그의 가족은 방주로 부터 나오며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 하라는 하느님의 거륵한 명령을 또다시 받게 되었다. 그러나 그 명령은 다만 모형적 으로만 실행 되였다. 동물들 간에도 서로 믿고 사랑하지 못하고 서로 공포를 느끼게 되며 오로지 초식만 하든 에덴의 상태도 회복되지 않었다. 왜냐하면 동물들의 고기는 아직 사람들의 식물로 되여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호와 하느님께서는 홍수후에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내가 다시는 사람으로 인하여 땅을 저주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사람의 마음의 계획하는바가 어려서 부터 악함이라.”―창세기 8:21; 9:1-7.
11, 12. 홍수 후에 땅의 저주를 거두셨다는 것을 어떻게 알수 있는가?
11 홍수후에 땅의 저주를 거두셨다는 것을 우리는 어떻게 알수 있는가? 왜냐하면 수세기 후에 기록되었기 때문이다. 창세기 13장 10절에는 “이에 놋이 눈을 들어 요단 강 유역을 바라본즉 … 어데나 물이 넉넉하니 (여호와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시기 전이었는고로) 여호와의 동산 같더라”(미현대역) 확실이 요단강 유역의 땅은 하느님의 동산 에덴과 비교하여 볼때 저주 받은 땅이라 할수 없었다. 이스라엘 백성과 약속한 이땅에 관하여 정탐군이 본것을 민수기 13장 23절에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에스골 골짝이에 이르러 거기서 포도 한 송이 달린 가지를 베어 둘이 막대기에 꿰어 메고 또 석류와 무화과를 취하니라.” 그 정탐군들이 본 상태를 믿을만 하게 증언한바 “과연 젖과 꿀이 그 땅에 흐르고 이것은 그 땅의 실과 니이다” 하였다. (민수기 13:27) 이것은 저주 받은 땅으로써 사람의 식물로써 야생의 풀이나 가시덤불과 엉겅퀴만 발생하는 땅으로는 생각되지 않는다.
12 또한 약속의 복지에 관하여 신명기 8장 7-9절과 11장 10-15절에 다음과 같이 기록되었다. “네 하느님 여호와께서 너를 아름다운 땅에 이르게 하시나니 그것은 골짜기에 든지 산지에 든지 시내와 분천과 샘이 흐르고 밀과 보리의 소산지요 포도와 무화과와 석류와 감람석들의 나무와 꿀의 소산지라 너희 먹는 식물의 결핍함이 없고 네게 아모 부족함이 없는 땅이며 그 땅의 돌은 철이오 산에서는 동(銅)을 캘 것이라.” “네가 들어가 있으랴 하는 땅은 네가 나온 애급땅과 같지 아니하니 거기서는 너희가 파종한 후에 손으로 물 대기를 채소 밭에 댐과 같이 하였거니와 너희가 건너가서 얻을 땅은 산과 골짜기가 있어서 하늘에서 나리는 비를 흡수하는 땅이요 네 하느님 여호와께서 돌보시는 땅이라 세초부터 세말까지 네 하느님 여호와의 눈이 항상 그 위에 있나니라 내가 오늘날 너희게 명하는 나의 명령을 너희가 만일 청종하고 너희 하느님 여호와를 사랑하여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섬기면 여호와께서 너희 땅에 이른바 늦인 비를 적당한 때에 나리시리니 너희가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을 얻을것이요 또 육축을 위하여 들에 풀이 나게 하시리니 네가 먹고 배 부를 것이라.”―미현대역.
13. 그러면 땅은 어찌하여 아름다워지지 않었는가?
13 그처럼 만일 땅의 저주를 거두었다면 어찌하여 땅이 아름다워 지지 않었는가? 신명기 11장 17, 27, 28절에는 그 이유를 기록 하였다. “너희는 스사로 삼가라 두렵건대 마음에 미혹하여 도리켜 다른 신들을 섬기며 그것에게 절함으로 여호와께서 너희게 진노하사 하늘을 다 비를 나리지 아니하여 땅으로 소산을 내지 않게 하심으로 너희가 여호와의 주실 아름다운 땅에서 속히 멸망할까 하노라 내가 오늘날 복과 저주를 너희 앞에 두노니 너희가 만일 내가 오늘날 너희게 명하는 너희 하느님 여호와의 명령을 들으면 복이 될것이요 너희가 만일 내가 오늘날 너희게 명하는 도에서 도리켜 떠나 너희 하느님 여호와의 명령을 듣지 아니하고 본래 아지 못하든 다른 신들을 쫓으면 저주를 받으리라.” (미현대역) 신명기 30장 19, 20절에도 생명과 사망의 하나를 택하는 같은 기록이 있다. “내가 오늘날 천지를 불러서 너희게 증거를 삼노라 내가 생명과 사망과 복과 저주를 네 앞에 두었은즉 너와 네 자손이 살기 위하여 생명을 택하고 네 하느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 말씀을 순종하며 또 그에게 복종하라 그는 네 생명이시라.” (미현대역) 또한 레위기 26장 14-43절과 기타 여러 성경 구절의 불순종에 대한 저주의 경고가 기록되여 있다.
14. 인간은 땅에 대하여 어떻게 할수 있었는가? 그러나 인간은 무엇을 행하고 있는가?
14 그러므로 오늘날 인류가 근본 목적에 딸어 조화롭게 이 땅을 정복하지 못하게 된것은 그들의 불 순종으로 말미암어 저주 받은 까닭이다. 그들이 지금 받고 있는 고통은 이 저주로 말미암은 것이며 최초의 인간이 에덴으로 부터 추방될 때에 땅에 대하여 받은 저주 보다도 더 큰것이다. 만일 인간이 그들의 거처인 땅을 남용치 않고 잘 순종 하였드라면 이 땅을 더 아름답게 만들었을 것이다. 또한 많은 아름다운 공원도 만드러 말할수 없이 아름다운 자연으로 말미 암어 더욱 창조주의 거륵함을 나타내였을 것이다. 또한 그러한 것에는 인간과 동물간에 평화도 회복 되였을 것이다. 그러나 가져오지 못하고 오히려 땅에서 자연자원을 취하기 위하여 땅을 파 제끼며 동물들을 잡어 상업과 운동의 목적으로 하고 있다. 또한 탐욕으로써 산에 있는 나무는 모조리 깎어 버리며 땅에서는 굴속을 파내어 배나 비행기를 만들어 바다에 가라 앉치며 하늘에서 폭발시켜 버리기도 한다.
15. 불순종에 대한 종말은 어떻게 되겠는가?
15 인간은 땅을 개척하기 커녕 땅을 망치고 있다. 묵시록(계시록) 11장 18절에 여호와 하느님께서 말씀 하시기를 “땅을 망하게 하는 자들을 멸망 시키시겠다”고 하셨다. 점점 극단으로 달리고 있는 인간의 불순종과 죄악이 하느님 앞에 심하여 가며 그 불순종에 대한 저주도 최고도에 이르러 여호와의 전쟁인 아마게돈에 이르러 끝 마칠 것이다. 땅을 황폐케 만들 그 저주에 관하여 하느님의 말씀은 명시하고 있다. “땅이 또한 그 거민 아래서 더럽게 되였으니 이는 그들이 율법을 범하며 율례를 어기며 영원한 언약을 파하였음이라 그럼으로 저주가 땅을 삼켰고 그중에 거하는 자들이 정죄함을 당하였고 땅의 거민이 불타서 남은자가 적으며 … 또 땅의 거민아 두려움과 함정과 옭무가 네게 임하였나니 두려운 소래를 인하여 도망하는 자는 함정에 빠지겠고 함정 속에서 올라오는 자는 옭무에 걸리리니 이는 우에 있는 문이 열리고 땅에 기초가 진동 함이라 땅이 깨어지며 땅이 갈러지고 땅이 흔들리고 흔들리며 땅이 취한자 같이 비틀 비틀 거리며 침망같이 흔들리며 그 위의 죄악이 중합으로 떠러지고 다시 이러나지 못하리라.”―이사야 24:5, 6, 17-20, 미현대역.
땅에 대한 여호와의 목적의 성취
16. 그때에 땅에는 어떠한 일이 있을 것인가?
16 다음에는 어떻게 될것인가? 여호와의 불 같은 심판으로 말미암어 사탄의 세상이 전멸되여 다시는 사탄의 하늘이나 땅의 조직이 없을 것이며 다시는 일어 나지 않을 것이다. 다만 여호와의 편에 선자들은 여호와의 약속대로 아마게돈을 통과하여 새 하늘과 새 땅의 기쁨을 맛볼것이다. 이 새로운 신권 조직 밑에서 이 땅은 다시는 불 순종으로 말매암은 저주를 받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아마게돈으로 말미암어 불순종의 씨를 일소하여 버리기 때문이다. (전도 1:4; 베드로 후서 3:13; 묵시 21:1; 22:3) 그때에 지구는 인간의 불 순종과 땅에 대한 저주로 말미암어 고통을 당하지 않을 것이며 하느님께서 에덴에서 선언하신 거륵한 명령대로 땅은 정복될 것이다. 사람들은 가끔 월요일을 “파랑이”라고 부른다. 왜나하면 월요일부터 하기 싫은 일이 또 시작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때에는 이처럼 일하기 싫은 월요일도 없어지고 잊어 버릴 것이다. 왜냐하면 이 땅을 낙원으로 회복 시키는 일은 그들에게 말할수 없는 기쁨과 만족을 가져올 것이기 때문이다. 그때에 사람들은 손으로 일하는 것을 좋와할 것이다. 땅은 가시 덤불과 엉겅퀴를 내지 않으며 인간의 수고에 보답하여 풍부한 산물을 낼것이다. (시편 67:6; 이사야 55:13) 심지어 사막까지라도 여호와의 은혜와 인간의 경작으로 말미암어 백합화 같은 낙원으로 변할 것이다.―이사야 35:1.
17. 그때는 사람과 동물 사이에 관계는 어떻게 될것인가?
17 짐승들도 통솔되어 그들과 인간 사이에 평화가 있을 것이다. 지금 우리는 고양이나 개를 귀여워 하며 때로는 공원에서 다람쥐나 비둘기가 우리 손바닥에 있는 먹이를 먹을때 우리는 섬짓한 마음을 느낀다. 또한 동물원을 걸어갈때 그 곳에 있는 사자의 북신 북신한 목의 털을 만져 보고 싶으며 칙범의 거무 뭉트레한 장동을 만져 보고 싶은 생각이 난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자연적 충동을 현명하게 제제한다. 왜냐하면 우리손이 그 털에 닿자 마자 우리손은 그 짐승의 입속에 들어가기 때문이다. 우리가 동물들을 믿지 못함과 같이 그들도 우리를 믿지 못한다. 그러나 새 세상에 있어서는 사람이 짐승들을 통솔한다. 그러나 그 통솔은 공포나 산양이나 또는 동물원 관리인이나 곡 마단의 길 드리는 사람들로 말매 암지 않고 상호간의 완전한 신임으로서 행하여 지며 어린 아이라도 사나운 즘승을 끌고 다닐수 있게 된다. 또한 그 때는 사자까지라도 초식(草食)을 하게 된다.―이사야 11:6-9; 호세아 2:18.
18. 그때에 어떠한 말이 이루어 질것이며 또한 그것은 누가 보장 할것인가?
18 또한 그때에 의로운 인간으로 땅을 가득차게 할 하느님의 명령도 완전히 이루어 질것이다. 모든 동물이 순종케 되며 어린이들은 여호와의 연단과 훈계로 양육을 받게될 낙원으로 변하여진 땅은 얼마나 기쁨을 줄것인가? (에베소 6:4) 그때에는 어른이나 소년들의 범죄도 없을 것이며 가정적 고통이나 이혼 또는 사망으로 말매암은 가정적 파괴도 없을 것이다. 하느님께서 처음 에덴에서 발표하신 목적은 새 세상에서 완전히 성취될 것이며 이 땅은 의로운 사람들로서 충만케 될 것이다. (이사야 45:18)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모든 동물들을 다스리라는 하느님의 말씀의 한 마듸도 헛되히 되지 않으며 반듯이 성취될 것이다. 여호와께서 선언 하시기를 “나의 목적이 설 것이니 내가 나의 모든 기뻐하는 것을 이루리라 하였노라 … 내가 말하였은즉 정녕 이룰 것이요 내가 목적 하였은즉 정녕 행하리라.” 또 선언 하시기를 “내 입에서 나가는 말도 헛되히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고 나의 뜻을 이루며 나의 명하여 보낸일에 형통 하리라.”―이사야 46:10, 11; 55:11.
19. 사람들은 지금 무엇을 택하고 있는가?
19 여호와께서 태초에 목적하신 생명은 완전한 상태에서 한 없이 살수 있는 것이였다. 사람들이 그것을 취할 가장 적당한 때는 지금이다. 실로 지상에 있는 사람들은 지금 생명이냐 혹은 영원한 사망이냐 그중의 하나를 택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