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겟돈’이 그토록 거론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아마겟돈”—성서에 나오는 이 명칭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매번 의미 심장한 표지로 소개되는 이 제목에 관한 일련의 유익한 기사가 1985년 3월과 4월의 네개 호 「파수대」지에서 특별히 다루어지고 있다. 이러한 성경적인 설명을 통해 독자가 ‘아마겟돈’이란 과연 무엇인지 알게 됨으로 위안을 얻기를 바라는 바이다.
“내가 구약 성경에 나오는 고대 예언자들과 ‘아마겟돈’을 예고하는 표징들을 살펴보면, 나는 그것이 일어나는 것을 볼 세대가 혹시 우리 세대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1983년 10월 18일 미국 대통령 ‘로널드 레이건’.
“오늘날 묵시는 단순한 성서적인 묘사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대단히 실제적인 가능성을 지닌 것이 되었다. 인간 경험 사상 우리처럼 대재난과 생존 사이의 아슬아슬한 위기에 처해 본 적이 결코 없었다.”—1982년 6월 8일 유엔 사무 총장 ‘하비에르 페레즈 데 케야르’.
“아마겟돈”은 세계적으로 거론되어 왔다. 교직자, 정치가, 위정자, 군장성, 과학자 및 경제학자들의 입에서 그 불길한 말이 점점 더 자주 오르내리고 있다. 미국에서만도 1983년에 배포된 책 중 최소한 15권의 제목에 ‘아마겟돈’이란 말이 나와 있다. 그 말은 수많은 다른 책들의 주제가 되었다. 그 중 얼마는 수백만부씩 팔렸다.
그 말이 일반에게 급속히 부각되고 있는 것이 이상하게 보일지 모른다. ‘아마겟돈’이라는 말이 처음으로 기록 사용된 경우는 성서에 나오는데, 그것도 단 한번 밖에 사용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계시 16:16) 그러나 교직자들만이 그 말을 사용해 온 것은 아니다. 1800년대에는 ‘아마겟돈’이란 말이 비성서적인 의미로도 사용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1900년대 초에야 비로소 “아마겟돈”은 “대학살” 혹은 “최후의 전쟁”과 동의어가 되었다.
그때 이후로 ‘아마겟돈’이란 말은 서서히 갖가지 집단의 전문가들이 사용하는 용어가 되었고, 사용자마다 약간씩 색다른 의미로 그 말을 왜곡시켰다. 1912년에, ‘데오도르 루우스벨트’는 미국 대통령으로서의 임기를 연장하기 위한 선거 운동을 하면서, 그 말을 정치적으로 곡해하였다. 그는 이처럼 자랑하였다: “우리는 굽힐 줄 모르는 마음과 흐려지지 않은 눈으로, ‘아마겟돈’에 서서 주를 위해 싸우고 있습니다.” ‘루우스벨트’는 재선되기 위한 정치적인 투쟁에서 실패했다.
요즈음 ‘아마겟돈’이 그토록 거론되고 있는 것은 심각하게 불안한 세계적인 상황, 다시 말해, 세계적인 핵 참사, 그 가공할 무기를 폭발시킴으로 인한 기나긴 핵 겨울, 중동에서의 대전쟁, 혹은 세계 경제 기반의 갑작스러운 붕괴 등의 위협에서 비롯된 것이다. 따라서 요즘엔 전혀 예상하지 않은 곳에서도 ‘아마겟돈’이란 말이 불쑥 나타나고 있다:
◆ “‘키치조지’에서 ‘아마겟돈’”이란 제목이 붙은 일본의 장편 만화 영화는 각기 선과 악을 대표하는 인물들이 최후까지 싸우는 것을 묘사한다.
◆ ‘헬리’ 혜성이 1986년에 다시 나타날 것이라는 예상으로 인해, 「프랑크 푸르터 노이어 프레서」지는, 그것은 미신을 믿는 사람들에게 “또 한번 ‘아마겟돈’의 전조가 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그러나 그러한 것들 중 어느 것도 진짜 ‘아마겟돈’이 아니다. 오늘날 ‘아마겟돈’을 선포하는 또 다른 음성이 들리고 있다. 그 소리의 강도는 급등하고 있으며 이백 오십만 이상의 사람들이 발하고 있다. 독자는 그것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그 소리에 귀기울일 때 독자는 ‘아마겟돈’이 어떠한 것이 아닌지에 대해서 뿐 아니라, 더욱 중요한 것으로, 그것이 실제로 무엇인지도 알게 될 것이다.