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절하던 사람도 양이 될 수 있다
“전에는 훼방자요 핍박자요 ··· 죄인 중에 내가 괴수”였다고 말한 사도 바울도 하나님의 종이 되어 “복되신 하나님의 영광의 복음을” 좇았다고 말했다. (디모데 전 1:11-15) 그러므로 문전에 선 증인에게 부정적으로 대하는 사람에게도 좋은 소식에 긍정적인 반응을 나타낼 수 있는 기회를 주기 위해 우리는 반복해서 구역을 돈다. 한국 내의 대부분의 회중 구역은 자주 돌아지고 있기 때문에 문도 열어 주지 않고 거절하는 사람을 자주 만난다. 그처럼 거절하던 사람도 사도 바울처럼 양이 될 수 있다는 다음과 같은 경험은 참으로 격려적이다. 일본의 하쓰미 자매는 인터폰으로 바빠서 대화할 수 없다고 정중히 거절하는 어조가 부드러웠기 때문에 2년 반 동안 재방문한 끝에 성서 연구를 마련하였다.—참조 「파」 93 4/15 30면.
이처럼 문전에서 우리의 소식을 거절하는 사람 중에, 거절하면서도 미소를 띠거나 부드럽게 말하는 사람, 미안해 하는 사람을 어떻게 도울 수 있는가? 그들에 관해 「호별 방문 기록」 용지에 기록하였다가 재방문할 수 있다. 재방문에서 무엇이라고 말할 것인가? “지난번 뵈었을 때 부드럽고 선해 보여서 참으로 인상적이었기 때문에, 이러한 전도지를 드리려고 다시 찾아왔습니다”라고 인사할 수 있다. 또한 「우리의 왕국 봉사」 1994년 3월 호 4면, “소식에 따라 행동하도록 사람들을 도우라” 기사 5항의 “만일 집주인이 단순히 호의적으로 듣기만 하였다면, 이렇게 하는 것이 효과적일 것이다”라는 내용을 사용하여 재방문할 수 있다.
그러므로 출판물을 받거나 관심을 나타낸 사람들 뿐 아니라, 거절하면서도 부드러운 말이나 표정을 나타내는 사람도 다시 방문할 것이다. 그렇다. 우리의 방문을 처음에는 거절하던 사람도 양이 될 수 있음을 인식하고 재치 있게 다시 접근하여 보라. 이렇게 노력하면 자주 도는 구역에서도 재방문할 곳이 많아질 것이다. 여호와께서는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므로 우리가 이처럼 사람들을 돕고자 애쓸 때 인자하신 하나님 여호와께서는 우리의 노력을 풍성히 축복하셔서 더 많은 연구를 가질 수 있게 도우심으로 더 많은 왕국 열매를 맺게 하실 것을 확신한다.—베드로 후 3:9; 말라기 3: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