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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어라!—1985
깨85 12/15 6-7면

“슐랑스트”—학력의 대가인가?

「깨어라!」 독일 통신원 기

슐랑스트(schulangst)—이 말은 국제적인 범위로 급속히 확산되고 있는 한 문제거리를 묘사하기 위해 생겨난 말이다. 비록 번역으로는 다소 그 말의 온전한 뉘앙스를 살릴 수 없다 하더라도, 그 의미는 대충 “학교 불안증”이다.

10년 전에 독일의 소아과 의사인 에크하르트 슈리켈 박사는 이렇게 말하였다. “내가 치료한 어린이들 중 족히 3분의 2는 일반적인 의미에서 기관에 이상이 있는 환자가 아니다. 그 아이들은 학교와 관련된 환자들이다.” 의학 전문지인 「도이췌 애르쯔테브라트」지는, 그때 이래 학교와 관련된 어려움 때문에 치료를 받은 어린이들의 수가 열배나 증가했다고 주장한다!

실로, ‘독일 신참 교사 연합회’를 신뢰할 경우, ‘연방 공화국’의 공립학교 제도는 위기에 처할 것이다. 그 ‘연합회’는, 매년 280,000명의 학생들이 합격 점수를 받지 못하고 있으며—거의 매 30명 중 하나꼴—, 또한 학교와 관련된 이유로 18,000명이 자살을 기도하고 있다고 지적하였는데, 해마다 그 중 수백명이 자살에 성공한다는 것이다.

그 제반 원인들

그러한 슐랑스트를 야기시키는 가장 중요한 원인은 아마 널리 퍼져 있는 출세 압력일 것이다. 독일 청소년들은 부모와 교사들로부터 똑같이, 만일 대학에 들어가고자 하거나 의미깊은 직장을 얻고자 한다면 뛰어난 학업 성적을 취득해야만 할 것이라는 말을 듣는다. 그러나, 많은 어린이들에게는, 실패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긴장을 초래하여 종종 그들로 실패하게 만든다! 독일 교수 발터 라이브레히트는 이렇게 경고한다. “우리 학부모들은 부모측의 지나친 야심이 우리 자녀들에게 해를 줄 뿐임을 깨닫지 않으면 안 된다.”

참으로, 성적은 학생들이 공부를 잘하도록 자극하고, 개선이 필요한 분야를 지적해 줄 수 있다. 그리고 학부모가 자기 자녀의 교육에 아무런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면, 그 어린 학생은 배우게 하는 자극제를 잃고 말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이브레히트는 “성적의 과중한 압력”을 비난한다. 성적에 너무 지나친 역점을 두는 것은 평균 지능의 또는 심지어 평균 이상의 지능을 가진 아이들까지도 열등감을 느끼게 할 수 있다. 독일의 잡지 「엘테른」은 이렇게 말한다. “성적이 압력을 가하는 수단이 되어 개인 발전의 폭을 허용해 주지 않을 때, 또 그 성적이 사회 일원으로서의 균형을 왜곡할 때, 우리 제도는 뭔가가 썩은 것이다. 고통을 당하고 있는 것은 바로 우리의 자녀들이다.”

불화에 싸여 있거나, 이혼이나 별거로 파경에 이른 가정 역시 슐랑스트를 유발시킬 수 있다. 그러한 가정의 어린이들은 종종 혼란을 느끼고, 불안해 하며 또 무정해지기까지 한다. 흥미롭게도, ‘뷔르쯔부르크 쥴리우스—막시밀리안스 대학교’의 ‘청소년 정신병 진료소’ 소장인 게르하르트 니센 박사는 이렇게 설명한다. “주목할 만한 점은 부모와 자녀의 관계에 또는 그 어린이의 성격 구조에 심각한 결함이 있을 때에만 학생들이 자살을 기도한다는 것이다.”—고딕체로는 본지에서.

그러나 슐랑스트를 야기시키는 또 다른 요인은 11세된 어린이의 이러한 말에 나타나 있다. “나는 내가 선생님이 내는 문제를 이해할 수만 있다면, 틀림없이 풀 수가 있는데요.” 특히 1960년대 후반 이래로, 독일의 교실에서 평이한 용어들이 점차 까다로운 과학 및 전문 용어에 밀려났다. 그로 인한 좌절감은 슐랑스트를 야기시키는 온상이 된다.

텔레비젼 시청을 늘리는 일까지도 한 가지 요인이 될 수 있다. 한 교육자의 주장에 의하면, TV 시청자들은 다음에 나올 것에 더 잘 집중하기 위하여 자기들이 막 본 것을 빨리 잊어버리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그 결과는? 그들은 그만큼이나 빨리 학교 공부를 잊어버리는 경향이 있다!

때때로, 학생들은 “위협, 강탈 및 학대”를 당하기 쉽다. 「함부르크 아벤드브라트」지는 더 나아가 이렇게 논평하였다. “종종 학교에 대한 두려움은 동료 학생들의 폭행에 대한 두려움이기도 하다 ·⁠·⁠· 그것은 학생들이 폭력의 압박감에 대한 반응으로 나타난 것이다.”

너무 큰 대가인가?

독일어이긴 하지만, 슐랑스트는 독일에만 있는 독특한 현상은 아니다. 그것은 많은 학교들이 당면한 시험에 합격하지 못하고 있다는 또 다른 불온한 징조에 불과하다. 학문상의 성과는 훌륭하다. 그러나, 자녀들이 학교에 대한 거의 병적인 두려움을 키워가고 있다면, 학부모들은 학력의 대가가 너무 크지는 않는지 자문해 보아야 할 것이다.

하지만, 세계의 많은 지역에서는 학교들이 읽기와 쓰기 같은 가장 기본적인 기능이라도 가르치려고 애쓰고 있다. ‘제 삼 세계’ 즉 세계의 모든 개발도상국들은 어느 정도로 그러한 도전에 대처해 나가고 있는가?

[7면 삽입]

교사 및 학부모들로부터의 출세 압력은 많은 청소년들이 학교에 대한 거의 병적인 두려움을 갖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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