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틸다와 왈츠를”
「깨어라!」 오스트레일리아 통신원 기
“마틸다와 왈츠를”이라는 오스트레일리아 노래는 전세계에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1895년 4월 6일에 이 노래가 최초로 공개적으로 연주된 지 100주년이 되는 작년에 이 노래에 대한 관심이 갑자기 고조되었습니다.
다소 난해한 가사를 담고 있는 단순한 민요가 어떻게 그렇게 오스트레일리아 전역에서뿐만 아니라 전세계의 수많은 나라에서 인기를 얻게 되었습니까? 이 노래의 정확한 유래에 관해서는 상반된 설명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가사의 원저자가 A. B. (밴조) 패터슨이라는 사실에 대해서는 의견이 일치하는데, 그의 시들은 1800년대 말과 1900년대 초에 베스트셀러가 되었습니다.
“마틸다와 왈츠를”의 표현법은 다양하지만, 그 가사의 내용은 분명히 봇짐 여행자에 관한 것입니다. 봇짐은 개인의 소유물을 넣고 다니는 꾸러미이며, 봇짐 여행자는 여행할 때 봇짐을 메고 다니는 사람입니다. 이 노래에 나오는 봇짐 여행자는 오스트레일리아 오지의 빌러방으로 알려진, 강의 한 조그만 지류 옆에 천막을 쳤습니다. 그가 빌리, 즉 금속 주전자를 모닥불 위에 올려 놓고 물을 끓이고 있을 때, 점벅으로 알려진 살진 양 한 마리가 물을 마시려고 그 빌러방으로 내려왔습니다. 봇짐 여행자는 그 양을 잡아 죽인 다음, 몸통을 식량 자루 즉 양식을 넣어 가지고 다니는 자루에 넣었습니다. 그가 이러한 일을 마치자마자 그 땅 주인인 무단 정착 농장주가 말을 타고 나타났습니다. (무단 정착 농장주란 그 땅에 “무단 정착”하여 소유권을 획득한 농장주들을 가리킵니다. 후에 그들은 자기들이 소유한 광대한 땅에 대해 등기를 할 수 있었습니다.) 이 무단 정착 농장주는 세 명의 기마 경관을 대동하고 있었습니다. 그 불행한 봇짐 여행자는 양을 훔친 죄로 기소되어 투옥이나 더 심한 일을 당할 것이 분명해지자 빌러방에 껑충 뛰어들어 익사하고 맙니다.
이 있을 법하지 않은 이야기가 그처럼 인기를 끄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브루스 엘더가 렉스 누얼의 저서 「밴조 패터슨의 사랑받는 시」(Favourite Poems of Banjo Paterson)를 소개하는 말에 한 가지 설명이 나와 있습니다. 브루스 엘더는 이 노래에는 오스트레일리아 사람들이 그들 자신을 어떻게 보고 싶어하는지가 서술되어 있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단지 양을 훔치는 봇짐 여행자에 관한 이야기에 불과한 것이 아니다. 약한 자를 못살게 구는 권력자에 대한 우리의 반감을 표현한 것이다. 그 봇짐 여행자는 비열한 관리에게 항상 반항하고 싶어했던 모든 오스트레일리아 사람을 상징한다. ··· 우리의 삶이 이러한 사람들의 지배를 받게 하느니 차라리 빌러방에 뛰어드는 것이 낫다.” 그러나 인기의 원인이 무엇이든 간에, “마틸다와 왈츠를”은 100년 이상 오스트레일리아를 상징하는 노래가 되어 왔습니다.
“마틸다와 왈츠를”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
이 노래에는 네 개의 절, 즉 짧은 연이 있습니다. 각 절 뒤에는 후렴이 나오는데, 후렴은 이러한 행(行)들로 시작됩니다.
마틸다와 왈츠를, 마틸다와 왈츠를,
와서 나와 함께 춥시다, 마틸다와 왈츠를.
이 행들 다음에는 앞 절에서 묘사된 내용을 반복하는 두 행이 이어집니다. 이 노래의 제목은 이 후렴에서 따온 것입니다.
“마틸다”의 정체가 정확히 무엇인지, “왈츠”를 추는 것이 누구인지에 대해서는 명확하지 않으며 심지어 논쟁이 벌어지기도 하였습니다. 일부 연구가들이 제시하는 단순한 설명이 가장 그럴듯해 보입니다. 한 저술가는 이렇게 말합니다. “패터슨은 ··· 둘둘 말아 어깨에 메고 다니는 봇짐에 자기의 모든 소유물을 꾸려 넣고 이곳저곳으로 떠돌아다니는 여행자에게 매력을 느꼈다. 그는 이 봇짐 여행자들이 쓰는 일상 언어를 좋아했다. 봇짐을 메고 다니는 것은 ‘보따리를 지고 다니는 것’, ‘어깨에 혹을 달고 다니는 것’, ‘재앙을 몰고 다니는 것’, 또는 ‘마틸다와 왈츠를 추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시드니 메이가 자기의 저서 「“마틸다와 왈츠를”에 관한 이야기」(The Story of “Waltzing Matilda”)에서 내린 마틸다와 왈츠를에 대한 간략한 정의는 다음과 같습니다. “펼쳐 놓은 담요에 옷가지와 개인 소유물들을 놓고 단단히 말았다. 그런 다음 가운데에 단단히 만 것이 들어 있는 담요의 양쪽 끝을 묶어서, 느슨하게 묶인 양끝을 앞으로 늘어뜨린 채로 목에 둘러메고 다녔는데, 보통 한 팔로 한쪽 끝을 붙잡고 다닌 것 같다.”
“마틸다”의 명성이 퍼져 나가다
시드니 메이는 “마틸다와 왈츠를”이라는 노래가 그 근원지인 오스트레일리아 밖에서까지 인기를 얻게 된 것은, 오스트레일리아 군대가 일·이차 세계 대전 중에 다른 나라로 출범하게 된 덕분이라고 결론짓습니다. 그는 다음과 같은 예들을 듭니다. “1941년에 텔아비브에 있는 한 카페의 오케스트라는 한 오스트레일리아 사람이 카페의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이 노래를 연주하였다. 제9사단은 바디어 시를 탈환하고 나서 그 도시로 진입할 때 이 노래를 불렀다. 영국 함대와 합류하러 간 오스트레일리아 전함은, 일찍이 1917년에, ‘마틸다와 왈츠를’을 연주하는 기함 악대의 환영을 받았다. 그리고 한 오스트레일리아 사람이 해외 방송을 시작하기 전에 이 노래가 주제곡으로 연주된다.” 이 노래가 연주되었던 가장 유명한 행사 가운데에는,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대관식 바로 전 주에 런던의 버킹검 궁에서 오스트레일리아 군대의 대관식 분견대가 공식 열병을 한 일이 포함됩니다.
한 흥미 있는 신문 보도 역시 “마틸다와 왈츠를”이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에게 인기 있는 이유를 어느 정도 알려 줍니다. 그 신문 보도는 이러합니다. “어느 날 저녁, [오스트레일리아의 수상] 멘지스가 [영국의 수상] 처칠 그리고 용기 있는 프랑스 지도자 드골 장군과 함께 체커스에서 식사를 한 후, 그들은 다른 방으로 자리를 옮겼다. 윈스턴 경이 신호를 보내자 ‘마틸다와 왈츠를’ 판이 틀어졌다. 그는 힘차게 노래 부르며 춤추듯 방을 돌다가 멈추면서 장군에게 ‘세상에서 가장 멋진 노래 중 하나랍니다’라고 말하였다.”
“마틸다”의 인기를 증명하는 또 하나의 사실로서, 리처드 머고핀은 그의 저서 「마틸다와 왈츠를—그 전설 속에 숨은 이야기」(Waltzing Matilda—The Story Behind the Legend)에서 이렇게 기술합니다. “제2차 세계 대전 중에 이 빌러방에 관한 노래는 오스트레일리아 병사들이 가는 곳을 따라 세계 전역으로 한층 더 널리 퍼졌다. 이것은 향수를 쉽게 불러일으키는 노래라서 오스트레일리아 노래로 쉽게 인식되었다.” 그는 또한, “마틸다와 왈츠를”을 「해변에서」(On the Beach)라는 영화의 주제곡으로 선정한 영화 감독 크레이머의 말을 인용합니다. 크레이머는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이것은 매우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는 노래입니다. 이 노래는 가요, 행진곡, 민요, 또는 다른 어떤 형태의 음악으로도 연주할 수 있기 때문에, 우리는 이 노래를 ‘해변에서’의 배경 음악으로 수없이 다양하게 사용하였습니다. 나는 거의 순간적인 충동으로, ‘마틸다와 왈츠를’을 이 영화의 배경 음악 가운데 주제곡으로 삼아야겠다고 결심하였습니다.”
이 노래에는 메시지가 담겨 있는가?
어떤 사람들은 밴조 패터슨이 자기 노래의 가사를 읽고 그 노래를 부르는 사람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하고 있었다고 믿습니다. 예를 들면, 윌리엄 파우어는 미국에서 발행되는 「예일 평론」(Yale Review)지에 이 노래에 담겼을 법한 메시지에 관하여 몇 가지 자기 분석적인 생각을 표현하는 기사를 썼습니다. 물론 모든 사람이 그의 견해에 동조하지는 않겠지만, 그의 해설은 “마틸다와 왈츠를”에 대한 이 간략한 분석의 적절한 결론이 됩니다. 그는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오스트레일리아 사람들은 자연의 힘뿐만 아니라 인간성의 결함과도 싸워야 하였다. ··· 이로 인한 긴장감이 ‘마틸다와 왈츠를’에 표현되어 있다. 양극을 이루는 전형적인 두 인물이 원수역을 맡고 있는데, 무단 정착 농장주와 봇짐 여행자가 그들이다. 그러한 대립에서, 대부분의 사람은 무단 정착 농장주가 이기는 것이 당연하다고 단언할 것이다. 오스트레일리아의 경제는 주로 양이나 소 목축업자로서의 그의 뛰어난 역량에 의존해 있다. 그는 열심히 일하고, 책임감 있으며, 용감 무쌍하다. 우리가 개척자에게서 연상할 수 있는 특성들이 그에게 조금이라도 결여되어 있다면, 그는 무단 정착 농장주로서 오래 남아 있지 못할 것이다. ··· 봇짐 여행자 역시 인간이다. ··· 그 역시 사회의 구성원 중의 하나이다. 소수의 봇짐 여행자는 출세하여 무단 정착 농장주가 되었다. 더 많은 수의 봇짐 여행자는 그보다는 못하지만 그래도 만족할 만한 지위를 얻어 농부, 목장 일꾼, 기계공, 도시 근로자가 되었다. 그런가 하면 자신의 생애가 끝나는 날까지 땅도 없고 집도 없이 살다가 오지의 오솔길에 뼈를 남기고 죽는 봇짐 여행자들도 있다. 사회는 무단 정착 농장주가 봇짐 여행자를 이길 것을 요구할지 모르지만, 한 인간으로서의 봇짐 여행자의 권리도 망각하는 일이 있어서는 결코 안 된다.”
이제, 이 단순한 오지 민요가 쓰여진 뒤로 100여 년이 흘렀습니다. 밴조 패터슨은 자기의 시가 음악으로 옮겨져 그토록 인기 있는 오스트레일리아 노래가 될 줄은 생각도 하지 못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